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집으로 (1)
때는 로이스와 쌍둥이가 잘못된 공간 이동으로 기묘한 섬에 불시착한 당일.
잔잔하게 일렁이며 평온해 보이던 수면 위에 검은 점 하나가 생겨났다.
착시라고 생각될 정도로 갑작스럽게 허공에 생겨난 검은 점.
곧이어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즉- 즉-.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는 검은 점이 지나가는 방향을 따라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말이다.
차츰차츰.
아주 조금씩.
고작 10㎝가량의 작은 선 하나가 생겨나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보는 이가 절로 답답해질 만한 속도였다.
그럼에도 점은 멈추지 않고 선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만 하루가 지났을 때, 허공에는 굵직한 1m 길이의 선이 그려져 있었다.
즉- 즉-.
하루, 하루.
점은 조금도 쉬지 않았고 계속해서 선을 늘려 나갔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을 때, 정체불명의 그림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고.
다시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어렴풋이 윤곽이 나타났다.
그 뒤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검은 점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반년.
즉- 즉-.
9개월.
즉- 즉-.
1년.
즉- 즉-.
그렇게 검은 점이 허공을 노닌 지 무려 1년 6개월이 흘렀을 때.
허공에는 거대한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1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
암석처럼 보이는 등딱지와 촉수처럼 흐느적거리는 12개의 다리.
마치 게와 문어를 합쳐 놓은 듯한 기괴한 그림이었다.
모든 선이 이뤄져 완벽하게 하나의 형상을 취했음에도 점은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의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한 마무리.
흔히 말하는 화룡점정의 작업.
바로 생이 깃들 눈을 그리는 중이었다.
다시 이틀이 흘러.
하나, 둘, 셋.
거대한 등딱지 위로 3개의 눈이 길쭉하게 그려졌다.
즉- 즉-.
그리고 마지막 4번째 눈이 완성되었을 때.
츠츠츠-.
허공의 그림에서 빛기둥이 치솟았다.
그와 함께 빛기둥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잔잔했던 수면이 풍랑을 맞은 듯 크게 소용돌이쳤다.
촤아아-.
빛을 흡수해 나가는 그림.
빛이 점점 줄어들며, 검은 선의 집합에 불과했던 그림에 생명이 깃들기 시작했다.
꽈득- 콰득-.
선을 중심으로 뼈가 생기고 살이 자라났으며 그 위로 회색 광택의 거죽이 뒤덮였다.
그 모든 게 점이 그림을 그려 나간 순서와 일치했다.
그리고 마침내.
4개의 눈이 생기를 머금자.
쾅- 촤아아!
거대한 생명체가 해수면으로 떨어지며 거대한 물기둥을 형성했다.
높게 치솟았던 물기둥이 가라앉고, 바다는 다시금 잠잠해졌다.
마치 지금까지 있던 일이 환상이었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었다.
이후에 일어난 일이 이를 증명해 줬다.
보글보글-.
물 위로 올라온 4개의 눈알.
흰자 따위는 보이지 않은 혐오스러운 눈알이었다.
새까만 눈이 한곳을 바라보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죽여라… 죽여라…….]마치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깨어나 나를 따르라…….]낮은 목소리가 파동이 되어 해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바다가 일렁였다.
보글보글-.
4개의 눈 뒤 곳곳에서 물거품이 발생했다.
[깨어나 나를 따르라…….]똑같은 말이 반복됐고, 4개의 눈알이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 때마다 눈알의 뒤로 계속해서 물거품이 발생했다.
일어나는 기포가 어찌나 많던지 마치 바다가 끓어오르는 듯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턱-,
4개의 눈이 멈춰 버렸다.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말이다.
그럼에도 4개의 눈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깨어나 나를 따르라…….] [깨어나 나를 따르라…….] [깨어나 나를 따르라…….]소름 끼치는 소리는 무한히 반복됐다.
그리고 4개의 눈이 바라보는 곳.
그 끝에 초록의 섬이 있었다.
* * *
결계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로이스.
섬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탑티어에 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밤낮으로 수련만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도 잡지 못했으나 영웅왕의 무법이 지닌 비밀을 깨달으며 진전이 있었다.
‘영웅왕의 무법인 인위적으로 드래곤 하트와 유사한 기관을 만들어 내는 거라면…….’
그렇다면 굳이 영웅왕의 무법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 드래곤 하트를 모방한 기관을 만들어 낼 정도면 이는 필시 드래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단지 상상력만으로 마나 하트를 만들어 냈다는 거치고는 너무도 드래곤 하트와 유사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해야 할 건 마나 하트의 운용법이야.’
영웅왕이 만든 마나 하트는 분명 드래곤 하트와 유사했지만, 그 성능은 너무 떨어졌다.
때문에 영웅왕은 그 떨어지는 성능을 효율적인 마나 하트 운용 능력으로 대신했다.
‘이걸 보니 확실해. 드래곤 하트는 분명 뛰어난 기관이지만, 난 그동안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어.’
아마 로이스뿐만 아니라 모든 드래곤이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써도 모자람이 없는 드래곤 하트이다 보니 이를 아끼고 일부러 능률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마나 하트가 1의 힘으로 2의 결과를 냈다면, 드래곤 하트는 10의 힘으로 7의 결과를 낸 셈이었다.
그렇게 효율이 떨어지는 운용이었음에도 드래곤 하트는 막강한 성능으로 마나 하트의 결괏값을 찍어 누른 것이다.
‘영웅왕 무법의 운용법을 나에게 맞게 개량한다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때는 또 다른 경지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때문에 로이스는 계속해서 영웅왕의 마나 하트 운용법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로이스는 문득 한 가지 영감을 얻었다.
“굳이… 성법과 무법을 구분해야 하는 건가?”
보통의 성무사는 성법은 성법대로 익히고, 무법은 무법대로 익혀 이를 사용한다.
하지만 로이스는 생각을 달리했다.
‘성법이 무법 같을 수도 있고, 무법이 성법 같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의 생각은 깊어졌다.
‘평범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영웅왕의 무법이라면…….’
작은 실마리를 얻은 로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법이란 체내에 축적한 속성력을 외부로 뽑아내 새로운 형태의 것으로 가공하는 작업.’
반면 무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무법은 속성력을 정제해 체내에 축적 후 이를 통해 신체를 강화 시킨다.’
시작은 같으나 다루는 방식에서 성법과 무법의 차이로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법의 방식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게 아닌 성법을 강화하게 된다면……?’
로이스가 차분하게 드래곤 하트를 가동했다.
평소라면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져 나온 속성력이 곧장 외부로 방출되며 성법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로이스가 차분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져 나온 속성력이 팔로 몰려들었다.
로이스는 이를 정제하고 압축했다.
평범한 무법의 응용법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무법이었다면 그렇게 정제한 속성력을 신체를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됐을 거다.
하지만 로이스의 선택은 그게 아니었다.
‘신체 세포 하나하나를 성법 구현의 술식 회로로 삼고 여기에 무법의 속성력을 부여한다면…….’
평범한 존재라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할 일이었다.
만약 로이스가 하는 일을 시도했다가는 성법이 발동하기도 전에 신체가 괴사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로이스는 드래곤의 육신과 내구성을 믿고 이를 감행했다.
그리고 로이스의 이런 도전 정신이 빛을 발했다.
츠츠츠-.
로이스의 팔에서 나타났다 사라진 작은 법진.
웅웅-.
옅은 울음을 토해 내는 팔을 내려다본 로이스가 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파치 파리를 쫓는 듯한 가벼운 손놀림이었지만, 그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콰즉-.
공간이 무너지며 허공이 우그러들었다.
자신이 자주 쓰는 성법이었음에도 로이스마저 놀라고 말았다.
‘힘이 남는다?!’
이후 연달아 로이스가 손을 휘둘렀다.
한 번.
콰즉-.
두 번.
콰즉-.
세 번.
콰즉-.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손짓이 이어졌다.
그렇게 모두 합쳐 총 다섯 번.
이에 로이스는 희열했다.
‘성법 한 번 펼칠 속성력으로 다섯 번이라니!’
이는 단순하게 성법과 무법의 경계를 없앴을 때 나온 결과물이었다.
때문에 더욱 흥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에 영웅왕이 만든 마나 하트 운용법을 더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결과가 어찌 될까?
이는 로이스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찾았다.”
로이스의 입꼬리가 경쾌하게 말려 올라갔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다.
탑티어에 도달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성법과 무법을 만들어 낼 실마리를 말이다.
* * *
핀은 걱정스럽게 나무 성을 바라보았다.
“로이스 님…….”
로이스가 수련에 들어간 지 벌써 수개월.
그동안 로이스는 단 한 번도 성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시는 주인을 못 본 기간이 오래되니 당연히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로이스의 수련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핀은 그저 하루빨리 로이스가 나오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로이스를 기다리던 어느 날.
우르릉-.
큰 폭음이 들리며 땅이 진동했다.
“헛?!”
놀란 핀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진동이 오는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저곳은?!’
진동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나무 성이었다.
바로 로이스가 수련하고 있던 나무 성 말이다.
이에 놀란 핀이 소리쳤다.
“로이스 님!”
얼굴이 창백해진 핀이 쪼르르 나무 성으로 날아갔다.
어디서 무얼 하다가 온 건지, 얼굴에 흙이 잔뜩 묻은 쌍둥이도 다급히 나무 성으로 달려갔다.
우르르-.
그사이에도 진동은 계속됐다.
그렇게 수 분간 부르르 떨던 나무 성이 어느 순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이를 본 핀이 절규했다.
“로이스 니이이임!”
제 주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핀의 비명이었다.
그 순간, 핀의 앞에 새하얀 무언가가 불쑥 생겨났다.
츠팟-.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로이스.
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벅였다.
“핀, 오랜만.”
“로, 로이스 님?”
“왜?”
“어… 그게… 방금 그건?”
핀의 물음에 로이스가 씨익 웃어 보이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츠팟!
로이스의 신형이 10m 밖에 생겨났다.
“헙?!”
핀이 놀라 입을 벌린 사이 다시 공간을 넘어 돌아온 로이스.
어안이 벙벙해 있던 핀이 돌연 기쁨을 담아 소리쳤다.
“서, 성공하셨군요!”
로이스가 어떻게 법진을 사용하지 않고 공간 이동을 사용한 것인지 핀은 모른다.
하지만 공간 이동의 성법을 펼치려면 최소 탑티어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소리는 다시 말해.
“그 나이에 탑티어라니!”
로이스가 탑티어에 올랐다는 소리였다.
핀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개를 부르르 떨자, 로이스는 그저 미소를 보내올 뿐이었다.
겨우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힌 핀이 조심히 물었다.
“그런데 저 성은 어쩌다가…….”
“아, 성법 만든 거 실험 좀 하다가 힘 조절에 실패해서.”
“아하!”
핀은 알았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흐에엥! 우리 성이!”
“으아아아아앙! 우리가 만든 비밀 기지가!”
폭삭 무너진 나무 성을 보고 세상을 다 잃은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은 쌍둥이.
녀석들이 로이스를 째려보며 소리쳤다.
“로이 나빠!”
“우리 성 물어내!”
“우리가 열심히 만든 건데!”
“로이가 부쉈어!”
눈물을 글썽이는 쌍둥이를 보며 로이스가 볼을 긁적였다.
“어… 음… 까까 줄까?”
그러면서 아공간에서 사탕 몇 개를 꺼내 내미니 쌍둥이의 손이 이를 잽싸게 낚아챘다.
쭙- 쭙-.
언제 삐졌었냐는 듯 사탕 몇 개에 사르르 풀려 버린 쌍둥이들.
오랜만의 단맛에 정신이 팔린 쌍둥이에게 로이스가 말했다.
“그거 다 먹으면 준비하자.”
“쭙- 준비?”
“쭙- 무슨 쭙- 준비.”
둘의 되물음에 로이스가 웃었다.
“무슨 준비기는…….”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당연히 집에 갈 준비지.”
“……?”
“후후후.”
기괴한 섬에 떨어진 지 딱 2년이 되는 해.
귀가를 위한 로이스의 마지막 숙제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