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집으로 (2)
사각-.
종이 위를 누비는 펜이 일정한 소리를 냈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날수록 펜이 내는 소리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거칠게 펜대를 놀리는 이는 다름 아닌 제네로커였다.
어찌나 펜을 강하게 쥐었던지 한껏 핏줄이 올라온 손등.
제네로커는 작성하고 있는 서류 한 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마치 종이와 생사 대적에 놓인 듯, 활활 타오르는 눈빛의 열기는 마치 종이를 태워 버릴 듯싶었다.
사각사각-.
점차 빨라지던 펜촉의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사르르 풀려나는 펜을 쥔 손.
탁-.
제네로커가 펜을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고, 곧 그의 눈에 벅찬 감동이 흘러나왔다.
“…끝났다.”
조금 서류 한 장이 10년 치 원로 승계의 마지막 장이었다.
가볍게 서류를 들어 책상에 쌓인 종이 무덤에 올려놓은 제네로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드디어….”
지난 4년간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서류 작업에 매진했던가.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
감격에 몸을 부르르 떨던 그가 곧바로 방을 나서며 소리쳤다.
“원로님! 원로님!”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 봐, 복도에서부터 신이나 방방 날뛰며 뛰어가는 모양새가 로이스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간 그가 한 방문을 박찼다.
쾅-.
떨어져 나갈 듯 거세게 열린 방문.
차를 즐기고 있던 방주인이 화들짝 놀라 찻물을 흘리고 말았다.
“쿠르다커 원로님!”
“무, 무슨 일인가?”
방의 주인, 이번에 은퇴하는 암속성의 원로 드래곤 쿠르다커가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이에 제네로커가 너무도 신난 목소리로 답했다.
“다 했습니다!”
“다 해? 뭘? ”
“승계 서류! 방금 다 끝냈습니다!”
“허… 벌써 말인가?”
쿠르다커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간소화하여 10년 치로 줄였다고는 하나, 그마저도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 10년이 걸리는 일이었다.
통상적으로는 적어도 15년은 걸릴 일.
한데, 제네로커는 그런 일을 고작 4년 만에 마무리 지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쿠르다커 원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네로커의 표정이 더욱 들떠 올랐다.
“그럼 저 이제 가 봐도 되는 겁니까?”
“허허허.”
제네로커의 물음에 쿠르다커 원로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 원로가 되는 제네로커의 팔불출 아들 사랑은 은화성에서도 유명했다.
때문에 제네로커가 어찌 저렇게 신나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쿠르다커 원로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이런… 이걸 어쩌나.”
“예?”
“승계 서류 처리가 끝났으면 정식으로 원로 서임식을 해야 하네만…….”
“……?!”
기쁨이 가득하던 제네로커의 얼굴이 한순간에 경직됐다.
원로직 승계 서류만 무려 10년 동안 처리할 양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시간 널널한 드래곤들 특성상 그 원로 서임식이란 것도 또 몇 년을 잡아먹을지 모를 일이었다.
축- 처지는 제네로커의 어깨.
‘로이스… 아빠가 조금 늦겠구나.’
시무룩해진 제네로커를 보고 쿠르다커 원로의 미소가 짙어졌다.
“하하,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서임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그, 그럼?”
“길어야 일주일이네. 그때까지만 참게. 내 약속하지,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집에 보내 준다고.”
“아!”
제네로커의 얼굴이 언제 음울했냐는 듯 다시금 환하게 밝아졌다.
그가 목이 떨어져 나가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말고요!”
지난 4년을 악착같이 버텨 왔는데 고작 일주일을 못 참겠는가.
애초에 몇 년은 더 걸릴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매우 빠른 거였다.
일주일 뒤면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제네로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들! 아빠가 간다!’
* * *
탑티어에 오른 로이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남은 영약의 수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간단간당했네.’
아마 탑티어에 오르는 게 두어 달만 더 늦어졌어도 영약이 먼저 떨어졌으리라.
‘이 정도 양이면 여길 벗어나서 집까지 가는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
안도한 그가 다음으로 한 일은 정말로 집에 갈 준비를 하는 거였다.
정확히는 섬을 탈출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로이스는 곧장 공간 이동 법진 제작에 들어갔다.
“집에 간다. 집에 간다. 집에 간다…….”
미친 사람처럼 ‘집에 간다.’만 반복하며 공간 이동 법진에 집중하는 로이스.
그의 주변에서 검은 오오라가 물씬 피어올랐다.
“로이 무서워어어….”
“로이 눈 돌아갔어….”
그 모습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겁 없는 쌍둥이조차 로이스의 광기에 질려 슬금슬금 피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드디어… 드디어!”
로이스가 완성된 공간 이동 법진을 보고 환호했다.
“끝났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던가.
그때 옆에서 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로이스님.”
“왜?”
“괜찮을까요?”
“뭐가?”
“저번처럼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핀은 지난번처럼 억지력이 법진에 간섭한 것을 걱정하는 듯싶었다.
로이스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이 법진에 속성력을 공급하는 게 나야.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속성력을 제어해서 법진을 무효화시키면 돼.”
“네? 공간 이동 법진의 속성력을 로이스 님이 제어하신다고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 충분해.”
원래라면 이 정도 장거리 공간이동이 로이스에게 무리가 가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새롭게 정립한 드래곤 하트 운용법으로 속성력의 효율을 몇 배나 끌어올렸다.
현재 그의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걱정 말고 얼른 가자고.”
감격에 몸을 부르르 떨던 로이스가 다급히 쌍둥이를 불렀다.
“야야! 빨리 와! 집에 가자! 빨리!”
계속되는 재촉에 쌍둥이와 핀이 쪼르르 다가왔다.
“끝났어요?”
“끝났어?”
“우리 이제 집에 가?”
로이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집에 간다.”
“여기 재밌었는데….”
“안 가면 안 돼?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맞아! 조금만 더하면 저거 완성할 수 있는데….”
카니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녀석의 손가락이 끝이 가리킨 곳에는 높은 나무 성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수개월 전, 로이스는 장난스럽게 여겼었다.
혹시 이러다가 쌍둥이가 성벽까지 세우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데…….
‘…진짜 만들었을 줄이야.’
쌍둥이가 기어코 성벽까지 세워 버린 것이다.
덕분에 백사장 인근의 나무는 씨가 말라 버렸다.
로이스가 혀를 내둘렀다.
‘얘들이라면 둘이서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을지도…….’
어차피 시간이 남아도는 드래곤 특성상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때까지 쌍둥이의 흥미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그건 그거고.’
로이스가 쌍둥이를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나 혼자 간다.”
“우우… 로이 나빠.”
“나아쁜 로이!”
로이스의 전매특허 ‘떼 놓고 가기’가 나오자 쌍둥이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래도 로이스와 떨어지기는 싫은지 이내 볼의 바람을 뺐다.
그렇게 쌍둥이를 다독인 로이스.
곧 그들이 법진 위에 올랐다.
“그럼 간다?”
“가자아!”
“집에 간다!”
언제 떠나기 싫었냐는 듯 쾌활하게 외치는 쌍둥이.
그런 쌍둥이의 격려를 받으며 로이스가 법진을 가동했다.
츠츠츠-.
법진의 빛이 절정에 다하고.
츠팟!
로이스와 쌍둥이의 몸이 사라졌다가 빠르게 다시 나타났다.
“……?”
“…….”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쌍둥이와 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조금 전 있던 그 자리였다.
쌍둥이와 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로이스에게 닿았다.
“로이?”
“뭐 한 거야?”
“로이스 님?”
그들의 물음에 가장 당황한 것은 역시나 로이스였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로이 실패했어?”
“우리 집에 못 가?”
로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째서…….”
그가 공간 이동 법진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법진은 발동했는데…?’
일회용 법진이다 보니 사용과 동시에 흔적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데 성법은 발동하지 않았다?
‘아냐, 성법도 분명 발동했어.’
혹시 모르기 때문에 로이스는 그 자리에서 속성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로이스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10m 앞에 나타났다가 다시금 되돌아왔다.
‘분명 이상이 없는데?’
그가 사용한 것은 단거리 공간이동.
비록 법진을 사용하지 않은 단거리 이동이었지만, 원리는 장거리 공간 이동과 같았다.
그렇다면 성법에는 이상이 없는 거였다.
‘분명 내가 실수한 거는 없는데?’
그럼 어째서 성법이 발동하지 않은 것일까?
궁리하던 순간 로이스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무언가를 깨달은 로이스가 다시금 법진을 그려 나갔다.
다시금 검은 오오라를 뿜어 대며 법진 그리기에 들어간 로이스.
“로이 또 무서워졌어…….”
“까만 로이는 건드리면 안 돼. 혼나…….”
쌍둥이가 로이스를 피해 한쪽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핀도 이번만큼은 로이스가 아닌 쌍둥이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이 흘러.
“한 번 더 가자! 얼른 와.”
로이스의 재촉에 쌍둥이와 핀이 군말하지 않고 법진 위로 올라갔다.
준비를 마친 로이스는 기도했다.
‘제발… 내 생각이 틀렸기를…….’
그런 간절한 염원을 담아 로이스가 법진에 속성력을 불어넣었다.
“가자!”
당찬 외침과 함께 법진이 발동하며 빛을 뿌렸다.
그리고.
츠팟!
다시금 사라졌다가 그 자리에 나타난 로이스 일행.
쌍둥이와 핀이 눈을 끔뻑이며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로이?”
“이번에도 안 됐어?”
“어떻게 된 건가요?”
그들의 물음에 로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의 입에서 한탄 같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젠장… 되돌아온 거냐?”
그랬다.
섬을 둘러싼 결계는 단순히 물리적인 방법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되돌리는 것뿐 아니라, 성법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것 역시 되돌려 보낸 것이다.
“…글렀네.”
로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던 공간 이동을 이용한 탈출 방법이 막혀 버렸다.
옅은 한숨을 내쉰 로이스.
“하아…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되면 플랜 B로 가야겠네.”
안되는 거에 매달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첫 번째 방법이 막혔다면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면 될 뿐.
로이스는 곧장 플랜 B 준비에 나섰다.
* * *
빛나는 은화성의 제전 아래 두 명의 존재가 마주했다.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청년.
바로 암속성의 원로 쿠르다커 원로와 제네로커였다.
쿠르다커 원로는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제네로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위대한 마나와 초대 용왕이 정한 규율에 따라 묻는다. 그대 제네로커는 용족의 원로로 종족의 부흥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용족의 긍지와 명예를 지킬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세상의 질서에 이바지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이것으로 나 쿠르다커는 맡아 왔던 소임을 제네로커에게 이임하는 바이다. 언약은 이루어지리라.”
“언약은 이루어지리라.”
둘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리며 은화성의 제전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드래곤들 사이에서 마나의 축복이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주변을 아름답게 비추던 마나의 빛, 그중에서도 검은 암속성의 빛이 쿠르다커와 제네로커의 주변을 떠돌았다.
지난 수천 년간 세상을 위해 헌신한 쿠르다커의 은퇴를 축하하며.
또한, 새로운 드래곤 원로의 취임을 축하하며.
다른 드래곤은 없는 둘만의 서임식이었지만, 축하객들의 빈자리를 마나가 대신하며 증인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둘의 주변을 맴돌던 마나가 다시금 세상으로 흩어지자 쿠르다커가 웃으며 제네로커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간 고생했네. 그리고 축하하네. 자네는 이제부터 용족의 13원로일세.”
“감사합니다, 원로님.”
“아니지, 원로는 이제부터 자네지. 나야 전(前) 원로고. 자네가 열심히 해준 덕분에 나도 일찍 쉴 수 있게 됐구먼.”
“별말씀을요.”
그리 답하는 제네로커의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었다.
결국, 참다못한 제네로커가 다급히 물었다.
“저… 그런데 다 끝난 거죠?”
“그렇네.”
“진짭니까?”
“진짜라네.”
“그럼 가도 되는 겁니까?”
“…그렇지?”
“그럼 안녕히 계십쇼!”
“……?!”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곧장 제전을 뛰쳐나가는 제네로커.
말리 새도 없이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어안 벙벙하게 바라보던 쿠르다커는 빙그레 웃고 말았다.
“저리도 좋을까?”
아직 전해줄 말이 많았지만, 쿠르다커는 제네로커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오랜만의 부자 상봉이 무사히 이뤄지길 기도해 줬다.
그렇게 로이스의 공간 이동 법진 탈출이 실패한 날.
한 마리의 흑색 드래곤이 은화성을 떠나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