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후일담. 맺은 인연의 이야기 (3)
「여섯 번째 인연」.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레반스의 난을 겪은 후 왕권이 강화된 프렌체 왕가는 이를 바탕으로 주도적인 국정을 펼쳐 나갔다.
프렌체 왕가가 펼치는 국정은 대부분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하는 정책들이었다.
이에 프렌체 왕국의 국민은 하루하루 왕가를 칭송하기 바빴다.
물론 그런 정책에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들보다는 평민과 백성들을 우선시하는 왕가의 행보에 귀족들이 반발한 것이다.
하지만 영웅 파브로와 복직한 왕실호위무단장 그렉의 힘으로 그들을 억눌렀다.
나아가 영웅 파브로와 페이지 공주가 혼인함으로써 왕가의 힘은 더욱더 굳건해졌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국력이 강해지는 프렌체 왕국.
그런 왕국에도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공주와 부마 사이에서 후계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방계 혈족도 없는 프렌체 왕가였기에 페이지 공주와 부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터.
그런데 결혼한 지 7년이 넘도록 그들 사이에서 아이 소식은 없었다.
어떻게든 아이를 갖고자 파브로와 페이지는 물론 국왕까지 나서 회임에 좋다는 온갖 비방을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회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페이지 공주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회임은 어려울지 모른다고 고개를 내저을 때.
부마 파브로가 거대한 대리석을 왕궁으로 들였다.
그의 난데없는 행동에 국왕이 물었다.
‘자네 뭘 하려는 겐가?’
‘치성을 드려 볼까 합니다.’
‘……?’
영문 모르겠다는 듯한 왕궁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파브로는 정원에서 대리석을 조각해 나갔다.
간절히 기도하며 말이다.
‘로이스 님, 로이스 님,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제발 아이 하나만 점지해 주십쇼!’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열과 성을 다해 대리석을 조각해 나가는 파브로.
사람들은 그를 보고 간절함에 미친 게 아닌가 수군거렸다.
파브로가 매일같이 공들여 조각을 이어 나간 지 2달.
과거 비공선이 떨어졌던 정원에 3m가 넘어가는 새하얀 아기 드래곤의 석상이 완성됐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있고 너무도 아름다운 조각상이었다.
그리고 조각상이 완성된 다음 날.
기적이 일어났다.
‘축하드립니다! 공주님께서 회임하셨습니다!’
페이지 공주의 회임 소식에 파브로가 아기 드래곤 석상 앞에 온종일 ‘로이스 님 만세!’를 불렀다는 것은 왕궁 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렇게 첫 회임 소식으로부터 열 달이 흘러.
페이지의 진통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파브로와 국왕이 방문 앞을 초조하게 서성였다.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그들의 긴장은 점점 커졌다.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파브로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로이스 님께 비나이다! 부디 페이지와 아이 둘 다 무사하게 해 주시옵소서!”
파브로가 꼬옥 쥔 것은 작은 크기의 새하얀 드래곤 조각이었다.
이를 본 국왕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자네 뭐 하나?”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왕가의 일원으로서 체통을 좀 지키게!”
“지금이 상황에서 체통이 뭐가 중요합니까! 저한테 체통보다 페이지와 아이의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크흠,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그렇게 체통 지키시는 전하는 다리 좀 그만 떠십쇼. 아까부터 바닥이 울려서 기도에 집중할 수 없지 않습니까.”
“…….”
타박을 받은 국왕은 다시 기도에 열중인 파브로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는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딸아이와 손주를 위해 저리 열과 성을 다하는데 어찌 뭐라 하겠는가.
두 눈을 감고 연신 ‘비나이다’를 남발하는 파브로를 지켜보던 국왕이 슬그머니 물었다.
“이보게.”
“왜 자꾸 부르십니까. 자꾸 끊기면 기도빨 떨어집니다.”
“크흠, 그거… 효과는 좀 있는가?”
국왕이 턱짓으로 파브로가 쥔 조각상을 가리켰다.
이에 파브로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씀을! 이미 보셨잖습니까? 제가 로이스 님 석상을 만든 다음 날 바로 회임 소식이 들려온걸!”
“…그야 그랬지.”
우연이라고 쳐도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석상이 완성되기 무섭게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이뤄지다니.
덕분에 파브로는 확신했다.
이는 미신이 아닌 진짜 로이스의 보살핌이라고.
“제가 알고 있는 것 중에 이보다 더 기도빨 잘 먹히는 건 없습니다!”
파브로의 강력한 주장에 국왕도 슬그머니 마음이 동했다.
“크흠, 그런가? 그러면….”
“하나 드립니까?”
파브로는 그리 말하며 품에서 똑같은 조각을 꺼내 국왕에게 내밀었다.
이를 받아 든 국왕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대체 이걸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건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도빨이 더 잘 먹힙니다.”
“…….”
국왕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 생각에 질문은 던졌다.
“그런데 말일세. 내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예?”
“대체 왜 이 조각상을 로이스 님이라고 부르는 겐가? 로이스라면… 예전에 자네가 모시던 그 공자지?”
“……?!”
예리한 지적에 파브로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그게…….”
파브로가 이를 어찌 둘러대야 할지 연신 눈알을 굴릴 때.
벌컥-.
국왕과 파브로가 기다리고 있던 방문이 열렸다.
이에 두 사람의 시선이 번개처럼 돌아갔다.
“어, 어찌 되었나?”
“페이지는? 아이는 무사합니까?!”
둘이 후다닥 방문을 빠져나온 산파에게 달려갔다.
초조함과 기대감이 가득한 두 사람을 보며 산파가 미소 지었다.
그녀가 국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경하드립니다. 왕자님이십니다.”
“아!”
국왕의 얼굴에 기쁨이 만개했다.
그 옆에서 파브로가 다시 산파를 닦달했다.
“페, 페이지는?”
“공주님도, 왕자님도 모두 무사하십니다.”
“하아….”
산파의 답에 그제야 안도를 내쉬는 두 사람.
파브로가 자신이 쥔 헤츨링 조각상에 입을 맞췄다.
“오오! 로이스 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이곳에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 있을 로이스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파브로였다.
그렇게 그날 프렌체 왕궁의 후계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왕궁 담을 넘어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고, 온 나라가 축제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프렌체 왕국에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왕궁 정원에 있는 새하얀 아기 드래곤 석상에 기도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합니다! 페이지 공주님도 그렇게 왕자님을 낳으셨다고요!]실제로 파브로가 석상에 기도하기도 했고, 나아가 왕자까지 낳았기에 그 소문은 들불처럼 프렌체 왕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 이유로 아이를 갖고자 소망하는 귀부인들의 방문에 버니엄 궁 정원은 몸살을 앓아야 했다.
* * *
「혈연」.
봄 대륙 인근의 무인도.
과거에 벌어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무인도의 나무와 숲이 꺾여 나가 황폐하게 변했었다.
격한 전투가 끝나고 다시금 평화를 찾은 무인도.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황폐해진 땅에 다시금 나무가 하나둘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50년이 흘러.
경이로운 자연은 이전의 싱그러웠던 모습을 되찾았다.
이는 무인도의 중앙에 있는 호수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완전히 메말랐던 호수의 물이 다시금 차올랐고, 50년이 지나서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후 언제까지 평화가 계속될 듯 보였던 무인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담수호가 있었다.
쿠르르-.
호수가 진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수의 중심에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수위가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일부러 누군가 물을 빼내듯 말이다.
쉬오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 호수.
그 중앙에 거대한 크리스털이 나타났다.
순백의 드래곤을 품은 투명한 크리스털.
무인도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바로 그 크리스털이었다.
오랜 시간 드래곤을 보호하기 위한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매개가 수명을 다한 것이다.
쩌적-.
크리스털의 꼭대기에서부터 잔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쩌적-.
처음에는 가는 금만이 발생했지만, 이는 곧 크리스털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챙-.
크리스털이 깨져 나가면 작은 알갱이가 된 파편이 먼지처럼 흩날렸다.
따스한 봄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털의 파편 속에 새하얀 드래곤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곧 드래곤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맨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광량.
짧게 발한 빛이 사그라들고 드래곤이 있던 자리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백색의 머리카락과 그보다 더 흰 피부.
어딘가 모르게 성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여인.
그녀의 이름은 발렌티나였다.
“으음…….”
옅은 신음과 함께 발렌티나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몇 번을 움찔거리던 눈꺼풀이 반쯤 들어 올려지며 붉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동자 색만 조금 다를 뿐이지 로이스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오랜 수면기에서 깨어난 발렌티나는 눈을 끔뻑이며 주변 상황을 인지해 나갔다.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이 하늘을 향해.
“응?”
높디높은 상공.
무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에 발렌티나의 입꼬리가 살며시 말려 올라갔다.
“그이구나. 내가 어련히 알아서 찾아가려고.”
자신이 깨어날 시간에 딱 맞춰 마중을 나오는 남편의 배려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오오! 발렌티나아아!”
반가움이 가득한 제네로커의 부름에 발렌티나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곧 제네로커가 뚝 떨어져 내리며 그대로 발렌티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어, 발렌티나.”
“고생은 무슨, 푹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고 좋네.”
그렇게 배시시 웃으며 제네로커의 밀어내던 발렌티나가 멈칫하고 말았다.
“응?”
반려와의 해후가 있고,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제네로커의 뒤쪽에 자리한 하얗고 동글동글한 머리를 말이다.
남편의 다리 뒤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민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남아(男兒).
작고 귀여운 아이의 자줏빛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발렌티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
놀라 굳어 버린 발렌티나의 모습에 제네로커가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로이스의 등을 떠밀었다.
“뭐 하니? 아까부터 얼른 가자고 한 게 너였잖아?”
그런 제네로커의 떠밂에 로이스가 발렌티나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신에게 가까워져 오는 아이를 보며 발렌티나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로이스……?”
그 물음에 로이스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준비해 온 것을 양손에 담아 공손히 앞으로 내밀었다.
“아프지 말아요, 엄마.”
작은 고사리손 위에 놓인 것은 광속성의 영약.
막 수면기를 마친 발렌티나를 위해 로이스가 준비한 보양식이었다.
한편, 처음으로 들어보는 ‘엄마’ 소리에 발렌티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아…….”
하얗고 말랑거리는 양손을 내밀고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돌린 저 모습을 보아라.
내 아들이지만 정말… 정말이지…….
“너무 예쁘잖아!”
발렌티나가 로이스를 와락 껴안았다.
로이스의 볼에 자신의 볼을 마구 문대는 발렌티나.
그 탓에 로이스의 볼따구가 눌린 찐빵처럼 변했다.
“아유, 우리 아들 누굴 닮아서 이리 이쁠까!”
“…….”
“아들 아들! 아까 그거 한 번 더해 봐.”
“…뭐요?”
“엄마! 엄마라고 한 번 더 해 보렴!”
300년 만에 처음 본 어머니인데 그걸 못 해 드릴까.
“엄마…….”
“한 번 더 해 볼래?”
“엄마…….”
“한 번 더!”
거듭되는 요구에 로이스가 발렌티나의 얼굴을 밀어내며 정색했다.
“어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소자 매우 곤란합니다.”
“얘는?! 어머니가 뭐니! 애는 그런 말 쓰면 안 돼! 그러니까 엄마라고 하렴!”
“…….”
로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아니, 어쩌면 닮았기에 부부가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팔불출 아버지에 이어 팔불출 어머니까지 생긴 로이스.
‘성룡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는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겠구나…….’
발렌티나에게 다시 기습 포옹을 당해 눌린 찹쌀떡이 된 그는 하늘을 보며 그리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