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당황한 용용이 (2)
로이스가 도착한 곳은 널찍한 석단 앞이었다.
평평한 석단에는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로이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과 석단에 꽂힌 검을 비교했다.
“같은 거네.”
두 개의 바스타드 소드는 판으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이었다.
석단의 바스타드 역시 칼자루 끝에 속성석이 박혀 있었으며, 그 또한 잔뜩 금이 가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제야 로이스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공간을 연결한 건가?”
“그런 거 같아요…….”
로이스의 의견에 핀이 자신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 이동이라…….’
에반 차원에서 장거리 공간 이동은 흔히 접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막대한 양의 공간 속성력이 필요함은 물론이요, 필요한 속성력을 갖췄다고 해도 술식을 만들어낼 존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에반 차원에서는 육로, 해상로, 비행로만을 이용했다.
그중에서도 비행로는 각종 비행 몬스터로 인해 재력과 권력, 무력을 갖춘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아공간인 줄 알았던 술식 회로가 공간 이동용 회로일 줄이야… 어쩐지 복잡하더라니!’
로이스는 공간 이동용 회로를 못 알아본 자신의 멍청함을 자책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후였다.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로이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로이 어디가?”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야 집에 돌아갈 거 아니냐.”
“아하!”
주변 탐색에 나선 로이스의 뒤로 쌍둥이와 핀이 따랐다.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넓은 공터에 연결된 통로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막혔네?”
로이스는 통로를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불편한 심사를 한껏 드러낸 로이스가 앞으로 손을 내뻗었다.
‘막혔으면 뚫어야지.’
생각과 동시에 그의 드래곤 하트가 움직였다.
우웅-.
“굳어라.”
로이스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빈 공간이 딱딱하게 굳었고.
“발사!”
굳어진 공간 결정이 힘속성을 추진력 삼아 앞으로 쏘아졌다.
쾅!
공간 결정으로 강한 충격을 가하자 수 미터 크기의 바위가 속절없이 부서져 나갔다.
그와 함께 열린 구멍 사이로 냉기가 매섭게 몰아쳤다.
얼굴이 시릴 정도의 강렬한 냉기였다.
그리고 열린 구멍으로 날아와 로이스의 말간 볼에 내려앉은 하얀 결정체.
로이스가 그것을 손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이번 생에서는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눈?”
에반 차원에 빙의하고 처음 보는 눈에 로이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놀란 로이스가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거대한 봉우리가 잡혔다.
뾰족한 송곳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는 봉우리.
로이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로이스가 매일 보는 봉우리와 닮은 형태.
그러나 다른 점이 있었다.
꼭대기만 만년설로 뒤덮였던 집 근처 봉우리와는 달리 시야에 들어온 봉우리는 전체가 새하얬다.
백색의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말이다.
눈 덮인 봉우리의 정체를 깨달은 로이스는 얼이 빠져 중얼거렸다.
“…맙소사.”
넋이 나가 굳어버린 로이스의 뒤로 핀과 쌍둥이가 다가왔다.
그들 역시 새하얀 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어? 저거 우리 집에서도 보이는 건데?”
“로이 저건 왜 하얘?”
“헉?!”
차례대로 칸과 카니, 그리고 핀의 목소리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쌍둥이와는 달리 사태를 파악한 핀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곧 핀의 입에서 새하얀 봉우리의 정체가 흘러 나왔다.
“대, 대지의 오른쪽 송곳니?!”
“…젠장!”
경악에 찬 핀의 목소리는 확인 사살과 다름없었다.
작게 욕을 내뱉은 로이스의 머릿속으로 에반 차원의 지도가 주욱 스치고 지나갔다.
봄의 대륙.
여름의 대륙.
가을의 대륙.
겨울의 대륙.
에반 차원의 대륙은 큰 땅덩어리 4개가 일렬로 늘어선 형태였고 대륙의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대륙에 그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각 대륙의 기후가 1년 내내 그 이름대로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이스와 쌍둥이의 집이 있는 왼쪽 송곳니는 봄의 대륙 서편에 자리해 있었다.
“아… 야단났네.”
로이스의 눈에 암울함이 깃들었다.
그가 눈을 떼지 못하는 새하얀 봉우리, 대지의 오른쪽 송곳니.
그것은 겨울 대륙 최동단에 위치해 있었다.
다시 말해 현재 로이스 일행은 그들의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는 소리였다.
휘이잉-.
“…….”
멍하니 서 있는 로이스 일행의 곁으로 찬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그들의 앞날을 예고하듯 말이다.
* * *
다시 공터로 돌아온 로이스는 고뇌에 빠졌다.
‘아, 망할! 아무리 드래곤 환생물 클리셰가 헤츨링 가출이라지만… 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살아서 숨만 쉬어도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놓인 로이스였다.
그랬기에 그는 온갖 위험이 득실득실한 바깥세상으로 나갈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한 적이 없었다.
‘가출이라니!’
생각해 보니 이건 가출이 아닌 것 같았다.
‘강제 가출? 아님, 조난?’
그것도 홀로 조난당한 게 아닌 혹 덩이 두 개를 같이 달고 말이다.
“누나… 로이가 이상해.”
“괜찮아. 아빠가 그랬어. 애들은 원래 저러면서 크는 거라고.”
“그렇구나!”
고뇌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가며 몸부림치는 로이스를 보고는 칸과 카니가 중얼거렸다.
핀은 그저 안쓰럽다는 듯 로이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원래 이분들이 정상이지… 우리 주인님이 좀 특출난 거고.’
250살 먹은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만큼 사고도 어릴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
방법을 찾으며 고뇌하던 로이스.
“자, 잠깐?!”
그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로이스의 동공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렇게 무단 가출… 아니 조난당한 거면…?”
로이스의 생각이 제네로커에게 닿았다.
지금은 우주의 은화성에서 일을 보고 있을 그의 아버지.
로이스를 애지중지 여기는 제네로커가 만약 아들이 사라진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로이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크, 큰일 났네?”
그때는 광분한 제네로커가 대륙을 휘젓고 다닐지 몰랐다.
“에, 에이 설마 그러겠어?”
애써 그렇게 부정해 보았으나 생각하면 할수록 제네로커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만약 아버지가 다시 광룡이 된다면…….’
지난 세월 제네로커와의 정이 깊어진 로이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광룡이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 순간 로이스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맞아! 통신석!’
로이스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자신의 아공간에서 통신석을 꺼냈다.
하지만.
“역시… 안 되나?”
통신은 우주까지 닿지 않았다.
실망한 로이스는 다시 통신석을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고민을 이어갔다.
‘어쩌지……?’
꽤 깊은 고뇌 끝에 내려진 결론은 간단했다.
“돌아간다. 무조건!”
앞으로 제네로커가 돌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년.
그 안에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 있어야 했다.
고민을 끝낸 로이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로이가 일어났어!”
“오오! 로이, 키가 좀 큰 거 같아! 역시 애들은 고민해야 크는구나!”
쌍둥이가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해댔지만, 로이스는 이를 무시하고 핀에게 물었다.
“핀, 마해를 지나가는 거는… 역시 무리겠지?”
“안 돼요! 그건 절대 안 돼요!”
로이스의 물음에 핀이 펄쩍 날뛰었다.
상식적으로 대륙의 가장 서쪽과 가장 동쪽이라면 사실상 가까이 붙어 있다는 소리였다.
왜, 걸어서 지구 한 바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에반 차원 역시 지구와 마찬가지였다.
겨울 대륙에서 계속 동쪽으로 이동해 바다를 건넌다면 빠르게 봄 대륙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바다가 문제였다.
“마해라뇨! 거긴 성룡이 되신 드래곤님들도 피하는 곳이라고요!”
마해(魔海).
최악의 악룡이 남긴 흔적이자 마로 물든 바다라 불리는 절대 금지.
바로 그 마해가 겨울 대륙과 봄 대륙을 가로막고 있었다.
드래곤마저 피해 간다는 마해의 악명을 떠올리며 로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고 있어. 그럼 핀, 여기서 왼쪽 송곳니까지 대륙을 가로지른다면 얼마나 걸릴까?”
“…글쎄요.”
핀의 얼굴에도 근심이 서렸다.
녀석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한참을 생각한 핀이 입을 열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걸어만 간다면 못해도 10년은 걸릴 거예요.”
“그래?”
“이동 수단을 이용하면 더 단축되고요.”
“좋아.”
10년 정도면 희망은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로이스는 기운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두 혹덩이가 있었다.
“민폐… 아니, 쌍둥이!”
“응!”
“왜?”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지금 우리는 아주 중대한 위기에 빠졌어.”
“위기?”
“뭔데?”
“여기가 어딘지 알아? 바로 대지의 오른쪽 송곳니가 있는 곳이야.”
“어? 거기 엄청 먼 곳 아냐?”
“거기가 아니라 여기. 그리고 이제 우리 집이 엄청나게 멀어졌지.”
로이스의 이야기에 쌍둥이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로이스는 아이들이 한방에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히 설명했다.
“여기서 집까지 가는 데 걸어가면 무려 10년이나 걸려.”
“그럼 날아가면 되잖아?”
“…아주 헤츨링 여기 있어요, 잡아가세요. 광고를 하지 그러냐?”
“광고?”
“…그런 게 있다. 아무튼, 날아가는 거는 기각. 우리는 평범한 인간들처럼 10년 안에 집으로 돌아가야 해.”
“왜? 그냥 천천히 가면 안 돼?”
“멍청한 쌍둥아……. 만약 10년 뒤에 아빠들이 집에 왔는데 우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
“으음…….”
로이스의 질문이 어려웠는지 쌍둥이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결론을 내릴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로이스는 험악한 얼굴로 무거운 분위기를 조장하며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쌍둥이. 만약 우리가 10년 뒤에 집에 없을 때 발생할 상황을 설명해 주지. 10년 뒤에 아빠들이 돌아와. 그런데 우리가 없어. 놀란 두 아빠가 우릴 찾는다고 대륙을 쑥대밭으로 헤집는 거야.”
“오호 그렇구나!”
“그렇겠네!”
“…….”
마치 당연한 소리를 왜 하냔 듯한 둘의 시선에 로이스는 자신이 설명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진짜 당연한 소리를 했네.’
그가 황급히 노선을 바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아빠들이 무단으로 가출한 우리를 엄청 혼낼걸? 어쩌면 100년 동안 간식은 물론 장난감도 안 줄지 몰라!”
“……?!”
“그, 그건 안 돼!”
앞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튀어나왔다.
대륙의 안녕보다 본인의 장난감을 더 귀하게 여기는 쌍둥이를 보며 로이스는 속으로 안도했다.
일단 자신의 이야기가 먹힌 것 같자 로이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지금부터 우리는 집을 향해 무조건 진격한다. 아빠들이 돌아오기 전에 말야! 그리고 이 귀가 여행의 대장은 나다! 앞으로 내 말 잘 들어라!”
그런 로이스의 말에 즉각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싫어! 내가 대장 할래!”
“나도 대장 하고 싶어!”
“…….”
심통 난 표정으로 아웅다웅하는 쌍둥이의 모습에 로이스는 애먼 천장만 바라보았다.
‘나 정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로이스는 드래곤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