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새로운 목표 (2)
난데없는 로이스의 독립 선언에 제네로커와 발렌티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 독립?!”
“갑자기?”
인간들이 그렇듯, 드래곤도 성룡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물론 독립하는 기간에도 약간씩 차이는 있었지만, 보통 수십에서 수백 년 정도 부모와 함께하며 독립을 준비하고는 했다.
그랬기에 제네로커와 발렌티나가 당황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로이… 너 이제 막 성룡이 된 거야.”
“그래, 독립은 차차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니?”
부모님의 간절한 눈빛 공격에도 로이스는 단호했다.
“언제요?”
언제 자신을 독립시켜 줄 거냐는 눈빛에 제네로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한… 천 년?”
“…….”
“그, 그럼 900년?”
“…….”
점점 짜게 식어 가는 아들의 눈빛에 제네로커가 당황해 소리쳤다.
“오, 오백 년은 어떻니?”
“…그냥 지금 바로 짐 싸서 나갈까요?”
“……?!”
단호해도 너무 단호한 아들의 목소리에 제네로커가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어흑… 우리 아들 뽈뽈거리며 아빠 쫓아다니던 때가 좋았지.”
“뽈뽈거리며 아부지 쫓아다닌 적 없었는데…….”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하던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큰 건지…….”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만?”
“허어… 세월이 무상하구나.”
로이스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할 말만 중얼거리는 제네로커였다.
그런 남편의 옆구리를 쥐어박아 진정시킨 발렌티나가 로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눈에는 섭섭함이 가득했다.
“이렇게 빨리 독립하려는 이유가 있는 거니?”
“있죠!”
발렌티나의 물음에 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뭐니 그게?”
“제집 마련!”
“……?”
발렌티나는 물론 제네로커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제집 마련?”
“여기도 네 집이란다.”
“아니죠! 그건 다르죠!”
로이스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여긴 어무니 아부지 집이죠! 제가 원하는 건 온전히 저만을 위한 집! 저의 안식처라고요!”
제네로커의 레어에 로이스의 방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방’이었다.
아무리 잘 포장을 해 줘도 결국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내 집! 자가(自家)!’
과거 전생의 시절,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때.
로이스가 가진 꿈은 하나였다.
‘나만을 위한 멋진 주택! 기왕이면 큰 집으로!’
당시에는 돈도 없고 남은 시간도 없었기에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넘쳐 나는 재력과 남아도는 시간!’
그 두 가지라면 충분히 자신만을 위한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월세도… 전세도 아닌, 자가! 나만의 레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로이스의 눈이 과하게 반짝였다.
그런 로이스의 이야기를 들은 파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헐헐! 그렇지! 모름지기 성룡이 됐다 하면 자기만의 레어를 가지고 싶은 법!”
“그렇죠! 할아버지가 뭘 좀 아시네요!”
“좋은 터에 레어를 틀고 이것저것 꾸며 가는 재미가 쏠쏠하지, 암! 그렇고말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주거니 받거니, 사이가 좋은 두 조손.
그때 파무스가 제네로커를 보며 피식거렸다.
“우리 손주 놈이 네 녀석이랑은 많이 다르구나.”
“…제가 뭐요?”
“너는 나가기 싫다고 오백 년이나 내 집에 붙어 있었잖느냐.”
“…….”
“그러다가 내가 쫓아내서야 겨우 나갔다지?”
“구, 굳이 그 얘기를 지금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큭큭큭, 어떻게 저런 놈한테서 이런 똘똘한 놈이 나왔을꼬?”
아버지를 보는 제네로커의 얼굴에 원망이 서렸다.
“말리지는 못하실망정!”
“말리긴 뭐 하러 말리느냐. 이렇게 잘 큰 손주가 독립하겠다는데 응원을 해 줘야지! 얼마나 자립심이 투철해!”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에 로이스가 환하게 웃었다.
결국, 분위기가 로이스의 독립 쪽으로 굳혀지는 듯싶자, 제네로커가 마지막 협상을 시도했다.
“아들.”
“네.”
“그, 그럼 한 백 년만 더 같이 살… 끕.”
끝까지 안 보내 주려는 제네로커와 못 말린다는 듯 그의 옆구리를 꼬집은 발렌티나.
이에 로이스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제가 오늘 당장 짐 싸서 나가겠다는 거는 아니에요.”
그의 말에 발렌티나가 되물었다.
“그럼?”
“일단 저도 아무 곳에나 레어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어디에 레어를 둘 생각이니? 생각해 둔 장소는 있고?”
“그건 이제 천천히 찾아보려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
“저, 여행 좀 다녀오겠습니다.”
“여행?”
“네. 레어 만들기 좋은 곳을 좀 알아보려고요. 겸사겸사 유희도 하고.”
로이스의 이야기에 발렌티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렴. 다 큰 아들 막을 수도 없고.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해야지.”
마음이야 붙잡고 싶었지만, 아들이 저토록 원하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허허, 그럼 결정된 거 같구나. 그럼 나는 가마. 로이스, 나중에 좋은 레어 찾거든 할애비도 초대해 주거라.”
“그럼요!”
대충 상황이 마무리되자 파무스가 떠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이 상황을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아들? 그냥 아빠 레어 근처에 레어 만들면 안 돼? 녹치 산맥이 얼마나 좋아? 물 좋고, 공기 좋고, 마나 좋고! 그러니까…….”
“당신은 그만하고 따라와요…….”
“여, 여보?”
어떻게 해서든 로이스를 안 떠나보내려던 제네로커가 발렌티나의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로이스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흐흐. 내 집이다. 내 집!”
그렇게 2차 수면기가 끝난 다음 날.
로이스의 독립이 결정됐다.
* * *
독립 선언을 한 이후, 로이스는 바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발렌티나와 제네로커에게 자신이 잠든 사이 벌어졌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봤다.
부모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로이스는 생각에 잠겼다.
‘인간 하나가 내 수면방에 들어왔다라…….’
드래곤이 설치한 고등의 결계를 인간이 손쉽게 통과했다고 한다.
심지어 부모님조차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로이스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인간이었겠네.’
원작에서 로이스를 해친 인간 귀족.
그가 바로 훗날, 광룡 탄생의 계기를 제공하는 장치였으리라.
‘만약 어머니가 방심한 틈을 타 그 인간이 나까지 해쳤다면… 원작과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됐겠지.’
하지만 ‘발렌티나의 의심’, ‘로이스의 준비’, ’제네로커의 합류’ 등의 전개가 끼어들며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거지.’
이에 로이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어머니는 어떻게 되신 거지?’
원작에서 등장한 광룡은 제네로커뿐이었다.
발렌티나의 성격상 그녀 역시 제네로커 못지않은 광룡이 돼야 했다.
하지만 원작에서 발렌티나의 이야기는 등장한 적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설정이 있던 건가?’
원작의 시작 전에 관한 스토리는 등장하지 않으니 발렌티나의 이야기가 어찌 되는지 로이스가 알 길이 없었다.
“뭐, 이제는 딱히 신경 안 써도 되는 문제니까.”
광룡이 등장할 일이 없는데 과거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러다 그의 생각이 억지력에 미쳤다.
‘이제 억지력은 발생하지 않는 건가?’
로이스는 수면기 때 발생할 억지력을 걱정했었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적된 억지력.
만약 억지력의 목적이 자신의 죽음이라면 2차 수면기만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좋은 시기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억지력은 발생하지 않았다.
수면기 때 로이스를 위협한 위험이라고는 원작에서 등장했을 정해진 ‘순리’뿐이었다.
‘포기한 건가? 포기하면 나야 좋지.’
설사 억지력이 포기하지 않았다고 쳐도 이제는 상관없었다.
자신은 온전히 성룡이 되었고,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만들어 냈으니까.
아무리 억지력이 쌓였다고 해도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자신을 위협할 수 없으리라.
“대륙 몇 개를 몰살시킬 정도의 위협이 아니라면 말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로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퉷!”
돌연 바닥을 향해 침을 뱉은 로이스.
“부정 탈 뻔했네. 퉷퉷!”
꺼림칙함이 남은 듯 로이스는 연신 바닥을 향해 침을 뱉었다.
그렇게 애써 부정한 말을 털어낸 로이스는 기지개를 켰다.
“으그그, 그건 그거고.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겠네.”
일단 이번 여행의 목적은 자신만의 레어를 틀 장소를 알아보는 거였지만, 그것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가 한쪽에서 바삐 움직이는 핀을 불렀다.
“핀!”
“넵!”
“준비는 잘돼 가?”
며칠 전, 로이스가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핀은 주인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챙길 게 많네요.”
“…챙길 게 많은 게 아니라 그냥 싹 다 챙기고 있는 거 아냐?”
“여행을 얼마나 하실지 모르니 철저하게 준비해야죠!”
로이스는 휑하게 변한 자신의 방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이건 여행 가는 게 아니라 이사하는 수준이니 원…….’
여행 짐을 싸는 게 아니라 이삿짐을 싸는 핀이었다.
만약 아공간이 없었다면 1톤 트럭 10대는 필요했으리라.
물론 그렇다고 로이스가 핀을 말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챙길 거 미리미리 챙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이미 중요한 거는 내가 다 챙겼으니까.’
그리 생각한 로이스가 손을 내저었다.
“쉬엄쉬엄해.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
“무슨 말씀을요! 이건 제 일입니다! 로이스 님이 하실 일이 아니라고요!”
“그래, 알았다…….”
핀이 절대 안 된다는 얼굴로 막아서자 로이스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때 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요, 로이스 님.”
“왜?”
“이번 여행에 쌍둥이님들은 안 데려가세요? 같이 가… 읍읍!”
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이스가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 보이는 로이스의 얼굴.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핀, 침 뱉어 침! 부정 타!”
“네?”
“빨리!”
“아, 넵! 퉷!”
“한 번 더!”
“퉷!”
핀이 침을 뱉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안심한 로이스가 핀에게 속삭였다.
“어디 가서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 그런가요?”
“내가 이번에도 그것들한테 시달려야겠어?”
“음… 그건 아니죠?”
핀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속을 킥킥거렸다.
‘정말 솔직하지 못하시다니까.’
핀이 본 로이스는 쌍둥이를 좋아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오랜 친우들이니 말이다.
핀이 웃으며 물었다.
“수면기가 끝나고 나서 아직 한 번도 안 보셨잖아요? 가실 땐 가시더라도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시는 게…….”
“너, 아직도 쌍둥이를 몰라?”
“네?”
“이대로 걔들한테 얼굴 비치면 내가 놈들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끈덕진 것들한테?”
“…그건 그렇네요.”
“얼굴 비치는 순간 끝이라고, 끝! 아무튼, 앞으로 쌍둥이의 ‘쌍’ 자도 꺼내지 마.”
로이스가 다시 한번 핀의 입을 단속했다.
하지만 핀이 이미 내뱉은 말이 부정을 탔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로이이이이이!”
“로이이이!”
방문 너머,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로이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이 목소리는?!”
곧 방문이 벌컥 열리고.
“로이, 나 왔어!”
“로이, 나도 왔어!”
반짝이는 은발을 본 순간 로이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