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누가 내 뼈다귀를 훔쳤을까? (1)
파브로는 고민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사실을 말한다면 과연 로이스 님이 자신을 살려 둘지 말지.
거짓으로 고한다면 그것이 들통났을 때, 자신의 목이 온전할까?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파브로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아니, 사실상 결심을 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일단 로이스한테 맞아 죽는다는 결론은 같으니 말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똑같은 결론이 나오니 파브로는 그나마 덜 맞을 거 같은 선택을 했다.
“모… 모르겠습니다.”
파브로의 선택은 진실을 알리는 거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진실을 들은 로이스의 반응은 살벌했다.
로이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른다고? 뭘?”
“그, 그게… 누가 훔쳐 갔는지… 아직 범인을 못 찾았습니다.”
파브로의 웅얼거리는 듯한 답변에 로이스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유감이야 파브로. 우리 오랜만에 봤는데 이렇게 일찍 헤어지게 생겼구나.”
“네?”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 단번에 보내 줄게. 아프지는 않을 거야. 페이지 보면 안부 전해 주고.”
우득 우득-.
손을 꺾으며 걸어오는 로이스의 모습에 파브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커흡!’
어린아이의 모습일 때는 그나마 협박을 들어도 아기자기한 모습에 나름 공포심이 덜했는데, 다 큰 모습으로 날리는 로이스의 협박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강한 두려움 속에 파브로가 양손을 번쩍 들었다.
“사… 살려 주십쇼!”
“거참, 누가 죽인대? 그냥 몇 대만 때릴 거야.”
“아까 페이지 보면 안부 전해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게 죽인다는 소리 아닙니까?”
“내가 언제?”
“분명 그러셨습니다!”
“아, 그랬나? 난 또, 페이지 아직 살아 있는 줄 알았지.”
능청스러운 로이스의 말에 파브로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미 오래전에 사별했습니다! 그리고 로이스 님한테 몇 대 맞으면 그게 죽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뭐가 다른지 네가 맞아 보고 말해 주면 되겠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전합니까!”
“말이 많다. 조용히 가라.”
“다, 다가오지 마십쇼!”
“싫은데?”
“저도 예전의 파브로가 아닙니다! 한 발짝만 더 다가오시면…….”
파브로가 잽싸게 자신의 망치를 주워 들었다.
그러자 그의 망치에 짙은 갈색의 수정이 덧씌워졌다.
1티어의 상징을 본 켄드릭과 타니아가 놀라 소리쳤다.
“영성검!”
“아니, 망치니까 영성추인가……?”
불꽃 남매의 놀람과는 달리 핀과 쌍둥이는 감탄했다.
“오? 파브로, 많이 컸다?”
“로이스한테 대들 줄도 알고.”
“아무래도 오랜만에 봐서 감을 잃은 모양인 거 같네요.”
그런 셋의 감탄 같지 않은 감탄 속에 로이스가 움직였다.
츠팟!
“다가오면, 뭐?”
순식간에 파브로 앞에 당도한 로이스의 손가락이 망치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친구의 이마를 때리듯 장난스러운 동작이었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콰즉-.
로이스의 손가락이 닿자 영성에 휩싸인 망치의 머리가 뚝- 부러져 방구석으로 날아갔다.
콰아앙!
구석의 벽이 허물어지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 모습에 파브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째 더 강해지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여기서 더 대들었다가는 곱게 죽기는 틀린 거 같다고 여긴 파브로가 반항을 포기했다.
“다, 다가오시면… 로이스 님의 휘황찬란한 모습에 제 눈이 멀지도 모르니 조, 조금 멀리 떨어져 주십사… 이 말을 하려 했습죠. 헤헤.”
나이 300살을 먹고도 여전히 푼수 같은 파브로의 모습에 로이스는 살포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간단하게 3줄 요약.”
조금 전 일로 250년 전 뇌리 저편에 잠들었던 감이 헐레벌떡 깨어난 파브로.
그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일주일 전, 웬 괴한 오십이 쳐들어왔습니다. 놈들이 로이스 님의 영약을 훔쳐 달아나기에 급히 쫓았지만, 기상 악화로 놓쳤습니다! 지금도 수색을 하고는 있으나 아직 들려온 소식은 없습니다!”
“일주일 전인 거 확실해?”
“옙!”
“흠…….”
로이스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일주일이란 말이지.’
기본적으로 영약의 약성은 반영구적이다.
오히려 오래 묵을수록 속성력이 정제되어 더 좋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간혹 특수하게 채취한 지 얼마 안 되어 섭취해야 가장 약성이 좋은 영약이 존재했다.
문제는 그로우 푸르트가 바로 그런 종류의 영약이라는 점이다.
‘그로우 푸르트의 약효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채취 후 2달 안에 먹어야 하는데…….’
2달이 넘어갈수록 약의 효력이 점점 떨어지고, 채취한 지 1년이 지나면 그로우 푸르트는 액체로 녹아 사라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2달… 아니, 남은 9주 안에 그로우 푸르트를 찾는 거겠네.’
찾아 섭취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결과겠지만.
‘만약 그로우 푸르트를 탈취해 간 놈들이 그것을 먹었다면…….’
번쩍-.
로이스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오장육부를 탈탈 털어 주마!’
분명 친절하게 표지판까지 만들어 걸어 두며 경고했었다.
자신의 물건이니 건들지 말라고.
만약 건들면 9대가 재수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그는 자신의 경고를 철저하게 지킬 생각이었다.
그렇게 로이스가 소리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파브로.
살벌한 살기에 오들오들 떨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폭풍이 일겠구나.”
귀환한 드래곤의 분노가 겨울 대륙을 뒤흔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파브로와의 재회가 있은 다음 날.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로이스를 보고 쭈뼛쭈뼛 인사를 건네는 교단의 사람들.
“아, 안녕하십니까. 교주님.”
갑자기 생겨난, 그것도 전날 전사들을 두들겨 팬 이가 교주라고 떡하니 공표되었으니 교단의 사람들도 아직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오냐.”
사람들의 인사에 가볍게 손을 내저어 준 로이스는 설렁설렁 교단을 둘러보았다.
“와우, 엄청 커졌네.”
과거 혈도끼 비적단의 본거지와 약속의 나무를 중심으로 넓은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략 2천 명 정도랬나?’
고작 300명의 도적단에서 시작한 전신의 교단.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속한 인원이 늘어 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2천여 명에 달하는 규모가 되었다.
2천 명이란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는 규모였다.
문제는 2천 명 중 즉시 전력감이라 할 이의 숫자가 무려 1,500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나머지 500명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전신의 교단을 보고 겨울 대륙 사람들은 말했다.
[단순 무식! 뇌가 싸움에 찌든 정신병자들!] [전신의 교단 놈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교단의 아이는 어릴 때부터 싸움으로 생긴 멍을 훈장으로 여기고.
식칼을 들고 나온 주부가 사나운 맹수를 잡아 한 끼 저녁으로 요리하며.
다 죽어 가던 노인네가 사나운 오크를 베어 넘기는…….
비상식이 지배하는 곳.
자칭·타칭 겨울 대륙 최강의 무력 단체로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이 바로 전신의 교단이었다.
번창한 교단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절벽 위에 자리한 로이스가 볼을 긁적였다.
“음… 이게 이렇게 됐네.”
영약 하나 지켜 보겠다고 시작한 일의 결과가 이토록 거창하게 나올 것이라고 어찌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것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렇게 로이스가 절벽에서 약속의 나무 인근에 자리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파브로가 다가왔다.
“여기 계셨습니까?”
“왔냐?”
가볍게 대꾸를 한 로이스가 턱을 쓸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로이스의 눈에 의문이 담겼다.
“야 파브로.”
“예.”
“그날 어떻게 50명이나 되는 놈들이 잠입할 수 있었던 거냐? 그것도 약속의 나무 근처까지?”
오전에 교단 전역을 둘러볼 때 로이스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바라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마을… 누가 계획한 건지는 몰라도 제대로 방진을 구축해 놨어.’
약속의 나무를 중심으로 지어진 주택.
거기에 주거지 곳곳에 배치된 망루.
외부에서는 그냥 단순히 교단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로 보일지 몰랐지만, 로이스는 주거지의 구조가 완벽한 계산하에 지어진 방진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런 방진의 중심축에 놓여 완벽한 보호를 받는 것이 바로 약속의 나무였다.
때문에 의문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겨울 대륙에서 최강이라 일컫는 교단에 단 50명의 인원으로 침입해 심처에 있는 영약을 훔쳐 갔다고?’
파브로는 로이스의 그런 의문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어투로 답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신물을 도둑 맞은 그 날, 한 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그것도 가장 어두울 때 말입죠.”
“음…….”
확실히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로이스는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인상을 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고작 50으로 여길 뚫고 들어왔다가 나갔다고?”
“제 입으로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고작 평범한 놈들에게 저희가 뚫렸겠습니까? 그놈들…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개인의 역량은 떨어졌지만, 제 느낌이 맞다면 전문적으로 잠입 훈련을 받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혹은…….”
“암살 훈련이나?”
“예.”
“그래서 그놈들, 어떻게 됐어?”
“침입자 중 대다수를 사살했고, 단 다섯만이 살아남아 마을을 빠져나갔습니다. 중상을 입은 놈들이었기에 곧 잡아들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마을 밖에 놈들의 조력자가 있었겠지.”
“예. 맞습니다.”
파브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스의 말대로였다.
살아남아 빠져나간 침입자 다섯은 결국 전부 사살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빼돌린 영약은 이미 외부의 조력자에게 넘어가 있었다.
교단의 추격자들은 눈보라를 뚫고 침입자를 쫓았지만, 몰아치는 폭설이 그들의 흔적을 삽시간에 지워 냈다.
그럼에도 교단의 추격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밖에서 놓친 침입자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전신의 신물을 되찾기 위해 말이다.
한편, 전신의 신물이 단지 누군가의 성장을 위한 영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교단의 존재.
파브로는 슬금슬금 로이스의 눈치를 봤다.
‘어째서… 이리 잠잠하시지?’
전날까지만 해도 로이스가 당장 무언가 일을 벌일 것만 같았다.
한데, 그는 의외로 얌전히 교단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이를 의아하게 여긴 파브로가 살짝 떠보듯이 물었다.
“…밖에 안 나가십니까?”
“밖? 어딜?”
“그… 저는 로이스 님이 도둑놈들 단서를 찾으러 가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내가 왜?”
“…예?”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워 올린 파브로를 보며 로이스가 말했다.
“여기 애들이 열심히 추적 중이라며? 그런데 뭐 하러 힘들게 나까지 발품 파냐? 귀찮게.”
“……?”
로이스가 설명해 주었지만, 파브로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미궁으로 빠질 뿐.
‘이러실 분이 아닌데?!’
그가 알고 있는 로이스라면 당장 본인이 직접 나서서 어떻게든 도둑놈들을 잡아 족칠 위인이었다.
그렇게 파브로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낮은 목소리가 파브로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말야… 만약 나까지 움직이게 된다면…….”
파브로가 떨리는 동공으로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로이스가 있었다.
“각오해야 할 거다.”
“……?!”
그 말만 남기고 떠나가는 로이스.
그는 미소를 거두고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찝찝하단 말이지.’
로이스의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영약 도난 사건의 뒤에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거 같다고.
때문에 로이스는 기다렸다.
‘과연 이 덩굴을 잡아당기면 그 끝에 무엇이 딸려 나올지…….’
걸어가는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한편, 로이스의 뒷모습을 보며 파브로는 고심에 잠겼다.
로이스가 말한 ‘각오해야 할 대상’이 영약을 훔쳐 간 범인인지, 혹은 영약을 도둑맞고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돌아온 교단의 전사들일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일지.
일생일대의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파브로의 고민은 운 좋게도 그날 저녁에 해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