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영웅왕릉 (2)
“하하하!”
“빠샤!”
짧은 단발을 찰랑찰랑 휘날리며 쌍검과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칸과 카니.
콰직 팡-.
베고, 찌르고, 부수는.
원초적인 파괴가 그들의 손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그러져라! 느려져라! 터져라!”
쉼 없이 중얼거리는 로이스의 말에 4가지의 속성이 반응하여 끝없이 이적을 일으켰다.
단 셋.
그것도 어리디어린 아이들이 행하는 압도적인 파괴 앞에 1천이란 숫자는 덧없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동장군이 거의 다 바스러져 갈 즈음.
쿵-.
마침내 10명의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거인을 보며 쌍둥이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저거 내 거!”
“반은 내 거야!”
쌍둥이의 몸에서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뇌전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두 마리의 헤츨링과 10명의 거인이 격돌했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저릿저릿한 뇌전이 폭사됐다.
강한 격돌의 결과는 금세 드러났다.
이에 로이스가 활짝 웃어 보였다.
“잘한다. 내 귀염둥이들!”
단 한 번의 격돌로 쌍둥이의 수식언이 ‘민폐’에서 ‘귀염둥이’로 돌변했다.
사랑스럽다는 듯한 로이스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는 불타오르고 있는 10기의 거인과 조금 지친 얼굴로 거인 위에 올라선 쌍둥이가 있었다.
‘하하! 이 정도면 만렙이 초보자용 던전 도는 거랑 비슷한 수준이지!’
작중 초반에 등장하여 주인공 일행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는 영웅왕릉.
로이스는 드래곤이라는 치트 키로 너무도 쉽게 영웅왕릉을 돌파해 버렸다.
거인이 쓰러진 이후 일은 이전보다 더 수월했다.
콰즉- 콰즉-.
‘끝났다.’
순식간에 남은 동장군들을 마저 처리한 로이스는 두근거리는 얼굴로 문 앞에 섰다.
“후후. 그럼 이제 보상을 확인할 차례인가?”
앞서가는 로이스의 뒤로 호흡을 고른 쌍둥이와 핀이 따랐다.
“어서 열어봐, 로이!”
“빨리!”
그들의 기대를 받으며 로이스가 서서히 문을 밀었다.
솨아아-.
문이 열리기 무섭게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새하얀 냉기.
이에 로이스는 자신이 정확히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곧 그가 활짝 문을 열었고 그와 함께 드러난 문 안의 풍경에 쌍둥이와 핀은 할 말을 잃었다.
“우, 우와……!”
“엄청 많아!”
“세상에…….”
눈앞에 금은보화의 동산이 펼쳐져 있었다.
얼음으로 세워진 영웅왕릉이 금빛으로 환히 빛났다.
“꺄하하!”
“아빠 창고보다 많아!”
신이 난 쌍둥이가 금화의 산에 몸을 던졌고, 핀도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나 정작 일행을 안내한 로이스는 다른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있다!’
금은보화가 펼쳐진 곳의 중심부.
그곳에는 투명한 얼음 기둥이 있었다.
로이스의 발걸음이 그곳을 향했다.
마침내 도달한 얼음 기둥.
“…….”
로이스의 시선이 기둥을 향했다.
그 속에는 왕좌에 앉은 백발의 노인이 녹슨 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까마득한 세월 속에서도 시체는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영웅왕 발렌트시아!’
작중 초반, 겨울 대륙에서 결성된 주인공 파티.
그들의 첫 모험지인 영웅왕릉의 주인이며 주인공 파티가 성장할 원동력을 남긴 인물.
로이스는 총총걸음으로 영웅왕이 갇혀 있는 얼음 기둥에 바짝 다가갔다.
그러다 돌연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응?”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얼음 기둥에는 붉은색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고대 겨울 대륙을 지배했던 제국의 언어.
로이스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 * *
근원에서 빛과 어둠을 지닌 피조물이 태어났으니 그들을 선(善)과 마(魔)라 일컬었다.
태초로부터 선과 마가 분리된 후 남은 빛과 어둠이 뒤섞이니 이를 혼돈이라 하노라.
빛도 어둠도, 선도 마도 아닌 혼돈 속에서 선과 마를 가르는 경계가 생겨나니.
이를 지상이라 칭하였으며 혼돈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중략)……
스스로를 격 높은 존재라 자칭하는 선족과 마족은 밑을 살필 줄 모른 채 지배만을 꿈꾸었으니, 선과 마의 대립에 지상의 모든 존재가 고통받았다.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어 지상의 존재가 선과 마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그 선두에 용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인간과 이종족을 이끌었다.
오랜 투쟁 끝에 승리한 인간과 이종족은 4계절의 대륙 곳곳으로 흩어져 평화의 시대를 이어갔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장서 선과 마를 몰아낸 용들은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경계를 맡았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선과 마를 잊었고, 경계의 임무를 맡아 세상을 등진 용들 또한 잊어버렸다.
하지만 나 발렌트시아 도미너피스는 경고한다.
우리는 결코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평화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용들을 기억해야 함을.
또한, 경계하라.
용들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그들이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 선과 마가 다시 세상에 나타남을 의미함을 알아라!
이에 선마전쟁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로서, 인연이 닿을 자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남긴다.
부디 내가 남긴 것을 올바르게 써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 * *
길게 쓰인 글귀.
이를 끝까지 읽은 로이스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원작의 세계관이 이랬었나?’
그가 기억하는 원작에서 악의 세력은 광룡 제네로커와 마족뿐이었다.
선족이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였으며, 영웅왕의 무덤에 저런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다.
로이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작자 이 자식… 세계관 설정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빙의한 세상은 원작자가 독자들에게 알려준 것보다 훨씬 깊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로이스는 얼음 기둥에 남은 기록을 다시 한번 읽은 후 머릿속에 담았다.
‘뭐… 이건 이거고. 챙길 건 챙기자.’
생각을 일단락한 로이스는 얼음 기둥 앞에 자리한 석단을 바라보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석단에 놓인 한 권의 책을 말이다.
‘저거다!’
로이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사방에 널린, 수없이 많은 보석보다도 눈앞의 저 낡은 책 한 권이 훨씬 값진 것이리라.
‘영웅왕 발렌트시아의 무법(武法)!’
겨우 1가지 속성을 타고난 인간 주제에 제로의 경지에 도달한 규격 외의 천재, 발렌트시아.
그가 평생 이룩한 모든 무(武)의 총체가 담긴 이론서(武法).
그리고 주인공 파티의 검이며 원작 설정상 인간계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검성(劒星)이 익히게 될 무법.
이를 떠올린 로이스는 전신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저 영웅왕의 무법이 검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바로 그 영웅왕의 무법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로이스가 발렌트시아의 무법을 들어 올렸다.
묵직한 책의 무게감에 로이스의 눈에 감격이 생겨났다.
‘역시 이거다!’
이 책을 손에 넣은 이상, 왕릉에 남은 그 외 모든 보물을 다른 이들이 가져간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깝기는 한가? 조금만, 아니 적당히 챙겨볼까?”
그렇게 실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던 찰나.
창-.
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로이스의 눈앞으로 얼음 파편이 흩날렸다.
‘어라?’
순간 사고가 정지한 로이스.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곧 로이스의 두 눈이 서서히 벌어졌다.
“어?”
로이스의 시선이 닿은 곳.
꽃가루처럼 흩날리는 얼음 파편 사이에서 영웅왕의 시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당황한 로이스가 말을 더듬었다.
그가 이토록 당황한 데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이, 이런 건… 원작 내용에 없었는데?!”
원작에서 영웅왕의 무법을 손에 넣은 주인공 일행은 아무런 문제 없이 바로 왕릉을 빠져나갔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죽은 줄 알았던 영웅왕이 얼음 속에서 깨어나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르르-.
로이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어붙은 사이, 온전히 몸을 일으킨 영웅왕이 눈을 떴다.
기괴하게도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안구는 없고 푸른빛만이 가득했다.
로이스는 그 푸른빛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꿀꺽-.
긴장한 로이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한참이나 로이스를 바라보던 영웅왕이 입을 열리며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대가… 탐할 물건이… 아니다.]띄엄띄엄 이어지는 영웅왕의 목소리와 함께 물씬 피어오르는 살기.
영웅왕이 녹슨 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놀란 로이스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쌍둥아! 핀!”
그의 외침을 들은 그들이 곧장 로이스에게 달려왔다.
핀이 난데없이 나타난 존재를 보고 놀라 물었다.
“저게 뭐예요?”
“영웅왕 시체!”
“히익?!”
날아오던 핀은 로이스의 답변에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반면 로이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젠장. 함정이었냐?’
사망 플래그의 낙뢰로 눈사태가 발생하고, 갑자기 눈 밑으로 빠져 영웅왕릉을 발견했다.
그런데 원작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자기 영웅왕이 깨어나 줄기줄기 살기를 피워댄다?
이 모든 일이 우연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물며 영웅왕은 살아생전 제로급의 무사였다.
현재 로이스에게 그를 상대할 능력은 없었다.
‘제, 젠장!’
누가 봐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빠른 발놀림이었다.
“튀자!”
로이스의 지시에 쌍둥이들도 이번만큼은 사태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군말하지 않고 현신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영웅왕이 빨랐다.
[탐욕을… 부린 자에게… 는… 오로지… 죽음뿐…….]녹슨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든 영웅왕.
검신을 타고 거대한 기운이 위로 치솟았다.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기운에 로이스와 쌍둥이들은 홀린 듯이 얼어붙고 말았다.
‘아, 안 돼!’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었지만, 압도적인 기세에 눌린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쌍둥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자신만만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제발… 제발!’
로이스는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이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주인의 의지를 거부했다.
‘이게… 제로의 경지인가?’
로이스는 허허-거리는 용족의 원로들을 보며 내심 제로의 경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소탈해도 너무 소탈한 원로들의 모습에 자신도 조금만 노력하면 제로의 경지에 도달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압도적인 공포와 폭력.
처음으로 마주한 제로의 진면목은 까마득한 하늘 위에 닿아 있었다.
그로 인해 로이스는 절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절망과 좌절이 걷히고 그 속에서 피어난 것은 굳건한 의지였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천장을 뚫을 듯 치솟은 거대한 빛의 검을 보면서도 로이스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우웅- 우웅-.
드래곤 하트가 맹렬하게 가동하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를 느끼며 로이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아등바등 버텨왔는데!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고!’
고작 이런 죽음을 맞이하려고 그리 죽기 살기로 수련을 해온 게 아니었다.
우우우웅-.
주인의 의지에 따라 드래곤 하트가 최고조로 기운을 뿜어내고.
“으아앗”
4가지의 속성력이 한꺼번에 용트림했다.
로이스의 전신에서 일렁이는 순백의 기운.
그것은 로이스가 드래곤 하트에 쌓아온 4가지 기운의 집결체였다.
‘살고 싶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는 있지만, 영웅왕에게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로이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오로지 오래오래 살아남는 게 단 하나의 목표였던 로이스였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이대로 순순히 죽을 수는 없었다.
‘살고 싶다고!’
주인의 강렬한 의지에 반응한 드래곤 하트는 모든 것을 쥐어짜냈고.
“으아아악!”
츠즈즈즈-.
있는 힘껏 내지른 로이스의 주먹에서 백색의 기운이 광선처럼 영웅왕에게 쏘아졌다.
특별한 술식도, 그 어떤 기교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나로 이뤄진 일격.
로이스의 의지를 담은 공격이 적대자의 심장을 노렸다.
그와 동시에.
쾅!
영웅왕이 만들어낸 거대한 빛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