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판 뒤집기 (4)
칸부르크 왕국 병력 주둔지.
지휘부가 머무는 중앙 막사 안.
수많은 귀족이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아 있는 가운데.
호록-.
막사 한쪽에 편히 앉은 로이스는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하지만 로이스에게 이를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로이스의 눈치를 보기 바쁠 뿐.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머릿속은 온통 자신들이 본 신의 기적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로 복잡했기 때문이다.
호록-.
적막 속에 로이스가 찻물을 들이켜는 소리만 들리던 그때.
모두를 대표해 로칸 7세가 입을 열었다.
“교주, 아까 그건…….”
“왜요?”
“그건… 뭐였는가?”
국왕이 말하는 ‘그게’ 무엇인지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답을 기다리는 가운데, 로이스는 오히려 로칸 7세에게 되물었다.
“전하의 눈에는 뭐로 보였는데요?”
“…….”
잠시 멈칫한 로칸 7세가 입을 열었다.
“정녕… 칼로스 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건가?”
“전하의 눈에는 그것이 칼로스 님으로 보였습니까?”
“나는… 그리 보았네.”
“그럼 맞겠죠.”
“……?”
“그분께서 행한 기적을 직접 보고도 이를 부정한다면 신은 없는 것이나, 기적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인 이에게는 신이 존재하는 거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가?”
“글쎄요, 무슨 의미일까요?”
뚱딴지같은 소리에 국왕은 물론 다른 귀족들도 로이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바빴다.
그런 반응을 보며 로이스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의미는 개뿔, 그냥 개소리지.’
사실상 로이스가 한 일은 그냥 적절하게 공간을 변형시켜 신의 외형을 빚어 낸 것뿐이었다.
그게 너무 고차원적인 술법이라 아무도 못 알아본 것뿐이었다.
‘애초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신을 내가 어떻게 불러오냐.’
수만의 몬스터 대군을 말 한마디로 물러나게 하는 기적을 목격한 이들에게는 로이스가 만들어낸 환영이 신의 강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에 로이스는 그냥 대충 저들이 알아서 상상하라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진 것뿐이었다.
그 결과, 별다른 의미가 있지 않은 말을 해석하느라 귀족들의 머리 위로 김이 펄펄 피어올랐다.
한편, 로칸 7세.
“허…….”
작게 탄식하는 그의 얼굴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평소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그.
하지만 이제 그 존재를 부정하기에는 신이 보여 준 기적이 너무 대단했다.
‘정녕… 신이 존재하는 것인가.’
그가 그리 고민하고 있을 때, 휴안 공작이 로이스를 보며 물었다.
“스노우 킹과 몬스터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이야 전신께서 놈들을 잠깐 물러나게 했다지만, 언제… 그놈들이 다시 돌아올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이 땅에 피바람이 불 겁니다.”
로이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겠지.”
“그러니… 혹 전신께서 다시 힘을 써 주신다면 놈들을 백치 산맥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은 길게 늘어놓았지만, 요지는 간단했다.
아까처럼 힘 좀 써서 놈들을 몰아내 줘라.
이에 로이스가 살포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단호한 목소리에 의견을 낸 휴안 공작은 물론 다른 귀족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오늘처럼 다시금 전신이 나서 준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놈들을 몰아낼 수 있을 듯싶었으니, 실망이 클 만도 했다.
모두가 침중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로이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놈들을 왜 백치 산맥으로 돌려보내?”
“…예?”
“미쳐 날뛰고 싶어 하는데 날뛰게 해 줘야지.”
“그건 아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왕국이……!”
“누가 왕국에서 날뛰게 둔대?”
“네?”
“다른 곳에서 날뛰게 만들면 되는 거 아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신에게 쏠린 수십 쌍을 눈을 보며 로이스가 미소 지었다.
“내가 우리 칼로스 님한테 며칠 동안 기도를 올려 아주 자아아알 말씀드렸다고.”
“뭘… 말입니까?”
“그 몬스터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 주십사… 다만,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몰아 주십사 하고.”
“…….”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서쪽?”
로칸 7세가 서쪽이란 말을 되새겼고, 곧 그의 입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하핫! 하하하하하!”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에 귀족들이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그들도 하나둘 깨닫기 시작했다.
칸부르크 왕국의 서쪽에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서쪽이라면 제국이……?”
“도미넌트 제국?”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목소리 위로 로이스의 목소리가 덮였다.
“이번에 우리 교단을 습격한 것은 제국이다.”
“……?!”
홀짝-.
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켠 로이스가 그간 자신이 파헤쳐 온 것들을 칸부르크 왕국의 귀족들 앞에서 풀어내기 시작했다.
로이스의 이야기에 왕국의 귀족들이 하나둘 빠져들었고.
“…그렇게 된 거다.”
로이스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분노로 가득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 이런 쳐 죽일 놈들이!”
“감히 우리를 뭐로 보고!”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로이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공통을 적을 둔 교단과 칸부르크 왕국의 우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뭐, 사실… 애초에 칸부르크 왕국과 동맹을 깰 생각도 없었지만.”
로이스의 확언에 귀족들이 살짝 감동한 눈빛이었다.
심지어 로이스와 악연이 있다는 퍼실러스 후작도 말이다.
그때 블리스 공작이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하면 스노우 킹 군단을 서쪽으로 몬다는 것은…….”
그 물음에 로이스가 조소를 머금고 답했다.
“한번 저들도 느껴 봐야지 않겠어? 칸부르크 왕국과 교단 덕분에 얻어 낸 평화가, 동부의 전사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면서 만들어 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귀족들의 눈빛이 변했다.
분노의 감정은 사라지고 통쾌함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암! 그렇고 말고요! 지들이 누구 덕분에 몬스터와 마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는데! 그런 은혜도 모르고!”
“우리가 그 많은 자금을 쏟아부어 왜 방벽을 만들었겠습니까? 그게다 우리 좋자고 한 일인가! 겨울 대륙 모두가 안전해지자고 한 일이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귀족들의 목소리에 로칸 7세는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였구나!’
얼마 전 로이스는 말했었다.
스노우 킹과 제국의 압박을 모두 해결해 줄 방법이 있다고.
그리고 모든 게 그의 말처럼 됐다.
칸부르크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 스노우 킹이란 폭탄을 제국에 떠넘겼으니 말이다.
“흐흐흐.”
체통을 지키려고 해도 자꾸만 음흉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과연 제 잘난 줄 아는 그 제국이 그 폭탄을 어찌 처리할지 말이다.
또한,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껴안고 발을 동동 구를 그 모습을 생각하니 어찌 웃음이 안 나오겠는가.
그렇게 히죽거리는 로칸 7세를 보며 로이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칸부르크 왕국에서 해 줄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교주.”
어느새 존대로 바뀐 로칸 7세의 어투에 로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칸부르크 왕국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곳에서 제국으로 가는 최단 경로에 놓인 민가를 모두 비워 주세요.”
“……?!”
“전신께서 그 길을 통해 스노우 킹 군단을 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현재 스노우 킹 군단은 쌍둥이가 번갈아 가며 인근에서 뺑뺑이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체력적인 한계는 있는 법.
놈들의 체력이 바닥나기 전에 최단 경로를 통해 스노우 킹 폭탄을 제국 측에 넘겨야 했다.
로이스의 요구가 끝나기 무섭게 로칸 7세가 크게 웃으며 답했다.
“기꺼이 그리하지요!”
그렇게 그날, 스노우 킹을 상대하기 위해 모였던 4만의 병력이 왕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 * *
칸부르크 왕국 내에서 스노우 킹 군단이 뺑뺑이 치고 있을 무렵.
사무엘 후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여유롭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좋구나.’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교단은 잠잠했고, 몬스터 군단과 칸부르크 왕국의 병력이 언제 맞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이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한 뒤, 제국은 그저 남은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칸부르크 왕국을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제국이 주워 담은 칸부르크 왕국 일부는 자신의 손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노력에는 보답이 따르는 법이지.’
과거에는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지만, 캘룬 대방벽이 완공되며 안전한 영토가 된 칸부르크 왕국.
제국의 황제는 후작의 공로를 인정해 그 땅을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아니, 사실은 공작이 이를 요청했다.
[칸부르크를 달라? 그것이면 되겠더냐? 칸부르크 놈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제 손에서 만들어진 일이오니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제게 칸부르크의 통치를 맡겨 주신다면 그 오만한 칸부르크를 폐하의 신민으로 만들겠나이다.] [흠…….] [또한, 칸부르크 왕가가 품은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어 폐하의 품에 안겨 드리겠나이다.] [후작이 그리 말하니… 내 힘을 써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해 드시게. 과하게 욕심을 부린다면 탈이 나는 법이니.] [며, 명심하겠습니다.]칸부르크 왕가의 비밀.
그것은 바로 끝을 모르고 쏟아지는 자금력이었다.
후작은 그 자금력의 출처를 밝혀내겠다고 장담했다.
‘이건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아마 그가 칸부르크 왕국의 자금처를 밝혀낸다면 그건 국고가 아닌 황제의 사고로 들어가리라.
또한, 황제는 인정했다.
만약 칸부르크 왕가의 자금처를 알아낸다면 중간에서 어느 정도 챙기는 것을 눈감아 주겠다고.
과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후작이 원하는 것도 딱 그 정도였다.
‘누대에 걸쳐 대방벽을 세울 정도의 자금력이라면… 중간에서 조금만 떼어 내도 공작가에서 굴리는 자금의 몇 배는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 자신의 가문은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를 지닌 가문이 되리라.
‘내 대에 이르러 우리 가문이 공작가로 거듭나는 거다!’
사무엘 후작의 가슴은 이제 가시권에 들어온 금빛 미래에 들떠 올랐다.
“좋구나.”
사무엘 후작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바빴던 하루하루 끝에 찾은 완벽하고 평온한 일상.
그날도 분명 그렇게 마무리될 하루였다.
저녁에 급히 올라온, 마지막 보고만 아니었다면…….
[몬스터 군단이 칸부르크 왕국의 병력을 그냥 지나침.] [칸부르크 왕국 피해 전무.]처음 올라온 보고를 받았을 때, 후작은 어리둥절했다.
‘뭐?’
몬스터들이 인접한 인간의 병력을 그대로 지나쳐?
그게 말이 돼?
난데없는 보고에 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언가… 무언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감이었다.
하지만 그 감이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만들었다.
불길함을 느낀 사무엘 후작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당장 칸부르크로 예비 인원 전부 투입해! 전 정보망 상시 대기!”
벼락같은 사무엘 후작의 명령에 검은 서리쥐 본단에 비상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튿날.
[칸부르크 왕국 병력 해산.] [해산 목적 불분명.] [스노우 킹 군단 현재 위치 파악 불가.]연이어지는 보고에 사무엘 후작은 이를 악물었다.
‘느낌이… 안 좋다.’
그리고 이런 불길한 느낌은 언제나 맞아떨어졌다.
그날부터 줄기차게 쏟아지는 보고에 사무엘 후작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스노우 킹 군단 위치 파악 완료. 현재 위치 칸부르크 왕국 내 자룬 영지 인근.] [스노우 킹 군단 계속해서 이동 중.] [스노우 킹 군단이 칸부르크 왕국을 그대로 지나침.] [칸부르크 왕국 피해 전무.] [스노우 킹 군단, 모두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서진(西進).] [이후 스노우 킹 군단과 칸부르크 왕국의 교전은 확인된 바 없음.]하루하루 올라오는 보고에 사무엘 후작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정보가 올라오길 기다리느라 잠조차 잘 수 없었다.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계속 이어지고.
스노우 킹이 백치 산맥을 내려온 지 10일째 되는 날.
사무엘 후작에게, 아니, 제국에 결정타를 날리는 보고가 전해졌다.
[현 상태가 계속된다면 보름 뒤, 스노우 킹 군단이 자국 국경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됨.]보고서를 움켜쥔 사무엘 후작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갔다.
한편, 그 시각.
겁에 질려 우르르 몰려가는 스노우 킹 군단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로이스.
“자, 그럼 판은 뒤집혔고…….”
그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걸렸다.
“이제 새로운 판을 짤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