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마왕 (1)
쾅-.
대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팔걸이가 내려쳐졌다.
황제의 몸짓, 눈빛, 표정 하나하나에 분노가 깃들었고, 이를 마주한 대소신료들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번 일의 책임자이자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무엘 후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에게 황제의 성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폐, 폐하…….”
“분명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그렇사옵니다.”
“한데, 어째서 저 몬스터 무리가 우리의 땅을 향해 오고 있단 말이냐!”
“워, 원인을 파악 중입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지도 못한 채 사무엘 후작은 그저 깊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대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계획에는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결과까지 매우 흡족하게 나왔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의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예정대로라면 스노우 킹과 몬스터들이 칸부르크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어야 했는데…….
‘몬스터들이 인간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무엘 후작이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황제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파악 중이다? 그래서 결과는 언제 가져올 거지?”
“그것이…….”
“저 몬스터 무리가 나의 땅을 밟은 다음에야 가져올 것인가?”
“아, 아니옵니다!”
“알아 오라. 어째서 몬스터들이 칸부르크의 땅을 지나치는지, 어째서 저곳이 아닌 나의 땅을 향해 밀려들고 있는지.”
“그, 그리하겠습니다.”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의 목이 떨어질 터이니.”
“……?!”
사무엘 후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합리해도 이리 불합리한 명령이 없었다.
하지만 항명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리를 숙이고 몸을 사릴 뿐.
어떻게 해서든 황제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는 것만이 자신이 살길이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사무엘 후작이 창백한 얼굴로 물러났다.
이를 지켜보던 황제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좌우, 양측에 일렬로 늘어선 제국의 귀족들.
원래 칸부르크 왕국과 스노우 킹에 관한 이야기는 소수의 귀족만이 알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더는 감출 수 없는 법.
이른 아침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모인 제도 귀족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황제가 그들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황제의 물음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허연 수염을 한 노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폐하.”
“말하라, 궁정 법사장.”
“이 늙은이의 소견으로는 이 모든 게 스노우 킹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일 같사옵니다.”
“너무 뻔한 소리를 하는군.”
“그렇지요. 뻔하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뻔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다?”
“과거 문헌으로부터 전해지길 스노우 킹의 지능은 일반적인 몬스터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그 많은 몬스터 군단을 장악하고 움직이는 것 역시 스노우 킹. 다시 말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스노우 킹이 벌이고 있는 일이란 겁니다. 만약 놈이 칸부르크를 그저 지나치고 우리 제국으로 오고 있다면, 놈이 원하는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몬스터 따위에게 목적이라…….”
“앞서 말씀드렸듯이 스노우 킹을 한낱 몬스터 따위로 취급하면 아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건가?”
“일단은… 스노우 킹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합니다.”
“몬스터에게 놈이 뭘 원하는지 물어라도 보란 소린가?”
“다른 대책이 없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궁정 법사장의 이야기에 황제의 시선이 사무엘 후작에게 닿았다.
“들었나, 후작?”
“그, 그렇습니다.”
“그대가 무얼 해야 하는가.”
“스노우 킹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겠습니다. 만약 알아내지 못한다면… 제가 직접 놈과 대면해서라도 그 목적을 알아 오겠습니다.”
“그리하라.”
사무엘 후작이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8만의 몬스터 대군을 뚫고 스노우 킹과 대면한다는 건 사지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말을 해야 했다.
그래야지 자신과 가문이 무사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사무엘 후작이 고개를 숙인 사이 다른 이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황제를 마주했다.
“폐하, 소장에게 발언을 허하여 주시겠습니까?”
“말하라, 호안.”
호안 돌리안.
일개 준남작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일신의 무력만으로 후작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존재였다.
수 속성 2티어의 최상급에 도달한 검사.
평소에는 호방하지만, 전투에 들어서면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적의 목을 베는 검수.
때문에 그를 아는 이들은 호안을 차가운 곰이라 칭했고, 아직 40대 중반의 그는 훗날 차기 제국 제일검이라 불리는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호안은 제국령 동부사단을 책임지는 사단장이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호안에게서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스노우 킹의 목적이 무엇이고 간에 지금 저희가 알 수 있는 것은 8만의 대군이 저희 제국을 향해 몰려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현 동부의 병력만으로는 저 대군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동부사단이라고 해 봤자, 2만여 명.
물론 요새에서 수성전을 벌인다면 8만의 대군과 충분히 싸울 전력이지만, 몬스터들이 순순히 공성전을 벌여 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이는 과거에 나타난 10만의 스노우 킹 군단이 증명했다.
인간들이 세운 성이 아닌, 자신들에게 유리한 평야에서 대륙을 헤집고 다닌 몬스터 군단.
놈들의 농락에 괜히 과거의 제국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호안의 이야기에 황제가 턱을 괴고 물었다.
“그래서?”
“저 몬스터 무리가 폐하의 땅을 밟기 전에 국경에 저지선을 펼쳐야 합니다. 하여… 징집령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호안 후작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술렁거림이 퍼져 나갔다.
이에 황제가 인상을 쓰고 다시금 팔걸이를 내려쳤다.
“조용히 하라.”
단번에 좌중을 잠재운 황제는 자신을 향해 당당히 서 있는 호안을 보며 물었다.
“얼마의 병력을 원하는가.”
“추가로 3만의 징집을 허하여 주시옵소서.”
“5만이면 충분히 놈들을 막을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흠…….”
황제가 고민하는 사이 궁정 법사장이 끼어들었다.
“놈들의 숫자는 그대가 원하는 병력의 두 배에 달하오. 과거 전해지는 문헌에 의하면 스노우 킹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놈들의 최소 2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오.”
궁정 법사장의 이야기에 호안이 조소를 머금었다.
“과거의 문헌이라… 궁정 법사장, 지금은 1,200년 전이 아니오.”
“…….”
“우리 도미넌트 제국 무사들의 수련법, 병기술, 전술을 고작 1,200년 전에 망한 제국 따위와 비교하지 마시오.”
“흠…….”
“또한, 1,200년 전에 없던 초월기가 우리에게 있소. 나의 백곰철무단이라면 능히 5만의 병력으로도 놈들을 막을 수… 아니, 전멸시킬 수 있소이다.”
호안의 이야기에 궁정 법사장은 입을 다물었고 다른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안 후작의 말처럼 지금은 1,200년 전이 아니다.
인간이 누대에 걸쳐 쌓고 전해 온 수련법과 전술 등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을 이뤘다.
분명 1,200년 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더욱이 전략 병기라 불리는 초월기는 대인전보다는 대규모 전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전쟁터에서는 일반 3티어의 무사보다 4급 초월기 한 대가 3티어 무사 수십의 역할을 해내는 법.
속성력을 쓰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에게 3티어 무사보다 더 두려운 게 바로 창칼이 박히지 않는 거대한 철갑 덩어리였다.
궁정 법사장이 호안 후작의 이야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물러나자,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징집을 윤허한다.”
“다음번, 제도에 들를 때는 반드시 스노우 킹의 머리를 가지고 오겠나이다.”
“기대하마, 호안. 그리고 사무엘.”
“예!”
“네가 알아 오는 모든 정보를 즉시 호안에게 전하라.”
“그리하겠습니다!”
대전의 상황이 정리되고, 제국의 각 부서가 전쟁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노우 킹 군단이 제국에 도달하기까지 14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을 무렵.
도미넌트 제국 동부에 황제의 이름으로 징집령이 떨어졌고, 수많은 귀족 가문의 병력이 동부 사령부로 찾아 들었다.
* * *
도미넌트 제국 동부 정예 20,000명.
백곰무단 1,000명.
백곰철무단 소속 4급 초월기 300기.
백곰철무단 소속 3급 초월기 40기.
군단장 전용기를 포함한 2급 초월기 7기.
거기에 징집령으로 모인 3만의 귀족 사병.
지방 귀족 소속의 호위 무단 1,500명
지방 귀족 소속 4급 초월기 700기.
지방 귀족 소속 3급 초월기 20기.
모두 합쳐 5만의 병사와 2,500의 호위 무단.
1천여 기를 넘는 초월기까지.
이는 징집령이 끝났을 때, 최종적으로 동부 사령부에 모인 전력이었다.
단지 동부 지역의 전력이 모인 규모만으로도 왜 도미넌트가 제국이라 불리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진영 밖으로 나갔던 정찰병이 몬스터 대군이 이틀거리 밖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그런 가운데 호안 후작은 보좌관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틀거리라… 준비는?”
“군 편제는 완료되었습니다만, 지방 귀족들이 간부들에게 청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탁?”
“정확히는 초월기를 보유한 귀족들의 청탁입니다. 자신들의 초월기를 전선 앞쪽으로 내보내 달라고 합니다.”
지방에 머무는 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제도로의 진출이었다.
아무리 지방에서 날고 기는 영주라고 해도 제도 귀족들 앞에서는 촌구석의 힘없는 귀족일 뿐이었다.
때문에 이번 전쟁은 지방 귀족들에게 기회였다.
전공을 세워 제도에 입성.
이를 바탕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지방 귀족들이 중간 간부들에게 계속해서 청탁해 대는 것이다.
그런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호안은 피식거렸다.
“…다 이긴 전쟁이라 이건가.”
8만의 몬스터 대군이 코앞까지 몰려왔음에도 동부 사령부에는 별다른 긴장감이 없었다.
귀족들부터 말단 병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이번 전쟁은 전쟁이 아닌 단순한 몬스터 토벌로 여기고 있었다.
특히 귀족들은 조금이라도 앞에서 더 많은 몬스터의 목을 베어 전공을 쌓는 것에만 혈안이었다.
호안은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간부들에게 적당히 챙겨 먹고 원하는 대로 들어주라고 해. 알아서 군의 피해를 줄여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알겠습니다.”
짧게 인사를 한 보좌관이 막사를 떠나갔다.
홀로 남은 호안 후작은 낮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지방의 촌것들 같으니. 전쟁을 놀이쯤으로 여기는 것인가.”
낮게 으르렁거린 그의 눈이 번뜩였다.
지방의 귀족들을 뭐라 하였지만, 정작 그의 눈에도 긴장은 없었다.
그 역시도 이번 전쟁은 질 수 없는 전쟁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이틀 뒤 새벽 무렵.
뿌우우우-.
길게 울리는 뿔 나팔 소리에 동부 사령부의 전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동쪽으로부터 스노우 킹의 군단이 등장했다.
“지, 징그럽게 많군.”
“저게 다 몬스터란 말이지?”
전날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병사들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 군단을 보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긴장도 가장 앞 열에 1,000여 대의 초월기가 늘어서며 사라졌다.
와아아아-.
포진하는 초월기를 보며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귀족들이 끌어모은 가지각색의 초월기와 그 뒤에 자리한 동부사령부의 자랑, 백곰철무단의 초월기.
병사들은 몬스터 무리가 절대 저 철의 거인들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쿵- 쿵-.
그리고 1천 초월기의 후방에 등장한 포효하는 곰 머리 투구를 장착한 초월기.
“사단장님이다!”
“무적의 백곰!”
병사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이에 사단장 전용기가 거대한 검을 들어 올렸다.
철컥- 쿵!
그가 움직이자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주해 달려오는 스노우 킹의 군단을 보며 호안 후작은 입술을 핥았다.
‘어서 오거라.’
비록 선두를 지방의 귀족들에게 넘겨주었지만, 그가 전공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전공에 목말라 있는 이가 바로 호안 돌리안이었다.
일개 준남작 집안에서 태어나 후작까지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전공(戰功)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8만의 몬스터 군단을 격퇴하고 스노우 킹의 목만 취한다면…….
‘공작의 직위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저 몬스터 무리는 바로 자신의 출세를 위한 제물이 되리라.
‘어서… 더 빨리 오라!’
그는 탐욕과 흥분 가득한 눈으로 전방을 노려보았다.
1,000m.
900m.
800m.
700m.
두 진영 간의 거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들의 거리가 300m로 좁혀지고 언제 맞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순간.
“전구우운……! 응?”
막 전군을 향해 명령을 내리려던 호안 후작의 눈에 이상한 것이 잡혀 들었다.
‘저건……?’
스노우 킹 군단의 머리 위로 떠 오른 혜성 같은 불빛이 자신들의 진영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다.
번쩍-.
순식간에 날아든 빛이 병영의 중앙에 떨어지며, 모두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위이이잉- 우우우웅…….
초월기의 눈이 빛을 잃었다.
“이, 이게 무슨?!”
먹통이 된 초월기에 놀란 호안 후작이 놀라 경악성을 토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전장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 초월기가!”
“우, 움직여! 움직이라고!”
“뭐야! 무슨 일이야!”
천여 기가 넘는 초월기가 모두 눈에 빛을 잃고 침묵하자 동부 사령부 진영에 혼란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