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뚠뚠이 (1)
황제의 대전 안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연전연패.
그것도 제국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병력이 동원되고도 대패했다.
심지어 두 번째 참패의 양상마저 첫 번째 패배와 똑같았다.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날아들어 초월기가 무력화됐고, 몬스터들이 인간군을 휩쓸었다.
그나마 궁정 법사장과 궁정 성탑의 참전으로 몬스터 군단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는 있었지만, 궁정 성탑도 계속 밀려드는 몬스터 군단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첫 번째 전투의 패배가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지자 황제는 위기감을 느꼈다.
“궁정 법사장.”
두 번째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궁정 법사장.
쉬지도 못하고 불려 온 그의 얼굴에 피로함이 가득했지만, 황제의 부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폐하.”
“대체 그 빛이 무엇인가?”
이번에도 초월기를 무력화시킨 괴상한 빛.
궁정 법사장은 물론 다른 법사들까지 전부 달려들어 그것에 대해 논의해 봤지만, 끝끝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아낸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 빛을 쐬면 초월기의 동력구에 이상 반응이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것 역시 스노우 킹의 능력인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사료됩니다.”
“막을 방법은?”
“송구하옵니다…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으득-.
황제가 이를 악물었다.
“찾지 못했다고 하면 끝인가?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은가!”
“…….”
“그 빌어먹을 빛을 막지 못하면 수천 기의 초월기를 가졌다고 한들 무용지물이다! 우리가 가진 병력만으로 어찌 저놈들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이냐!”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궁정 법사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쉰 황제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찌… 어찌한단 말인가.’
이미 제국은 두 번의 패배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이제부터였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황제가 숨을 가다듬고 물었다.
“다니어스 공작.”
“예, 폐하.”
“속국의 병력은 어찌 되었는가?”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제국의 전력은 크게 꺾였고, 이에 황제는 자신들에게 굴복한 왕국에 병력을 요청했다.
그 일을 행한 자가 바로 재상인 다니어스 공작.
그는 자신이 맡아 진행한 일을 보고했다.
“이미 6만의 추가 병력이 3차 저지선에 집결해 있습니다. 이제 모이고 있는 서부 사령부의 병사들까지 더하면 대략 9만의 병력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9만이라…….”
황제가 인상을 썼다.
9만이라는 숫자는 분명 어마어마한 대군이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막대한 군자금이 들어갔다.
여기서 9만의 대군이 움직이며 또 얼마의 예산이 들어갈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쟁이 금방 끝나 추가적인 지출이 없었다는 것뿐.
이를 떠올린 황제는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니.’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참패를 겪었는데 고작 군자금 좀 아꼈다고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이 어이없던 것이다.
안색을 정돈한 황제가 다시금 공작을 보며 물었다.
“9만의 병력이면… 놈들을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건가?”
“이미 두 차례의 전투가 있으면서 몬스터 군단의 숫자도 6만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쪽은 8만을 잃었는데 한낱 몬스터 따위가 2만이라……. 그래서?”
“3차 저지선을 담당하고 있는 카덴 공작 각하라면 능히 몬스터 군단을 막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카덴 도윌슨 공작.
제국 제일검이라 불리는 1티어의 검공이라면 충분히 믿음직한 존재였다.
다만, 그럼에도 황제의 인상을 펴질 줄 몰랐다.
“막는다? 나는 그대에게 이 전쟁의 승패를 물었다.”
“아시다시피 초월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빛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는 한 초월기는 그저 값비싼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3차 저지선에 초월기는 배치되지 않았다.
“검공의 전술과 무위라면 충분히 몬스터 대군과 맞설 수 있으나… 문제는 스노우 킹입니다.”
“…그렇군.”
단순히 몬스터 군단을 부리는 능력뿐 아니라 본신의 무위도 탑티어에 비견된다는 괴물 중의 괴물.
아무리 검공이라고 할지라도 1티어인 그가 스노우 킹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스노우 킹을 처리하지 못하는 한… 완전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황제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검공과 3차 저지선마저 뚫리면 바로 제국의 심장이라는 제도가 몬스터 군단의 앞에 놓인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황제가 정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 자는 앞으로 나서라.”
제국의 운명이 걸린 이 순간에도 마땅한 대응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수많은 귀족도 그저 눈치를 보며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적막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벅-.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폐하.”
“사무엘 후작?”
모두가 침묵할 때 나선 이는 다름 아닌 사무엘 후작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찾았다. 내 살길을.’
이번 전쟁을 이기든 지든, 그에게 뒤는 없었다.
전쟁에서 이겨도 사건 발단의 책임을 물어 면책을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형이었다.
전쟁에서 지면 제국 자체가 사라지니 그 또한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바로 이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
최악의 상황에서 공을 세운다면 최소 죄를 덮을 수는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한 가지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방도가 있습니다. 스노우 킹을 상대할 방법이 말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렸다?!”
황제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런 반응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후작은 빠르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습니다. 다만 방법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허락해 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허락? 무엇이냐?”
“제국 예산 중 100만 골드를 융통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
100만 골드.
도미넌트 제국의 1년 예산이 1,000만 골드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일반 서민 한 가구가 1골드면 1년을 살 수 있고, 나름 부유한 귀족 가문이라고 해 봤자 지닌 재산이 1만 골드 정도.
수십만 골드를 가지려면 제국의 공작 가문 정도는 되어야 한다.
때문에 100만 골드가 언급됐을 때 귀족들이 술렁였다.
이에 황제가 사무엘 후작을 노려보며 물었다.
“100만 골드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셈이지?”
“괴물을 움직일 생각입니다.”
“괴물……?”
황제의 물음에 후작이 웃으며 답했다.
“스노우 킹이 괴물이라면… 또 다른 괴물로 놈을 상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스노우 킹을 상대할 괴물이 있다는 소리더냐?”
“있습니다.”
사무엘 후작의 확신에 황제는 살짝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자세히 말해 보라.”
일단 황제가 이야기를 들어줄 듯싶어지자 사무엘 후작은 자신이 준비해 온 수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뒤.
“호오.”
황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짐 또한 들어 본 적이 있다. 한데, 그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였단 말인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제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까지 끝마쳤습니다.”
“후작이 보기에 그 괴물이 스노우 킹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그렇습니다. 오히려 소문이 모자란 듯 보였습니다.”
“흠…….”
사무엘 후작의 확언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의 말이 사실이라면, 100만 골드 정도는 충분히 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대에게 이번 일에 관한 전권을 일임한다. 제국의 사활이 걸린 일이니 반드시 성사시키거라. 만약 너의 방법이 이 나라를 구한다면… 네 죄를 사하여 주겠노라.”
드디어 원하는 바를 얻어 낸 사무엘 후작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 * *
3차 저지선이 형성된 지 이틀 뒤.
사무엘 후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금발에 적안.
150㎝의 단신.
이제 고작 15살쯤으로 보이는 외모의 소녀였다.
그녀는 마치 사무엘 후작의 집무실이 제 안방이라도 된 듯, 여유로이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소녀가 후작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밝고 가벼운 목소리였다.
도미넌트 제국의 거물이라는 사무엘 후작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말투.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사무엘 후작의 태도였다.
“말씀하신 금액을 준비했습니다.”
자신의 딸뻘로 보이는 소녀에게 사무엘 후작은 공손하게 대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어리디어려 보이는 소녀에게 자신의 목숨 줄이 달려 있으니 말이다.
사무엘 후작의 이야기에 소녀는 환히 웃었다.
“와? 빠르네요? 난 며칠 걸릴 줄 알았더니. 대충 듣기는 했는데… 급하긴 급한가 봐요?”
백색의 모피 코트 사이로 드러난 맨다리가 앞뒤로 까딱거렸다.
그 모습에서 그녀의 기분이 지금 아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후작의 기분은 착- 가라앉았다.
그에게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급하지요. 그러나 허투루 일을 처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골드는 스노우 킹의 목을 가져오시면… 그때 드리겠습니다.”
“에? 계약금도 없어요? 너무하시네?!”
“걱정하지 마시오. 일만 제대로 처리해 준다면… 그대가 원하는 금액은 반드시 지급될 터이니.”
후작의 단호한 목소리에 소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좋아요. 그쪽 사정 뻔히 아니까 이번만큼은 제가 맞춰 드리죠. 다만, 추후 지급될 골드는 전량 현물이어야 한다는 거 아시죠?”
“알고 있소이다.”
소녀가 미소를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럼 바로 일 들어가죠.”
“전선으로 가시오. 그쪽 사령부에는 내가 이미 말을 해 두었으니.”
“네에 네에! 그럼 다음에 다시 돈 받으러 오면 그때 봐요.”
“반드시… 반드시 놈의 머리를 가져와야 할 거요.”
“알았대두요.”
잔소리가 지겹다는 듯 살짝 코를 찡그린 소녀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고는 휙- 하니 등을 돌려 후작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조차 닫지 않고 말이다.
후작은 소녀가 떠나간 자리를 보며 기원했다.
제발 저 소녀가 스노우 킹의 목을 들고 오기를.
* * *
후작의 저택을 빠져나온 소녀는 빠른 걸음으로 인근 숲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눈길을 걸어 막힘없이 숲에 들어선 소녀가 경쾌하게 소리쳤다.
“뚠뚠아, 나 왔어!”
그녀의 외침이 숲에 메아리치고.
푸드덕-.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며 나무에 쌓인 눈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쿵- 쿵-.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겹겹이 자라난 나무 틈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릉-.
심기 불편한 울음소리가 깔리고 나무 그늘 사이로 비친 황금빛 안광.
이를 마주한 소녀가 어깨를 움찔 떨더니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왜? 뚠뚠이가 뭐 어때서!”
크르륵-.
“뚠뚠이라는 말… 어감이 귀엽지 않아?”
크륵!
“아, 알았어. 그렇게 안 부를게, 화내지 마!”
크릉.
자신의 사과에 그제야 가라앉은 안광을 보고 소녀가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튼, 일 받아 왔어!”
크릉?
“네 사룟값 벌러 가자고!”
소녀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황금빛 거대한 눈동자가 기쁨으로 일렁였다.
그로부터 잠시 뒤.
쿠드드득-.
눈 쌓인 나무들이 우후죽순 부러져 나갔고.
크허헝-.
우렁찬 포효가 있고 난 뒤, 새하얗고 거대한 동체가 숲을 빠져나와 놀라운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국의 사활이 걸린, 3차 저지선이 있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