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협상 (1)
난데없는 로이스의 폭언.
살면서 귀한 대접만 받고 자란 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이의 폭언을 참아 줄 리 없었다.
특히나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도미넌트 제국의 귀족들이었다.
그나마 쓸 만하고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귀족들은 진작에 제국을 위해 검을 들고 싸우거나 각 부처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다시 말해 현재 대전에 모여 탁상공론을 하는 귀족들은 쓸모없는 잉여 인력이란 소리였다.
가진 재주에 비해 쓸데없이 콧대만 높은 이들.
그런 자들의 반응은 뻔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입을 함부로 놀려!”
“침입자다! 근위대는 뭐 하는가!”
여기저기서 분노 가득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큰 목소리에 로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인가?”
그럼 내가 한 목소리 하지.
킬킬거린 로이스가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곧 그의 입에서 우렁찬 노성이 터져 나왔다.
“닥쳐!”
웅- 웅-.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입을 놀리던 이들이 놀라 멍하니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이에 로이스가 흡족하게 웃었다.
“이게 복식호흡이란 거야.”
복식호흡 한 번으로 상황을 정리한 로이스.
정적이 찾아온 가운데 로이스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너희의 구세주가 납셨는데 그렇게 떠들어 대면 쓰나.”
로이스가 웃는 낯으로 대전을 쑥 훑었다.
곧 그의 시선이 대전의 가장 안쪽, 높은 단상에 향했다.
누구보다 화려한 의복과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중년의 사내.
한눈에 봐도 어떤 직위를 지닌 이인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오늘 로이스가 만나러 온 인물이기도 했다.
저벅저벅-.
로이스가 그를 향해 걸어가는 사이 파브로가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잠시 뒤, 약 5m의 공간을 두고 마주한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것은 황제였다.
“누구냐. 나는 그대를 초대한 적이 없는데?”
덤덤한 목소리에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오호? 황제는 황제라는 건가?’
다른 귀족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로이스는 담담해 보이는 그의 목소리에 섞인 당혹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조금 섭섭한데요? 전 분명 그쪽이 보낸 초대장을 자아아알 받았는데?”
황제를 향한 로이스의 가벼운 언사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이놈! 예를 갖추지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들의 노성에 로이스는 상대해 주지 않았다.
대신 파브로가 나섰다.
쿵-.
묵직하게 대전을 내리찍은 파브로의 발.
그러자.
쩌저적-.
대전의 대리석이 갈라지며 움푹 가라앉았다.
바닥의 균열은 조금 전 소리친 이들의 앞에서 정확히 멈추었다.
파브로가 그들을 보며 사나운 눈빛을 보냈다.
“조용히 하라. 본 교의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리이다.”
싸늘한 파브로의 목소리가 깔리고, 그를 알아본 이들이 나타났다.
“저, 저자는?!”
“교단의 대전사?”
“조용히 하라 하였다. 다음번에 입을 열 시… 이번처럼 경고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입을 열었던 이들이 파브로의 날카로운 눈총에 입을 다물고 마른침을 삼켰다.
교단의 대전사란 호칭에 황제의 눈에도 살짝 놀라움이 스쳤다.
‘저자가 그 늙지 않는 괴물이란 말인가?’
교단의 대전사에 관한 소문은 황제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제국이 자랑하던 검공보다 훨씬 윗줄의 실력자로 평가되는 존재.
다시 말해 그가 마음을 먹는다면 현재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는 없다는 뜻이었다.
설사 그것이 암중의 호위에게 보호받는 황제 본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할 터.
다시금 찾아온 정적 속에 황제가 입을 열었다.
“교단의 교주라고? 한데, 이상하군, 내 언제 그대에게 초대장을 보냈다고 하는 건가?”
“왜 이러십니까? 그쪽이 애들 시켜서 우리 집에 있는 신물 훔쳐 갔잖아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뭐, 그렇게 나오셔야겠죠.”
“무슨 방법으로 이곳에 온 것인지는 모르나… 더 이상 너의 시답지 않은 소리에 어울려 주기에는 내 오늘 시간이 없구나. 이만 돌아가라.”
“정말요? 우리 정말 가도 돼요? 후회할 텐데?”
로이스가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창문 밖,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말이다.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것 역시 너희의 짓이더냐?”
“칼로스 님의 뜻이죠. 제가 모시는 주님께서 어찌나 자비로우신지… 제국에 기회를 주라고 하더라고요.”
“참으로 재밌는 헛소리이군.”
“와, 이거 서운합니다. 신의 기적을 보고도 헛소리라는 말이 나와요?”
“거짓된 말로 나를 현혹하려 하지 마라.”
“흠… 그런가요?”
로이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다가 돌연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파브로, 어디서 자꾸 윙윙거리는 소리 들리지 않아? 벌레가 있나 보네.”
“이런… 속히 처리하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파브로가 힘차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쾅- 쩌저적-.
삽시간에 지면을 파고든 파브로의 주먹.
동시에 대리석에 균열이 일며 뻗어나가 황제의 뒤편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커헙! 큽!
작은 신음과 함께 두 명의 사내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곧이어 천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무사 18명이 내려와 황제를 에워쌌다.
그들의 면면을 바라본 파브로의 얼굴이 살짝 경직됐다.
‘모두 2티어다!’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파브로조차 감지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18명의 2티어급 무사.
그들의 저력은 파브로도 쉽사리 무시할 게 아니었다.
한편, 모시는 주인의 위기에 호위 무사들은 살기등등한 눈으로 파브로와 로이스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를 받는 황제.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토하는 두 명의 무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단숨에 자신의 암중 호위를 잡아내고 치명상을 입힌 파브로의 무위에 황제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가 잔뜩 굳은 눈으로 물었다.
“이러고도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저희가 살아남을지 폐하가 살아남을지는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두 번의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
“확인해 보시렵니까? 저와 파브로가 이곳에서 죽는다 쳐도 저들 중 절반과 폐하는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로이스와 황제 사이에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졌다.
더불어 파브로와 황제의 암중 호위단 사이에 살기도 더해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분위기.
그 순간 로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아, 서로 시간도 없는데 이렇게 날 세우지 맙시다. 저도 그냥 원하는 것만 얻어 가면 그만이니.”
로이스가 먼저 물러서니 황제도 한발 양보했다.
“…원하는 게 뭐냐.”
드디어 제대로 된 대화의 기미가 보이자 로이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하나씩 펴지는 손가락.
“제가 원하는 것은 단 세 가집니다. 첫째, 우리에게서 훔쳐 간 신물의 반환. 둘째, 우리를 고생하게 한 거에 대한 적절한 피해 보상. 그리고…….”
이윽고 세 번째 손가락이 펴졌다.
“협상.”
“…협상? 무슨 협상을 말하는 거냐?”
“지금 제도 밖에 진을 치고 있는 몬스터를 저희가 처리해 드리죠.”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나타났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다만 공짜로 해 주겠다는 거는 아니고.”
“무얼 원하는 거지?”
“글쎄요? 뭘 원할까요?”
“…지금 뭘 하자는 짓이냐?”
“협상 중이잖아요?”
“그래서 묻지 않았는가! 원하는 게 있다면 이야기하라고!”
“에이, 뻔하죠. 그걸 꼭 제 입으로 얘기해야 합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보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 어디서 우리 칼로스 님한테 헌금 같은 거 안 들어오나…….”
그냥 대놓고 돈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성호를 긋는 게 어찌나 얄밉던지.
황제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얼마를 원하는가?”
“에이, 그렇게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 되죠. 협상의 기본이 안 되어 있으시네.”
“…뭐라?”
부들부들 떠는 황제를 보며 로이스가 웃으며 손을 내밀고 까딱거렸다.
“선제시요.”
“……?”
“원래 협상의 기본은 꿀리는 쪽이 선제시하는 거 아니겠어요? 자, 그러니 해 봐요. 그쪽에서 얼마나 해 줄 수 있는지.”
부들부들-.
유들거리는 로이스의 언사에 황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태어나 누군가에게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이 있던가?
날 때부터 그는 모든 이들의 위에 있었고, 받들어지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로이스의 무례한 언사를 참아 준 것만으로도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바닥난 인내심의 바닥까지 싹싹 긁어 가며 참았다.
황제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100만 골드를 주겠다.”
“…얼마요? 100만? 고작?”
“…고작?”
황제의 얼굴에 어이가 사라졌다.
한편 로이스는 귀를 후볐다.
후비적.
묻지도 않은 귀지를 입김으로 털어 낸 로이스.
“와, 이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신 분이 생각보다 배포가 작으시네.”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거냐.”
“음, 여엉… 감을 못 잡는 거 같으니 그냥 알려 드리죠.”
“…말하라.”
황제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로이스는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 돌연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1억 골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에 충격이 퍼져 나갔다.
주변 반응과는 상관없이 로이스의 얼굴에는 다시금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어때요? 생각보다 저렴하죠?”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르는구나.”
“왜 이러십니까? 제국이라는 곳에 그 정도 돈도 없어요?”
“1억 골드면 제국의 10년 치 예산이다.”
“그럼 싼 거 아닌가요?”
“…뭐?”
“이대로 몬스터 군단에 제도가 탈탈 털려서 제국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10년 치 예산을 들여서 제국의 명맥을 이어가는 게 낫지 않습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아, 액수가 부담스러우시다면… 할부도 받습니다.”
로이스의 능청스러움에 기어코 황제의 마지막 인내심마저 바닥나고 말았다.
까득-.
“돌아가라. 내 오늘의 무례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정말요? 돌아가요?”
“꺼져라.”
“후회하실 텐데? 우리 칼로스 님이 생각보다 내성적이셔서 이렇게 거절당하시면…….”
로이스가 창문을 가리켰다.
여기서 우리 쫓아내면 저거 뺀다?
그래도 가라고 할 거야?
…라는 게 로이스의 눈빛에서 적나라하게 보였다.
현재 상공에 떠오른 괴이한 형상이 몬스터로부터 제도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걸 빼겠다고 하는 것은 그냥 협박이었다.
황제가 이를 아득 깨물었다.
“그대는 협상이 아닌 협박을 하고자 왔군.”
“에이, 협박이라뇨. 애초에 우리 칼로스 님의 도움으로 지금 잠깐 숨통이 트였잖아요? 이건 그냥 본격적인 협상을 위한 약간의 맛보기입니다. 고객이 사야 할 물건에 흠이 없다는 걸 보여 주는?”
유들거린 로이스가 등을 돌렸다.
“뭐,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
“아,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하얀 신호탄 하나를 쏘아 올리세요. 그럼 언제든지 올 테니까.”
마치 언제든지 황궁에 들어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가자, 파브로.”
“예, 교주님.”
그렇게 로이스를 뒤쫓는 파브로.
곧 그들의 신형이 다시금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더불어.
“어, 없다?!”
“사라졌다!”
“저, 전신 역시 사라졌습니다!”
제도의 상공에 둥둥 떠 있던 전신의 형상마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꿈이었다는 듯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쾅- 쾅-.
다시금 황궁에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도 상공에 나타난 전신의 형상이 사라지기 무섭게 몬스터들의 폭격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큭!”
로이스가 떠나자 다시금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왔고, 황제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극심한 두통이 찾아든 것이다.
다시금 의자에 주저앉은 그는 로이스가 머물다 간 자리를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 * *
황궁을 빠져나온 로이스와 파브로.
크어어어!
크륵!
키에에엑!
로이스가 제도 인근 상공에서 몬스터들이 발광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 파브로가 그를 스리슬쩍 곁눈질했다.
황궁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계속 따라붙는 시선에 결국 로이스의 짜증이 폭발했다.
“아, 왜! 할 말 있으면 말로 해!”
“…안 때리실 겁니까?”
“들어보고.”
“그럼 그냥 안 하렵니다.”
“그럼 나도 그냥 때릴래.”
“으아아아! 합니다! 할게요!”
허둥거리는 파브로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왜 고작 1억만 부르신 겁니까?”
황궁에서부터 파브로가 품어 온 의문.
그건 로이스가 ‘고작 1억 골드’만 불렀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1억 골드가 고작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로이스에게는 ‘고작’이 맞았다.
그간 들인 수고와 노력이면 못해도 10억을 불렀어야 했다.
그게 파브로가 알고 있는 로이스였다.
파브로의 질문에 로이스는 피식거렸다.
“난 또 뭐라고. 물론 내가 들인 수고에 비하면 1억 골드는 푼돈이나 다름없지. 암! 그렇고말고.”
“…네, 그러시겠죠. 그래서 어찌 1억 골드만 부르신 건데요?”
“파브로 내가 당장 10억 골드, 100억 골드를 불렀으면 저쪽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
“당연히 지랄했겠죠. 1억 골드에도 저렇게 게거품을 무는데……. 10억 골드나 100억 골드를 어떻게 주겠습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금액인데.”
“바로 그거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금액! 하지만 1억 골드는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금액이잖아?”
“어?”
10억 골드면 제국의 100년 치 예산.
100억 골드면 1,000년 치 예산이다.
정말 감조차 오지 않을 엄청난 금액.
하지만 1억 골드는 다르다.
한번에는 무리더라도 조금씩 갚는다면 수십 년 내에 충분히 상환이 가능한 금액이다.
아니, 어쩌면 제국의 금고를 턴다면 1억 골드쯤은 충분히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1억 골드가 아닐걸?”
“네?”
“후후. 있어 그런 게.”
또 자기만 알고 말 안 해 준다고 속으로 꿍시렁거린 파브로.
한참을 투덜거리던 그가 살짝 걱정을 담아 물었다.
“한데, 과연 황제가 그 돈을 주려고 할까요?”
“처음에는 안 주려고 하겠지.”
“그럼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뭘 어째? 우리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게 바짝 쪼이면 되는 거지. 제발 1억 골드를 줄 테니 도와달라고.”
“역시…….”
음흉하게 웃는 로이스를 보며 파브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