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짝퉁 (5)
로이스가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이 진행자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루시아 번트, 당대 최고의 디바이자 모든 이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예술인. 당시 번트가의 가주였던 캐리 번트는 사랑하는 연인이자 아내인 루시아 번트를 위해 세이렌의 눈물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여기를 봐 주시죠.”
진행자의 손이 그림 속 루시아의 목을 가리켰다.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는 루시아의 목에는 푸른 보석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작은 그림이 진행자의 뒤쪽 영상에 크게 투영됐다.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재 경매장에 나온 목걸이와 루시아 번트가 착용한 것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금 영상이 경매로 나온 목걸이를 비췄다.
“원래 저희 주최 측은 목걸이와 그림을 따로 경매에 내놓으려 했으나, 물건을 등록하신 판매자께서 이 그림과 목걸이를 같은 구매자에게 넘겨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같은 이유로 이처럼 특별한 경매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진행자는 세이렌의 목걸이와 그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편 로이스는 그런 이야기를 무시한 채 그림 속 캐리와 루시아만을 바라보았다.
‘캐리, 이 자식…….’
그의 입은 미소 짓고 있었다.
‘성공했구나…….’
캐리의 끈질긴 구애.
그 결과가 바로 저것이었다.
서로를 향해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연인의 모습.
비록 오래전의 그림일지라도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오랜 짝사랑의 결실을 2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조언해 준 당사자로서 어찌 기쁘지 않으랴.
‘뭐, 그건 그거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로이스의 시선이 경매장에 나온 세이렌의 눈물에 닿았다.
‘어쩌면… 저게 짝퉁일 수도 있겠는 걸?’
진행자의 설명에 의하면 저 목걸이가 세이렌의 눈물이라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마지막 소유주인 캐리 번트가 루시아 번트에게 선물했다는 사실.
둘째, 캐리 번트가 감정받은 증명서가 같이 있었다는 점.
로이스는 당시 캐리가 했던 이야기를 생생히 기억했다.
최고의 감정사에게 감정을 받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경매장에 나온 저 목걸이는 뭘까?
로이스의 뇌리로 한 가지 가설이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캐리 녀석이 비슷한 목걸이를 구해 와서 루시아에게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로 인해 저 목걸이가 세이렌의 눈물이라고 오해가 생긴 거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
이로써 경매장에 나온 목걸이가 가짜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도 일단은 손에 넣고 봐야겠네.’
비록 저 목걸이가 가짜일지라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한다.
설령 가짜임이 확실하다 해도 로이스는 이번 경매에 참여하고자 했다.
목걸이보다도 손에 넣고 싶은 물건.
바로 루시아와 캐리의 초상화 때문이었다.
‘이렇게라도 다시 보니 반갑네, 루시아, 캐리.’
로이스가 다시금 초상화를 응시하는 사이 경매가 시작됐다.
“시작가는 500골드입니다. 이후 50골드씩 올라갑니다.”
경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550, 600, 650, 700… 지금부터 호가를 100골드로 올리겠습니다.”
만만치 않은 금액임에도 돈 있는 이들이 끊임없이 가격을 높였다.
세이렌의 눈물이란 목걸이가 지닌 가치도 높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같이 나온 그림 역시 꽤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었다.
그런 물건이 한꺼번에 손에 들어오는 일이니 돈 있는 이들은 아낌없이 주머니를 연 것이다.
때문에 두 물건의 가격은 순식간에 1,500골드를 돌파했다.
“와…….”
고작 목걸이와 그림을 사고자 1,500골드나 쓴다는 사실에 타니아는 입을 벌렸다.
그렇게 막 가격이 1,700골드에 달하고 호가가 점차 사그라들 때쯤.
“245번 1,800 골드!”
로이스가 숫자판을 들어 올렸다.
타니아가 놀라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서, 선생님?”
지금까지 로이스와 함께하며 그가 얼마나 짠돌이인지 알고 있는 타니아였다.
그런 로이스가 1,800골드나 쓴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89번 1,900골드!”
“245번 2,000골드!”
“89번 2,100골드!”
“245번 2,200골드!”
“89번 2,300골드!”
“245번 2,400골드!”
89번과 로이스가 계속해서 숫자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막 로이스가 2,600골드를 불렀을 때.
“4천 골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경매장에 나직이 울렸다.
“파, 팔십구 번 고객님 4천 골드!”
난데없이 높아진 가격에 진행자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로이스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 전 들려온 목소리에서 ‘어디 더 불러 볼 테면 불러 봐’라는 도발이 읽혔다.
‘어쭈?’
이거 지금 나보고 해보자는 거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로이스가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이 누구던가.
아마 이 겨울 대륙에서 자신보다 돈 많은 개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 나도 돈지랄이라는 걸 한번 해 보자.’
쓸 땐 한번 써 보는 거지!
그리 결정한 로이스가 번호판을 들며 외쳤다.
“5천.”
“……?!”
여기저기서 술렁거림이 퍼져 나갔다.
자신을 향한 진행자의 경악 어린 시선에 로이스는 짜릿함을 느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참맛!’
이래서 부자들이 돈을 쓰는 거구나!
더군다나 한참이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89번에 쾌감은 몇 배로 늘어났다.
“5천! 5천 골드 나왔습니다. 그 이상 없으십니까?”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로이스가 89번이 있는 방향으로 썩은 미소를 날려 주었다.
피식-.
완벽한 승리의 미소.
89번에게 이 미소를 못 보여 준다는 게 로이스로서는 너무 아쉬웠다.
“5천, 5천, 5천! 축하드립니다. 세이렌의 눈물과 번트가의 초상화는 245번 고객님께 낙찰되었습니다!”
당일 최고 낙찰가가 정해지자 진행자가 기쁜 얼굴로 열렬히 손뼉을 쳤다.
“우, 우와…….”
타니아는 존경과 경외가 가득한 눈으로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이에 로이스가 짐짓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돈이란 이렇게 쓰는 거야. 아낄 때는 아끼더라도 쓸 때는 팍팍!”
“네!”
타니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로이스가 있는 방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선두에선 대머리 사내가 로이스를 보고 깊이 허리를 굽혔다.
“좋은 물건과 인연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로이스를 향해 연신 허리를 숙이는 경매장 관리인.
그사이, 흰 장갑을 낀 사람들이 물건들을 조심히 내려놓고 나가자 대머리 관리인이 조심히 물어 왔다.
“혹여 사시는 곳을 말씀해 주신다면 댁까지 안전하게 물건을 옮겨 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하하, 아주 약간의 수고료만 주신다면…….”
“됐어.”
그리 말한 로이스는 아공간에 물건들을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여러 개의 액자가 사라지고 빈 공간에서 큼지막한 자루가 뚝 떨어졌다.
로이스가 관리인을 향해 턱짓했다.
“확인해 봐.”
절그럭-.
무려 금화 5천 개가 들어간 자루였다.
갑자기 물건들이 사라지고 허공에서 돈 자루가 떨어지니 살짝 놀랐던 관리인.
그는 이내 표정을 정돈하고 주변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부하들이 낑낑거리며 돈 자루를 들고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왔다.
부하의 속삭임에 관리인이 웃으며 로이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확인 끝났습니다. 5천 골드 맞습니다.”
“빠르네.”
“하하, 신속! 정확! 고객님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요, 이 또한 저희 경매장의 우수한 장점 중 하나로…….”
무언가 말이 길어질 거 같아 보이자 로이스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말을 잘라 냈다.
“아아, 됐고. 하나만 물어보자.”
“예!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내가 산 물건들… 출처가 어디지?”
“…….”
로이스의 질문에 관리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희 경매장의 영업 방침상 물건 등록인에 관한 정보는 발설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로이스는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물건만 손에 넣었으면 그만.
출처가 어디인지 뭐가 중요할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입금 끝났으니 이제 가 봐도 되는 거지?”
“버,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아직 좋은 물건들이 더 경매에 나올 예정인데…….”
“필요 없어.”
경매 관리인으로서는 5천 골드를 물 쓰듯 쓰는 로이스를 붙잡고 싶었지만, 이미 볼일 다 본 로이스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 그럼 살펴 가십쇼! 다음에도 저의 데모니아 경매장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인은 경매장 입구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
그렇게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숙소로 돌아온 그날 저녁.
“로이! 우리 왔어!”
“요 앞에서 맛있는 거 엄청 많이 팔더라!”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저 이런 거 처음 봅니다!”
밤늦게까지 축제를 즐긴 쌍둥이와 켄드릭의 품에 온갖 먹거리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딱 봐도 과소비가 분명했기에 이를 본 로이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이것들이… 돈 아껴 써! 땅 파면 돈이 나오냐!”
그날 누구보다 많은 돈을 쓰고 온 로이스.
잠시 잠깐 자본주의의 참맛을 느꼈던 그는 다시 짠돌이 로이스로 되돌아와 있었다.
* * *
이틀 뒤.
남은 하루 동안 만선기원제를 즐긴 로이스 일행은 일정대로 가을 대륙행 여객선에 올랐다.
그렇게 가을 대륙으로 향하는 여객선이 루프트하겐항을 빠져나온 지 3시간여.
짭짤한 바다 내음과 내리쬐는 햇살.
꿀렁이는 갑판 위에서 로이스는 며칠 전 사 온 목걸이를 꺼내 놓고 관찰 중이었다.
‘흠… 이것도 별로 특별한 점은 없는데…….’
새로 입수한 세이렌의 눈물도 기존의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점은 안 보였다.
‘아무래도 내 가설이 맞는 거 같은데.’
구매한 세이렌의 눈물과 함께 딸려 온 250년 전의 감정서.
하도 오래되다 보니 감정서의 글자가 상당 부분 날아가 있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어쩌면 이 세이렌의 눈물이 짝퉁일 가능성이 더욱더 커졌다.
때문에 로이스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캐리 이 새끼 때문에 돈을 얼마나 쓴 거야?”
비록 새로 산 세이렌의 눈물도 제법 괜찮은 목걸이였지만, 그렇다고 5천 골드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만약 같이 딸려 온 루시아와 캐리의 초상화가 아니었다면 돈 날렸다고 한동안 쌍욕을 날리고 다녔으리라.
그 뒤로도 한참 목걸이를 살피던 로이스가 이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둘 중 하나라도 진품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그가 그리 중얼거리고 있을 때.
구에에엑-.
우웩-.
으에에엑-.
귓가에 울리는 더러운 삼중주.
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을 돌린 로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거 어째…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아니, 정확히는 과거와 좀 다르긴 했다.
그때는 파브로 혼자였지만, 지금은 셋이었다.
“욱… 우웨에에엑!”
“야, 피, 피대가리… 저, 저리 가서 토하라고… 네가 토하는 소리 때문에 나도… 웁… 구에에엑.”
“두, 둘 다 조용히… 우욱!”
처음 타 보는 배에 신나 날뛰던 불꽃 남매와 라비나가 저 상태가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잔잔한 항만과는 달리 거센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선박의 출렁거림은 거의 롤러코스터급.
처음 배를 타 보는 세 사람의 속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했다.
그 순간, 로이스의 옆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쉭- 하고 지나갔다.
“꺄하하하!”
“으하하하!”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쌍둥이.
그들은 과거의 추억을 되새긴다고 미친 사람처럼 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서 로이스가 믿을 존재는 핀뿐이었다.
“핀… 어째 배만 타면 이 지경인 거 같지 않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로이스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핀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로이스와 핀이 멀어지는 쌍둥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또다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우욱!”
“꾸에에엑!”
“커어어억!”
“우웨에에엑!”
파도 소리에 섞여든 더러운 사중주.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로이스의 머리가 우뚝- 멈췄다.
‘잠깐… 사중주? 왜 하나가 더 붙었냐?’
내 귀가 잘못됐나?
로이스의 시선이 더러운 사중주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뭐냐 저건?”
다행히도 로이스의 청력에는 이상이 없었다.
난간에 매달린 불꽃 남매와 라비나의 옆으로 어느새 한 명이 더 추가되어 있었으니.
“우욱! 우웨웩!”
누구보다 더 우렁차게 속을 게워 내던 그가 난간에 기대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를 본 로이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라……?”
난간을 타고 바닥에 널브러진 사내의 얼굴이 낯익었다.
그가 누군지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 특이한 캐릭터를 어찌 잊을까?
로이스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실눈이잖아?”
난데없이 구토 연주회에 참여한 그는 다름 아닌, 며칠 전 타니아와 부딪혔던 역대급 실눈 캐릭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