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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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황새 (2)
처음에 쌍둥이를 제지하려던 호위 무사들은 대공이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을 내렸다.
눈사태에 휘말려 뜬금없이 영웅왕릉을 헤집고 다녔고, 무너진 왕릉에서 도망쳐 온종일 눈 속을 파헤치며 걸었다,
거기에 불탄 집을 뒤지느라 로이스와 쌍둥이의 얼굴과 몸에는 숯검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습격받은 마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아이들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아이들만 살아남은 건가.”
숨은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연기 신공을 펼친 쌍둥이와 로이스의 잔머리가 합쳐지며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가여운 것들…….”
자신의 새하얀 옷이 지저분해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공 부인은 살짝 눈물지으며 쌍둥이를 끌어안았다.
거기서 쌍둥이의 연기가 폭발했다.
“흐항!”
“무, 무서웠어요!”
녀석들의 엄청난 연기력에 로이스는 하마터면 울음을 그칠 뻔했다.
그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 자식들… 평소에 어리바리한 거 전부 연기 아냐?’
경지에 이른 눈물연기를 보고 있자니 그런 의심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도 감정을 잡아야 했다.
훌쩍 훌쩍-.
검댕이 잔뜩 묻은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이 로이스를 비롯한 아이들을 더욱 처량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호위 무사 사이로 걸어 나온 대공이 우는 척을 하는 로이스의 앞에 허리를 숙였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더냐?”
훌쩍-.
로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만 살아남은 게냐?”
“…네.”
울먹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포인트였다.
“부모님은?”
“…….”
로이스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침울한 표정을 짓고만 있어도 상대방이 알아서 해석할 테니까.
덩달아 침울해진 대공의 표정이 그런 로이스의 생각을 입증해 주었다.
“…고생했구나.”
로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대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인에게 걸어갔다.
부인은 대공을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각하… 아니, 여보.”
간절한 염원을 담아 보내오는 시선에 대공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데려가고 싶소?”
“…예.”
부인의 슬픈 눈에 작은 희망이 보였다.
차마 그 뜻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로이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얼레? 자, 잠깐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저기요? 그냥 지나가셔도 되는데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대공이 부모님의 행방을 물었을 때, 로이스는 부모님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답해야만 했었다.
딱 보기에도 인정 많고 잘사는 사람이 어려운 이들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로이스의 첫 번째 실수였으며.
‘…과했나?’
쌍둥이의 연기력이 이토록 뛰어나리란 걸 예상 못 한 게 두 번째 실수였다.
당황한 사이 로이스의 양팔이 무사들에게 붙들렸다.
‘잠깐만! 이,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시죠?’
로이스가 허둥거릴 때는 이미 대공의 호위 무사들이 쌍둥이들을 곰 인형처럼 들어 마차에 태우는 중이었다.
‘아, 안 돼!’
얼마 지나지 않아 로이스도 쌍둥이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로이스와 쌍둥이를 태운 마차가 출발하고.
부스럭-.
무너진 판자 더미에서 핀의 작은 머리가 불쑥 치솟았다.
그의 입에서 황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이스 님?”
주인과 예상치 못한 생이별을 맞이한 핀.
녀석은 멀리멀리 사라져 가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 *
다각 다각-.
마차 안의 공기는 훈훈했다.
거기에 대공은 자신의 망토를 벗어 로이스와 쌍둥이에게 덮어주었다.
원래는 대공 부인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망토를 벗어주려 했었지만, 몸이 약한 그녀를 대신해 대공이 자신의 망토를 내놓은 것이다.
커다란 망토는 작은 아이 셋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망토에 포옥- 감싸인 로이스가 두 눈을 끔뻑였다.
‘구, 굳이 이렇게 친절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대공 부부의 친절도 부담스러웠거니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도 당황스러웠다.
‘이거 어쩌지……?’
로이스가 두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타개책을 고민했다.
그 모습을 아이가 눈치 보는 것으로 오해한 부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안심해도 된단다.”
“…….”
별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로이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대공과 부인은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몇 살이니?”
부인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로이스가 답했다.
입술에 살짝 침을 바르고.
“…10살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구나? 7살쯤으로 보였는데.”
“잘… 못 먹어서요.”
“이런…….”
거짓 50%, 진실 50%를 담은 로이스의 답변에 대공 부인은 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로이스의 변명 아닌 변명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증거였다.
“옆에 아이들은 누나랑 형이니?”
“아뇨, 동네 친구인데요.”
로이스가 정색했지만, 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어린 나이임에도 또박또박 말을 잘하는 로이스를 흐뭇하게 바라볼 뿐.
“후후. 똘똘하구나.”
“…….”
부인은 로이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로이스와 부인이 몇 마디를 주고받고 대공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툭-.
로이스는 자신의 양쪽 어깨에 묵직한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새근 새근-.
곧이어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
좌우 양쪽에 자리한 칸과 카니가 로이스의 어깨를 베개 삼아 잠이 든 것이다.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진행된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가 몰려든 것이리라.
이는 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꿈뻑꿈뻑-.
살며시 밀려드는 졸음에 로이스의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로이스는 화들짝 정신을 깨웠다.
‘정신 차려! 여기서 잠들면 어쩌자는 거야?!’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엉뚱한 곳에서 발이 묶이게 될지 몰랐다.
한시라도 빨리 타개책을 생각해서 벗어나야만 하는 상황.
그러나 몰려드는 잠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들은 이 상황에 잠이 오냐?!’
로이스는 태연하게 잠든 두 쌍둥이를 속으로 나무랐다.
그러나 정작 그도 졸리기는 마찬가지.
머리에 든 것은 성인의 사고였으나 몸은 아직도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거기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는 자장가나 마찬가지였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졸음에 대항하던 로이스.
그러나 잠의 유혹을 피하기에는 전날 쌓인 피로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툭-.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며 앞뒤로 왔다 갔다 하던 로이스의 머리가 마차 의자에 그대로 기대어졌다.
곧이어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새근새근-.
어느새 잠든 로이스와 그에게 기댄 쌍둥이.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덮고 있는 널찍한 망토까지.
“후후후.”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기에 부인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나타났다.
대공 역시 오랜만에 웃는 아내를 보며 덩달아 미소 지었다.
그렇게 대공 부부와 세 마리의 헤츨링을 실은 마차는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거대한 성으로 들어섰다.
* * *
머엉-.
반쯤 넋이 나간 로이스.
그의 앞으로 노란 오리 장난감이 둥둥 지나갔다.
이에 로이스의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을 놓아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복잡한 심사의 로이스와는 달리 쌍둥이는 너무도 신이 나 있었다.
“꺄악!”
“꺅꺅!”
아이 특유의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물장난을 치고 있는 칸과 카니.
난리를 치던 녀석들로 인해 물 위를 떠다니던 오리가 가라앉고.
촤악-.
튀어 오른 물 덩이가 로이스의 얼굴을 뒤엎었다.
“아…….”
“에……?”
로이스의 호통이 날아올 거라고 여기며 눈치를 보는 쌍둥이.
그러던 녀석들은 로이스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심스럽게 손을 꼼지락거리며 다시 물장난을 시작했다.
이에 로이스의 근심은 더욱더 짙어졌다.
‘이 자식들은 왜 이렇게 적응이 빨라? 이 상황이 물장난이나 칠 상황이냐?!’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활력을 얻은 쌍둥이는 넓은 욕조 안을 헤엄쳐 다녔다.
그러했다.
로이스와 쌍둥이는 지금 목욕 중이었다.
그것도 홀딱 벗고 한 욕조 안에서 말이다.
‘하아…….’
욕조 위로 볼록 솟아난 백발의 머리 하나와 은발의 머리 두 개.
그 주위로는 4명의 시녀가 달라붙어 로이스와 쌍둥이들을 씻겨줬다.
아이들을 씻기는 시녀들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어머 어쩜… 애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예쁠까?”
“애들은 애들인가… 이 피부 좀 봐. 맨들맨들하고 뽀얘!”
“그러게. 마님께서 몬스터한테 습격받은 마을에서 데려왔다고 하는데… 시골 애들답지 않네요?”
“아유, 너무 예뻐라. 얘얘, 누나라고 해볼래?”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만큼 입도 부지런히 놀리는 시녀들 덕분에 로이스의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도무지 맨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할 거 같은 로이스는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렸다.
‘핀은 어찌 됐으려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핀을 그대로 그곳에 두고 와버렸다.
핀의 능력이라면 문제는 없겠지만,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하긴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
로이스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시녀들이 세 아이는 말끔하게 씻겨 옷까지 갈아입히고 있었다.
“어머 어머, 귀공자 같네.”
“백발이랑 옷이 너무 잘 어울린다.”
“저 자줏빛 눈동자는 어떻고?”
옷을 갈아입히면서도 시녀들의 입은 여전히 쉬지 않았다.
‘입에 모터라도 달았나… 그만 좀 말해!’
애써 평온함을 가장한 로이스는 속으로 절규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옷을 다 입자 시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일렬로 세워놓고 감상에 들어갔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너무 예쁘다.”
“나도 이런 아이 낳고 싶다.”
제네로커와 쌍둥이 아빠가 들었다면 광분했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시녀들.
하지만 그녀들이 감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뽀얀 피부와 백발, 보석 같은 자줏빛 눈동자에 남색 계통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로이스.
은발에 청록색 눈동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붉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칸과 카니.
그들은 귀공자, 귀공녀의 느낌을 물씬 풍김과 동시에 극강의 귀여움을 자랑했다.
이에 시녀들은 금방이라도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만약 대공 부인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미 벌써 진즉에 달려들었으리라.
“끝났니?”
단아한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부인을 보고 시녀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방 안으로 들어온 대공 부인은 말끔하게 씻긴 아이들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마을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나타났을 때도 외모가 남달랐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씻기고 제대로 입혀놓으니 빛이 나는 듯싶었다.
“후후. 대공께서도 좋아하시겠구나.”
부인의 눈에 사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녀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배고프지 않니?”
“배고파요!”
칸이 눈을 빛내며 답하자 부인이 손짓했다.
“따라오렴.”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는 부인을 보며 쌍둥이가 쪼르르 그녀를 쫓았고, 한숨을 쉰 로이스는 할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도착한 만찬장.
일반적인 서민의 식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각종 요리가 가득했다.
“우와!”
“와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의 향연에 쌍둥이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많이 먹으렴.”
온화한 미소를 지은 부인이 손수 아이들을 챙겼다.
이에 시녀들이 안절부절못했지만, 부인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호화스러운 대접을 받은 로이스와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가 시작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로이스 일행이 휘황찬란한 성에 머문 지 무려 열흘이 되었다.
대공은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고, 오로지 대공 부인만이 매일같이 찾아와 로이스와 쌍둥이를 지켜보다 갔다.
평범한 아이라면 누리지 못할 호사(好事)였지만, 이를 전혀 호사라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었으니.
“슬슬 튀어야 하는데…….”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로 로이스가 아장아장- 방 안을 서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