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합동 수업 (2)
초월학관 커리큘럼의 꽃은 단연코 합동 수업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합동 수업이야말로 초월학관의 모든 것이다.
조종반과 기술반으로 분반이 되어 있지만, 거기서 배우는 지식은 전부 이 합동 수업을 위한 기초에 불과했다.
조종반 1명과 기술반 1명.
2인 1조로 묶인 구성원에게 지급되는 한 대의 초월기.
조종반의 학생은 지급된 초월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힌다.
기술반 학생은 자신의 짝을 위해 초월기를 개량 및 정비한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확실하게 실력을 쌓아 갈 수 있는 방식이다.
또한, 그만큼 학생들을 평가하기 쉬운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학관 수업의 대부분과 중간·기말 평가도 조별로 치러진다 …라고 합동 수업을 위해 가면서 시바가 열심히 떠들어 댔다.
덕분에 로이스는 합동 수업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대략적인 핵심을 설명했음에도 시바는 여전히 쉬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아마 오늘은 첫날이니까 조를 발표하고 조별 초월기를 지급할 겁니다.”
시바는 초월기를 본다는 사실에 흥분했는지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정작 이야기를 듣는 이는 다른 곳에 관심이 있었지만.
“조는 어떻게 짜냐?”
“듣기로는 무작위 선별이라고 합니다.”
“무작위? 그래도 돼? 보통은 성적순으로 묶지 않나?”
“예전에는 그랬다고 합니다. 각 반의 상위권 입학 성적을 가진 학생과 하위권 성적자를 같이 한 조로 구성했다고 하는데… 이런저런 잡음이 많아서 이런 방식으로 바꿨다네요.”
“잡음이라…….”
아마도 그 잡음은 대개 상위권 성적자에게서 나온 것이겠지.
‘하위권 성적자랑 묶이면 거의 상위권 성적자가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분명 평가는 개별 평가로 이뤄지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조별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굳이 조별로 학생들을 묶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상위권 성적자는 조별 평가를 위해 이 악물고 ‘하드 캐리’를 해야 하고, 하위권 성적자는 소위 말해 ‘버스’를 타게 되는 셈이다.
‘중위권 성적자끼리 묶인 조가 더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거고.’
분명 그런 상황이 벌어져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으니 학관 측에서도 무작위 선별을 하는 것이리라.
상위권 성적자와 하위권 성적자가 한 조가 되면 그냥 네 운이 안 좋은 걸 탓하라고 하면 되니 말이다.
상위권 성적자끼리 조원이 되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상황일 테고.
“운도 실력이라 이건가…….”
“하하, 아무래도 그런 거겠죠.”
시바가 로이스의 중얼거림에 동의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둘은 어느새 합동 수업 강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그건 강의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규모였다.
수천 평 부지에 자리한 거대한 단층 건물 세 채.
그중 한 건물 앞에 이미 기술반과 조종반의 하급반 학생들이 흑백으로 나뉘어 있었다.
로이스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쌍둥이와 불꽃 남매를 흘끗거리고 이내 백색 제복 무리로 조용히 섞여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차가운 인상의 중년 사내가 걸어와 학생들의 앞에 섰다.
“모두 주목.”
마나가 담긴 소리가 이목을 잡아끌었다.
‘저자는…….’
냉담한 인상, 볼을 가로지르는 짙은 흉터.
그리고 2티어 중급에 달한 실력.
시바가 알려 준 정보에 부합하는 이가 있었다.
‘마이스터 아구스.’
중년으로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이미 60대인 아구스.
그는 젊은 시절, 분쟁지역을 떠도는 용병이자 뛰어난 실력을 지닌 초월기 조종사였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 염원의 탑에 들어와 마이스터가 된 인물.
그러다 이번에 초월학관 조종반의 교수로 넘어온 이였다.
로이스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 좌중의 시선을 끈 아구스가 등을 돌렸다.
“따라와라.”
먼저 앞서는 그의 뒤로 200명의 학생이 따라 움직였다.
잠시 뒤, 거대한 건물 앞에 선 아구스가 엄청난 크기의 문을 손쉽게 좌우로 밀었다.
그와 함께 드러난 건물의 내부에 학생들이 넋을 잃었다.
“맙소사!”
“저게 다 초월기야?”
건물의 내부는 칸막이가 쳐져 총 10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구역마다 10m 크기의 초월기가 들어가 있었다.
이를 본 시바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전 세계를 뒤져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이 정도 초월기를 지급하는 곳은 염원의 탑뿐일 겁니다.”
10m급이라면 4급 초월기이다.
거기에 외장갑과 무장도 장비되어 있지 않은 표준형의 초월기.
그럼에도 단순히 교육 목적으로 이 많은 초월기가 준비됐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심지어 여기에 준비된 초월기는 오로지 하급반을 위한 것들이었다.
다시 말해 중급반과 상급반에도 각각 100대의 초월기가 지급됐다는 것.
초월기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초월학관으로 가라는 말이 공연히 나온 게 아님을 학생들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렇게 학생들이 초월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마이스터 아구스가 입을 열었다.
“다들 표정들이 가관이군.”
그제야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금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구스가 있었다.
“보기 좋은 표정이야. 나 역시 그랬지. 처음 초월학관에 들어와 이곳에서 초월기를 마주했을 때. 아마 그때의 내 표정도 지금의 너희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마이스터 아구스가 초월학관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3년을 보내며 나는 깨달았다. 초월기란… 문명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란 걸.”
그와 함께 아구스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다양했다.
희열, 기쁨, 흥분.
그리고… 사랑.
이를 보며 로이스가 혀를 내둘렀다.
‘뭐야, 저 변태는?’
시바가 알려 준 아구스의 별명.
그건 바로 ‘초월기 성애자’였다.
초월기를 너무도 사랑하여 일평생을 강철 속에 갇혀 지내는 남자.
그게 바로 아구스였다.
그가 조종반 학생들을 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졸업할 때까지 여기 있는 초월기들이 너희의 새로운 육신이다! 함부로 몸을 굴리는 놈이 있다면 초월기용 투창에 매달아 던져 버리겠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조종반의 쩌렁쩌렁한 답변과 동시에 아구스의 시선이 이번에는 기술반 쪽으로 향했다.
“초월기는 앞으로 너희의 환자이자 애인이다! 작은 치부까지도 섬세하게 살피고 돌봐라! 돌팔이 같은 실력으로 어쭙잖게 달려드는 순간 너희는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공부하고 또 공부해라!”
“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앞으로 3년을 함께할 조를 발표하겠다. 호명된 이는 각자의 초월기로 신속하게 이동해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에 흥분이 번져 나갔다.
바로 이 자리에서 3년간 동고동락할 이가 결정된다.
학생들이 신경을 안 쓴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1번기 조종반 제이슨, 기술반 세턴. 2번기 조종반 나윌, 기술반…….”
아구스는 빠르게 호명했고, 한 조가 된 이들은 각자의 번호가 새겨진 초월기로 이동했다.
그렇게 삽시간에 30번대가 되고.
처음으로 로이스가 아는 이름이 나왔다.
“30번기 조종반 카니, 기술반 뷘.”
처음으로 나온 수석과 차석, 상위권 성적자 간의 조합에 다른 학생들이 긴장했다.
뷘의 얼굴에는 극도의 기쁨이 만면한 반면 카니는 주둥이가 불룩 튀어나왔다.
그리고 33번이 되어 로이스가 불렸다.
“33번기 조종반 시에라, 기술반 로이스.”
내심 로이스와 짝이 되길 원하고 있던 타니아와 카니가 극도의 실망한 눈빛을 보냈다.
물론 로이스는 대수롭지 않게 33번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때 로이스와 한 조가 된 시에라란 여성이 번쩍 손을 들지 않았다면.
“이의 있습니다.”
난데없는 이의 신청에 아구스는 물론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의?”
아구스의 날카로운 눈빛에도 시에라는 거침없이 답했다.
“저의 조 편성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바꿔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니가 도도도- 달려왔다.
“저, 저! 저로 바꿔 주세요!”
그녀의 반응에 뷘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한편 아직 조 편성이 발표되지 않은 타니아마저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저로 바꿔 주세요!”
그리고 은근슬쩍 올라오는 칸의 손.
“…그럼 저도 입후보해 봅니다.”
“넌 빠져!”
“칸 오빠는 빠져요!”
두 여인의 공세에 칸이 찔끔한 얼굴로 손을 내렸다.
그때 아구스가 손을 들어 소란을 잠재우고 시에라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너의 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말인가? 저 아이가 기술반 수석인 거는 알고 그리 말하는 거냐?”
“예,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
“왜 말이 없지?”
살짝 당황한 듯 머뭇거리던 시에라가 로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난봉꾼과는 같은 조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긍정의 수군거림이 퍼져 나갔다.
물론 그 대다수가 남자들이었지만.
한편 아구스는 피식거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군. 설령 합당한 이유라고 해도 바꿔 줄까 말까인데 고작 그따위 이유로는 절대 조원을 바꿔 줄 수 없다. 이의 신청은 받지 않겠다. 배정된 자리로 가라.”
그러고는 다시금 호명을 이어 나가는 아구스.
살짝 부풀었던 희망이 꺼지자 카니와 타니아의 얼굴이 다시금 시무룩해졌다.
한편, 33번기 앞으로 온 로이스는 시에라를 바라보았다.
탈색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옅은 금발.
그리고 강단이 있어 보이는 짙은 녹색의 눈.
카니나 타니아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꽤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로이스는 33번기 앞에 도착해 한 번도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그녀를 불렀다.
“야.”
시에라가 살짝 로이스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로이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언제 만난 적 있냐?”
“아니, 없다.”
“그치?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어지간해서는 잘 안 까먹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 같은 애를 만난 적이 없단 말이지.”
“…….”
“그런데 언제 봤다고 나보고 난봉꾼이라는 개소리를 하실까?”
로이스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도 시에라는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매우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
“미안하게 됐다. 딱히 그거 말고는 다른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시에라는 다시금 휙- 하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로이스는 이내 팔짱을 끼고 시에라를 노려보았다.
‘대체 이건 뭐 하는 년이냐?’
난데없이 자신보고 난봉꾼이라고 하며 조를 바꿔 달라고 하지를 않나.
거기에 쌀쌀맞게 대하는 태도까지.
로이스로서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리는 없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라의 저 묘한 태도가 로이스의 심기를 건드렸다.
‘미안하다고 한 거는 분명 진심이었는데 말이지.’
단순히 자신과 선을 긋기 위해, 대화를 끊어 내기 위해 형식적으로 한 사과가 아니었다.
그녀의 사과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라…….’
그리고 시에라가 입에 담은 ‘변명’이란 단어.
그 사실을 조용히 곱씹던 로이스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말하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조가 되면 안 되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에라와 자신의 연결점이 없다는 거였다.
‘대체 날 언제 봤다고? 그전에는 말조차 섞어 보지 않았고 얼굴을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절대로 자신 쪽을 바라보지 않는 시에라의 모습에 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드래곤의 촉이 강하게 알리고 있었다.
‘이 녀석… 뭔가 있다!’
* * *
합동 수업의 조 편성은 금방 끝이 났다.
30번기 뷘과 한 조가 된 카니.
33번기 로이스와 시에라.
56번기 타니아와 리암.
63번기 칸과 올리비아.
89번기 켄드릭과 에블린.
98번기 시바와 올리버.
시바를 제외하고 로이스 일행은 신기하게도 전부 남녀 한 조로 구성되었다.
합동 수업 첫날은 가볍게 조 구성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남은 시간은 자유 시간.
같은 조원이 된 이들끼리 친해지고 배정받은 초월기를 살피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로이스와 시에라는 수업이 끝나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밤.
“시에라 양요?”
로이스의 질문에 침대에 누워 있던 시바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어, 혹시 걔에 대해 뭐 좀 알고 있냐?”
“음… 글쎄요. 딱히 아는 거는 없습니다. 입학 성적이 조종반 전체 7등이라는 거?”
“7등?”
“아, 수석이신 분들을 빼면 사실상 4등이네요.”
쌍둥이와 불꽃 남매가 입학시험 중 철판을 아작 내며 공동 수석이 되어 버렸다.
초월학관이 생긴 이래 4명이 공동 수석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나 뭐라나.
“뭐, 녀석들을 빼고 4등이면… 괜찮은 실력이긴 하지. 그거 말고는?”
“글쎄요… 시에라 양은 조종반 내에서도 뭔가 조용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딱히 눈에 띄지도 않고, 착실하게 수업을 듣는다고 하는데.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네요.”
“흠, 그래? 아, 맞다! 야, 혹시 학관 내에 내 소문 어떻냐?”
“……!”
로이스의 기습 질문에 시바가 흠칫 떨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뭔가 있긴 있다는 듯한 반응에 로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말해 봐. 대체 뭐라고 소문이 났기에 걔가 나보고 난봉꾼이니 뭐라니 하는지.”
어째서 로이스의 웃음이 웃음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시바였다.
“그… 안 때리실 겁니까?”
“내가 널 왜 때려?”
“진짜 안 때리시죠?”
“…맞고 말할래?”
“어… 그… 딱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뭐라고? 난봉꾼이라고?”
“예… 난봉꾼, 바람둥이 같은? 재수 없는 놈이라든지… 로이스 님이 카니 님과 타니아의 약점을 잡고 있다느니…….”
“하아…….”
로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니와 타니아.
실력이면 실력, 미모면 미모.
거기에 활발한 성격으로 인해 그들은 학관 내 남학생들에게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아이돌들이 쉬는 시간마다 틈만 나면 달려와 로이스에게 달라붙는다는 거였다.
때문에 기술 1반의 강의실 앞은 쉬는 시간만 되면 진풍경이 펼쳐졌다.
로이스를 찾은 쌍둥이와 불꽃 남매.
그리고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잠잠해질 줄 알았더니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니, 최근 들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중급, 상급반 놈들도 와서 구경하는 거 같던데.’
그럴수록 타니아와 카니에 대한 명성은 높아 갔고, 남학생들에게 로이스는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에 따라 로이스에 대한 소문이 안 좋은 쪽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로이스의 소문을 부정하는 것은 의외로 여학생들이었다.
‘저 얼굴이 어딜 봐서 여자의 약점을 잡을 얼굴이야?!’
‘내 남자 친구가 저 얼굴이면… 그냥 내 약점을 가져다 바칠게요! 사랑해요, 로이스 님!’
‘하여간 기술반 비실이들이 문제야. 괜히 질투에 눈이 멀어서는…….’
‘난 솔직히 로이스보다는 칸 쪽이 더 내 취향인데…….’
‘켄드릭도 괜찮지 않아?’
그렇게 로이스 일행은 알게 모르게 학관의 유명 인사들이 되어 간 것이다.
시바의 설명을 들은 로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어디 가시게요?”
“기분이 좀 꿀꿀해서 잠시 밤 산책 좀 하려고.”
“또요?!”
“조용히 해라. 들키면 범인은 너다.”
“로, 로이스 님!”
시바의 만류에도 로이스는 곧장 창문을 열고 몸을 내던졌다.
“…….”
열린 창문을 보며 시바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 며칠간 늘 이랬다.
늦은 밤만 되면 항상 산책한다고 기숙사를 빠져나가는 로이스.
다만 문제는…….
“…이러다 들키면 어쩌시려고요.”
항상 그가 기숙사의 통금 시간에 산책하러 나간다는 거였다.
“하아…….”
살짝 한숨을 내쉰 시바는 로이스의 이불 밑으로 자신의 옷을 채워 넣었다.
로이스가 자는 듯한 모양을 만들어 놓은 그는 재빨리 소등하고 침대에 누웠다.
“부디… 오늘 밤도 무사히 넘기길…….”
시바는 기숙사 사감의 불시 점검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 *
한편, 기숙사를 빠져나온 로이스.
높은 상공으로 올라간 그는 통신석을 꺼내 연결했다.
“나야.”
짧은 부름에 통신석 너머에서 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이스 님!]“어땠어?”
[오늘도 별다를 게 없었어요. 강의를 마치고 곧장 연구실에 박혀서 잘 안 나오더라고요. 식사 시간이나 도서관에 갈 때 빼고는 거의 외출을 안 해요.]“흠…….”
핀의 보고에 로이스는 턱을 쓸었다.
‘대체 뭘 하는 거지?’
초월학관에서 윌리엄은 상급반 수업을 맡고 있었다.
윌리엄과의 접점이 없었기에 그의 동향은 전적으로 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 윌리엄을 따라붙은 핀의 보고는 동일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할 듯 보였던 윌리엄이었지만, 정작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은 것.
‘이상할 정도로 잠잠하단 말이지…….’
턱을 쓸던 로이스가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접근하는 수상한 존재는 없고?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동물 같은 존재.”
[제가 보기에 아직은 없었어요. 여기 학관에 서식 중인 쥐 몇 마리를 꼬드겨서 같이 살피고 있는데… 얘들도 딱히 발견한 거는 없나 봐요.]“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유심히 잘 지켜봐.”
[네!]로이스의 고민이 깊어졌다.
‘다른 방법을 노려 볼까?’
윌리엄이 노리는 무언가.
굳이 그것을 먼저 찾아내는 것 말고도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바로 윌리엄이 찾으면 빼앗는 거였다.
그럼 굳이 이렇게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먼저 찾는 게 가장 판을 짜기 좋아.’
물건을 단순히 찾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윌리엄보다 ‘그 물건’을 먼저 찾을 필요성이 있었다.
“윌리엄이 오늘 뭘 했는지 조금 자세히 얘기해 봐.”
[넵! 그러니까요……. 아침 5시에 기상해서…….]로이스의 요구에 핀은 윌리엄의 하루를 상세하게 읊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로이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만… 윌리엄이 도서관에 갔다고 했지.”
[네! 빌렸던 책을 반납하러 갔어요.]“흠…….”
딱히 이상할 거는 없는 일이었다.
초월학관의 도서관은 수많은 장서를 보관하고 있고, 마이스터라고 해도 책을 빌릴 수는 있으니 말이다.
다만 걸리는 점은 지난 며칠간 윌리엄이 계속해서 도서관에 들렀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것도 조교를 시킨 게 아니고 손수 책을 빌리기 위해.
“윌리엄이 책을 빌려 간 곳, 왼쪽이었어, 오른쪽이었어?”
[오른쪽요!]“오른쪽? 지금까지 계속?”
[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오른쪽 건물만 들락거렸어요!]초월 학관의 도서관은 기술 서적을 보관한 곳과 일반 서적을 보관한 곳으로 나뉘었다.
그중에서 오른쪽 건물은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과 일반 서적 보관소가 있는 곳.
‘마이스터씩이나 되는 양반이… 직접 일반 서적 보관서에 갔다고? 그것도 주기적으로?’
강한 촉이 왔다.
그곳에 실마리가 있다고.
이를 깨닫기 무섭게 로이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일반 서적 도서관의 지붕.
로이스의 다리가 늪에 잠기듯 스르르- 지붕 밑으로 사라졌다.
탁-.
늦은 시각.
암흑에 잠긴 도서관을 로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평소 사서가 앉아 있는 곳.
‘아무리 마이스터라고 해도 대여 일지는 작성했겠지.’
어둠을 꿰뚫고, 로이스는 사서의 책상에 떡하니 놓인 대여 일지를 살폈다.
사락- 사락-.
고작 몇 장을 넘겼을 뿐이건만, 윌리엄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빌려 간 책의 제목 역시 말이다.
로이스의 시선이 책의 제목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인종의 생활 습성]‘대체 이걸 왜……?’
로이스는 윌리엄의 다른 대여 목록을 살펴보았다.
사락- 사락-.
빠르게 넘어가는 대여 일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건?!’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발한 순간.
“거기 누구냐!”
밝은 빛이 도서관을 비추었다.
하지만 빛이 사서의 책상에 도달했을 때, 거기에 로이스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곧 도서관의 경비가 달려왔다.
“어……?”
하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로이스가 사라지면서 남긴 바람에 팔랑이는 대여 일지뿐.
사라락-.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넘어가는 대여 일지.
“헉?!”
이를 본 경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