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시험 (3)
기다란 복도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꽁지머리의 사내.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윌리엄은 학생들의 인사를 본체만체하며 제 갈 길을 가기 바빴다.
무섭게 굳어 있는 그의 표정을 본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뭐 잘못했나?”
“그, 그러게? 왜 저렇게 화나셨지?”
학생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런 학생들의 생각과는 달리 윌리엄은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극도로 흥분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뿐.
하지만 아무리 표정을 감추려 해도 격하게 날뛰는 심장과 그로 인해 떨려 오는 손은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복도를 가로지른 윌리엄.
그의 발걸음이 서서히 늦춰졌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부스럭-.
그것은 한 장의 누런 종이였다.
너무 오래되어 삭아 없어질 것만 같이 보이는 종이.
그 위에는 수십 개의 선이 난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윌리엄의 두 눈에 강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가 이 지도를 손에 넣게 된 경위의 시초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연구 자료를 찾기 위해 교수 전용 도서관에 들어간 윌리엄.
원하는 자료의 책을 꺼내던 도중 그 옆에 있던 책이 같이 떨어지고 말았다.
툭-.
‘응?’
허리를 굽혀 책을 주워 든 윌리엄의 눈에 의아함이 나타났다.
두꺼운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서적.
제목도, 저자도,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책은 꽤 오래전의 것으로 보였다.
‘인공관절에 관한 자료군.’
인공관절은 현재도 끊임없이 연구되는 분야였다.
서적의 연대가 오래되어 책에 담긴 자료 자체는 대단하다 할 게 없었다.
당장 이 주변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어 비교해도 이보다 더 발전된 연구 자료가 가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윌리엄은 오래된 서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확히 말을 하자면, 책 곳곳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흔적에서 말이다.
‘이건… 대단하군.’
책 곳곳에는 누군가 주석의 형태로 남겨 둔 메모가 있었다.
그 메모는 하나같이 인공관절에 관한 깊은 이해도가 없으면 남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책의 연도는 최소 수십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주석의 내용은 현대의 것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깊이가 느껴졌다.
‘대체 누구지?’
교수 전용 자료실에 남아 있는 서적인 걸로 보아 초월학관을 거쳐 간 교수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책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기에 윌리엄은 낡은 책을 챙겨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집무실로 와 한동안 낡은 서적을 살펴보았지만, 전 주인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의 주인… 예사의 인물은 아니군.’
책을 살피면 살필수록, 주석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석을 남긴 책 주인의 연구 이해도에 감탄하게 됐다.
‘최소… 당시 마이스터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놀람도 잠시.
책의 주인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흥미는 빠르게 식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낡은 서적은 그의 집무실, 다른 연구물들의 틈에 섞여 방치되어야 했다.
그러다가 오늘, 자료를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려던 윌리엄은 그 낡은 서적도 같이 챙겨 들었다.
그렇게 서적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 넣고 돌아서던 그 순간.
툭-.
잘 꽂아 넣은 줄 알았던 책이 갑자기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인해 안 그래도 낡았던 책의 겉표지와 속표지가 분리되고 말았다.
‘이런…….’
살짝 인상을 쓰며 분리된 책을 주워 들던 윌리엄.
책 주변에 떨어진 한 장의 종이를 발견하는 순간 그의 동공이 커졌다.
‘응?’
선이 난잡하게 얽혀 있는 그림.
하지만 독특한 그림보다도 윌리엄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림 밑에 적혀 있는 한 줄기 글귀였다.
[꼭 외워라, 개대가리 – 더글라스]더글라스라는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더글라스?!’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만약 이 글귀를 남긴 이가 더글라스인 게 사실이라면 그가 ‘개대가리’라고 부를 이는 한 명뿐이었다.
‘그랜드 마이스터… 빅터!’
늑대 인간이었다고 전해지는 위대한 마이스터의 1인.
또한, 자신이 찾고 있는 유산의 주인.
‘진정하자…….’
미칠 듯이 날뛰는 심장과 달리 윌리엄의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대체… 이게 뭐지?’
그는 손안에 든 정체불명의 그림이 무얼 의미하는지부터 고민에 들어갔다.
이후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그림만을 파고든 윌리엄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이건… 지도다! 이 선은 비밀 통로를 나타내는 거였어!’
선의 전체적인 윤곽을 살폈을 때, 초월학관을 나타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초월학관 어디에도 이런 복잡한 통로는 없었다.
‘지하다… 초월학관의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는 거야!’
그리고 지도 위에 표시된 몇몇 기호와 숫자,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까지.
이것이 어딘가의 위치를 알려 주는 지도임을 알아챈 순간 며칠간 쌓였던 피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게 바로 10여 분 전.
저벅- 저벅-.
다시금 빠르게 발을 놀린 윌리엄이 향한 곳은 종탑이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자동으로 타종하는 무인 종탑.
학생들에게 수업과 쉬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의 진원지.
1년에 한두 번, 정비하러 오는 이들 빼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였다.
그리고 때마침 들려오는 타종 소리.
댕-.
윌리엄은 고개를 들어 높은 종탑을 올려다보았다.
‘이 지도가 진짜라면 이 종탑 어딘가에 입구가 있을 거다.’
지도에 표시된 지하 통로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두 4개.
남자 공용 목욕탕.
여자 공용 목욕탕.
연구동 지하 화장실.
그리고 중앙 종탑.
연구동 지하 화장실은 지켜보는 눈이 많아 위험했고, 남·여 공용 목욕탕은 다른 의미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윌리엄이 선택한 곳은 바로 이 종탑이었다.
‘제발…….’
윌리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지도가 진짜이길 빌며 종탑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낡은 경첩이 비명을 내질렀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윌리엄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 문양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지도에 그려진 이 별 문양이 입구와 관련된 무언가일 터.
먼지가 가득한 종탑을 꽤 오랫동안 헤집고 다닌 끝에 1층 계단의 뒤편 공간에서 별 모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정하고 찾는 게 아니라면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운 위치.
윌리엄의 손가락이 별이 그려진 벽돌을 눌렀다.
그러자.
달칵-.
벽돌이 안으로 움푹 들어갔고.
드르륵-.
돌로 만든 바닥이 좌우로 갈라지며 지하로 내려가는 검은 공간이 드러났다.
뿌옇게 흩날리는 케케묵은 먼지의 틈 속에서 윌리엄의 눈빛이 번뜩였다.
극도의 희열감이 담긴 안광이었다.
‘진짜… 진짜였어!’
우연히 발견한 낡은 지도.
처음에는 약간의 미심쩍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완전히 날아갔다.
초월학관의 역사와 함께한 종탑에 그 누가 이런 비밀 기관을 만들었겠는가.
이 정도 기관이라면 애초에 종탑을 설계할 때부터 만들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여기다… 여기에 내가 찾는 것이 있다!’
그리 확신한 윌리엄은 어두운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드르릉-.
윌리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무섭게 닫히는 비밀 통로.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종탑이 다시금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스르륵-.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로이스가 나타났다.
그는 윌리엄이 머물렀던 자리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재킷 안 주머니에서 핀의 작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괜찮겠죠?”
두서없는 물음이었지만, 로이스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괜찮아야지. 이렇게까지 떠먹여 줬는데 못 먹으면 머리는 그냥 장식품인 거고.”
“하긴…….”
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위해 얼마나 바삐 움직였던가.
로이스는 몸소 발품 팔아 가며 지하 미로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아서 사전 답사까지 했고.
미로에서 길 잃지 말라고 친절히 지도까지 만들어 줬다.
핀은 윌리엄이 지도가 든 낡은 서적을 발견하게 만들기 위해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쳐 그가 찾으려는 책 옆에 꽂아 두었다.
그러고도 숨겨 둔 지도를 못 찾으니 일부러 책을 떨어뜨려 가면서 지도를 보여줬다.
윌리엄이 행운이라고 치부한 모든 것이 사실상 철저하게 계획된 것들이었다.
‘우우, 힘들었지…….’
핀이 그간의 고생에 콧김을 푹- 뿜어냈다.
너무 과하면 이상함을 알아차릴 거 같고, 적당히 단서를 주자니 멍청한 윌리엄이 못 알아차리고.
중도를 유지하며 일을 꾸미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 핀의 노고를 알기에 로이스가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줬다.
“네가 고생 많았다. 조금만 더 고생해 줘.”
“네! 맡겨 주세요!”
주인으로 모시는 드래곤의 칭찬만큼 요정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은 없었다.
핀이 씩씩하게 웃었다.
이에 로이스도 마주해 미소를 지어 줬다.
“힘내라, 멍청한 윌리엄!”
“힘내라!”
짧게 윌리엄을 응원해 준 둘의 신형이 다시금 사라졌다.
그렇게 로이스와 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윌리엄.
그는 순탄하게 지하 미로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지하 미로는 자칫 잘못하면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복잡했다.
하지만 윌리엄에게는 지도가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백합, 망치, 날개, 늑대의 문장.
거기다 각 문장의 위치로 가는 길이 지도에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자신의 지도가 진짜라고 철석같이 믿은 윌리엄은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믿음에 보답하듯 그의 앞에 늑대의 문장이 그려진 철문이 나타났다.
철문의 존재를 확인한 윌리엄은 희열했다.
“드디어!”
그토록 찾고 싶었던 빅터의 유산.
그가 살아생전 연구한 모든 기술!
그게 바로 저 철문 뒤에 있으리라.
한껏 기대를 품고 철문 앞에 선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철문에는 빼곡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기존에 적혀 있던 글귀는 온데간데없고 새롭게 적힌 글귀.
그건 하나의 문제였다.
기존의 문구는 그랜드 마이스터 넷만 알고 있기에 윌리엄이 풀 수 있게 새로운 문제로 로이스가 바꿔 놓은 것이다.
글귀를 대충 슥- 훑은 윌리엄은 철문의 하단을 손으로 매만졌다.
“마나 감응 장치.”
그는 곧바로 마나 감응 장치의 용도와 철문의 글귀가 무얼 의미하는지 눈치챘다.
“문제를 풀고 여기에 답을 적으라는 거군. 쉽게 문을 열 수는 없다는 건가.”
유산을 보관하는 금고와 같은 개념이니 이 정도 보안 장치가 있는 거는 당연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명색이 그랜드 마이스터의 유산인데!”
굳게 닫힌 철문을 보면서도 윌리엄은 매우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누구던가.
염원의 탑이 자랑하는 마이스터의 1인이었다.
아무리 그랜드 마이스터가 준비한 문제라고 해도 자신의 실력이면 철문의 문제쯤은 충분히 풀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는 철문의 문제를 정독했다.
가장 먼저 그의 시야에 잡힌 것은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형태의 술식이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적힌 글귀.
[위 술식은 1차원 공간에서 1의 기운을 가진 속성력이 정신파 변환 물질에 전달되었을 때 총량을 구하는 술식이다. 만약 차원이 4차원까지 확장된다면, 팽창되는 속성력의 총량과 이를 구하기 위한 술식을 해당 술식으로 유도하여라.]자신만만하게 문제를 바라보던 윌리엄.
그는 계속해서 문제를 읽었다.
한 번, 두 번.
그 횟수가 열 번을 넘어가고.
10분, 20분, 30분.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그로부터 약 두 시간이 흘러,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 윌리엄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게 도대체…….”
너무 쉬우면 윌리엄이 이상함을 눈치챌 거 같고.
너무 어려워도 안 되니 적당한 난이도의 문제를 선택해 철문에 새겨 놓았던 로이스.
그래도 마이스터인데 이 정도는 풀겠지라는 생각으로 선택한 문제였건만…….
“…무슨 소리냐?”
아무래도 윌리엄을 과대평가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