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실전 평가 (3)
켄드릭과 타니아.
두 남매의 남매 같지 않은 엄청난 접전은 많은 이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칸과 카니의 실력도 분명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들의 시합은 너무 싱겁게 끝났기에 뭔가를 파악하기엔 충분치 않았다.
그저 ‘아, 쟤들이 엄청 세구나!’라는 정도만 다시 느꼈을 뿐.
하지만 켄드릭과 타니아의 시합은 달랐다.
강(强)과 강(强)의 맞대결.
거침없는 기세로 서로를 향해 살기를 내뿜는 두 초월기의 싸움은 실제 전투를 방불케 했다.
또한, 초월기의 속도와 힘, 그 모든 게 앞서 벌어졌던 모든 시합을 단숨에 잊어버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쟤들이… 우리랑 같은 하급반이라고?”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학생들은 혀를 내두르며 켄드릭과 타니아의 시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란 것은 조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런 애들이 학생이라고?”
“허…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될 즉시 전력감이지 않은가?!”
“대체 보유한 속성력이 얼마나 많기에 고작 4급 초월기로 저런 출력을 뽑아낼 수 있는 거지?”
비록 아직 초월기를 다루는 조종술이 미숙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체의 출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여느 베테랑 조종사 못지않았다.
장장 20분간의 치열한 접전 끝에 판정이 들어갔고, 미세하게나마 유효타가 많은 타니아가 4강 진출자가 되었다.
그렇게 1군에서는 시에라와 카니, 2군에서 칸과 타니아가 올라왔다.
이후 사람들은 기체 손상률이 적은 칸이, 1군에서는 카니가 결승에 진출하리라 예상했다.
이는 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 고생했어, 카니. 너라면 꼭 우승할 거라고 믿어!”
“…….”
그래도 일단은 같은 조이기에 작은 대꾸는 해 주던 카니.
하지만 뷘이 사사건건 로이스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녀는 뷘을 투명 인간 취급했다.
이렇게 하면 알아서 그가 나가떨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뷘을 과소평가한 거였다.
차갑게 대하면 대할수록 뷘은 더욱더 카니에게 관심을 뒀다.
‘저 눈빛… 참을 수 없어!’
종종 자신을 바라보는 카니의 냉랭한 시선.
그리고 마치 하찮은 존재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엄 어린 얼굴.
‘당신은… 당신은 나의 여왕님이야!’
카니의 차가운 청록빛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뷘은 전율을 느꼈다.
차갑고 도도하며,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외모와 최고의 능력까지.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 온 이상형 그 자체가 바로 카니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이스의 존재가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의 여왕님이 그 재수 없는 놈과 함께할 때마다 지고한 위엄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겨울 대륙의 서릿발 같은 시선이 봄날의 바람처럼 너무도 따사롭게 변하는 것이 뷘으로서는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그랬기에 꼭 보고 싶었다.
카니가, 자신의 여왕님이 로이스가 정비한 초월기를 무너뜨리고 우승하는 장면을.
‘꼭 이겨 줘!’
기이한 열망으로 번들거리는 뷘의 눈동자.
그는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경기장을 응시했다.
* * *
드디어 시작된 1군 4강전.
평소 카니가 사용하는 레이피어와 쇼트 소드는 초월기의 중병기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녀의 기체는 두 자루의 짤막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카니가 먼저 시합장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는 사이.
쿵- 쿵-.
33호기가 시합장 중앙에 섰다.
이를 지켜본 카니.
‘어? 뭐지?’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곧 카니의 눈에 이채가 스치며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렇게 두 대의 초월기가 마주하자 조교가 말했다.
-준결승전이니만큼 시합 시간은 기존과는 달리 30분으로 변경한다. 다만 다른 규칙은 변동 사항 없다. 질문 있나?
-아뇨.
-…….
카니가 짧게 답했고, 33호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각자의 자리로.
조교의 명령에 30호기와 33호기가 경기장의 끝에 섰다.
이를 본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카니가 이기겠지?”
“시에라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카니 상대는 아니지.”
이번 시합의 예측은 전반적으로 동일했다.
시에라도 잘하지만, 카니란 벽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고.
10대 0의 비율로 모두가 카니의 승리를 점쳤다.
그렇기에 대중의 관심사는 카니가 얼마나 빠르게, 몇 수 만에 시에라를 쓰러뜨리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시합 시작!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카니는 시합이 시작됨과 동시에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쿵- 쿵-.
무서운 속도로 몇 초 만에 시합장의 절반을 주파한 카니의 기체.
그에 반해, 33호기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신중한 모습일지도 몰랐지만, 대다수는 시에라가 이번 경기를 포기했다고 간주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지축을 쩌렁쩌렁 울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폭음의 진원지는 30호 기체의 오른쪽 발.
쩌저적-.
강하게 진각을 내디딘 카니의 발밑이 지진이라도 난 듯 균열이 가며 움푹 꺼졌고.
푸황-!
진각의 반발력을 이용해 카니의 기체가 포탄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저?!”
카니가 어떻게 기동을 한 것인지, 마이스터인 아구스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진 기체가 충돌한다면 부딪힌 초월기 쪽은 박살이 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하급반 실전 평가 최초로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구스가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으악!”
“꺄악!”
33번기 기체의 뒤쪽에 자리한 학생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오는 30번기 기체에 놀라 비명을 내지른 순간.
퉁-.
실로 너무도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날아왔던 카니의 기체가 반대편 방향으로 훨훨 날아갔다.
이를 본 아구스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자, 잡아 던졌어?!”
그랬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카니의 기체.
이를 살짝 옆으로 피한 33호기는 그대로 30호기의 팔목을 잡아챘고, 다시 한 바퀴 회전하며 공중으로 집어 던진 것이다.
그렇게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 카니의 기체.
보통의 초월기라면 그대로 내동댕이쳐졌을 상황이었지만, 카니는 공중에서 회전해 안전하게 착지를 했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수 톤짜리 강철 덩어리가 공중제비를 도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눈앞에서 벌어진 수준 높은 공방에 학생들은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금 대치 상태에 들어간 30호기와 33호기.
그때 돌연 카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갑작스러운 웃음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할 때.
카니의 기체가 33호기를 삿대질했다.
-역시 로이였잖아!
그리고 33호기에서 들려온 목소리.
-아닌데요. 시에라인데요.
-…….
-저 시에라 맞아요.
비음이 잔뜩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시합장에 깔리자 좌중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누가 들어도,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낸 남자의 목소리였다.
좌중의 반응이 냉랭하자 뾰로통한 투덜거림이 33호기에서 흘러나왔다.
-쳇!
-봐! 로이 맞잖아!
카니가 로이라고 부르는 존재.
학생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조종반의 괴물 4인방만큼 유명한 게 바로 그였으니까.
“설마… 저기 들어가 있는 게 그 로이스란 애야?”
“지금 그 자식이… 카니를 집어 던졌다고?!”
“그놈, 기술반이잖아?!”
“그런데 기술반 놈이 시합에 나와도 되는 거야?”
조금 전 로이스의 기체 조종술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조종반의 학생이 선보여도 놀라울 일이건만 그걸 기술반 학생이 보였다는 사실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런 주변의 반응 따위는 싹 무시한 로이스.
그가 카니를 보며 혀를 찼다.
-야, 아까 같은 거 다른 애들한테 하지 마라. 사람 하나 피 곤죽으로 만들고 싶지 않거든.
-에이, 나야 당연히 너인 줄 알고 한 거지.
처음 33호기가 시합장에 들어섰을 때.
카니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마주한 상대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존재.
도무지 자신과의 격차를 잴 수가 없어 더욱 두려운 이.
이 초월학관에서.
아니, 이 사이론에서 그녀가 알기로는 로이스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로이스와 마주한 상황이 카니로서는 너무도 기뻤다.
-로이, 나 이제부터 전력으로 한다? 해도 되지? 아니, 할 거야! 한다?
로이스의 장단에 맞춰 학관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이래저래 불만이 쌓여 가는 와중이었다.
시설이 좋다고는 하지만, 제한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학관의 규칙.
거기에 자꾸만 껄떡거리는 뷘까지.
차곡차곡 쌓여 온 스트레스를 풀 상대가 눈앞에 있으니 그녀의 몸이 안달이 나고 말았다.
우우웅-.
그리고 그런 주인의 의지에 따라 출력을 높여 가는 초월기.
이를 본 로이스가 피식거리며 소리쳤다.
-야, 살살해.
물론 그런 로이스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콰아앙-.
또다시 폭음과 같은 소리가 시합장에 울렸다.
동시에 15m를 순식간에 이동한 카니가 어느새 로이스의 뒤를 잡고 두 자루의 목검을 휘둘렀다.
십자의 형태로 치닫는 쌍검이 탑승구를 노렸다.
일반적인 조종사였다면 자신이 뭐에 당하는지도 몰랐으리라.
하지만.
탕-.
빙그르르 회전한 로이스가 그대로 대검을 휘둘러 쌍검을 쳐 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대검의 잔상이 마치 채찍이 휘둘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로이스가 막을 것을 이미 예상한 카니는 대검과 부딪힌 쌍검의 힘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이스의 차례였다.
후스승-.
섬뜩한 소리를 낸 대검이 마치 뱀처럼 휘어지며 카니를 쫓아 움직였다.
탕- 쾅- 크겅!
카니의 쌍검과 로이스의 대검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히며 쩌렁쩌렁한 울림을 퍼뜨렸다.
종횡무진 발 빠르게 움직이며 로이스를 노리는 카니.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모든 공격을 되레 광풍처럼 날려 버리는 로이스.
시합장의 중앙에서 벌어지는 수준 높은 공방(攻防)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장장 10분간 계속되는 둘의 싸움.
이를 본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저게… 초월기라고……?”
일전에 켄드릭과 타니아가 보여 준 공방 역시 초월학관 학생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경지였다.
하지만 불꽃 남매의 공방은 결과적으로 ‘초월기’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둔하고,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임.
이는 세상 모든 초월기가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자, 모든 조종사들이 극복하지 못한 벽이었다.
하지만 로이스와 카니의 싸움을 달랐다.
초월기의 한계를 벗어난 움직임.
그건 마치…….
“사람… 같잖아?”
그것도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수준 높은 무사 같았다.
유연하게 움직이며, 강하고 빠르다.
심지어 순간순간 행해지는 가속은 관객들이 커다란 초월기의 동체를 놓칠 정도였다.
어느 누가 저것들을 수 톤짜리 철갑 덩어리라고 생각할 것이며, 고작 4급에 불과한 초월기라고 믿겠는가.
좌중은 자신들이 이해 못 할, 상식 밖의 광경에 서서히 몰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상황을 통제해야 할 조교와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인가?’
‘저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조교들은 최소 수년간 초월기에 탑승해 온 베테랑 조종사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눈앞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저벅-.
조교들 사이에서 아구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는 굳은 얼굴로 난간에 바짝 붙었고, 멍하니 시합장을 응시했다.
그러던 그 순간.
쥬륵-.
아구스의 두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름답도다.”
아구스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 7살에 처음 초월기를 보았고.
이후 57년 동안 한결같이 초월기를 짝사랑을 해온, 자타 공인 ‘초월기 성애자’.
그는 오늘, 자신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이상향을 만나고 말았다.
초월기라는 무생물적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수십 년 동안 아구스가 품어 온 목표이자 평생의 숙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평생 숙원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츠캉- 캉!
초월기란 한계를 넘어선 예술에 가까운 움직임.
쾅!
아직 자신조차 도달하지 못한 숙원을 이제 막 학관에 들어온 어린 제자들이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 더 이상 저들은 자신의 제자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을 어찌 제자라 부르겠는가.
저들은 이미 조종술의 대가이자, 선구자이며 자신보다 앞서 나아간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아구스는 언젠가는 자신도 저들이 간 길을 따라 걷길 기원하며, 저들이 보여 주는 길을 놓칠세라 두 눈을 부릅뜨고 시합장을 응시했다.
그렇게 5분여가 흘러.
파츠츠측-.
카니의 기체에서 치솟는 전류를 보며 로이스가 망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쟤, 또 눈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