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실전 평가 (4)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카니와의 시합이 길어지자 로이스가 혀를 내둘렀다.
‘아, 이놈의 드래곤 보정…….’
카니와 칸, 쌍둥이는 자신이 초월기를 만드는 것을 수백 년 동안 지켜보았다.
하지만 초월기를 타본 것은 정작 이번이 처음.
다시 말해 겨우 경력이 4개월쯤이라는 소리였다.
한데, 보아라.
저게 어딜 봐서 겨우 4개월 탄 조종사의 기동술이란 말인가.
카니의 기동술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특히 지금 저것.
파츠측-.
카니의 초월기를 타고 흐르는 전류.
저건 위험했다.
‘벌써 저거까지 할 줄 알게 된 거야?’
아무리 동기화를 한다고 해도 조종사가 가지는 초월기에 대한 인식은 ‘도구’다.
그것은 조종사가 무의식적으로 가지는 정신적 보호 방벽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그 정신 보호가 무너지게 되면 두 가지의 경우로 나타나게 된다.
초월기에 잡아먹혀 백치가 되거나, 혹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거나.’
지금 카니가 선보이는 저것이 바로 정신적 록(Lock)을 해제하고 초월기를 완전히 자신의 신체로 인식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로이스는 이를 무협 용어인 ‘신검합일(身劍合一)’에서 따와 ‘신기합일(身機合一)’이라 불렀다.
-후후, 로이……. 후후후후후.
자신을 부르는 카니의 흥분 가득한 목소리에 로이스는 살짝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아, 젠장…….’
아무리 카니라고 해도 초월기 조종에 관해서는 내가 최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드래곤 보정이 터진 카니의 조종술을 쉽게 얕볼 수 없게 됐다.
‘설렁설렁 대충 보여주려 했건만…….’
아무래도 그것도 어렵게 된 듯싶었다.
대충 했다가는 볼썽사납게 바닥을 나뒹굴 판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누가 뭐래도 자신은 초월기의 창조자이자 최초의 초월기 조종사였다.
그런 자신이 꼴랑 경력 4개월짜리 조종사한테 져서야 되겠는가.
‘…어쩔 수 없네.’
그리 생각한 로이스 역시 신기합일을 펼쳤다.
동시에 로이스의 초월기에서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퍼져 나왔다.
이를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학생들과 조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게… 뭐야?”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때마침, 톰에게 이야기를 듣고 온 해럴드가 나타났다.
‘아직 안 끝났군!’
톰이 지금쯤이면 결승전을 치르고 있을 거라 해서 부랴부랴 달려온 해럴드.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 진정시키던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시금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헛! 저, 저건?!”
초월기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기술자로서 어찌 저 현상을 모르겠는가.
“딘 스트리밍 현상?!”
약 120년 전.
당시 최고의 초월기 조종사라 불리던 ‘딘 스트리밍’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현상.
저것으로 인해 딘 스트리밍은 전쟁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초월기 기동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딘 스트리밍 사후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그렇게 사장된 기술이었는데…….
‘두, 두 기체가 동시에?!’
하급반의 실전 평가에,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기체가 동시에 딘 스트리밍 현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입을 떡 벌린 해럴드는 좀 더 두 기체를 잘 살펴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아구스를 발견하고 물었다.
“이보게 아구스… 지금 저게 대체…….”
두서없는 질문을 들은 아구스는 홀린 듯 답했다.
“해럴드… 아름답지 않은가?”
“……?”
“세계 최고의 화가가 있다면 당장 데려와서 저 대결을 그리게 만들고 싶군…….”
“…….”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다시없을 최고의 명화가 될 것이네!”
아구스의 두 눈이 몽롱하게 풀린 것을 확인한 해럴드는 그에게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언가를 물어 봤자 정상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대신 그는 다시금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을 두른 듯 보이는 초월기와 전격에 휩싸인 초월기.
강한 전류가 흐르자 나무 재질에 불과했던 쌍검은 진즉 재로 화해 흩날렸다.
이는 로이스가 들고 있던 대검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영영 이어질 것만 같았던 둘의 대치 상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카니였다.
우르르- 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것일까?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기계적, 물리적 한계를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며 카니의 초월기가 사라졌다.
사라진 초월기가 나타난 곳은 로이스의 정면.
츠츠츠-.
30호기 초월기의 주먹이 33호기의 흉갑을 향해 내질러졌다.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고압의 전류에 둘러싸인 초월기의 주먹질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협이었다.
그 어떤 상대도 카니의 초월기에 직격당하는 순간 전격의 제물이 되리라.
하지만 그런 카니의 공격도 로이스가 두른 검은 기운을 침범하지 못했다.
쿵- 카득!
치즉-.
카니의 주먹질을 로이스의 손바닥이 가볍게 흘려 냈다.
동시에 카니의 전격이 로이스의 검은 기운 속으로 빨려들었다.
이를 본 카니가 버럭 외쳤다.
-로이! 그거 반칙이야!
-꼬우면 너도 전격 풀든가?
-우우!
초월기에 가려져 있음에도 카니가 양 볼을 부풀린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기에 로이스는 피식거렸다.
하지만 그저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카니의 공격이 연이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크측- 쾅!
카니의 기체가 빠른 속도로 주먹과 다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로이스는 이를 물 흐르듯 가볍게 받아넘겼다.
한순간에 수십 합의 공방이 오갔다.
쾅- 쾅-.
굉음이 연이어 들려오니 학생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눈앞의 시합에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앞으로 어쩌면, 이러한 수준의 시합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걸.
퐝- 콰득-.
공기가 터져 나오고, 전류가 치솟았다.
인세에 강림한 천신과 마신의 싸움이 이러할까?
밝은 전류를 두른 카니의 기체와 어둠을 두른 로이스의 기체는 마치 거신처럼 보였다.
한동안 이어지던 공방.
이미 시간은 정해진 30분을 훌쩍 넘었지만, 누구도 그들의 시합을 말리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끼어들 수가 없던 것이다.
대체 저 싸움에 어떤 이가 끼어들 수 있겠는가.
그렇게 물 흐르듯 이어지던 공방.
영원할 줄 알았던 둘의 싸움은 맹공을 가하던 카니의 기체가 비틀거리며 멎었다.
-어?
당황한 카니의 음성이 확성관을 타고 흘러나왔다.
-로, 로이. 이거 이상해! 이거 왜 이래?!
기체에 발생한 문제를 다른 누구도 아닌 싸우고 있는 상대에게 물어보는 카니의 순진무구함에 로이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멍청아, 그럼 그렇게 움직이는데 고작 4급 초월기가 어떻게 버티겠냐?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하지!
-로이 거는 멀쩡하잖아!
-당연하지. 내 조종술이 너보다 뛰어나니까. 훗!
-…왜 이렇게 얄밉지?
눈앞에 로이스의 히죽거리는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지자 카니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어떻게든 저 얼굴에 한 방 먹여 주고픈 마음에 카니가 다시금 속성력을 전개했다.
파츠츠츠-.
이전보다 더욱더 환하게 전류에 휩싸인 카니의 기체.
-야야, 적당히 해! 너 그러다가 초월기 홀랑 태워 먹는다?
-딱 한 대만 때리고 끝낼게!
-누가 맞아 준대?
-죽어라!
-때린다면서!
-맞아 죽어라!
-야!
옹골지게 주먹을 말아 쥔 카니의 기체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아, 진짜… 저 망할 놈의 승부욕.’
칸과 카니의 승부욕은 지난 세월 그들과 5만 번 넘게 대련한 로이스이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칸보다 카니가 승부욕이 좀 더 있는 편이었다.
종종… 아니, 매번 카니는 대련 중 이렇게 눈이 돌아가고는 했으니까.
이럴 때는 확실한 패배를 안겨 주어야 돌아갔던 눈깔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여간 적당히란 걸 몰라요!
그리 투덜거린 로이스가 카니를 향해 달려갔다.
쿵- 쿵-.
그리고 시합장의 정중앙에서 그들이 맞붙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선제공격을 하는 카니.
그간 로이스는 카니의 공격을 적당히 흘려보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텁-.
살짝 공격을 흘려보내는 듯싶었던 로이스의 33호기 왼손이 30호기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33호기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어깨 위로 올라가자.
철컥-.
30호기의 오른팔이 뽑혀 나왔다.
-…어?
카니가 당황한 사이 33호기가 다시금 움직였다.
그가 연이어 노린 것은 30호기의 왼팔.
철컥-.
눈 깜짝할 사이에 카니가 탄 기체의 양팔이 뽑혀 바닥에 떨어졌다.
-어라라? 이, 이게 뭐야?
당황한 카니의 음성.
자신이 뭐에 당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목소리였다.
그런 심정은 카니뿐만이 아니라 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다만 눈썰미가 있는 이들은 로이스가 30호기의 양팔을 단순히 뽑아낸 게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아는 만큼, 그들은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마, 맙소사!”
“전투 중에… 기체를 분해했다고?!”
기체 간의 전투에서 상대편 기체의 팔다리를 망가뜨리기는 쉬웠다.
그저 힘으로 부러뜨리거나, 뽑아내면 되니까.
하지만 로이스가 한 일은 단순히 그런 파괴의 행위가 아니라, 기체의 손상 없이 팔을 분해한 것이다.
그것도 촌각을 다투는 전투 상황에서 말이다.
아마도 이 시간 이후 관객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한다면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할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기체 이해도.
신기에 도달한 조종술.
그 두 조건을 모두 가진 로이스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대중이 놀란 사이, 로이스는 30호기의 다리까지 분해했다.
쿵-.
몸뚱어리만 남은 카니의 기체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동시에 30호기에 흐르던 전류가 사라졌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시합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또 졌어. 한 대도 못 때렸어…….
카니의 기체에서 뾰로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쁜 로이!
-응, 그래.
카니의 삐친 듯한 외침을 사뿐히 무시한 로이스.
그는 덩그러니 30호기의 몸통 옆에 팔과 다리를 가지런히 가져다 놓았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듯 예쁘게 분해된 부품들을 구경했다.
팔짱을 끼고 말이다.
-누가 했는지 엄청 깔끔하군. 후후.
-으…….
카니가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상상되자 로이스가 낄낄거렸다.
그러다가 조용해진 시합장에 정신을 차린 로이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수십 개의 폭탄이 터진 듯 엉망진창이 된 시합장.
자신과 카니가 만들어 낸 풍경이었다.
이에 33호기가 검지로 얼굴을 긁적였다.
마치 로이스가 제 얼굴을 긁적이듯 말이다.
-음… 과했나?
카니의 장단에 맞춰 주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실력을 내보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뭐,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어.’
빠른 단념이었다.
대신 그는 시합장의 한쪽에 멍하니 서 있는 조교의 3급 초월기를 향해 물었다.
-끝났는데요?
-아……!
로이스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교가 다급하게 외쳤다.
-스, 승자. 33호기!
조교의 외침이 적막에 휩싸인 시합장에 울려 퍼지고.
“와…….”
“우와…….”
누군가에게서 시작된 신음과도 같은 감탄이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
작았던 감탄이 거대한 함성이 되어 시합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마치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듯한 거대한 환호성.
마이스터 아구스는 펑펑 눈물을 쏟아 내며 열렬히 손뼉을 쳤다.
“좋구나! 좋아! 오늘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날이로다!”
한편,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에 로이스가 히죽 웃으며 팔을 번쩍 들었다.
-암요, 그럼요! 제가 좀 잘났습니다. 하하!
상당히 기고만장하고 거만한 웃음소리였지만, 누구도 이를 뭐라 할 수 없었다.
조금 전의 경천동지할 싸움을 목격했는데 어느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한편, 33호기의 초월기 대기실.
시에라는 시합장의 한가운데서 손을 흔들고 있는 33호기를 보며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4강전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뇌리로 조금 전 로이스가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잘 보고 배워. 초월기는 이렇게 다루는 거니까.]뇌리에 맴도는 로이스의 목소리에 시에라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고… 배우라고?”
대체 뭘?
어떻게?
“저런 걸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을까?”
적당히 수준이 맞아야 어느 정도 흉내라도 내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로이스가 보여 준 수준은 시에라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걸 보여 주면… 이제 나보고 어떡하라고.”
홀린 듯 서 있는 시에라의 뇌리로 천신과 마신, 두 거신이 보여 준 천외천의 격전이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로이스가 선보인 이 한 번의 시합이 앞으로 시에라라는 초월기 조종사가 쫓아갈 목표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환호성이 잦아들고 로이스가 초월기 대기실로 돌아오던 그때.
“이, 이건 무효야!”
어디선가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