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재회 (1)
시합장을 벗어난 로이스와 해럴드는 아무런 대화 없이 걸었다.
그들의 침묵은 목적지인 해럴드의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달칵-.
연구실에 들어선 둘.
해럴드는 잔뜩 어질러진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미안하군. 미처 치울 새가 없었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뿐이 아니라 로이스는 정말로 방이 지저분한 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대신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에 수북하게 쌓인 각종 연구 자료.
소파는 물론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마련한 테이블에는 연구 재료로 보이는 각종 금속이 즐비했다.
그리고 어질러진 다른 곳과는 달리 연구 서적이 꽂힌 책장만큼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주인의 성향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방 안의 모습에 로이스는 살짝 미소 지었다.
‘장인이네.’
무언가 강한 고집이 느껴지는 해럴드의 방은 그 옛날 덱스터의 연구실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로이스가 방 안을 둘러보는 사이 책상을 뒤적거린 해럴드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로이스에게 다가왔다.
해럴드가 말없이 내민 종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로이스가 제출한 시험지.
이를 알아차린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역시 이것 때문이었구나.’
마이스터인 해럴드가 몸소 찾아와 ‘부탁’까지 하며 자신을 찾을 이유라면 이것뿐이었다.
이미 그를 본 순간부터 예상하였지만, 로이스는 시험지를 받아 들며 시치미를 뗐다.
“이건 왜요? 제 답안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부르신 겁니까?”
“그 시험지… 자네가 쓴 거 맞는가?”
그리 물었지만, 이미 해럴드는 알고 있었다.
답안을 본 순간 가장 먼저 한 일이 당시 시험에 들어갔던 감독관을 불러서 확인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아, 그 녀석이라면 확실히 기억합니다. 시작하고 5분도 안 되어서 시험지를 내고 갔거든요.’
‘5분?! 지금 5분이라고 했느냐? 확실해?’
‘화, 확실합니다!’
확신에 찬 조교의 말에 어찌나 놀랐던지.
이미 검증을 거쳤지만, 해럴드는 로이스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싶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해럴드의 시선에 로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필체가 제 거네요.”
“허…….”
해럴드의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정말이었다니…….’
잠시 멍하니 있던 그의 두 눈에 서서히 열기가 차올랐다.
“시험의 마지막 문제… 어찌 푼 건가?”
“말씀하시는 게 이상하네요. 풀라고 내놓은 문제를 푼 게 이상한 건가요?”
“혹여 그 마지막 문제를 어디서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누구한테 들었거나?”
“아뇨.”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답을 하는 로이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너무도 쉽게 먹혀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문제는 해럴드가 조금은 즉흥적으로 낸 문제였다.
그 문제가 시험에 나올 것이라고 어느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심지어 그 출처는 자신도 모른다.
오로지 마이스터 윌리엄만이 알고 있을 뿐.
‘…윌리엄이 알려 주었을 가능성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해럴드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윌리엄이 눈앞의 소년에게 시험 문제를 알려주었다고 해도 답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윌리엄이 직접 찾아와 답을 구했을 정도니, 그 역시도 답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조차 쉽게 풀지 못한 난제를.
고작 5분이 채 되지도 않는 시간 만에 풀어 버린 소년.
잠시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해럴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시험지에 적힌 풀이식… 약식으로 적은 게 맞는가?”
“네.”
“혹시 정식으로 풀이 과정을 적어 낼 수 있겠는가?”
해럴드의 그 물음에 로이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해럴드가 열심히 구한 풀이식이 칠판에 적혀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저기 적혀 있는데. 저건 교수님이 쓰신 겁니까?”
“그렇네.”
“흠…….”
풀이식을 유심히 바로 보던 로이스가 칠판으로 다가가 분필을 집어 들었다.
“조금 쓸데없는 풀이 과정이 들어갔네요. 여기서는 이렇게…….”
탁- 탁-.
분필을 쥔 로이스의 손이 칠판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로이스가 무엇을 하는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다가왔던 해럴드가 점점 바뀌어 가는 풀이식을 보며 입을 벌렸다.
‘어찌…….’
로이스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자신이 적어 낸 풀이식의 군더더기가 말끔하게 덜어지고 있었다.
“됐네요.”
손에 묻은 분필을 탁탁 떨어내는 로이스를 보며 해럴드의 낯빛이 굳어졌다.
‘…완벽하다.’
자신이 풀어낸 술식보다 간단하면서도 완벽하고 이해도 높은 풀이 과정이 칠판에 떡하니 적혀 있었다.
해럴드는 칠판과 로이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뇌리로 조금 전 시합장에서의 일이 스치고 지나갔다.
‘초월기를 타고 있던 것도 이 녀석이었다.’
딘 스트리밍 현상을 일으킨 두 대의 초월기 중 한 대에서 로이스가 나올 때 너무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마지막 문제를 푼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일진대 경지에 다다른 초월기 조종술까지 보유한 존재.
해럴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자네… 정체가 뭔가?”
심각하게 굳은 해럴드의 표정을 본 로이스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가 슬쩍 웃으며 답했다.
“염원의 탑주.”
“…….”
로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난데없는 소리에 해럴드는 조금 전보다 더욱 무서운 눈으로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길게 이어지는 정적.
그러다가 돌연 해럴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하하하!”
목젖이 보일 정도로 대소를 터뜨린 해럴드가 유쾌한 얼굴로 로이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그래! 그만한 능력을 지녔으면 응당 그 정도의 포부는 있어야지!”
“……?”
“자네라면 충분히 미래의 탑주가 될 수 있을 거네!”
아무래도 오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정도랄까?
‘염원의 탑주’가 해럴드의 귀에는 ‘미래의 염원 탑주’로 들린 모양이었다.
로이스의 표정이 떨떠름해져 갔으나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해럴드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로이스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해럴드의 눈이 광채를 뿌렸다.
“암! 그렇고말고! 그런 꿈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일세! 그래서 자네, 이제 어찌할 셈인가?”
“뭐가요?”
“저 술식 말일세.”
“그게 왜요?”
“저걸 저대로 둘 셈인가?”
“그럼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로이스의 반응에 해럴드가 되레 역정을 냈다.
“아니, 그럼 이런 발견을 해놓고도 이대로 썩힐 셈인가?! 당장 논문을 써서 학계에 제출하게!”
그제야 로이스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굉장히 귀찮은 상황에 엮인 거 같다고.
로이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그걸 꼭 해야 하나요?”
“그걸 말이라고! 저 술식을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초월기 역사에 다시없을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단 말일세!”
“아, 예…….”
“논문을 쓰기만 한다면… 1급 도제의 직위까지는 무조건 받을 수 있을 거네! 그렇게 어느 정도 경력만 쌓이면 최연소 마이스터도 충분하지! 내 도와줄 터이니, 같이 논문을 써 봅세!”
그 이야기에 로이스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싫은데요.”
당장 마이스터 자리를 준다고 해도 됐다고 할 판에 고작 1급 도제?
애초에 로이스로서는 답이 윌리엄에게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1급 도제니 마이스터니 하는 것들은 별 관심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당황한 해럴드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어, 어째서?!”
“귀찮아서요.”
“자, 잘 생각해 보게. 최연소 마이스터란 말일세!”
“네, 잘 생각해 봐도 귀찮아요.”
“끄응…….
해럴드가 앓는 소리를 내는 사이 로이스가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럼 저는 애들이 기다려서. 교수님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리 말하고는 쏜살같이 연구실을 빠져나가는 로이스.
“이, 이보게!”
떠나가는 로이스의 등을 향해 손을 내뻗었지만, 정작 붙잡고 싶은 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연구실을 빠져나간 뒤였다.
해럴드는 멍하니 비어 버린 연구실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허허허.”
동시에 해럴드의 눈에 기이한 열망이 차올랐다.
“저런 인재를 놓칠 수는 없지!”
간혹 그런 존재가 태어나고는 한다.
세상을 뒤바꿀 놀라운 천재성을 타고나는 이들.
그런 천재가 한 번씩 나타날 때마다, 그들이 몸담았던 분야는 수백 년의 세월을 앞당기는 놀라운 진보를 선보인다.
그리고 해럴드의 눈에 비친 로이스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저 아이라면… 초월기를, 염원의 탑을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로이스란 존재를 반드시 염원의 탑의 품에 끌어안아야 했다.
“반드시!”
옹고집 장인의 눈에 강한 열망이 담기는 순간이었다.
* * *
본의 아니게 해럴드의 애간장을 살살 녹인 로이스.
일행과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그는 침대에 퍼질러졌다.
‘아, 피곤하다.’
물론 육체적으로 피곤한 것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피곤할 뿐.
그가 해럴드에게 다녀온 사이, 오늘의 시합이 초월학관 전체로 퍼진 탓에 로이스와 카니는 학관 최고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어딜 가든 따라붙은 시선이 영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침대와 한 몸이 되려던 로이스는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왜? 뭔데?”
평소 로이스의 타박을 받고 조용히 한쪽에 찌그러지는 시바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가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평소 로이스의 상태를 알고 있는 시바였다 보니, 그가 초월기를 타고 나왔을 때의 놀람은 누구보다 컸다.
거기다 그토록 놀라운 초월기 조종술이라니.
로이스가 카니를 꺾었을 때, 시바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렇다 보니 로이스를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자신을 향한 시바의 뜨거운 시선에 로이스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
“초월기 조종술은 언제 익히신 겁니까? 대체 어떻게 하면 로이스 님처럼 될 수 있는 겁니까?”
“그런 일이 가능할 거 같아?”
“아…….”
“아, 방법이 있긴 하다.”
“그, 그게 뭡니까?”
“다시 태어나면 돼. 물론 다시 태어난다고 나처럼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겠만.”
혹시 아는가.
시바가 자신처럼 드래곤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로이스의 이야기에 시바가 시무룩한 얼굴로 한쪽에 찌그러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똑똑-.
조용히 울리는 노크 소리에 로이스가 턱짓했다.
네놈이 나가 보라는 신호에 쪼르르 문으로 갔던 시바가 빠르게 되돌아왔다.
“로이스 님을 찾아온 손님인데요.”
“없다고 해.”
종일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렸기에 오늘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에 시바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 찾아오신 분이… 시에라 양입니다만?”
시에라라는 소리에 로이스가 슬쩍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카니나 다른 애들이 나 찾으면 볼일 있어서 나갔다고 해. 괜히 엉뚱한 소리 늘어놓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시바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로이스.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시에라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 해서.”
“해 봐.”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시에라가 주변을 살폈다.
로이스가 나오기 무섭게 달라붙는 시선.
그런 시선을 인지한 로이스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에이 씨…….”
이게 바로 유명인의 비애랄까?
못마땅하다는 표정의 로이스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여전히 뒤에 서 있는 시에라를 향해 외쳤다.
“뭐 해? 안 따라오고.”
“가, 간다…….”
황급히 로이스를 뒤쫓는 시에라.
그들이 옮긴 자리는 다름 아닌 해충 박멸 연구회실이었다.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고 앉은 로이스와 그 맞은편에 선 시에라.
연구회실에 들어온 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정확히는 로이스는 시큰둥해하고, 시에라가 어색해하는 기묘한 적막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시에라가 여전히 우물쭈물하니 로이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할 말 없냐? 그럼 난 이만 간다?”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시에라가 다급히 외쳤다.
“고, 고맙다!”
난데없는 감사 인사에 멈칫한 로이스.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시에라를 보며 피식거렸다.
“난 또 뭐라고. 고작 그 얘기 하려고 한 거냐?”
“아니, 할 말이 있긴 있지만… 고마움을 전하는 게 먼저일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싹수는 있네.”
로이스의 퉁명스러움에 시에라는 오히려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금 자신의 고마움을 전했다.
“정말… 고맙다.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됐어. 굳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좋자고 한 일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말해 주는 것도 고맙고.”
“감사 인사는 그쯤 해 두고… 그래서 할 말이 뭔데?”
그 물음에 시에라의 낯빛이 굳어졌다.
그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말을 너에게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니까. 하지만… 내가 숨기는 게 오히려 너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냐?”
“…혹시 기억나나? 우리가 처음 같은 조원으로 뽑히던 날, 내가 너와 같은 조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한 것 말이다.”
“기억나지.”
“네가 그랬지. 사과할 땐 하더라도 이유는 알려 주고 사과하라고.”
“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로이스의 시선에 시에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잠시 단호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넌… 우리가 한 조가 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