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장난질 (2)
이걸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초월학관의 학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허울뿐인 그랜드 마이스터의 명성?
아니면 일말의 신뢰조차 품지 못하게 만든 로이스에 대한 불신?
‘에이, 로이스 님이 탑주? 어찌 저런 분이 탑주가 될 수 있습니까?’라는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바의 눈을 보며 로이스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딱-.
기괴한 소리와 함께 시바의 이마에서 불똥이 튀었다.
“당장 그 불손하기 짝이 없는 눈깔 안 깔면 종탑에 거꾸로 매달아 버릴 줄 알아.”
“그, 그런 말씀은 왜 먼저 때리고 나서 하시는 겁니까!”
딱-.
“칵!”
항변하던 시바가 다시 이마를 부여잡고 널브러졌다.
그의 곁으로 쪼르르 다가간 켄드릭이 ‘내가 그 고통 잘 알지!’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둘의 작태를 지켜보던 로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자식… 어째 점점 뻔뻔해지는데?’
시바가 자신 때문에 저리 된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는 로이스였다.
살짝 훌쩍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시바.
그가 여전히 그랜드 마이스터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 같았지만, 로이스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가서 저놈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구경하는 것도 재밌겠네.’
로이스는 속으로 낄낄거리며 차를 홀짝였다.
“어… 음… 나는 이만 가 볼게…….”
눈치를 보던 시에라가 어색한 얼굴로 연구실을 떠나갔다.
그렇게 한 명이 빠졌지만, 해충 박멸 연구회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안 그래도 좁은 연구회실에 비해 사람이 많았는데 세 그랜드 마이스터들이 합류하면서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그 탓에 명색이 회장이지만, 가장 서열이 낮은 시바는 연구회실의 구석에 쭈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시바는 귀를 쫑긋 열고 로이스와 외부인 셋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먼저 붉은 머리의 여인, 에리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탑주님, 여기 연구회 이름이 왜 해충 박멸이에요?”
“왜겠냐. 벌레 잡으려고 그런 거지.”
“벌레요?”
“염원의 탑을 좀 먹는 해충들.”
“오? 그러니까 여기가 비밀 수사기관 같은 거네요?”
“대충 그런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구회 이름이 그래서 해충 박멸 연구회였어?!’
연구회를 처음 만들 때 로이스가 이름을 그리 정해 주기에 대충 아무거나 지은 것이라 여겼건만,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아니, 근데 난 이걸 왜 이렇게 진지하게 듣고 있는 거냐?’
그랜드 마이스터라 주장하는 셋과 로이스의 대화는 묘하게 흥미를 자극했다.
시바가 다시금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에는 늙은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희,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거야. 죽었다고 알려진 너희가 초월학관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냐?”
“그건 그렇지만… 혹여 누군가 알아볼 수도 있고…….”
“누가?”
로이스가 콧방귀를 꼈다.
“아까 나간 여자애나, 그리고 저기서 엿듣고 있는 저 쭈구리나…….”
자신을 지목하는 목소리에 시바가 살짝 어깨를 움찔거렸다.
이를 본 로이스가 피식했다.
“니들이 대놓고 ‘내가 그랜드 마이스터요!’ 했는데도 안 믿는데, 다른 놈들이 ‘여기에 그랜드 마이스터가 있어요’라고 하면 잘도 믿겠다.”
“커흠…….”
너무도 옳은 말이지만, 그게 또 뼈아파서 더글라스가 헛기침을 흘렸다.
‘아, 예전에는 밖에 돌아다니기만 해도 알아보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달려들었었는데…….’
사람들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고자 오랜 시간 칩거를 했더니 아주 제대로 잊혀 버린 것이다.
더글라스가 민망함에 볼을 긁적이니 이번에는 플로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떡밥을 던졌으니 물고기들이 파닥파닥 모여드는 걸 좀 보긴 봐야 하는데…….”
문제는 물고기가 모여드는 물속을 살필 방법이 현재로서는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로이스가 셋을 보며 물었다.
“믿을 만한 놈 없냐? 절대 배신하지 않고 탑 내부 상황을 전해줄 충성스러운 놈.”
로이스의 물음에 세 그랜드 마이스터들이 고민에 잠겼다.
“믿을 만한 놈이라…….”
“음…….”
솔직히 예전이라면 자신 있게 추천했겠지만, 이제는 누구를 믿을 수 있겠다고 쉬이 답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머뭇거리자 로이스가 혀를 찼다.
“쯧, 하여간 이 방구석 폐인 놈들이 맨날 집구석에 처박혀 있었으면서도 집안 단속 하나 제대로 못 하냐.”
“바, 방구석 폐인이라뇨. 저희가 탑의 부흥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맞습니다! 저희 탑 커진 것 좀 보십쇼! 그게 다 저희가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만들어 낸 성과입니다!”
“저희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셋의 변명에 로이스가 인상을 썼다.
“얼씨구? 누가 들으면 너희가 맨땅에서부터 시작한 줄 알겠다? 내가 기반 다 닦아주고 갔더니만, 이것도 못 했으면 나가 죽어야지. 안 그래?”
“…….”
그랜드 마이스터들이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지난 세월 그들이 노력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광휘의 탑과의 제휴 관계, 정신파 변환 물질, 탑의 기본 자금 등등.
애초에 로이스가 떠나기 전 철저하게 기반을 닦아 놓지 않았다면, 현재의 염원의 탑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랜드 마이스터들이 한 것이라고는 로이스가 뚫어 만든 길을 깨끗하게 정돈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알기에 그랜드 마이스터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로이스는 입을 다문 셋을 보며 혀를 찼다.
“쯧, 그래서 탑 내에 믿을 만한 놈 있어 없어?”
“…잘 모르겠어요.”
“에라이. 하여간 이것들은 2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움이 안 되는 건 똑같아.”
로이스의 면박에 다시금 셋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런 셋을 보고 어느 누가 저들이 그 위대한 그랜드 마이스터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로이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이 짓거리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방법? 있지.”
자신을 향한 시선에 로이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희 유령 놀이 한번 하자.”
* * *
스승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자택으로 돌아온 해럴드는 홀로 울음을 터뜨렸다.
“스승님…….”
어린 시절 길거리를 떠돌던 자신을 데려와 먹이고 재워주며 가르친 이가 다름 아닌 더글라스였다.
더글라스는 해럴드에게 스승이자 아버지였으며 하나뿐인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예상을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스승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마이스터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억눌렀던 슬픔이 자택에 홀로 남게 되며 터져 나오고 말았다.
“크흑… 스승님,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존경하는 스승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슬픔에.
살아 계실 적, 왜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했을까 싶은 후회에.
해럴드는 평소에 잘 입에도 대지 않는 술을 마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술기운과 슬픔이 쌓여, 해럴드는 의식하지 못한 새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얼마나 흘렀을까.
“해럴드야…….”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해럴드가 눈을 떴다.
‘이건……?’
뿌연 안개가 자신의 침실을 감돌고 있었다.
“해럴드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바로 그 안개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또한, 그 음성은 해럴드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해럴드가 안개를 향해 소리쳤다.
“스승님……? 스승님이십니까?!”
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안개 속에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늙은 드워프의 형상.
“아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스승의 모습에 해럴드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정녕… 정녕 돌아가셨단 말인가!’
그는 현재 상황이 죽은 스승의 영혼이 꿈을 통해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 여겼다.
해럴드가 오열하며 더글라스의 발치에 엎드렸다.
“흐허헝, 스승님! 어찌… 어찌 그리 허망하게 가셨단 말입니까!”
해럴드가 어찌나 비통하게 울음을 토해 내던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가슴이 울컥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그를 향해 더글라스가 입을 열었다.
“원통하구나… 너무도 원통해…….”
“스, 스승님?”
“해럴드야, 해럴드야. 너무도 원통하구나.”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놈이… 우릴 죽였어.”
“예?”
“그놈이… 우릴 죽였어! 그놈이!”
새하얀 더글라스의 얼굴에는 사무치는 듯한 원한이 서려 있었다.
이에 해럴드는 직감했다.
스승님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무언가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스승님?”
“해럴드야…….”
“그놈이 누굽니까? 대체 누가 스승님을 죽인 겁니까?”
“해럴드야… 조심하거라…….”
“말씀해 주십쇼, 스승님! 제가… 제가 스승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대체 누가 스승님을 해한 것입니까!”
해럴드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의 표정은 너무도 진실했고, 더글라스의 이야기에 조금의 불신도 갖지 않은 듯싶었다.
‘스승님의 죽음이 몬스터에 의한 습격이 아니었다니!’
해럴드는 다짐했다.
“제가 반드시 스승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고, 그 후레 잡놈을 잡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스승님의 무덤에 바치겠나이다! 그리하여 스승님의 영혼을 위로하겠습니다!”
해럴드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오케이, 컷! 거기까지.”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안개가 걷혔다.
동시에 해럴드의 침실에 빛이 들어오고, 천장에서 몇몇 인물이 뚝 떨어졌다.
“……?”
난데없는 상황에 놀란 해럴드.
“이, 이게 무슨?!”
갑자기 나타난 이들의 면면을 살핀 해럴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리카 님? 플로리아 님?”
천장에서 떨어진 이는 다름 아닌 에리카와 플로리아였다.
‘저분들이야… 그렇다 쳐도…….’
전해지기로는 그들도 더글라스와 같이 죽었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꿈에 다 같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셋의 곁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오,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니구나? 감정연기 좋았다, 더글라스.”
“허허, 이게 다 연륜이지 않겠습니까?”
스승의 어깨를 토닥이는 이.
해럴드가 그를 몰라볼 리 없었다.
자신이 있는 초월학관의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자신이 눈여겨보던 학생.
해럴드가 넋 나간 얼굴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로이스 군……?”
해럴드가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더글라스가 로이스를 조심스럽게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보셨습니까?”
더글라스의 물음에 로이스가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쟤는 아니야. 확실해. 저게 연기면 쟤는 초월기의 마이스터가 아니고 연기의 마이스터야.”
“그렇지요. 껄껄.”
해럴드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꿈에 나타나 스승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초월학관의 학생이나.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스승님이나.
그가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더글라스가 인자한 얼굴로 다가와 제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클클, 나는 믿고 있었단다. 우리 해럴드라면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 암!”
“스, 스승님?”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
이제 해럴드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때 더글라스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너에게 누누이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느냐?”
“어떤 걸… 말씀입니까?”
“언젠가, 탑주님께서 돌아오실 터이니 그분의 외형에 속아 의심치 말고 모든 걸 내어 드리라고.”
“아! 기, 기억납니다.”
그건 더글라스가 어린 자신에게 누누이 하던 이야기였다.
해럴드가 고개를 끄덕이니 더글라스가 미소를 머금고 로이스를 가리켰다.
“자, 인사드리거라. 저분이야말로 우리 염원의 탑의 진정한 주인이시니.”
“예? …로이스 군이 말입니까?”
“어허! 로이스 군이라니! 탑주님이시다!”
“……?”
해럴드의 시선이 에리카와 플로리아에게 향했다.
더글라스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그리고 해럴드의 시선이 로이스에게 닿았다.
‘저 녀석이… 탑주님?’
그런 생각과 함께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해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꿈이구나.”
해럴드는 그리 중얼거리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었다.
“뭔 이런 개꿈을…….”
그러고는 다시금 조용히 눈을 감는 게 아닌가.
제자의 행동에 당황한 더글라스가 데룩데룩 눈을 굴리며 로이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탑주의 관자놀이에 불룩 튀어 오른 혈관을.
‘이것들이…….’
시바나, 해럴드나.
어쩜 이리들 반응이 똑같은지.
로이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3초 준다. 저 새끼, 깨워.”
“넵!”
더글라스의 행동은 신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