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오빠? (1)
자신만만하게 염원의 탑을 찾아갔던 하이델 공작.
하지만 들어갈 때와는 달리 그는 염원의 탑 제자들의 손에 의해 끌려 나와야 했다.
“탑주님! 탑주님과 다시 이야기하게 해주십쇼!”
그의 곁에는 왕실에서 파견된 호위 무사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접객실에서 벌어진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호위해야 하는 이가 질질 끌려감에도 염원의 탑을 더 자극할 수 없었기에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쿵-.
탑 밖으로 밀려난 하이델 공작은 굳게 닫혀 버린 문을 보며 허망한 눈빛을 해 보였다.
재상이자 공작이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푸대접이었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최악의 상황이었다.
염원의 탑을 옭아매기 위해 준비했던 패는 무용지물이 됐고 오히려 그들을 자극해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염원의 탑을 저들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했다.
다만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하이델 공작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끼익-.
정문이 살짝 열렸다.
이에 하이델 공작의 안색이 환해졌다.
어쩌면 탑주가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 너머에 등장한 것은 마이스터 델피나였다.
그녀는 마치 구세주를 보는 듯한 얼굴을 하는 하이델 공작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탑주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호, 혹시…….”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탑주님의 전언이니 혹여라도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아, 아무렴요! 탑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험흠.”
하이델 공작의 기대 어린 눈빛에 델피나가 옅게 헛기침을 했다.
곧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굵직한 목소리.
“이 시간 이후로 다시는 보지 말자. 앞으로 할 말 있으면 너희 같은 놈 보내지 말고 국왕보고 직접 오라고 해. 와서 정중하게 사. 죄. 하라고. 그럼 이야기 정도는 나눠 줄 테니까.”
“……?!”
하이델 공작의 입이 떡 벌어졌고, 왕실 호위 무사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하지만 그런 반응 따위는 무섭지도 않다는 듯 델피나는 할 말만 쏙 하고 탑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밖으로 쫓겨난 이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고.
“…이제 어쩌실 작정입니까.”
호위 무사의 물음에 하이델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돌아가세.”
지금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이델과 왕실 호위 무사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한편,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로이스와 염원의 탑 일동.
플로리아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탑을 옮기실 생각이십니까?”
“반반.”
“네?”
“마음 같아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 버리고 싶지만, 다른 곳에 정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깝잖아.”
“…그렇기는 하죠.”
“그리고 덱스터 할배 때부터 살아온 고향을 떠난다는 것도 찝찝하고. 그래서 반반이야. 떠날 생각 반, 남을 생각 반.”
“아…….”
그 말은 다시 말해 여차해서는 정말로 이사를 가 버리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멀어져 가는 하이델 일당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로이스가 몸을 틀었다.
그는 그랜드 마이스터와 마이스터들을 보며 말했다.
“잘 들어. 우리가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이 있는 한 이깟 기반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하고 새로 쌓을 수 있다.”
“…….”
“하지만 염원의 탑이란 이름이 가진 가치가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없어. 귀족들이 왜 그렇게 명예에 집착할까. 한번 떨어진 명예는 쉽게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염원의 탑은 최강의 탑이 될 거다. 만약 이를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난 그게 무엇이 되었든 치워 버릴 거고. 명심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마이스터들이 로이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더글라스.
“허허, 탑주님이 이끄시는 염원의 탑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래도 탑주님이 오셔 아무런 걱정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더글라스.
아련한 그의 음성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단번에 깨뜨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뭐래? 누구 마음대로 죽어?”
“…예?”
“받아.”
그리 되묻는 더글라스의 앞으로 병 하나가 날아왔다.
턱-.
자연스럽게 더글라스의 손에 안착한 검붉은 색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
“이게 뭡니까?”
“엘릭서.”
“오! 이게 엘릭서군요! 허허, 살면서 엘릭서를 보게 될… 잠깐… 에, 에, 엘릭서?!”
손에 든 병을 놓칠 뻔할 정도로 놀란 더글라스.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에, 엘릭서?!”
“그게 실존하는 거였어?!”
세상에는 갖가지 약이 존재하지만, 그중 최고로 치는 영약이 바로 엘릭서였다.
복용자를 불로불사로 만들어 준다는 전설 속의 영약.
실존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약이었지만, 그런 엘릭서는 어느 드래곤의 레어에 가더라도 수십, 수백 개씩 쌓여 있는 처치 곤란한 재고 품목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릭서의 주재료가 바로 드래곤의 혈액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입장에서는 피 좀 뽑아다가 만들면 되는 일이니, 드래곤들 사이에서 ‘소싯적 엘릭서 안 만들어 본 드래곤은 드래곤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
물론 드래곤의 피 자체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구할 수 없는 물질이니 인간계에서 엘릭서가 전설의 명약 취급받는 것은 당연했다.
꿀꺽-.
달달달- 떨며 침을 삼키는 더글라스를 보고 로이스가 미소를 보냈다.
“그거 막 전설처럼 대단한 건 아냐.”
“…그럼요?”
“에이, 불로불사하게 해 주는 영약이 어딨냐? 그냥 노화 속도를 늦춰 주고 수명을 늘려주는 효능이 과장되게 퍼진 거야. 그거 한 병이면 고작 100년 정도 더 살걸? 약빨 잘 받으면 150년도 가능하고.”
좌중의 시선에 어이없음이 번져 나갔다.
노화 속도 저하, 수명 연장.
부자들이 꿈에도 그리는 효능이 아니던가.
좌중의 시선이 더글라스의 손에 들린 엘릭서에 꽂혀 들었다.
그때 로이스가 말했다.
“뭐 해?”
“예?”
“안 마시냐?”
“허허, 이… 귀, 귀한 걸 제가 어찌 마시겠습니까.”
“괜찮아. 나 그거 많아.”
“그, 그래도…….”
“더글라스.”
“예…….”
“잔머리 굴리지 마라.”
더글라스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곧 이어지는 로이스의 스산한 목소리.
“마이스터 중에 불량한 놈들 쳐내서 가뜩이나 인력 딸리는 마당에… 누구 마음대로 죽어서 쉬겠다는 거야?”
그만 일하고 싶다던 황희 정승의 사직을 세종대왕께서 연달아 퇴짜를 놓으면서 끝까지 부려 먹었다지?
로이스도 더글라스를 쉬이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네가 일 안 하면 누가 해? 내가 하리?”
“…….”
“나 엘릭서 많다. 건강 안 좋아지면 말해. 몇 병 더 챙겨 줄게.”
그제야 더글라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건 엘릭서가 아니었다.
이건…….
‘도, 독약이다!’
먹는 순간 쉼 없이 일만 해야 하는 무한 굴레에 빠져 버리는 무시무시한 독.
더글라스가 주춤주춤 로이스에게서 멀어졌다.
그 순간, 그를 막아서는 이가 있었으니.
“어디 가?”
“새, 새대가리?”
에리카가 음흉한 눈빛으로 더글라스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뭐 하세요? 안 드시고.”
플로리아가 기쁜 얼굴로 직접 엘릭서의 병뚜껑을 따서 더글라스의 입에 가져다 댔다.
“우읍! 놔! 놔라! 놓으란 말이다!”
“어허, 가만히 있어. 이 귀한 엘릭서를 흘릴 수는 없잖아?”
“아~ 하세요. 아~.”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는 셋을 뒤로하고 로이스는 마이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너희가 해 줄 일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사이론에 소문을 퍼뜨려.”
“어떤 소문 말입니까.”
“오늘 있었던 일.”
“예? 그건 왜……?”
“왜긴, 성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해 주려는 거지.”
그리 말하는 로이스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 * *
그날 오후.
안 그래도 어수선한 분위기의 사이론에 한 가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염원의 탑이 사이론을 떠난다고 한다!]어딘가에서 시작된 소문은 영지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영지민들이 둘 이상 모이면 어김없이 염원의 탑 이주 소식이 흘러나왔다.
“에이, 정말로 염원의 탑이 떠나는 거는 아니겠지?”
“글쎄… 어쩌면 정말인지도 모르네. 이번에 보니 탑주님 성격이 불같더만.”
“염원의 탑이 사이론에 뿌리내린 지 벌써 수백 년일세. 그 기반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얘기 못 들었나? 아까 낮에 왕국에서 사람이 나와서 염원의 탑을 협박했다지 않나?”
“협박? 무슨 협박?”
“당장 사이론 영주랑 그 아들을 풀어주지 않으면 장사 못 하게 한다고 말일세. 나 같아도 더러워서 다른 곳으로 가겠네. 쯧쯧.”
“뭣이? 그게 참말인가?”
“알지? 내 동생의 친구 놈의 조카가 염원의 탑 도제인 거. 그 녀석 말로는 참말이라더구만.”
“허, 이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왜 가만있는 염원의 탑을 그리도 못살게 구는지…….”
“내 말이 그 말일세, 사이론 영주 놈이나 다른 귀족 놈들이나. 막말로 제 놈들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 한데, 염원의 탑을 봐 봐! 아닌 말로 이 사이론이 누구 때문에 먹고사는데!”
“그렇지!”
사이론의 영지민들은 염원의 탑에서 들려온 이주 소식에 불안에 떨었다.
사이론이 초월기의 성지라 불리지만 이는 다시 말해 초월기가 빠지면 아무것도 없는 도시라는 뜻이었다.
만약 염원의 탑이 빠져나가고 그들을 따라 다른 공방들마저 이주한다?
당장 염원의 탑과 공방을 찾는 영지의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 먹고 사는 영지민들의 수입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거기다 공방의 관계자들마저 다 떠나면 인구는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고 말이다.
다시 말해 염원의 탑의 이주는 사이론 영지민들에게 생계와 직결된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 영지민들의 불안을 기폭시키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옆집 총각이 염원의 탑 도제인데 이번에 짐을 바리바리 싸더라니까? 내 물어보니까 탑주님 명령으로 이사 갈 준비 미리미리 해 두는 거라고 했어! 들어 보니 다른 집에 사는 그 도제도 똑같이 짐을 쌌다더구만!”
“나도 들었네, 거기다 그 뭐시냐… 저기 콘네라 왕국인가 하는 곳에서 염원의 탑에 자기네 나라로 제발 와 달라고 그렇게 사정을 하고 돌아갔다고!”
“사이론을 떠난다는 게 진짜였나 보네.”
사이론에 염원의 탑 관계자들이 많은 만큼 그들이 보이는 행동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이에 더는 안 되겠다고 여긴 영지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이러다 정말 염원의 탑이 나가면 우리는 다 죽는 겁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뭘 어떻게 막는답니까?”
“사이론 영주 일가 놈들이 어딘가 숨어 있는 모양인데 우리가 잡아다 주는 거는 어떻겠습니까?”
“그, 그래도 되는 거요? 그래도 영주인데…….”
“영주는 튀겨 죽일, 무슨 놈의 영주! 이 사달이 난 게 다 그놈들 때문인데!”
“옳소! 그 새끼들 잡아다 주면 탑주님도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주시지 않겠소?”
“퉷, 귀족들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실제로 영주 일가를 찾기 위해 영지를 뒤지고 다니는 이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날이 영주와 왕국을 향한 불만이 사이론에서 커져 나갔다.
그리고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하이델 공작의 얼굴은 점점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이대론 안 된다…….’
민심이 결국 왕국과 왕가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지금은 비록 사이론에 국한된 일이었지만, 이 불신이 인근 영지로까지 퍼져 나가지 말란 보장은 없었다.
또한, 민심도 민심이지만 더 큰 문제는 염원의 탑에 들락거리는 다른 국가의 사절들이었다.
지금까지 공작이 확인한 국가만 해도 네 곳.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늘어날 것은 자명했다.
만약 정말로 염원의 탑이 다른 국가로 이주한다면 멜데니크 왕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결단이 필요했다.
“당장 비공정을 준비하게… 왕궁으로 가서 전하를 뵈어야겠네.”
그렇게 그날, 하이델 공작과 왕실 호위 무사들이 사이론을 떠났고, 며칠이 흐르지 않아 되돌아왔다.
이전보다 더 많은 호위 무사들을 대동한 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백마에 올라탄 젊은 사내가 있었으니.
긴 행렬이 염원의 탑 정문에 도착하자 하이델 공작이 소리쳤다.
“가서 탑주께 전해라. 멜데니크 왕국 제1왕위 계승자, 라크로니아 멜데니크 저하께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오셨다고.”
무려 왕자의 행차에 놀란 경비가 쪼르르 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밖으로 나온 이는 더글라스였다.
불과 며칠 사이 놀랍도록 생기가 충만해진 그가 말했다.
“탑주님께서 그쪽과는 할 말 없다고 전하랍니다.”
“…….”
무려 왕자가 왔음에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할 줄은 몰랐기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이를 아득 깨문 왕자가 나서서 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 왕가는 큰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바,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염원의 탑이 원하는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할 생각이네. 국왕 전하께서 내게 전권을 위임하셨으니… 탑주와의 자리를 만들어 주게.”
굴욕적이다 싶을 정도인 멜데니크 왕가의 선언.
이를 창가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로이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승자의 미소가 말이다.
“들어오라고 해.”
그 한마디에 굳게 닫혀 있던 염원의 탑 정문이 열렸다.
마침내 염원의 탑으로 들어섰던 멜데니크 왕국의 행렬.
그들은 1시간이 지나 다시금 탑을 빠져나왔다.
하나같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이다.
그리고 이날을 라크로니아 왕자는 자신의 생에 있어 가장 굴욕적이었던 하루라고 기억하게 되었다.
분노 가득한 멜데니크 왕가의 인물들은 입술을 깨물며 사이론을 떠나갔고…….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