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오빠? (4)
로이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우로 밀착.”
난데없는 명령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워 올린 학생들.
곧바로 로이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안 들리냐? 우로 밀착!”
그제야 학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강당의 우측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로이스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학생은 좌측으로 빠진다.”
그리 말한 로이스가 뒤쪽의 도제 한 명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간 탑주의 성정이 어떠한지 충분히 봐 왔던 도제는 화다닥 튀어나왔다.
“여기 적힌 이름 큰 목소리로 불러.”
“네!”
그는 로이스가 넘겨준 명단을 받아 들고 큰 목소리로 외쳐 나갔다.
“먼저… 샘 카르틴.”
도제의 호명에 쭈뼛쭈뼛 한 학생이 좌측으로 빠졌다.
이후 도제의 호명은 계속됐고 약 15분 정도가 흘러 호명이 끝이 났다.
“수고했다.”
“가, 감사합니다!”
칭찬을 받은 도제가 물러나고, 로이스가 좌측에 선 학생들을 보았다.
좌측에 빠진 학생들의 수는 정확히 57명.
따로 호명된 이들이 어리둥절해할 때 재차 로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름이 불린 학생들은 자기를 왜 불렀는지 궁금하겠지?”
좌측 학생 중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이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왼쪽에 모인 학생분들이야말로 아주 대단하고 귀하신 분들이니까.”
로이스의 말에 좌측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이 화색으로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좌측으로 몰린 학생들의 면면은 제법 힘 좀 쓴다는 집안의 자제들이었으니 말이다.
자신들에게 무슨 특별 대우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 이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에 그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 갔다.
“어찌나 대단하시던지 우리 염원의 탑과 초월학관을 물로 본 모양이야.”
“……?!”
“부정 입학부터 시작해서 교수 및 조교에게 뇌물, 성적 조작 등등등.”
좌측의 학생들이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며 판결이 내려진 뒤였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굳이 우리 학관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고로… 너흰 퇴학이다.”
화들짝 놀란 학생들의 얼굴이 더욱더 창백하게 변했고, 그 무리 속에는 당연히 뷘도 섞여 있었다.
* * *
초월학관의 학장실.
달그락-.
가볍게 찻잔이 오가고 여유롭게 찻물을 들이켜는 로이스를 보며 플로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왜? 재밌잖아.”
“…참 재밌네요.”
이번 로이스의 퇴학 통보는 플로리아도 들은 게 없던 이야기였다.
무려 57명에게 퇴학 조치가 내려진 상황.
그 결정에 학생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고 이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졌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플로리아를 보며 로이스가 피식거렸다.
“뭐가 문제야? 어차피 퇴학시킬 놈들 퇴학시킨 것뿐인데.”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넌 너무 신중해. 그리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지.”
“…….”
“때로는 과감해질 필요도 있어.”
“…그런가요?”
물론 탑주님처럼 너무 과감해도 안 되겠지만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플로리아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 약간의 담소를 나누는 사이.
똑똑-.
“탑주님, 말씀하신 학생들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와.”
로이스의 허락이 떨어지고 조교가 두 명의 학생을 데리고 학장실로 들어왔다.
그 두 학생은 다름 아닌 시바와 시에라였다.
“그럼 전 이만…….”
둘을 데려온 조교는 깊게 고개를 숙이고 학장실을 빠져나갔다.
넷만이 남게 된 학장실.
로이스에게 불려온 시에라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불과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자신의 기술반 파트너였지만, 이제는 쳐다도 볼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린 존재.
아직 그를 대하는 것이 너무도 어색한 시에라가 우물쭈물할 때 로이스가 입을 열었다.
“카시어스 가문… 생각보다 유명하던데.”
“…….”
“5대 전까지만 해도 공작 가문이었으나 쇠락에 쇠락을 반복하다가 남작위까지 몰락. 이제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해 가문의 모든 게 팔려 버린 비운의 가문이더라.”
“…….”
“카시어스 가문의 부채를 모두 사들인 게 바로 사이론 후작가였지. 맞냐?”
“…맞습니다. 정확히는 겨우 붙어 있는 저희 가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린 게 사이론 후작가였습니다.”
“놈들이 왜 그랬는지는 알고 있고?”
“글쎄요. 저도 아직 그게 의문입니다. 사이론 후작가 같은 거대 귀족이 왜 저희같이 다 망해 가는 가문에게 손을 뻗었는지…….”
“간단해. 너희 가문의 핏줄을 타고 올라가면 왕가의 핏줄에 닿으니까.”
“…네?”
“6대 전 카시어스 공작의 부인은 당시 국왕이었던 이와 불륜을 저질러 아들을 낳았다. 물론 당대 카시어스 공작은 이 사실을 몰랐고.”
“……?!”
“그렇게 태어난 이가 바로 마지막 카시어스 공작이었지.”
“그, 그럴 리가… 저는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한 나라의 국왕과 공작의 부인이 통정해 아이를 낳았다는 게 알려지면 좋을 리가 있을까?”
“…….”
“성세를 유지하던 카시어스 공작 가문이 급격하게 쇠락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마지막 카시어스 공작의 형님 되는 이… 훗날 멜데니크 국왕이 되는 놈이 이복동생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아…….”
“비밀리에 전해지던 왕가의 비사를 접한 사이론 후작은 그런 이유로 너희 가문을 손에 넣은 거다. 너와 자신의 후계자를 혼인시키기 위해.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핏줄에 왕가의 혈통이 섞이게 되고…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니까. 사이론 후작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니 확실할 거다.”
“……?!”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추악한 진실.
결국, 자신은 사이론 후작의 탐욕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다.
시에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 시에라의 앞으로 로이스가 봉투를 내밀었다.
“받아.”
“이게… 뭡니까?”
“사이론 후작가의 모든 재산이 염원의 탑에 귀속되면서 너희 가문이 졌던 부채 또한 우리 게 됐다. 네 손에 들린 건 그걸 증명하는 서류고.”
“……?!”
시에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왜?”
“난 너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줄 거다. 첫째, 지금 당장 그걸 찢어 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는 거.”
“…….”
“둘째, 초월학관을 졸업하고 염원의 탑에 들어와 그 빚을 갚아 나가는 거.”
시에라의 눈이 떨렸다.
원래였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서류를 찢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왜 제게…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네가 마음에 들어서.”
“…예?”
“네 재능도, 독기도. 제법 마음에 들더라고. 우리 염원의 탑은 언제든 인재를 환영하거든.”
“…….”
“그리고 나의 염원의 탑이 네 염원의 토대가 되어 줄 거다.”
시에라의 얼굴에 갈등의 빚이 스쳐 지나갔다.
서류를 찢으면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과거로부터 온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류를 남겨 놓으면 비록 빚은 그대로지만, 자신에게 소속이 생기게 되는 거다.
‘염원의 탑’이란 거대한 울타리가 말이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자신에게 너무도 유리한 조건.
이에 시에라는 한 가지를 물었다.
“탑주님.”
“왜.”
“만약 제가 염원의 탑에 들어간다면… 저번에 제게 잘 보고 배우라고 하셨던 거… 그거, 다시 보여 주실 수 있으세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실전 평가 당일.
로이스가 보여 준 말도 안 되는 초월기 조종술.
그것은 그녀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이정표가 되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에라의 시선에 로이스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얼마든지.”
그 대답에 시에라는 서류를 로이스에게 돌려주었다.
“제가 빚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서요.”
“그거 참 마음에 드는 성격이네.”
시에라의 미소에 로이스도 미소로 답했다.
‘시에라 정도면 제법 싹수가 있는 인재지.’
쌍둥이와 불꽃 남매에 가려져서 그렇지 시에라의 재능은 인간의 영역에서 최고 수준이라 할 만했다.
그런 인재가 눈앞에 있는데 침이라도 발라 둬야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빚 문서 하나로 시에라를 염원의 탑에 묶어 둘 수 있게 되었으니 로이스로서는 매우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인재를 선점한 로이스.
그가 이번에도 또 다른 인재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야.”
“네?”
로이스와 시에라의 대화를 멀뚱멀뚱 듣고 있던 시바.
그의 앞으로 한 장의 종이가 날아들었다.
“이거 뭔가요?”
“초월학관 졸업 후 염원의 탑에서 일하겠다는 서약서.”
“…….”
“응, 무임금으로 5년간 일하겠다는 서약서.”
“아니, 왜요!”
시바가 버럭 소리쳤다.
“왜긴, 내 마음이지.”
“시에라 양은 빚 까 주는 조건이라지만, 그래도 저는 월급을 주셔야죠! 원래 노동에는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예전이었다면 염원의 탑에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을 리 없었다.
자신이 가고 싶다고 해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로이스 밑에서 몇 개월 굴러먹은 시바는 염원의 탑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이 되었는지 절실히 알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은 험난한 가시밭길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리라.
“전 못 갑니다! 아니, 안 갑니다!”
“그래?”
시바가 억울하다는 듯 바락바락 소리치자 로이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시바에게 던졌다.
“이게 뭡니까… 어… 어라?”
로이스가 던진 것은 다름 아닌 반지였다.
그것도 번트가의 문장이 버젓이 새겨진 반지 말이다.
시바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이, 이걸 로이스 님이 어떻게?”
“예전에 말이야, 캐리 번트라는 놈이 그걸 주면서 그러더라고.”
“……?!”
번트가의 후손인 시바가 가문을 가장 부흥하게 한 선조인 캐리의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그 반지 가져오면 뭐든 필요한 걸 들어주겠다고 말이지… 그래서 그거 들고 번트가를 찾아갔는데… 쫄딱 망했네?”
“어… 음…….”
“그 후손은 너란 놈뿐이고? 혹시 너 말고 다른 후손 있냐?”
“아, 아뇨.”
“그러니까 네가 몸으로 때워. 5년만.”
“하, 하지만 저희 가문은 이제 망했고…….”
“아, 망했으니까 선조의 약속 같은 거는 개똥으로 취급해도 된다?”
“아,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몰아치는 로이스의 비아냥과 손안의 반지가 시바의 혼을 쏙 빼놓았다.
‘로이스 님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캐리 선조와 알고 있는 사이였다니?! …아, 그래서 설마……?’
시바는 그제야 어째서 로이스가 캐리 번트와 루시아 번트의 초상화를 사들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로이스의 마수에서 자신이 벗어날 수 없음도 말이다.
시바가 초조함과 우울함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래도 무임금은 너무 심한데… 조금이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너 하는 거 봐서.”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바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약서에 자필 서명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한 명의 인재가 염원의 탑에 제 발로 들어갔고, 다른 한 명의 인재가 멱살이 잡혀 끌려 들어갔다.
* * *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웅- 웅-.
한동안 울린 적이 없던 통신석이 신호를 보내 왔다.
“응?”
아공간에서 통신석을 꺼내 든 로이스가 눈을 끔벅였다.
“어머니, 아버지네?”
정말로 오랜만에 부모님께 걸려온 연락.
‘아, 종종 연락드릴 걸 그랬나?’
그간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반성하며 로이스가 통신을 연결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아들!]활기찬 제네로커의 음성에 로이스도 반가움을 담아 말했다.
“네, 저예요.”
하지만 그 반가움은 곧바로 이어진 목소리에 당황으로 바뀌었다.
[아들! 동생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