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제로 (4)
로이스와 쌍둥이가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5분여.
광룡의 눈에 이지가 깃들었다.
다시금 나타난 철수88.
존재 자체를 지워 내는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안에 갇힌 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조금 전부터 어둠을 뚫고 미약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절대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현상.
철수88이 빛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저러한 현상이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암흑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겼기에 일어나는 변화.
그게 자신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임은 자명했다.
어둠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이 간 철수88은 이를 악물었다.
[…지독한 놈.]로이스라는 놈으로 인해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는 자신의 창조물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죽이고자 노력했건만, 로이스란 놈은 죽음의 위기에서 악착같이 살아났다.
또한, 위기를 겪을 때마다 놈은 더욱 강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끼고 아껴 모은 ‘힘’으로 광룡을 창조해 내고 이번에야말로 무조건 놈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여겼건만, 이번에도 놈은 또 살아남으리라.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강해지겠지.’
죽일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오히려 놈이 진보할 계기를 마련해 준 꼴이 됐다.
아마 놈이 저 어둠을 뚫고 나온다면 그때는 제로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야 했다.
‘놈이 완전히 제로의 경지에 들기 전에 여기서 처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너무 늦은 건가.’
하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그간 모은 ‘힘’을 전부 쏟아부어 만들어 낸 가짜 광룡이었지만, 진짜 광룡에 비하면 너무나 조잡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로이스의 힘이 강했다.
지금 가짜 광룡이 사용한 기술도 상당한 무리가 동반된 기술이었다.
여기서 더 무리했다가는 억지로 잡아 놓은 형태가 무너질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사용한 ‘암흑 공간’이 철수88이 준비한 비장의 수였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이제 로이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힘이 필요했다.
자신은 그 준비를 해야 할 터.
광룡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고.
[…다음이 마지막일 거다.]광룡이 몸을 돌려 날아가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대륙이 있는 동쪽을 향해서.
* * *
시간이 흐를수록 로이스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더욱 밝아졌다.
동시에 그의 사고는 더욱더 깊어졌다.
‘제로의 경지. 그리고 열쇠…….’
자신이 알고 있는 제로의 경지란 세상의 법칙에 간섭하는 규격 외의 힘이었다.
‘그럼 아버지가 말한 열쇠란 법칙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아닐까?’
여기서 열쇠는 물질적인 것일까?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
둘 중 하나라 쳐도 그럼 ‘그들’은 누구지?
‘그들… 그들이 누구지?’
세상의 법칙과 나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존재.
대체 그들이 누굴까?
그렇게 고민을 이어 가던 로이스.
그는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응?’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
아니, 그건 소리라기보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자신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
‘이게 뭐지?’
굉장히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친숙함 느낌,
로이스는 기묘한 감각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부르는 거냐?’
감각이 보내 오는 신호는 그러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듯, 칭얼거리는 듯한 느낌.
‘너, 누구야?’
그 물음에 신호가 변했다.
녀석은 말하고 있었다.
그 답은 네가 구해야 한다고.
이에 로이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신호에 정신을 집중했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제네로커가 말한 ‘그들’의 존재가 이것임을.
‘뭐지… 왜 이렇게 친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이 녀석의 정체가 뭐지?
난 이걸 어디서 느껴본 거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자신이 품고 있는 마나였다.
정확히는 속성력.
하지만 전해지는 느낌이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보다 훨씬 진화한… 다른 격의 느낌이야. 그런데 난 언제… 이걸…….’
그렇게 고민을 이어 가던 로이스의 머리 위로 번개가 내리쳤다.
드디어 떠오른 것이다.
어디서 이런 감각을 느껴 본 것인지.
자신의 생에 있어 단 한 번.
아버지의 손에 들려 은화성에 들어갔을 때.
제로의 경지에 오른 13원로에게 둘러싸여 속성력을 판별받던 순간, 자신에게 날아왔던 보석과도 같았던 속성력의 집결체.
바로 그것에게서 나던 느낌이 이러했다.
과거에는 그저 그 또한 속성력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13원로의 속성력은 일반적인 속성력과 달랐다.
일반적인 속성력이 마나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이건…….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느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이리 칭했다.
“근원.”
로이스가 그리 중얼거린 순간, 그의 내면에서 진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답이야, 로이스.]그리고.
철컥-.
열쇠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로이스의 전신에서 눈부신 무지갯빛 광채가 치솟았다.
동시에 로이스는 자신의 영혼이 무언가와 연결된 기분을 느꼈다.
미칠 듯한 충만함이 몰려드니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치솟았다.
로이스는 그 자신감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자.
츠츠츠-.
어둠이 갈갈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 * *
촤아아-.
순풍을 타고 물살을 헤치며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한 척의 배가 있었다.
바로 봄 대륙에서 여름 대륙으로 향하는 배편.
승객 300명을 태운 대형 여객선이 바다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여객선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총책임자.
항로를 탐색하고 진로를 정하는 항해사 등등.
특히 승조원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이 바로 갑판 선원들이었다.
그들이 많은 이유?
별다른 게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뭐, 말이 필요로 한다는 거지 사실상 함선 내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은 갑판 선원들이 처리했다.
가장 더럽고.
가장 힘든 일을 하는 갑판 선원들.
때문에 몇 번의 항해를 하고 도저히 못 하겠다고 때려치우는 이들이 넘쳐났다.
더군다나 갑판 선원의 악명이 돌다 보니 해당 업무는 늘 인력난에 시달렸다.
그런 이유로 함선에서는 임시 단기직으로 갑판 선원들을 뽑기도 했다.
현대로 치자면 단기 알바와 같은 형태였다.
그리고 이번 여름, 대륙행 함선의 임시 선원이 된 이들 중에는 엘비스도 섞여 있었다.
“어이, 엘비스. 가서 이거 바다에 버리고 와!”
“예, 알겠습니다!”
함내 조리 대원의 명령에 엘비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거한 잔반통을 들고 낑낑거리며 가파른 함 내 계단을 올랐다.
그러다가 바지와 신발에 잔반의 오물이 튀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한 상황인 듯 엘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잔반통을 옮겼다.
그렇게 함미에 도달한 엘비스는 음식물 쓰레기를 쏟아부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토해 낸 엘비스는 벽에 기대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짓도 하다 보니 익숙해지네.”
시간을 되돌리기 전.
광룡을 피해 피난 가던 시절에도.
광룡과의 오랜 싸움을 이어 나가던 시절에도.
이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현자라 불리던 내가 여기서는 음식물 찌꺼기나 버리는 신세라니…….’
엘비스가 이런 신세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기 때문.
“하아…….”
달라진 현실에 적응을 못 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엘비스.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봄 대륙으로 향하고자 했지만, 가족들에 의해 그의 시도는 번번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다 겨우겨우 성공하여 야반도주하듯 집을 빠져나왔다.
이후 그는 여름 대륙의 동쪽에서 봄 대륙으로 향하는 배편이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여름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장정.
처음 그는 어렵지 않게 여름 대륙의 서쪽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엘비스의 착각이었다.
그가 간과했던 사실.
아니, 알고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실.
그것은 그의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는 거였다.
가문의 재력.
그가 가진 재산.
나아가 일신의 경지까지.
나름 현재 상황에 적응했다고 여겼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금의 속성력도 쌓지 못한 평범한 몸으로 그 험난한 여정을 버텨 내는 것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거기다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탓에 그는 무일푼.
태어나 단 한 번도 돈이 없었던 적이 없는 그였기에 가난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과거 엘비스에게 돈은 벌면 되는 것이고, 쉽게 벌 수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야 능력이 차고 넘치니 돈 따위는 얼마든지 쉽게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무능력한 일반인이 되고 나니 돈을 버는 게, 하루를 벌어 한 끼를 먹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여름 대륙을 횡단하며 하루 이틀쯤 굶는 일은 허다했고, 제대로 된 잠자리를 가져 본 적도 손에 꼽았다.
그가 가진 지식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마침내 여름 대륙의 서쪽, 봄 대륙으로 가는 배편이 있는 에이바우트항에 도착한 엘비스.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 여겼지만, 오히려 그게 시작이었다.
당장 봄 대륙으로 갈 뱃삯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구해야 했던 것.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봄 대륙행 배편의 임시 승무원으로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봄 대륙에 도착.
거기서 또 과거 켄드릭에게 들었던 그의 고향까지 가는 여정.
하필 켄드릭의 고향이 봄 대륙의 서쪽 끝이었다.
만약 그가 봄 대륙에 존재하는 고대의 공간 이동 법진을 알지 못했다면.
여름 대륙을 횡단하는 내내 과거의 경지를 되찾고자 조금이라도 속성력을 쌓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공간 이동 법진을 작동시키지 못했다면.
또다시 봄 대륙을 횡단하는 데 몇 년을 허비했을지 몰랐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알고 있는 켄드릭의 고향에 도착했지만…….
‘마을이… 없어…….’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마을을 떠나서 사람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허망함이 엘비스를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여기가 아닐지도 몰라.’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찾아 그는 미친 듯이 녹치 산맥을 뒤지고 다녔다.
그는 거의 열흘 넘게 산맥을 뒤지고 다녔다.
무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행군.
그리고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산맥을 뒤지고 다닌 결과, 그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만약 우연히 사냥꾼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몬스터나 산짐승의 배 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후 마음씨 좋은 사냥꾼의 집에서 머물던 그는 마을을 떠나가며 답례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 줬다.
광룡이 나타날 거라고.
그러니 살고 싶으면 도망치라고.
사실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아집이나 다름없었다.
광룡은 나타날 거다.
반드시 나타날 거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라.
그렇게 마을을 떠나서도 며칠간 녹치 산맥을 뒤지고 다닌 엘비스.
그쯤에서 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룡은… 없는 거구나.’
죽은 동료들을 위해.
멸망을 막고자 과거로 돌아왔건만, 세상은 달라도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평화.
자신과 동료들의 그토록 원하던 ‘평화’.
세상을 평화롭게 되돌리기 위해 그렇게 싸워 왔건만, 정작 평화로워진 세상으로 인해 엘비스는 목적을 잃고 말았다.
이후 그는 녹치 산맥을 떠나 다시 에이바우트항으로 돌아왔고, 여름 대륙행 배편의 임시 승무원이 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촤아아아-.
물살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엘비스는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목적성을 잃은 엘비스의 마음은 방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