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제로 (5)
평생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건만, 그의 삶을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광룡을 죽이겠다는 목적.
이를 떠올린 엘비스가 피식거렸다.
“하긴… 지금 상태로 광룡의 상대가 될 리가 없지.”
현재 그의 경지는 3티어 초입.
아무것도 없는 백지 같은 상태에서 불과 4년여 만에 3티어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면 많은 사람이 놀라리라.
하지만 엘비스가 누구던가.
빛의 현자라 불리며 제로의 경지를 넘보던 강자였다.
과거 그의 관점에서 3티어의 경지는 풋내기나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 풋내기구나.’
아무리 깨달음이 높은들 뭐에 쓰랴.
당장 속성력이 부족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데.
속성력을 쌓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만약 영약을 구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영약은 무슨.’
그 외에도 아주 소수의 특출난 천재라면 보유한 속성력 이상의 경지를 넘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엘비스는 그 정도의 천재가 아니었다.
“…켄드릭이라면 다르겠지만.”
그가 본 수많은 사람 중 켄드릭 이상의 재능을 지닌 이는 없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그는 매우 단기간에 제로의 경지에 도달해 광룡의 대적자가 되었다.
그런 켄드릭이 있음에도 엘비스가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동료들을 모은 구심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녀석들을 찾아볼까?’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또한, 무슨 이유로 그들을 설득할까?
있지도 않은 광룡을 들먹이며?
곧 세상이 망할 거라는 말을 하며?
미친놈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아… 일단은 돌아가자. 집으로…….”
비록 이제는 농사나 짓는 가문이 되었음에도 단 한 가지, 죽은 줄 알았던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좋았다.
“…정 안 되면 나도 농사나 지어야겠지.”
물론 그 전에 집에서 가출한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이제 며칠 있으면 도착하는 여름 대륙.
엘비스는 벌써부터 이번 가출에 대해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쉰 엘비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이었다.
훙-.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여객선의 돛이 크게 펄럭이며 부풀어 올랐다.
그에 따라 배 역시 크게 출렁거리는 것은 당연지사.
“으악!”
“뭐, 뭐야!”
자칫 잘못했다가는 전복이 될 정도로 휘청거린 여객선.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승객들이 놀라 소리쳤다.
이는 엘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윽!”
순간 중심을 잃고 바다에 빠질 뻔했던 엘비스는 고개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어……?”
그는 볼 수 있었다.
“어어?”
여객선의 위.
어슴푸레 깔린 어둠과 은은하게 세상을 밝히는 달빛.
그리고 하늘을 가린 하얀 구름 속, 그 안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
어찌나 크던지 한 눈에 완전히 담기지 않는 거대한 형체였다.
곧 구름 속에서 검은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게 뭐야?!”
“새? 새인가?”
“저런 새가 어딨을까!”
“모, 몬스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등장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다만 한 사람.
“……?!”
엘비스의 눈에는 당황이 서렸다.
“저, 저게… 어째서……?”
어찌 그가 몰라볼까.
저건 몬스터 따위가 아니었다.
감히 몬스터 따위를 저 존재에 어찌 비할까.
저 존재로 말하자면 지상의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최상위 생명체였다.
전설 속 이야기를 통해서나 전해지는 존재.
“…드래곤?”
또한, 엘비스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저건 단순한 드래곤이 아니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살기.
지난 수십 년간 겪어 봤던 기운.
이에 엘비스는 확신했다.
“제네… 로커?”
광룡 제네로커.
무언가 좀 달라진 느낌이었지만, 분명 느껴지는 흉포한 기운은 광룡이었다.
그가 그렇게 멍하니 있는 사이.
크와아아-.
괴성을 내지른 광룡이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도, 도망쳐!”
여객선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하지만 망망대해, 그것도 여객선이란 한정된 공간에 있는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렇게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광룡이 여객선의 지척에 다가왔다.
그리고 일어난 일은 완벽한 파괴였다.
콰드득-.
별다른 기교도, 브레스도 필요 없었다.
그저 단순한 육체적 능력만으로 거대한 여객선 하나를 완전히 박살 내는 광룡.
“꺄아아악!”
“살려 줘!”
광룡의 파괴 행위에 걸려든 사람들이 우후죽순 쓰러져 나갔다.
그렇게 약 10여 초 후.
여객선이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뿐.
-크아아아!
다시금 포효를 내지른 광룡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푸하!”
물에 빠져 있던 엘비스가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엘비스의 눈과 광룡의 눈동자가 마주친 게.
“……?!”
그 순간 엘비스는 광룡의 눈에 약간의 흥미가 깃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펄럭-.
엘비스에게서 시선을 뗀 광룡이 거칠게 날갯짓을 하며 사라졌다.
그렇게 바다에 둥둥 떠서 사라지는 광룡을 멍하니 바라보는 엘비스.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떨어진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엘비스는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내지르는 아비규환의 비명 속에 엘비스의 대소가 섞여 들었다.
“흐하하하!”
엘비스는 너무도 후련하게 웃었다.
그간의 고민과 좌절이 완전히 사라진 말끔한 웃음소리.
“있었어… 역시 있었어! 광룡은 존재하고 있었다고!”
미친놈처럼 중얼거리는 엘비스의 눈에 한 가지가 샘솟았다.
바로 ‘의욕’이라 일컫는 감정.
“크하하하!”
그렇게 그 뒤로도 엘비스는 한참이나 광룡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그간의 고민과 걱정을 털어 냈다.
* * *
제네로커의 기술, 절대적인 암흑.
존재 자체를 집어삼키는 어둠은 분명 놀라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공간’이라는 범위 안에서 펼쳐지는 기술.
공간의 근원을 깨닫고 공간의 법칙에 간섭할 수 있게 된 로이스는 가짜 광룡의 기술을 너무도 손쉽게 파훼할 수 있었다.
바로 암흑 공간 그 자체를 공간째 재구성해 버린 것,
차즈즈즉-.
기괴한 소리와 함께 어둠이 찢겨 나가며 세 마리의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중 은빛 드래곤들은 허공에서 크게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칸, 카니!”
놀란 로이스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순간, 쌍둥이의 육신이 두둥실 떠올랐다.
로이스가 서둘러 둘에게 다가갔다.
“으어어…….”
“주, 주, 주, 죽는 줄 알았어.”
“엄마, 아빠… 미안해요…….”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살짝 동공이 풀려 중얼거리는 둘의 모습에 로이스는 피식거렸다.
‘다행이네.’
혹여 자신이 늦은 게 아닐까.
쌍둥이의 존재가 이미 지워진 게 아닐까 싶었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더욱 잘 버텨 낸 것이다.
아니, 이 정도면 어둠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원래 단순 무식한 것들이어서 그런가?’
그렇게 살짝 안도하고 나니 로이스의 사고가 자신의 상태에 미쳤다.
그와 함께 로이스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하하, 하하하.”
그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드래곤의 전통이라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은화성에서 받은 속성 판별.
하지만 그건 단순한 전통이 아니었다.
그건 영재교육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막 속성력을 품을 드래곤에게 근원의 씨앗을 나눠 주다니… 하여간 이 드래곤들의 사고방식은 미쳐 돌아가는구나.’
세상의 법칙과 직결되는 속성의 근원.
아주 작은 티끌만 한 씨앗에 불과하지만 오랜 시간 그 근원을 품고 있는 드래곤들은 나이를 먹어 가며 자연스럽게 근원을 키워 나가게 된다.
그렇게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근원이 발아하고 이를 통해 고룡급에 이르러 제로의 경지에 손쉽게 도달하는 것이었다.
누대에 걸쳐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용족,
오로지 속성별로 제로급 경지를 보유한 드래곤이기에.
그리고 근원을 품을 수 있는 최강의 영구 기관인 드래곤 하트를 가진 드래곤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이러니 그 어떤 종족이 날고 기어도 드래곤을 이길 수 없는 거겠지.’
로이스는 드래곤의 단순 무식한 영재교육에, 그리고 그 영재교육의 무시무시한 효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하, 드래곤으로 태어난 게 너무 행복해 미치겠네. 하하하!”
그렇게 로이스는 너무도 후련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쌍둥이가 로이스를 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로이도 많이 힘들었나 봐……”
“정신 차려, 로이…….”
쌍둥이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으며 로이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없는 건가?’
암흑 속에서 나온 순간 곧장 광룡의 존재를 탐색해 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놈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로의 경지에 오르며 확장된 감각에도 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튀었네.”
어둠이 놈의 권역이다 보니 분명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변화를 말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추가 공격을 하지 않은 거지?’
자신이 제로의 경지에 들기 전, 놈이 자신과 쌍둥이를 끝장내고자 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걸 그냥 두고만 보다가 결국 도망을 쳤다고?’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놈도 정상은 아니었던 거다.’
아무리 신적인 존재,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작가라 하여도 한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네.’
비록 지금 자신이 제로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많은 게 미흡했다.
근원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주 살짝 맛만 본 것과 같은 상태.
근원이란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어떤 식으로 맛을 낼지는 차근차근 궁리를 해 봐야 할 문제였다.
‘결국은 시간인가…….’
근원에 대한 이해도를 쌓아 가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다만 문제는 놈도 자신이 제로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놈은 자신을 죽일 더욱더 확실한 방책을 마련해 되돌아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그동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놈과 나는 양립할 수 없어.’
철수 88, 놈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수88을 없애거나 놈이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죽거나 놈이 죽거나.
앞에 놓인 건 그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고 로이스는 절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다.’
생존을 위해서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전력을 키워야 해.’
자신과 쌍둥이만으로는 더 강해져서 찾아올 광룡을 대적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 함께 싸워 줄 동료들이 필요했다.
‘쌍둥이 말고 고룡급 드래곤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원작에서 광룡이 미쳐 날뛸 때도.
지상이 파괴되어 감에도 원작에서 다른 드래곤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한데…….’
다른 드래곤들이 인간계에 개입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 로이스는 다른 동료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예전부터 침을 발라 둔, 제법 공을 들여 키워 낸 전(前) 드래곤 슬레이어 파티의 주인공들이 있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애들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전(前) 드래곤 슬레이어 파티의 주인공들을 광룡 잡이에 끌어들이기 전에 대놓고 까발려진 정체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음…….”
난감한 상황에 로이스가 볼을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