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프렌체 제국 (3)
프렌체의 수호룡.
그 존재가 역사서에 처음 언급된 것은 파브로 대왕 시절이었다.
[머지않은 미래, 언젠가 그분이 돌아와 나에게 내준 숙제를 확인하실 것이다.]파브로 대왕이 말한 ‘그분’이란 존재.
모두가 이를 궁금해했었다.
위대한 정복자이자 영웅인 그가 ‘그분’이라 칭하는 이가 누구일지.
파브로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이 누구일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그가 만들어 낸 석상.
늘 만들어 지니고 있던 나무 조각상.
그리고 파브로가 남긴 백룡환까지.
그 모든 게 ‘그분’이 드래곤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파브로 대왕을 이 땅에 보낸 존재가 드래곤이 아닐까?’
하지만 드래곤이 실재함을 어느 누가 믿었겠는가.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수호룡의 존재는 그저 소문에 불과했다.
그런 소문이 구체적인 형체를 띠게 된 것은 파브로가 떠난 이후였다.
그가 떠난 후, 수십 년이 흘러.
마침내 여름 대륙을 완전히 정복하고 최초의 정복 황제로 이름을 올린 파브로의 아들.
그가 죽기 직전 후손들을 모아 놓고 입을 열었다.
[선왕께서는 어린 나를 앉혀 놓고 늘 말씀하셨다. 현재의 당신께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위대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셨지.]위대한 존재.
그것은 흔히 드래곤을 나타내는 칭호나 다름없었다.
[위대한 존재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하였으니… 너희는 그분의 존재를 잊지 말도록 하여라, 반드시.]그 말을 끝으로 최초의 통일 황제는 눈을 감았다.
이는 파브로의 아비가 그랬듯 파브로 역시 드워프의 피를 이은 아들에게 한 경고일 뿐이었다.
하지만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
파브로의 아들은 보다 정확한 내용을 후대에 전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남긴 유언은 경고가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말았으니.
늘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짓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의미가 그분께서 늘 우리를 지켜보며 보우하신다고 말이다.
이에 최초로 대륙을 통일하며 뭔가 상징성이 필요했던 프렌체 제국의 황족들은 곧장 수호룡의 존재를 대외에 공표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안의 백룡은 프렌체 제국의 수호룡이 되어 황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황족은 물론 프렌체 제국의 귀족들 역시 수호룡의 존재를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다.
드래곤이란 전설 속의 존재.
아무리 황제의 유언일지라도 이를 어찌 사실로 믿을 수 있겠는가.
몇몇, 나이 많은 이들만이 수호룡의 존재를 믿을 뿐이었다.
이반 콴 프렌체.
당대의 황제인 그의 경우 전자에 속했다.
프렌체의 수호룡.
이반은 그 존재가 통일을 이룬 지 얼마 안 된 당시의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용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여겨 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각이.
본능이 보내오는 경고가 알려 주고 있었다.
수호룡의 존재가 사실이라고!
살짝 넋이 나간 듯한 황제의 얼굴을 보며 로이스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스스슥-.
로이스의 육신이 흰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동시에 백사장의 모래가 움직이며 원래의 형태를 되찾아 갔다.
황궁의 고급스러운 바닥.
내벽과 천장.
그리고 그 안에 자리했던 모든 사람.
이를 홀린 듯 보고 있던 황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뒤였다.
“폐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황제는 손을 들어 올렸다.
부르르-.
잘게 떨려 오는 손.
마치 미몽에서 깨어난 듯 머리가 멍했지만, 육신은 그가 겪은 일이 거짓이 아니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때 황제의 곁에 있던 귀족이 놀라 소리쳤다.
“사, 상처가?!”
그 말에 황제는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그러자 느껴지는 축축함.
아릿한 고통과 피의 촉감이 황제에게 확신을 주었다.
“내가 얼마나 자리를 비웠던 게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내가 얼마 동안 사라졌었냐 말이다.”
“사, 사라지시지 않았사옵니다.”
“사라지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계속 그 자리에 계셨사옵니다.”
황제 이반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그의 귓속으로 로이스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허수 공간은 멈춰진 세계. 그곳에서 몇 년을 지내도 현계의 시간은 흐르지 않지.]귓가에 울리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황제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
[그럼 소감을 들어 볼까? 너는 진실을 직시했을까?]그의 반응에 옆에 있던 귀족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다 여전히 피가 흐르는 황제의 얼굴을 보고 소리쳤다.
“당장 치료사를 불러라!”
“되었다.”
“폐하,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심이…….”
“별거 아니다.”
그리 말한 황제가 손을 들었다.
“병력을 물려라.”
“예? 위험하옵니다!”
“언제부터 내가 두 번을 말하게 되었지?”
싸늘한 목소리에 귀족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이내 황제를 둘러싸고 있던 인의 장벽이 걷혔다.
그리고.
저벅-.
황제가 걸음을 내디뎠다.
“……?!”
황제의 행동에 놀란 이들이 눈을 크게 떴지만 그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저벅-.
걸음을 옮겨 단상을 내려가는 황제.
곧 그와 로이스가 마주했다.
혹여 사고라도 생길까, 황제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황제를 살폈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아주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이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프렌체의 황제.
여름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일견 어려 보이는 백발의 청년을 향해 존대하는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얼마든지 또 시켜 줄 테니 말만 하라고.”
그 젊은 청년이 황제를 향해 하대를 한 것이며.
“기꺼이 그리하지요.”
황제도 아무렇지 않게 이를 받아들인 점이었다.
‘드워프의 피에 얽힌 죄가 무섭긴 무섭구나.’
이미 희박해질 대로 희박해진 드워프의 피조차 그 본능을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비록 그 효과가 일반적인 드워프, 혹은 파브로에 비해 미비하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로이스가 속으로 그리 흐뭇해하는 사이 황제는 로이스를 지나쳐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파브로의 앞에 선 황제.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춰라!”
짧은 명령이었지만, 만인지상의 명에 대전에 자리한 모두가 곧장 한쪽 무릎을 꿇었다.
로이스 일행을 제외하고 말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는 로이스 일행.
그사이 황제의 외침이 계속됐다.
“졸탄!”
황제의 부름에 졸탄 자작이 큰 목소리로 답했다.
“하명하소서!”
“통일제를 미뤄라.”
“……?!”
“위대한 정복자이자 구국(救國)의 영웅께서 오랜 여행 끝에 돌아오셨다.”
이를 들은 이들의 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황제의 선언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눈앞의 거구의 사내를 파브로 대왕으로 인정한다는 소리였다.
“이번 통일제는 후인으로서… 선조님께서 이룩하신 성과를 보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크고 화려하게 준비하라!”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졸탄 자작이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 말한 황제는 파브로를 돌아보며 물었다.
“참석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허허, 얼마든지 그리하마.”
마침내 온전히 인정을 받게 된 파브로.
그는 자신의 후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 * *
황제의 선언 이후 로이스 일행에 대한 처우는 극명하게 달라졌다.
정체 모를 이상한 놈들에서 귀환한 정복왕과 그의 일행으로.
그들은 귀빈 중의 귀빈이 되었다.
덕분에 신난 것은 불꽃 남매와 라비나였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무슨! 방 하나에 우리 집 10개는 들어가겠다!”
“이, 이거 앉아도 되는 의자지? 맙소사! 여기 들어간 보석이 대체 몇 개야?!”
로이스를 따라다니며 제법 많은 경험을 해 보았다고 여겼던 불꽃 남매.
그리고 나름 귀족이라는 자부심이 있던 라비나.
그들 모두 상식 밖의 압도적인 화려함에 정신이 쏙 빠진 듯 보였다.
그사이 파브로는 로이스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
“어떻게 하셨기에 상황이 그렇게…….”
들어오자마자 아리아나와 침대에서 장난을 치고 있던 로이스는 피식거리며 답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비(非)폭력적으로 잘한 거지.”
“…….”
“내가 원래 이런 드래곤이야! 평화를 사랑하는!”
“아, 예, 그러시군요.”
건성으로 답하던 파브로가 다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아니, 그건 지금까지 파브로가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로이스 님.”
“왜 또.”
“그래서 전 여기 왜 온 겁니까?”
그랬다.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겨울 대륙에서 나름의 여유를 즐기던 파브로.
얼떨결에 봄 대륙으로 끌려오고.
얼떨결에 숙제니 뭐니 하며 여름 대륙까지 끌려왔다.
그는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 불려 왔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이에 로이스가 킬킬거리며 답했다.
“에이, 급할 거 뭐 있어? 그건 차차 설명해 줄게. 오늘은 좀 쉬자. 우리 아리아나 맘마도 먹여야 하고. 우리 아리 배고프지?”
“오빠, 나 졸려…….”
“안 돼. 맘마 먹고 자자. 핀, 바로 준비해.”
“네!”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이 한 개고생이 누군가의 이유식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되었으니 파브로의 마음 한쪽에서 허탈함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부질없구나…….’
정복왕이니 통일 제국의 황족이니.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한가.
로이스에게는 동네 옆집 강아지 별명과도 같은 것을.
“싫어! 밥 먹기 싫어!”
“너, 거기 안 서?!”
밥 먹기 싫다며 도망치는 아리아나와 숟가락을 들고 쫓는 로이스.
그리고 거기에 합류해 방방 뛰어다니는 쌍둥이.
여기저기 구경하기 바쁜 불꽃 남매와 라비나까지.
“…….”
불과 몇 시간 만에 너무도 달라진 주변 환경에 파브로는 이 모든 것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겨울 대륙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오전까지 누리던 여유가 그리워 서글퍼진 파브로였다.
“잡았다, 요 녀석!”
아등바등하는 아리아나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아 든 로이스.
꺄르륵-.
즐겁게 꺄륵거리는 아리아나를 안아 들고 이유식을 먹이려는 찰나.
똑똑-.
난데없이 들려온 노크 소리.
다만 문제는 소리가 들려온 곳에 있었다.
원래라면 문에서 들려왔어야 할 소리가 창문에서 들려온 것.
모두의 시선이 문짝만 한 창문으로 돌아갔다.
“어?”
그와 동시에 그들은 창문 너머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하고 안색을 굳혔다.
‘어, 어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노크 소리를 듣기 전까지… 있는지도 몰랐어!’
비록 방이 넓다고 해도 창문과의 거리는 10m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1티어에 이른 이들이 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그 존재를 인지한 것이다.
이에 불꽃 남매와 라비나, 파브로가 다급하게 기세를 끌어올렸다.
곧 큼지막한 창문이 열리고.
드륵-.
문밖에 서 있던 사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발을 내디뎠다.
턱-.
검은 머리, 검은 눈.
그는 무척이나 무표정하고 냉담해 보이는 얼굴을 한 미남이었다.
“누구냐!”
난데없는 괴한의 침입에 켄드릭이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와 함께 사내의 냉랭한 시선이 실내를 삭 훑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괴한의 시선이 잠시 파브로에게 머물렀을 때.
“어흑!”
파브로는 강한 오한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렇게 실내를 쭉 훑던 사내의 시선이 로이스와 아리아나에게 닿는 순간.
“후후후.”
사내의 입꼬리가 푸들푸들 떨려 오고.
“아드으으을! 따아아아알!”
냉막하던 인상이 여름날에 얼음이 녹듯 빠르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로이스와 아리아나는 자신들을 향해 양팔을 벌려 뛰어오는 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부지?”
“아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