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은화성 (2)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로이스가 눈을 끔뻑였다.
‘…은화성의 비밀?’
로이스는 저들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원로직을 제안하기 위함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난데없이 은화성의 비밀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로이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은화성이 뭐였지?’
원작에서조차 은화성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았다.
그저 은색 꽃을 닮은 성이라 은화성이라 부르며 드래곤의 성지라고 일컬을 뿐.
은화성의 설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의심이 갔다.
‘이거 어째 느낌이 싸한데……?’
촉이 왔다.
저 비밀을 듣는 순간 무언가 엮이게 될 거 같다고.
누구보다 제 보신(保身)에 진심인 로이스이기에 느낄 수 있는 촉이었다.
자신의 느낌을 믿은 그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그거, 꼭 들어야 하는 건가요?”
“…….”
로이스의 물음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뒤, 산드라 원로가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그 말과 함께 빛이 퍼지며 고룡이 누워 있던 자리에 한 노파가 나타났다.
참으로 곱게 늙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단정한 백발, 입과 눈 주위에 은은하게 잡힌 주름.
노인답지 않게 쫙 펴진 허리.
도무지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원로라고 생각되지 않을 모습.
산드라가 로이스를 향해 걸어왔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말고는 너의 선택이란다.”
“정말요?”
“그렇단다.”
“…혹시 이 자리에 불려 온 다른 제로급 드래곤들은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그들은 모두 듣기를 선택했지.”
노파는 로이스를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보냈다.
이에 로이스는 흠칫했다.
그는 잠시 멈춰서 산드라 원로의 뒤에 있는 다른 원로들을 살폈다.
토 속성의 원로 요체프.
정신 속성의 원로 오딜리아.
화 속성의 원로 마티어스.
다른 원로들은 다 어디 가고 저들만 남아 있는 걸까?
거기다 은화성의 비밀?
안 그래도 찝찝하던 로이스의 마음에 의구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단 말이지?’
결단을 내린 로이스가 원로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전 듣지 않겠습니다.”
“…….”
“저 이만 가 봐도 되는 거죠?”
그러고는 정말 가려는 듯 몸을 돌린 로이스.
그때 정신 속성의 원로 오딜리아가 외쳤다.
[자, 잠깐!]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로이스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그와 동시에 로이스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역시 뭔가 있었어.’
하지만 그런 표정도 다시금 뒤돌아서며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왜 그러세요?”
[그… 무, 물론 듣고 안 듣고는 너의 선택이다만은 이거는 꼭 들었으면 하는 거란다.]“에이, 선택이라면서요? 그럼 안 들어도 되는 거잖아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오딜리아.
이를 보며 로이스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 순간 원로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잠시 침묵이 감돌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산드라가 돌변했다.
“칫, 하여튼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조금 전까지 온화하고 자애롭던 그녀는 매우 삐딱하고 불량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의 뒤로 다른 고룡들이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아니, 오딜리아, 거기서 왜 애를 불러 세우나!] [그럼 진짜로 가려 하는데 그냥 보내자고?] [오늘 보내고 다시 대책을 세우고 불렀으면 됐지!] [안 오면! 그때 가서도 안 오면 마티어스 네가 책임질 거야?!] […….]눈에서 불을 뿜어내는 오딜리아의 반응에 마티어스가 날개를 움찔 떨었다.
[자연 속성인 네놈들은 그래도 후임이 나타나지만, 우리 비자연 속성은 안 그렇다는 걸 왜 몰라? 지금 내 후임이 안 들어온 지 올해로 3천 년째라고!] [커흠!] [우리 로이스가 무려 비자연 속성만 4개다, 4개! 공간 속성도 제로급에 올랐는데 정신 속성이라고 못 오를 리 없잖아? 그런 인재를 놓쳐?] [거, 언제 봤다고 우리 로이스라고…….] [공간 속성이 제로에 오른 순간부터 로이스는 우리 비자연속성 드래곤의 보물이다, 이거야!]언성을 높이는 고룡들을 본 로이스는 킥킥거렸다.
‘그래 이거지.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로이스는 자신이 느낀 이상함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애?
친절?
그건 자신이 알고 있는 드래곤들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드래곤은 매우 괴팍했다.
물론 아닌 이들도 있지만, 드래곤들의 성향이 기본적으로 괴팍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 드래곤이, 그것도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이 자애롭고 친절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마도 자신을 엮기 위해 저들끼리 무언가를 꾸민 모양인데…….
‘너무 티가 나잖아?’
그렇게 낄낄거린 로이스가 여전히 싸우고 있는 원로들을 향해 말했다.
“아,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럼 마저들 싸우세요.”
손을 휘휘 내저은 로이스가 다시 등을 돌리려는 찰나.
“멈춰 봐라.”
이번에 로이스를 붙잡은 건 산드라였다.
로이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산드라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냐?”
매우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작전이 실패했으니 이제 거래를 제안하고 있는 거였다.
“음…….”
로이스는 고민했다.
‘은화성의 비밀이라… 궁금하기는 한데 말이지.’
그렇다고 괜히 코 꿰이는 짓을 하기는 싫었다.
잠시 고민하던 로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저에게 선택권을 주시죠.”
“…선택권?”
“원로님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강제가 아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의미입니다.”
로이스의 당당한 이야기에 원로들은 침묵했다.
그러다가 산드라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넌 제 나이답지 않은 구석이 있었지.”
산드라의 투덜거림에도 로이스는 별말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거라.”
“감사합니다.”
“이제 와서 인사는 무슨.”
짧게 손사래를 친 그녀가 원로들을 향해 외쳤다.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마.”
[그렇게 하시오.] [저도 찬성요.] [그래 주신다면 저야 좋지요.]원로들이 승낙하자 산드라가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따라오거라.”
로이스는 흥미로운 얼굴로 산드라의 뒤를 쫓았다.
아무런 말 없이 걸어 나가는 로이스와 산드라.
둘의 발소리가 은화성에 울리고.
도각 도닥-.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이동이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로이스가 물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산드라는 뜬금없이 질문으로 답했다.
“선족이란 말은 들어 보았느냐?”
“예?”
고개를 갸웃거린 로이스.
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들어는 보았습니다.”
“호오? 그래? 쉬이 들을 수 없는 명칭인데?”
“어쩌다 보니…….”
“그럼 선마대전에 관해서도 알고 있느냐?”
“…….”
연이어진 질문에 로이스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갑자기 웬 선마대전?’
하지만 산드라가 이를 괜히 물어보는 것은 아닐 터.
로이스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선마대전이라…….’
선마대전, 혹은 선마전쟁.
사실 로이스는 그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영웅왕 발렌트시아가 남겨 놓은 기록뿐.
때문에 로이스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별로 아는 건 없습니다. 그저 선족과 마족이 현계를 놓고 다퉜고, 저희 드래곤들이 현계의 종족들을 이끌어 선족과 마족을 몰아냈다는 정도……?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건 어디서 들었지?”
“예전… 선마대전 시대에 살았던 인간이 남긴 기록에서 보았습니다.”
“그런 기록이 아직 현계에 남아 있었다고?”
살짝 놀라는 듯한 산드라.
선두에 있는 그녀의 발걸음이 느려지자 로이스의 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드래곤이 현계의 종족을 이끌고 선족과 마족을 몰아냈다라…….”
홀로 작게 중얼거리는 산드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를 본 로이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사실이 아닙니까?”
산드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맞는 말이다. 우리 드래곤들이 현계를 이끌고 두 종족을 몰아냈지.”
“하면 왜……?”
산드라의 입가에 걸린 씁쓸한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아이야.”
“예?”
“어지르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는 게 아니란다.”
“……?”
“당시 우리 드래곤들이 전장의 선봉에 서서 선족과 마족을 상대한 건… 두 종족을 현계에 풀어 놓은 게 바로 우리 드래곤들이었기 때문이란다.”
“……?!”
로이스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로이스가 놀라 멈춰 서니 산드라도 멈췄다.
그녀는 로이스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선족과 마족을 현계에 풀어 놓은게… 드래곤이었다고요?”
로이스의 물음에 산드라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각- 도각-.
조용히 그녀의 뒤를 쫓는 로이스.
“그래, 그랬지.”
그렇게 운을 뗀 산드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기록조차 남지 않은 아득한 과거.
그 시절부터 드래곤들이 숨겨 온 이야기가.
“모든 건 로트베리어 때문이었단다.”
최악의 드래곤, 로트베리어.
그가 태어난 시기는 드래곤의 역사에도 쉬이 기록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이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초대 드래곤 로드인 카이더스의 통치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공간과 빛, 암.
총 3개의 속성을 타고나 최강의 드래곤이라 불리던 카이더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시간, 화, 암의 3중 속성을 타고난 로트베리어.
로이스가 태어나기 전까지 드래곤 역사에 다시 나타나지 않은 3중 속성의 드래곤이 동시대에 태어난 것이다.
또한, 로트베리어가 처음부터 최악의 드래곤이라 불린 것은 아니었다.
3중 속성을 타고난 로트베리어는 카이더스의 뒤를 이를 용왕의 재목이라 칭해졌다.
하지만 그런 로트베리어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 가지 의문을 품으면서였다.
당시 드래곤들은 현계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세상을 관조하는 존재였다.
그것은 당대의 용왕인 카이더스의 뜻이기도 했다.
로트베리어는 바로 그런 카이더스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나는 이대로 늙어 죽을 생각이 없다. 세상을 지배할 힘이 있다만… 응당 그리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카이더스의 뜻에 정면으로 반기를 품었다.
[이 세상은 우리 드래곤이 지배해야 함이 마땅하다!]이후 로트베리어는 천천히,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힘을 길렀다.
비록 그 역시 3중 속성을 타고난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이미 고룡의 반열에 든 카이더스를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때가 되었다.]자신이 지닌 3개의 속성을 전부 제로의 경지로 끌어올린 로트베리어.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한 몇몇 드래곤과 함께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인간을 포함한 각종 이종족의 나라를 점령하고 제 뜻에 반하는 이를 죽였다.
힘으로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에 굴복시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전 대륙이 피로 물들고, 세상은 빠르게 로트베리어에 의해 무너져 갔다.
현재까지도 최악의 용이라 불리는 로트베리어의 악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