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원로 (2)
산드라의 물음에 로이스는 생각에 잠겼다.
‘원로직이라…….’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결론은 원로직 권유였다.
다만 평소 로이스가 생각하던 원로직과는 조금 무게감이 다르기는 했다.
용족의 원로란 단순히 일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게 아닌 현계 전체의 위험까지 생각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가 가벼운 자리겠는가.
“저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뭐?”
산드라가 멍한 얼굴로 답했다.
이에 로이스는 배시시 웃었다.
“제게 선택할 권리를 달라고 했지, 언제 선택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
“그리고 저 이제 막 성룡 됐습니다. 한창 즐길 나이에 원로 자리에 끌려와서 청춘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선택을 미루고 싶네요. 아주 오오오래애애!”
당돌한 로이스의 말에 여전히 멍하니 있던 산드라는 기어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하하, 고 녀석……. 내 제법 오래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녀석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만… 너 같은 녀석은 또 처음이구나.”
“그런가요?”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처음 제로에 올라서 일족의 비사를 들으면 그래도 마지못해 원로직을 선택하는데 말이지. 후후.”
자글자글 주름진 눈웃음.
그녀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작게 말했다.
“내 좋은 걸 하나 알려 주마.”
“네?”
“원로란 자리가 원래 좀 바쁜 자리이기는 하다만… 특히 공간 속성의 원로는 다른 원로들보다 더 바쁘단다.”
“왜요?”
“마해에 있는 마혈을 관리하는 게 공간 속성의 원로거든. 비록 은화성보다야 크게 신경 쓸 게 없다만은 거기도 틈틈이 손을 봐 줘야 한단다. 그리고 그 일은 제로급에 오른 공간 속성 드래곤만 할 수 있지.”
“아하!”
마치 중요한 비밀을 알려 준다는 듯한 속삭임.
이에 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니까… 이건 나보고 최대한 늦게 오라는 뜻이겠지?’
로이스가 알았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산드라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후후후, 바로터스 녀석이 후임이 왔다고 그리 좋아했었는데… 아마 오늘 일을 들으면 바로 울상으로 변하겠구나. 그 녀석도 3천 년 동안 후임이 없었는데 말이지.”
그 말에 로이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재수 없었으면 바로 코 꿰일 뻔했네.’
바로터스가 그랬듯 자신이라고 3천 년 동안 후임이 안 나타나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로이스는 오늘 자신이 한 선택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산드라는 그런 로이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자, 그럼 젊은 드래곤아, 가서 청춘을 즐기다 오거라.”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막 인사를 하고 떠나려던 로이스가 움찔 멈춰 서더니 뒤돌아서며 물었다.
“아, 산드라 원로님.”
“왜 그러느냐?”
“혹시 근래에… 수상한 드래곤에 관한 정보 같은 거 안 들어왔습니까?”
“수상한 드래곤? 내 살면서 그것보다 더 이상한 호칭을 가진 드래곤은 처음 들어본다만?”
“그 왜, 호적에도 올라오지 않은 드래곤 같은 거 말이에요.”
“드래곤에게 호적이란 게 있던가?”
“…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게냐?”
“그냥요…….”
차마 ‘이 세상을 창조한 작가란 놈이 이상한 드래곤 한 마리를 만들어 세상에 풀어 놓았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로이스는 그냥 말을 얼버무렸다.
산드라는 그런 로이스를 싱거운 녀석이라는 듯 바라보았다.
그렇게 다시 떠나갈 듯 보이던 로이스.
“아, 맞다!”
그가 다시 멈춰 서며 물었다.
“저기요, 원로님.”
“아직도 안 간 게야?”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뭐냐?”
“…로트베리어의 최후는 어땠습니까?”
“글쎄다… 내가 그걸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어찌 알까. 다한 전해지는 바로는……. 완벽한 소멸이었다고 하더구나.”
“…….”
“당대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이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지. 그러니 너는 부디 올바른 길을 걷거라.”
“…조언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로이스는 산드라에게 깊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산드라가 말없이 로이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저대로 보내도 될까요?”
언제 나타난 것인지 산드라의 곁에 정신 속성의 원로 오딜리아가 서 있었다.
산드라와 마찬가지로 노파의 형상을 한 오딜리아.
그녀의 물음에 산드라가 답했다.
“그럼 어찌할까? 이미 선택권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하지만 4속성을 지니고 타고난 아이입니다. 잠재력만큼은 카이더스 님과 로트베리어를… 뛰어넘었어요. 그런 아이가 로트베리어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필시 로트베리어 때보다 더 큰 환란을 겪게 되리라.
걱정 가득한 오딜리아의 음성에 산드라는 살포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어째서요?”
“남을 아낄 줄 아는 녀석이야.”
“저 녀석이요?”
“로이스는 이기적인 아이다. 하지만 그게 과하지는 않지. 만물을 포용할 그런 성격은 아니지만…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 존재만큼은 아끼고 보듬어 안을 줄 아는 녀석이다.”
“그런가요? 그런데 만약 지킬 존재를 잃게 된다면요? 그때도 저 아이가 변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글쎄다…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
“최소 녀석이 보듬을 존재가 있는 한… 저 아이가 변질할 일은 없을 거 같구나.”
“…그렇군요.”
오딜리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오래 살아온 드래곤, 산드라.
오래 산 세월만큼 혜안을 갖게 된 산드라가 존재의 본질을 잘 꿰뚫어 본다는 것을.
그것만큼은 믿어도 좋다는 것을 말이다.
* * *
한편, 은화성을 나온 로이스.
그는 여름 대륙이 아닌 봄 대륙으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제네로커의 레어.
‘아마도 집에 계시겠지.’
로이스가 은화성으로 떠날 때, 제네로커는 아리아나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었다.
아마 지금쯤 레어에 있을 터.
로이스가 제네로커의 레어로 향한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었다.
그가 은화성으로 가기 전 제네로커가 보인 씁쓸한 미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
턱-.
지면과 10m나 남았을 때, 인간으로 변한 로이스가 가볍게 착지했다.
그는 여유 있는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들어선 레어.
그 안에서 제네로커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벌써 온 거냐?”
아니, 제네로커가 로이스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왔다.
등에 아리아나를 엎고, 포대기를 두른 채 말이다.
“자요?”
“방금 막 잠들었다.”
로이스는 어린 드래곤의 모습으로 제네로커의 등에 업힌 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색- 색-.
곤히 잠든 모습이 천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리아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로이스가 시선을 돌려 제네로커를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로이스가 은화성으로 갈 때와 비슷한, 씁쓸한 미소를 말이다.
제네로커가 로이스에게 물었다.
“다 듣고 온 거지?”
“뭐, 그렇죠.”
로이스의 답을 들은 제네로커의 씁쓸한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이를 본 로이스가 나직이 그를 불렀다.
“아부지.”
“오냐.”
“왜 그렇게 웃으세요?”
“…….”
로이스의 직설적인 물음에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던 제네로커.
그가 피식거리며 답했다.
“왜 웃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뭐가요?”
“아들, 이 아빠가 왜 원로직을 수락했는지 알아?”
“전대 암 속성 원로님이 닦달해서?”
“…그것도 그렇지.”
“용족의 비사를 들으니 투철한 사명감이 솟구쳐서?”
“음…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말이 되는구나.”
로이스의 이야기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제네로커.
“하지만 말이다, 그것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손가락을 뻗어 로이스를 가리켰다.
“너 때문이었다.
“…저요?”
난데없는 이야기에 로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를 본 제네로커가 빙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현계를 지킨다는, 그런 큰 사명감은 없었다. 다만, 우리 아들이 살아갈 이 세상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원로가 되어 뭐라도 해 보고 싶었건만…….”
“…….”
“잘난 아들놈은 이 아빠가 뭘 시도도 해 보기 전에 덜컥 제로의 경지까지 올라 버렸으니, 나 참.”
로이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구나.’
전생 시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그러했다.
아니, 이건 현생이라고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 자식만큼은 좋은 세상에.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길 바라는 마음.
비록 지극히 폐쇄적이며 타 존재에게 무관심한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부모의 마음은 똑같은 것이리라.
‘자식 때문에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광룡 제네로커. 그리고 나를 위해 세상을 지켜보겠다면서 원로가 된 아버지.’
분명 같은 존재였지만, 두 존재의 행보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로이스가 말없이 서 있는 것을 본 제네로커가 익살스러운 미소를 보냈다.
“아들, 아빠한테 감동했어?”
“조금?”
“저, 정말이냐?”
“아, 조금 생겼던 감동이 방금 그 말로 인해 쑥 들어갔습니다.”
로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네로커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런 부친을 본 로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부지.”
“왜, 인석아.”
“특출난 아들은 알아서 잘해 나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로이스의 시선이 제네로커에게 업혀 잠이 든 아리아나를 응시했다.
“아리아나가 살아갈 세상이나 열심히 지켜봐요. 저도 틈틈이 도와 드릴게요.”
“…고맙구나.”
로이스를 바라보는 제네로커의 눈에 대견함이 깃들었다.
그러다가 뭔가 쑥스러움에 그가 다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 바로 갈 거냐?”
그 물음에 로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며칠 여기 있다 갈게요.”
“저, 정말로?”
“네.”
자신을 위해 세상을 지키겠다는 아버지인데, 고작 며칠 같이 있어 주지 못하겠는가.
‘효도하는 셈 치지, 뭐.’
크게 반색하는 제네로커를 보며 로이스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로이스의 잠자리를 손보겠다며 호들갑을 떨던 제네로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아들, 그러고 보니 원로직은 언제부터 승계하는 거냐? 허… 이렇게 되면 할아버지부터 너까지 우리 3대가 같이 원로원에 앉게 되는 건가? 하하, 이것도 드래곤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겠네!”
처음에는 무언가 탐탁지 않아 하던 제네로커도 이제는 자신과 로이스가 같은 ‘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기분에 로이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저 아직 원로직 승계 안 하는데요?”
“……?”
“그냥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답 준다고 했어요.”
“…그게 가능한 거였냐?”
“되던데요?”
“…정말?”
“네, 정말로요.”
로이스의 이야기에 제네로커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곧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고.
“이 망할 영감탱이들이 나한테는 단체로 몰려와서 당장 결정 안 하면 죽여 버린다느니 협박을 해 대더니만……!”
“…….”
“내 진짜 더러워서라도 때려치운다, 퉷!”
제네로커가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는지 이를 바득바득 갈아 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로이스.
‘아부지가 원로직을 승낙한 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험악한 고룡들의 협박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을까?
열 마리가 넘는 제로급 고룡이 자신을 둘러싸고 위압감을 조성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 로이스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