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회귀자 사용법 (1)
켄드릭을 빤히 바라보는 엘비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눈앞의 이 경박한 사내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켄드릭이란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타니아… 그리고 라비나…….’
어째서 죽었어야 할 타니아가 살아 있는지.
또한, 겨울 대륙에 있어야 할 라비나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저들 중 한 명은 타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며, 한 명은 자신이 알고 있는 동료, 라비나 트루건이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가 눈앞의 저 사내가 켄드릭이란 사실에 힘을 실어 주었다.
엘비스의 머릿속도 차츰 정리가 되어 갔고, 더불어 그의 가슴속에서 뭉클한 감정이 치솟았다.
저벅-.
켄드릭에게 바짝 다가선 엘비스.
오랜 전쟁 통에 얻은 훈장과도 같은 상처도.
까칠하게 자라났던 수염조차 없어 매끈한 얼굴.
그러나 찬찬히 뜯어본 그는 분명 자신의 친구가 맞았다.
이를 인정하자 엘비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기어코 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치솟았고.
“…켄드릭!”
엘비스가 켄드릭을 와락 끌어안았다.
“뭐, 뭐야!”
당황한 켄드릭이 소리치며 그를 떼어 놓으려 했지만, 엘비스는 떨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마주한 오랜 친우의 존재는 엘비스를 감정적으로 만들었다.
“떠, 떨어져!”
대낮, 그것도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격하게 포옹을 나누는 둘을 보고 행인들이 수군거렸다.
한편, 켄드릭과 엘비스를 번갈아 보던 라비나.
“뭐야, 설마…….”
그녀의 입꼬리가 실룩이며 음흉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전 애인?”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라비나였다.
그 뒤로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엘비스를 떼어 내는 데 성공한 켄드릭.
그가 후다닥 타니아와 라비나의 뒤로 몸을 숨겼다.
“저, 저, 저 미친놈 뭐야?!”
물론 큰 덩치의 켄드릭이 숨어지겠냐마는, 그는 두 여성을 또 달려들려는 엘비스를 막는 방패로 삼았다.
그사이 눈물을 훔치는 엘비스.
그의 뇌리로 그간의 고생이 스쳐 지나갔다.
‘이날을 위해… 내가 그 모진 시간을 이겨 낸 거구나!’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이후, 단 하루도 순탄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만남으로 인해 그 모든 고생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엘비스.
“켄드릭, 라비나… 나와 함께…….”
그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소리쳤다.
“드래곤을 죽이고 세상을 구하자!”
“…….”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희망으로 가득찬 엘비스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라비나, 타니아, 켄드릭.
그들의 입이 열리며 어이없음이 가득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뭘 죽여?”
“자살 희망자인가?”
“내가 그랬지! 저거 미친놈이라고!”
행여 어떤 귀 밝은 드래곤이 들을세라 셋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엘비스에게서 떨어졌다.
마치 위험한 폭탄을 대하는 듯한 셋의 태도.
덕분에 엘비스는 자신이 성급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가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그래 지금의 난 이들의 친구도 동료도 아니구나…….’
현재의 자신은 그저 길을 가다 마주친 한 사람에 불과했다.
자신의 성급한 태도를 반성하며 엘비스가 어색한 미소를 보냈다.
“아… 저는 엘비스 에스테반이라고 합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엘비스가 최대한 선한 얼굴로 말했지만, 그와 세 사람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과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고 더 경계를 품을 뿐이었다.
당황한 엘비스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다.
“시, 시간 있으십니까?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엘비스의 간절함에도 여전히 경계를 품은 셋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공연히 드래곤을 잡니 마니 하는 이상한 놈이랑 엮였다가 로이스에게 들킨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겠는가.
“가자.”
“그래 튀자.”
“우린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거다.”
지금만큼은 한마음 한뜻이 된 셋이 샤샤샥- 자리를 벗어나 인파 사이로 섞여들었다.
“아…….”
그 모습이 어찌나 일사불란하고 잽싸던지 엘비스는 눈앞에서 그들을 놓치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 *
로이스는 오늘도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근래 들어 로이스는 늘 종적을 감춘 광룡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놈이 어디로 갔을까?’
로이스는 대륙을 오가며 놈에 대해 수소문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놈이 여객선 한 척을 침몰시키고 동쪽으로 날아갔다는 소문뿐이었다.
그것에 기반해 나름 놈의 행적을 좇아 보았지만, 이후로 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숨은 거지?’
드넓은 대륙에 숨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숨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놈이 종적을 감추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뿐.
하지만 광룡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로이스의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했다.
‘켄드릭과 타니아는 순조롭게 탑티어에 들어갔고… 이제 쌍둥이만 제로의 경지에 들어오면 되는 건데.’
지난 반년간 로이스가 중점적으로 시간을 할애한 것은 제로에 오른 공간 속성을 가다듬는 것과 쌍둥이의 수련을 봐주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불꽃 남매가 탑티어에 들면서 묘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인지 쌍둥이도 수련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지금도 쌍둥이는 열심히 서로 치고받으며 수련을 하고 있으리라.
물론 그렇다고 제로의 경지에 쉽사리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로이스는 쌍둥이가 머지않아 제로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여겼다.
‘쌍둥이가 제로의 경지에 도달하면 훨씬 수월하게 놈을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아직 다른 드래곤들에게는 광룡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알릴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은 광룡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설명해야 했다.
별다른 설명이 없음에도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 주는 쌍둥이와 아버지라면 모를까.
과연 거짓된 설명으로 다른 드래곤들에게 광룡의 존재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때문에 현재 로이스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겨울 대륙, 전신의 교단.
가을 대륙, 염원의 탑.
여름 대륙, 프렌체 제국.
10년도 안 되는 짧은 세월 동안 대륙을 횡단하며 엮인 인연으로 이룩한 세력들.
로이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래도 모자라…….”
세력은 세력이고, 광룡을 직접 쳐 낼 전력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성모 아벨과 천궁 제롬, 그리고 해신궁 아테로이제였다.
문제는 여전히 아벨의 행방을 못 찾고 있다는 것뿐.
‘언제까지 놈이 숨죽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찾았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로이스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웅- 웅-.
로이스의 아공간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응?”
그것이 통신석에서 발생한 진동임을 알아차린 로이스가 재빨리 통신석을 꺼내 들었다.
통신석에 마나가 스며들며 곧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반가움이 가득한 제네로커의 목소리에 로이스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왜요.”
[아들은 아빠 안 반가워?]“어제도 봤잖아요.”
[무려 하루나 못 봤잖아!]“네네, 그러시겠죠. 그래서 무슨 일이신데요?”
통신석 너머에서 꿍시렁꿍시렁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 말 없으시면 끊습니다.”
로이스가 바로 칼같이 통신을 차단하려고 하자 제네로커가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할 말 있다, 있어!]“뭔데요.”
[음… 원로원에서 도움 요청이 왔단다. 너한테.]“도움 요청요?”
[그래.]“무슨 일인데요?”
[아무래도 근래 마혈의 결계가 약해지고 있나 보더라.]“그런데요?”
[그래서 바로터스 원로님이 결계 보강 작업을 하시려고 하는데… 그 일에 네 도움을 받고 싶어 하신단다. 지금까지처럼 임시로 보강하는 게 아닌 이번에는 제대로 보강하시겠다고 하시더라.]이후 제네로커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공간 속성의 원로들은 후임이 나타나면 매번 그런 식으로 다음 후임자들과 결계를 보강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해야지 다음 후임이 나타날 때까지 결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아무리 꾸준히 결계를 관리한다고 해도 마모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희귀한 비자연계 속성의 드래곤이 언제 태어나 제로급에 다다를지 모르는 일.
때문에 공간 속성의 원로가 교체되는 시기, 공간 속성의 제로급이 최소 둘 이상 모였을 때에는 결계를 대대적으로 보강하는 작업을 해 왔다.
제네로커의 설명을 들은 로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가야죠.”
비록 자신이 원로는 아니었지만, 다른 공간 속성의 제로급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원로직을 이어받을 것은 확실했다.
미리미리 이것저것 알아 두면 좋은 일이었다.
‘오래전 제로급에 들어선 바로터스 원로님이라면 내가 배울 점도 많겠지.’
거기다 금지로 정해진 마해가 어떤 곳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그렇게 마해로 향하는 것을 잠정 확정 지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거 언제까지 가야 해요?”
[바로터스 원로님이 최대한 빨리 와 달라고 하시던데?]“오래 걸리는 일인가요?”
[내가 알기로는 최소 몇 달은 걸리는 일일걸?]“흠…….”
로이스는 살짝 난감한 얼굴이었다.
아직 성모의 행방도 알아내지 못했건만, 몇 달간이나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생겼다.
거기다 아직 이상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 광룡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
로이스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알겠어요.”
그것으로 제네로커와의 통신은 끝이 났다.
그리고 로이스의 고민이 시작됐다.
‘하필 이 시기에 일이 겹치네.’
최소 성모의 행방과 해신궁이라도 손에 넣었다면 덜 찝찝했을 텐데.
그렇다고 바로터스 원로의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
“하…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네.”
오죽했으면 분신술 성법을 만들어 볼까 생각을 했겠는가.
그렇게 로이스가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
그의 방문 앞이 시끌벅적해지더니 이내 문이 벌컥 열리며 1남 2녀가 들이닥쳤다.
“선생님!”
“로이스 님!”
“다녀왔습니다!”
탑티어에 도달하며 그간 쌓인 수련의 고단함을 풀기라도 하듯 최근 자주 뭉쳐 밖을 싸돌아다니는 불꽃 남매와 라비나.
매일 밖을 싸돌아다니다가 와서 그날 있었던 일을 자신의 앞에 재잘재잘 떠들어 대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었기에 로이스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타니아가 쪼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있잖아요, 이 멍청이가요!”
“야!”
로이스에게 켄드릭이 자해 공갈로 상인을 등쳐 먹은 일을 고스란히 일러바치는 타니아.
이를 들은 로이스는 딱 한마디를 했다.
“잘했네.”
로이스로서는 10골드짜리를 1골드에 샀으니 이보다 잘한 일은 없었다.
매우 훌륭한 흥정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스.
이에 켄드릭이 마치 그것 보라는 듯 타니아를 향해 가슴을 불쑥 내밀었다.
만약 이어진 타니아의 이야기만 없었다면 그렇게 칭찬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저 멍청이가 선생님보고 흠집 날 명성 따위는 있지도 않다고 했는데요?”
“내, 내, 내가 언… 까욱!”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통수를 부여잡고 고꾸라진 켄드릭.
여러모로 오늘 수난을 겪는 켄드릭의 뒤통수였다.
“타니아, 저 새끼가 또 내 욕 하거든 바로 알려라.”
“네!”
활짝 웃으며 답하는 타니아.
그러다가 그녀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오늘 이상한 사람 만났어요.”
“이상한 사람?”
난데없는 소리에 로이스가 눈을 끔벅였다.
그의 물음에 라비나가 답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저를 아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다 더 이상한 건… 그 사람이 켄드릭을 껴안고 울었어요.”
“켄드릭, 너… 그런 취향이었냐?”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켄드릭의 억울하다는 외침을 사뿐히 무시한 로이스.
“그래서?”
“…그게 전부인데요? 아, 그리고…….”
“그리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막 말하려던 라비나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라비나의 시선이 타니아와 마주쳤다.
둘이 눈빛으로 이건 말하지 말자고 묵언의 합의를 봤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는 눈치 없는 이의 입을 막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자식이 저희보고 드래곤 잡으러 가자고 하던데요.”
바닥에 고꾸라져 있던 켄드릭의 뚱한 목소리.
이에 라비나와 타니아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켄드릭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한편, 로이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뭐?”
“막 울다가 저희보고 같이 드래곤을 죽이고 세상을 구하자고 하던데요?”
“…자세히 말해 봐.”
“그게 끝인데요?”
켄드릭의 이야기에 라비나와 타니아가 다급히 첨언을 했다.
“무, 물론 저희는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그 자식이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저희는 그 뒤로 그 미친놈이랑 말도 안 섞고 바로 이리로 왔어요!”
라비나와 타니아가 번갈아 가며 변명을 쫑알거렸지만, 로이스의 심각한 표정은 풀릴 줄 몰았다.
‘설마?’
라비나와 켄드릭을 알아본 낯선 인물.
그리고 뜬금없이 드래곤을 잡자고 제안을 했다?
이에 로이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그놈 이름이… 엘비스 에스테반이라고 안 하던?”
로이스의 물음에 나머지 셋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헙?!”
“어? 어떻게 아셨어요?”
“와… 소름…….”
불꽃 남매와 라비나가 놀라 눈을 끔뻑이는 사이 로이스의 눈빛은 가라앉았다.
‘…놈이 나타났다고?’
안 그래도 에스테반 가문과 엘비스에 관해 알아보았지만, 엘비스의 행적은 묘연했다.
그랬던 그가 나타났다?
그것도 제도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로이스.
‘어라? 가만?’
그의 뇌리로 무언가 스치며 눈이 반짝였다.
로이스가 다급히 되물었다.
“그 자식, 지금 어딨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