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마해 (2)
엘비스를 포함한 일행이 떠난 그날, 로이스는 마해로 향했다.
“여기가 마해…….”
정말 무수히도 마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지만, 직접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이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짙은 안개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야기대로네.’
아무리 시력을 강화해 보아도 안개를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안개라…….’
드래곤들이 만들어 낸 결계이다 보니 일반적인 존재들은 안개 안으로 한 번 발을 들이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리라.
안개를 응시하던 로이스가 품에서 작은 나침반을 꺼냈다.
로이스가 마해로 향하기 직전 은화성으로부터 전달받은 나침반이었다.
결계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마해의 중심으로 향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물이었다.
‘어디 그럼, 마해 구경이나 해 볼까?’
나침반을 쥔 로이스는 거침없이 마해 안으로 몸을 던졌다.
곧 우유처럼 새하얀 안개 속에 들어온 로이스는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네.”
마해의 안개는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욱 심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거기에 묘하게 방향감각까지 어긋났으며 마나의 감각 영역 또한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함을 전해 왔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답답함에 로이스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이 나침반 없이는 쉽게 들락날락할 수 없겠네.’
왜 드래곤들마저 마해를 금기시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실감한 로이스는 소중한 나침반을 꼬옥 감싸 쥐었다.
“흠… 이쪽인가?”
빛으로 만들어진 나침반의 화살이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로이스는 그 방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어?”
마치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시야가 확 트이며 답답하던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해를 둘러싼 안개의 벽이 끝났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에 기뻐하기도 잠시.
“윽…….”
로이스의 인상이 폐부로 전해져 오는 지독한 썩은 내에 확 구겨졌다.
‘뭐야 이 수백 년은 청소하지 않은 듯한 하수구의 냄새는?!’
냄새도 냄새거니와 거기에 섞여 있는 기괴한 기운.
이를 감지한 로이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마기인가?’
일전에 산드라 원로는 말했었다.
선족은 음흉하지만, 마족은 단순 무식하며 거칠다고.
지금 로이스의 감각에 전해지는 기운의 성질이 그러했다.
거칠고 피를 머금은 듯 축축하며 어딘가 모르게 위압감을 풍기는 기운.
지독한 악취와 신경을 건드리는 기운 속에 로이스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개가 사라지고 뻥 뚫린 시야.
분명 시간은 해가 중천에 뜬 오전이었지만, 마해는 침침하고 전반적으로 푸르스름했다.
마치 새벽의 바다로 느껴지는 풍경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니 지평선 위로 솟아 있는 검은 기둥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장 마왕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겠네.’
여기서 천둥·번개만 친다면 영화나 만화 속 마왕성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짧은 감상을 마친 로이스가 다시금 전진해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가까워지는 검은 기둥.
마침내 그 앞에 도달한 로이스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뭐가 이렇게 커?’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로이스도 바다 위로 치솟은 검은 기둥의 압도적인 크기에는 별수 없었다.
‘이건 기둥이 아니라 어지간한 빌딩 수준이잖아?’
더욱이 놀라운 점은 이 기둥이 그냥 단순한 기둥이 아니란 점이었다.
기둥에서 전해지는 친숙한 느낌.
‘공간 속성.’
바로 이 거대한 기둥 자체가 공간 속성의 응집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로이스가 홀린 듯이 기둥을 보고 있을 때.
“크흐흐, 어떠냐? 굉장하지?”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럼에도 로이스는 별반 놀란 기색 없이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염소수염을 한 노인이 공중에 둥둥 떠 있었으니.
로이스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바로터스 원로님.”
현 공간 속성의 원로직을 담당하고 있는 드래곤이자 로이스에게 도움을 요청한 존재.
그는 로이스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인석아,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다.”
“고작 이틀밖에 안 됐는데요?”
“어허! 이틀밖에라니! 이틀씩이나지!”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로이스를 바라보는 흐뭇한 눈빛은 여전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천 년 만에 나타난 공간 속성의 제로급 드래곤이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로이스가 자신의 뒤를 이어 원로가 될 것은 당연지사.
‘대충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직 원로직을 수락하지 않았다지?’
그런 상황에서 괜히 로이스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암! 그렇고말고! 얼마 만에 나타난 후임인데, 녀석이 도망가면 안 되지!’
최대한 잘 구슬려서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자리를 잇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지 자신이 편해지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로이스를 꼬드길 생각으로 가득한 바로터스.
그가 로이스를 향해 손짓했다.
“자, 따라오너라.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 말한 바로터스가 빠른 속도로 기둥의 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다들?’
바로터스가 남긴 말에 잠시 의문을 가졌던 로이스는 이내 바로터스를 쫓아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
탁-.
기둥의 꼭대기에 도착한 로이스.
그는 바로터스가 말한 ‘다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둥의 꼭대기에는 바로터스 이외에도 두 명의 노파가 더 있었으니.
“산드라 원로님? 실비오 원로님?”
시간 속성의 원로 산드라.
풍 속성의 원로 실비오.
그들은 로이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거라.”
“좀 늦었구나.”
이분들이 여기 왜 있냐는 듯한 로이스의 시선에 바로터스가 입을 열었다.
“대강 하는 보강 작업이라면 모를까, 오늘부터 너와 내가 할 보수 작업은 생각보다 꽤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호위를 해 줄 이들을 불렀지.”
“그렇게 위험한 일인가요?”
“결계 보수 작업에 속성력을 때려 부으면 한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거다. 무방비 상태에서 습격을 받는다면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위험하지.”
바로터스의 이야기에 산드라와 실비오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 마해는 너의 생각보다 더 위험한 곳이란다. 흘러나온 마기의 영향을 받아 특이하게 진화한 놈들이 도사리고 있지.”
“특히 왈도란 놈을 조심하거라. 그놈이 덩치는 작긴 해도 얕잡아 볼 놈은 아니거든.”
“…왈도?”
어딘가 익숙한 명칭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로이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왈도!”
“들어 보았느냐?”
“할아버지가 생일 선물이라고 뿔 하나를 주셨는데… 그게 왈도의 뿔이라고 하셨거든요.”
그의 이야기에 산드라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파무스… 이 영감탱이가 애한테 뭘 준거야.”
“자자,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로이스, 준비됐더냐?”
“준비야 늘 되어 있죠. 뭘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할 일은 간단하단다. 그냥 내가 하는 일에 공간 속성을 보태 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간단하네요.”
“클클, 그렇지 간단하지.”
물론 정말로 간단한지 아닌지는 직접 겪어 봐야 아는 거겠지만.
속으로 그리 생각한 바로터스가 빙그레 웃었다.
“자, 시작하마.”
그리 말한 바로터스가 자신의 근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육신을 타고 밑으로 흐르는 공간 속성의 검은 근원.
순식간에 결계와 접촉한 공간 속성의 근원을 보고 로이스도 자신의 근원을 풀어냈다.
그러자 로이스의 근원이 바로터스에게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근원의 연결에 움찔한 로이스가 바로터스를 흘깃거렸다.
‘보태 달라고 하시더니 그냥 쭉쭉 빨아 가시네.’
속으로 투덜거린 로이스는 다시금 집중했다.
바로터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근원을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파악에 나선 로이스.
잠시 뒤, 그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단순 무식해?’
마혈을 막은 공간 속성의 결계.
그건 성법도, 특별한 기교를 부린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공간 속성의 근원을 때려 부어 만든 벽일 뿐.
하지만 그로 인해 그 어떤 성법보다도 순도가 높았고 더욱 단단할 수 있었다.
그제야 로이스는 바로터스가 자신에게 증원을 요청한 이유를 정확히 깨달았다.
‘망할… 난 보조배터리였냐?!’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가는 막대한 양의 공간 속성의 근원.
자신의 존재는 이를 위한 보조배터리였던 것이다.
“자자, 집중해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터이니.”
“…헙?!”
바로터스의 경고대로 지금까지는 약과였다는 듯 근원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로이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근원의 조율에 집중해 나갔다.
그렇게 로이스가 보조배터리로 전락하고 만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허억…….”
로이스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래곤으로 태어난 이래 이 정도로 짙은 탈력감에 빠진 적이 있었던가?’
마치 드래곤 하트가 텅텅 비어 버린 듯한 기분.
더불어 바로터스가 다른 드래곤들에게 보호를 요청한 이유 역시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눈만 감으면 그대로 까무러칠 자신 있다…….’
거칠게 숨을 내쉬는 로이스의 곁으로 바로터스가 걸어왔다.
“어떠냐? 간단하지?”
“…간단하네요. 너무 간단해서 집에 가고 싶어졌어요. 그냥 혼자 하시죠?”
“껄껄, 가긴 어딜 가냐 인석아. 이제 시작인데.”
“…….”
“그리고 너한테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게다.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릇도 커지게 마련. 보수 작업이 끝나고 나면 근원을 다루는 운용력과 총량도 늘어나 있을 거다.”
“…확실해요?”
“아무렴! 나도 그랬거든.”
마치 ‘내가 다 겪어 봐서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 바로터스.
그가 로이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럼 좀 쉬거라. 앞으로 반년 동안 고생해야 할 터이니.”
“아…….”
반년.
이 짓거리를 반년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로이스는 결국 정신 줄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날을 시작으로.
바로터스와 로이스의 보수 작업이 쭈욱 이어졌다.
* * *
바로터스와 로이스가 결계 보강에 매진하고 있는 사이.
스스스-.
마해의 안개 속.
요동치는 어둠의 소용돌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소용돌이 너머로 검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긱- 기긱-.
밖으로 빠져나온 검붉은 기운으로 인해 부하가 걸린 것인지 소용돌이의 회전이 서서히 느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푸확!
소용돌이가 깨져 나가며 밖으로 튀어나온 검붉은 형체.
탄환처럼 솟구친 검붉은 형체는 잠시 허공을 배회하다가 이내 방향을 잡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보수 작업을 가장한 보조배터리 신세로 전락한 지 열흘이 흘렀을 무렵.
로이스는 자신을 관조하며 어이없다는 실소를 흘렸다.
“…이게 진짜 늘긴 느는구나.”
매일매일, 밑바닥까지 근원을 쪽쪽 빨리고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그냥 혹사만 당하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웬걸?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근원의 양이 늘어나 있는 게 아닌가.
‘거기에 순도도 높아지고, 제어 속도도 빨라진 거 같고.’
무언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제 로이스는 이 보조배터리 역할을 즐기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잖아?’
지금도 이 정도로 늘었으니 반년 뒤면 자신의 근원이 얼마나 늘어날지.
그것을 상상하니 이 일에도 제법 재미가 생겨났다.
“허허, 언제까지 퍼질러 있을 셈이냐. 얼른 일어나서 오늘 할당량을 채워야지.”
“네네, 갑니다, 가요.”
자신을 닦달하는 바로터스의 목소리에 로이스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응?”
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것은 바로터스 원로였다.
그의 시선은 안개 벽을 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른 이들의 시선도 움직이며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졌다.
“…오늘 일족 중에 누가 오기로 했던가?”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없었어요.”
산드라와 실비오의 대화가 잠시 오간 사이, 안개 속에서 검붉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위로 솟구치는 동체.
훙- 훙-.
하늘에서 날갯짓을 이어 가며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검은 드래곤을 보며 실비오가 인상을 썼다.
“더럽고 불쾌한 기운이네요.”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일족에 저런 놈이 있었던가?”
검은 드래곤을 바라보며 원로들이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한편, 검은 드래곤을 확인한 로이스의 인상이 확 굳어졌다.
‘저 녀석……!’
어찌 저 녀석을 몰라보겠는가.
자신이 그토록 행방을 궁금해하던 광룡, 혹은 철수88.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날갯짓하며 공중에 떠 있는 철수88을 보며 로이스가 눈을 끔벅거렸다.
‘그간 대체 뭔 짓을 했기에 저렇게 벌크 업이 됐냐?’
검붉은 기운에 휩싸인 광룡은 지난번보다 덩치가 커져 있었다.
거기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기운까지.
훙- 훙-.
로이스와 원로들의 시선 속에 광룡의 육신에 일렁이고 있던 검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내부로 갈무리되었다.
이를 보며 산드라 원로가 물었다.
“누구냐? 이름을 밝히거라.”
하지만 그녀의 외침에도 광룡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로이스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광룡이 살짝 고도를 낮췄고, 그에게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만나고 싶었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로이스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마치 자신을 처음 보는 듯싶은 광룡의 인사말.
그리고.
‘뭐지?’
지금의 목소리는 광룡의 것도, 그렇다고 철수88의 것도 아니었다.
듣기 거북할 정도로 낮고 탁한 음성.
거기에 묘하게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같지만 전혀 다른 존재를 보는 듯한 기분에 로이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이에 로이스가 떠보듯 물었다.
“어디서 목소리를 깔고 지랄이야? 못 본 사이에 감기라도 걸렸냐?”
로이스의 물음에 바로터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는 놈이더냐?”
그 물음에 로이스가 답을 하기도 전.
광룡의 웃음소리가 한발 먼저 들려왔다.
“푸흐흐. 나는 말이다, 예전부터 변수라는 것을 정말 싫어했단다.”
“…….”
“내가 만든 규칙을, 내가 정한 결과를 망쳐 버리는 요소.”
“…대체 뭐라는 거야?”
“그러니…….”
도무지 영문 모를 소리를 해 대는 놈을 보고 로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사라져 줘야겠다. 로트베리어의 변수여.”
광룡의 눈이 번뜩이며 하늘이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