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게이트 (1)
요동치는 하늘.
붉은 눈을 한 흑룡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자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처음은 가볍게 인사부터 주고받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룡의 육신에서 어둠이 뿜어졌다.
삽시간에 풀려나온 어둠은 이내 둥그렇게 뭉치며 로이스와 원로들이 있던 공간으로 쏟아져 내렸다.
콰돠다다다-!
유성비처럼 내리는 검은 구체.
큰 폭음과 함께 구체와 기둥이 충돌하며 검은 어둠의 파편이 먼지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쾅-!
일반적인 존재였다면,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피 곤죽이 되었을 공격.
하지만 공격을 받은 이들도 평범한 이들은 아니었다.
츠팟!
폭격이 쏟아지기도 전 이미 몸을 피한 로이스와 원로들.
그들 역시 상공으로 올라 자신들을 공격한 흑룡을 바라보았다.
“…공격이란 걸 당해 본 게 얼마 만인지.”
“이런 전개는 오랜만이라 조금 신선하네요.”
“예의라고는 태어날 때 어미 배 속에서 버리고 온 놈이더냐! 너, 이름이 뭐야! 뉘 집 자식이야!”
불과 몇 초 전 공격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원로들.
하지만 그런 원로들과는 달리 로이스의 낯은 굳어져 있었다.
‘저놈…….’
처음에는 그저 철수88이 미친 것이리라 여겼다.
그러나 차차 대화를 나눌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후 이어진 결정적인 한마디.
‘로트베리어의 변수?’
왜 갑자기 로트베리어란 이름이 언급된 것인지.
또한, 왜 놈이 자신을 향해 변수라 말하는 것인지.
현재로서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달라진 분위기로 보아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가 철수88이 아니란 것만큼은 확실하다 생각됐다.
“로이스, 아는 놈이더냐?”
다시 돌아온 바로터스 원로의 물음에 로이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굳이 숨기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저 드래곤이 누구인지 자신조차 알 수 없어서 한 말이었다.
‘광룡이든, 철수88이든… 뭐가 됐든 좋아.’
로이스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잘됐다고 여겼다.
현재 이곳에 모인 제로급의 드래곤만 넷이다.
거기다 자신 같은 햇병아리 제로급 드래곤이 아닌, 오랜 시간 원로로 지내 온 고룡들이 포함된 숫자.
‘제 발로 제 무덤을 찾아왔구나.’
저 녀석이 어떤 존재이든 간에 제로급 드래곤 넷에게 덤벼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오늘 여기서… 저놈과의 악연을 끝낸다.’
그리고 로이스에게는 다행으로 다른 원로들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허허, 예의를 모르면 가르쳐 주면 그만이지.”
“일단 흠씬 두들겨 주고 이름이나 들어 보자고요. 뉘 집 자식인지.”
바로터스와 실비오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아무리 세상사와 멀어져 뒷방 늙은이처럼 지내고는 있다지만, 그들 역시 드래곤이다.
그것도 나이를 먹은 만큼 괴팍함이 쌓여 있다는 고룡.
그런 이들이 선제공격을 받았으니 뚜껑이 안 열리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제법 한가락 하는 놈인 거 같으니 다들 조심하게.”
그나마 산드라가 조금 신중한 얼굴로 원로들을 진정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산드라의 노력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클클, 우리 나이가 몇인데 저런 핏덩이에게 당할까?”
“산드라 님은 너무 신중해서 탈이에요.”
“산드라와 로이스는 빠지거라.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터스와 실비오의 육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츠츠-.
허공에서 빛이 뿜어지며 두 마리의 고룡이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현신했다.
이를 본 산드라가 혀를 내둘렀다.
“쯧,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성격이 저 모양이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산드라도 딱히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로이스도 일단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자 고개를 들었다.
‘크다!’
어디서인가 벌크 업을 하고 나타난 흑룡의 육신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들의 덩치는 흑룡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어 보였다.
그런 고룡들이 자신의 앞에서 위압감을 뿜어냄에도 흑룡은 여유로웠다,
“다 떠든 거냐? 기다려 주기 힘들더구나.”
“허허… 이놈이 끝까지.”
“네놈의 애미 애비 이름이 뭐냐! 뉘 집 자식인데 이리도 가정교육을 못 받았을꼬?”
카랑카랑한 실비오의 꾸짖음에 흑룡은 피식거렸다.
“부모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군.”
“후딱 이름 대 봐! 내 네 부모한테 가서 따질 터이니.”
실비오의 재촉에 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 말했다.
“혹 크루엘과 란델이란 이름을 들어 보았느냐? 이 몸을 태어나게 한 존재들이지.”
묻는다고 정말로 알려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에 실비오와 바로터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는 이들인가?”
“아니, 처음 듣습니다만?”
모든 드래곤을 알고 있는 원로들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
이에 바로터스와 실비오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이놈이”
“어디서 거짓말을!”
둘은 광분했지만, 크루엘과 란델이란 이름을 들은 산드라의 얼굴은 살짝 굳어졌다.
“…크루엘? 란델?”
“아시는 이름입니까?”
“아니… 아니다.”
산드라는 살짝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지.’
다시금 시선을 돌려 정체불명의 드래곤을 바라보는 산드라.
그녀의 얼굴에 석연찮음이 가득했다.
그사이 원로들과 대치 중인 흑룡이 말했다.
“너희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저 녀석을 죽여라. 그럼 너희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흑룡의 시선이 정확히 로이스를 향했다.
그 시선에 바로터스와 실비오의 표정이 변했다.
“허…….”
“별 시답잖은…….”
그 전까지는 그래도 약간은 장난기가 있었다면 이제 바로터스와 실비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너무도 살벌했다.
그 같은 반응에 흑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화를 내는 것이지? 난 너희에게 살길을 제안한 것인데?”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푸흐흐… 뭐, 좋다. 고작 그 정도의 안목으로 사리 분별도 할 줄 모르는 놈들이라면 굳이 살려 둘 필요는 없겠지. 자, 오너라. 내 요즘 것들의 실력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으니.”
“요즘 것들?”
“언제까지 멍청하게 서서 주둥이만 놀려 댈 셈이냐? 요즘 것들은 입으로만 싸울 줄 아는 건가? 그래서야 내 일부러 기다려 준 의미가 없지 않더냐?”
계속되는 흑룡의 도발에 실비오의 전신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내, 살다 살다 네놈처럼 정신 나간 놈은 처음이다. 오냐, 아까의 인사는 잘 받았으니 내 인사도 받아 봐라.”
그것으로 더 이상 입으로 하는 대화는 사라졌다.
대신 육체의 대화가 시작됐을 뿐.
우우우우우우-.
풍 속성이 제로급에 이른 고룡의 의지에 대기가 요동치며 기괴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하늘색의 풍 속성이 주변 공간을 장악했고, 뒤따라 바로터스의 공간 속성도 끓어오르며 흑룡을 향해 나아갔다.
이에 맞서 흑룡의 육신에서도 암 속성의 기운이 흘러나왔으니.
치지직-.
초월적인 존재가 품은 세 가지 기운이 맞부딪히는 광경을 보며 로이스는 한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는 뜻.
그 정도로 몹시 놀라운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로이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야말로 순수하게 경천동지란 말에 어울린다는 것을.
쿵-.
각각의 속성을 두른 세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이 맞부딪혔다.
그러자.
콰가가가-.
충돌의 여파로 인해 수 미터 아래 자리한 바닷물이 분지처럼 움푹 파였고, 뒤이어 엄청난 돌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부터다.’
선공은 바로터스였다.
츠컥-.
바로터스의 흑색 기운이 폭사되며 공간을 뒤틀었다.
실비오의 지휘에 따라 수천 개의 바람 칼날이 사방에서 몰아쳤다.
솨아아아-.
아주 잠깐이라도 방심한다면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육신이 갈가리 찢겨 나가리라.
그 정도로 제로급 경지의 드래곤 둘이 펼치는 공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흑룡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에 로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끝나나?’
하지만 그의 예상은 너무도 허망하게 빗나갔다.
공간 자체를 뒤틀어 버리는 힘도.
드래곤의 비늘마저 베어 내는 바람의 예기도.
그 어떤 것도 흑룡의 육신에 손상을 주지 못한 것이다.
모두 흑룡이 두른 암 속성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 광경에 로이스의 안색이 굳어졌다.
‘미친?!’
일전에 상대한 철수88의 광룡도 강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조금 전 바로터스와 실비오의 합공은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쉬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흑룡은 그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긴 것이다.
‘저걸 버텼다고?!’
흑룡의 힘에 놀란 것은 비단 로이스뿐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 자리한 산드라마저 놀라기는 마찬가지.
‘…뭔가 이상하다.’
제로의 경지로 펼치는 공격은 단순한 속성력 공격이 아니었다.
술법, 무법, 심지어 순수한 마나의 공격 그 하나하나에 법칙에 간섭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물론 같은 간섭력을 통해 이를 상쇄할 수는 있겠지만…….
‘저 정도로 깔끔하게 간섭력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는 일인데?’
산드라가 그리 결론을 내린 그때였다.
펑!
갑작스럽게 빛이 번뜩이며 실비오의 가슴을 강타했다.
“캬아아악!”
시뻘건 빛줄기에 얻어맞은 그녀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에 놀란 산드라가 급히 현신하여 실비오를 받아 들었다.
“실비오!”
“윽! 괘, 괜찮아요. 잠깐 방심한 거 뿐이에요.”
고통스러워하는 실비오의 상처를 본 산드라의 얼굴은 굳어졌다.
지글지글-.
실비오의 가슴 비늘이 끓어오르고 있던 것이다.
“이건……?”
어찌 이것을 몰라볼까.
빛을 응집하여 강한 열기를 물리적인 충격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
실비오가 당한 것은 바로 그 기술의 변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 전까지 놈이 사용하던 속성이 암 속성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산드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중 속성?!”
실비오를 부축한 산드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분노하여 날뛰는 바로터스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노오오옴!”
고함을 내지른 바로터스의 몸이 순식간에 넷으로 늘어났다.
다중 공간을 활용한 일시적 분신법.
순식간에 분열된 바로터스는 곧장 흑룡을 포위했고.
츠즈즈즈-.
그의 주둥이에 검은 입자가 모여들었다.
불과 1초 사이에 마나를 모으고 곧장 발사하기 직전 단계까지 온 바로터스의 브레스.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츠컹-.
분열된 바로터스의 분신들에게서 마치 유리에 금이 가듯 실선이 가기 시작한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챵-.
바로터스의 분신들이 완전히 산산이 조각 나며 흩날렸다.
“쿨럭-.”
갑작스럽게 타격을 입은 바로터스는 브레스를 쏘아 보내지 못하고 대신 피를 토해 냈다.
그가 휘청거리는 틈을 타, 바로터스의 머리를 노리고 붉은 광선이 날아들었다.
0.1초의 순간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새하얀 동체가 나타나 바로터스를 안고 사라졌다.
덕분에 붉은 광선은 허공을 꿰뚫고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다.”
자신을 구한 로이스의 물음에 바로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피를 토하기는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역류일 뿐.
육체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터스를 심란하게 만든 건 자신의 기술을 파훼한 놈의 방식이었다.
바로터스가 굳어진 눈으로 흑룡을 바라봤다.
“네놈 어떻게…….”
그리고 굳은 것은 바로터스뿐만이 아니었다.
이는 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공간 속성이었다.’
바로터스의 기술에 간섭하여 파훼한 것은 명백히 공간 속성.
그것은 공간 속성을 다루는 로이스와 바로터스가 확신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놈이 공간 속성마저 다룰 수 있다는 소리.
그 같은 사실에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허공에 둥둥 뜬 네 마리의 드래곤이 홀로 고고히 떠 있는 검은 드래곤을 응시했다.
‘삼중 속성이라고……?’
그들의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산드라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럴 리가…….”
지금까지 흑룡이 보인 속성력은 분명 3가지였다.
한데, 역사를 통틀어 3중 속성을 타고난 드래곤은 단둘뿐이었다.
그들 이후로 탄생한 3중 이상의 드래곤은 로이스뿐.
그건 오랫동안 드래곤의 족보를 관리해 온 산드라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리고 역사를 통틀어 광, 암, 공간 속성을 동시에 타고난 존재는 하나뿐.
그 존재를 떠올린 산드라는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어쩌면 진짜일지 모른다고.
‘…크루엘과 란델.’
아마 대다수 드래곤들은 모르는 이름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름을 가진 드래곤들보다는 그들의 슬하에서 태어난 드래곤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크루엘과 란델의 아들.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를 이리 불렀다.
광·암·공간, 최초로 3중 속성을 타고난 생명체.
위대한 일족을 다스리는 현명한 왕.
넋이 나간 산드라의 입에서 그의 수식언이 흘러나왔고.
“드래곤 로드…….”
이를 이어받은 로이스가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카이더스.”
그리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흑룡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로드를 뵈었으면 예를 취해야지 않겠느냐, 후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