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게이트 (5)
겨울 대륙의 동쪽.
전 세계에서 마해와 가장 인접한 칸부르크 왕국은 대대로 마해로부터 기어 올라오는 마물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 왔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혹한의 방패라 불리는 캘룬 대방벽이 완공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높이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성벽이 마해에서 기어 나오는 마물들의 침입을 원천봉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물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크에엑-.
끼룩-!
“죽여!”
“멈추지 말고 활을 쏴! 어이 거기 신병! 지금 노냐?! 지금 네 군번에 손가락이 보이지?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죄, 죄송합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때때로 마물들이 무리 지어 성벽으로 달려드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캘룬 대방벽은 마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몸살을 앓았다.
정확히는 방벽 수비 당직을 맡은 병사들이 몸살을 앓은 것이지만.
그리고 바로 그런 날 당직에 걸린 백부장 지미는 방벽 아래에서 바둥거리는 마물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이상하군…….”
그의 중얼거림에 옆에 자리한 고참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오늘따라 마물들이 상태가 영 이상한데?”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원래도 저렇지 않았습니까?”
병사의 질문에 백부장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달라. 평소에는 굶주린 짐승처럼 아득바득 달려들더니만…….”
백부장의 시야에 성벽을 박박 긁어 대다가 화살에 머리통이 꿰뚫려 쓰러지는 마물이 들어왔다.
“…오늘은 마치 두려움에 떨며 살려 달라고 달려드는 거 같지 않냐?”
백부장에 나직한 목소리에 병사는 피식거렸다.
“나 참,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 어디 저것들이 두려움이란 걸 아는 놈들입니까? 사람만 보면 침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더러운 놈들이?”
그리 말하며 다시금 활을 날리는 고참 병사.
그 말에 백부장 지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겠지?”
자신이 예민했던 것이라 여긴 지미는 성벽 아래 마물을 향해 활을 겨눴다.
푸슉- 팟!
백부장이 쏜 활에 마물의 머리가 꿰뚫려 쓰러진 순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마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 * *
카이더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난데없이 발생한 이변.
퍼석-.
분명 조금 전까지는 둘이었던 이들 중 하나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그 모습에 카이더스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저건?’
어찌 저 모습을 모를까.
드래곤이 자신이 받았던 모든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며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카이더스는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로이스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카이더스의 시선이 로이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츠팟!
계속해서 놓치지 않고 있던 로이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카이더스의 앞에 나타난 로이스.
“2차전은 제대로 붙어 보자, 미친놈아!”
난데없이 나타난 로이스의 모습에 카이더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찌?!’
이 공간은 자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로이스가 사용한 것은 공간 이동이었다.
카이더스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웅-.
진동음과 함께 로이스의 전신에 자리하고 있던 기갑이 튕겨 나왔다.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 초월기.
그리고.
‘사라졌다?!’
초월기가 잠시 시야를 가린 사이 로이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딨느냐!’
카이더스는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어딜 보냐?”
카이더스의 뒤통수 부근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로이스가 있었다.
이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이미 로이스는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좀… 맞자!”
인간의 모습을 한 로이스가 카이더스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크기만 로이스의 몇 배에 달하는 카이더스의 머리.
이를 향해 내지르는 로이스의 주먹은 흡사 바위를 치는 계란 격이었다.
하지만 로이스의 계란은 좀 달랐다.
빠각-.
둔탁한 타격음.
탄환처럼 튕겨 나가는 카이더스의 머리.
“……?!”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카이더스는 눈알이 튀어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알이 튀어나올 일은 없었다.
로이스가 친절하게 다시 집어넣어 줬으니까.
빠각-.
앞으로 숙여진 카이더스의 머리 좌측에 나타난 로이스가 또다시 주먹을 날렸고.
빠각-.
이번에는 우측.
빠각-.
좌우로 번갈아 흔들리던 카이더스의 머리가 로이스의 올려 차기에 크게 뒤로 젖혀졌다.
덕분에 부서진 이빨이 좌우로 비산했다.
‘이놈이!’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수십 킬로미터를 떨어진 것도 아니고 고작 지척에서 놈의 존재감을 놓치다니.
설사 놈이 공간 이동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놈 설마……!’
그제야 카이더스는 깨달았다.
‘시간 속성을 쓰는구나!’
그와 함께 카이더스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주아주 먼 옛날.
기억 속의 한 장면.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절대 무적을 자랑하던 자신의 영역 지배를 무시하고 달려들던 애송이.
‘로트베리어!’
그 애송이 역시도 시간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자신의 영역 지배를 무시했었다.
그런 그와 로이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 이 이놈이……!”
눈을 부릅뜬 카이더스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파각-.
“크흑!”
다시 한번 올려 차기가 날아들며 그의 입 내부에서 피가 솟구쳤다.
혀를 다친 것이다.
그와 함께 카이더스의 육체가 사라졌고, 로이스의 머리 위로 빛과 어둠이 혼재된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실비오를 단숨에 재로 만들어 버린 그 공격이었다.
한편, 그와 같은 공격을 마주한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보인다.’
로이스가 보는 세상은 일반적인 세상과 달랐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는 세상에 비해 10,000배 느린 세상.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과 어둠의 기운도 너무 느려 하품이 나올 지경.
더욱이 저 멀찍이 나타나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공간과 공간을 넘어 카이더스가 막 다시 나타나고 있는 순간이었다.
일반적이었다면 로이스도 이 느려진 세상 속에 갇혀 몸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드라의 희생을 통해 추가로 얻은 제로급 속성이.
우득-.
로이스 또한 묶여 있어야 할 법칙을 틀었다.
우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는 로이스.
느리지만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세상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빠른 속도였다.
동시에 그의 육신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카이더스가 공간을 넘어 나타나고 있는 장소.
이를 먼저 선점한 로이스는 이내 시간 감속 현상을 풀었고.
쾅-.
복부에 충격을 받은 카이더스가 튕겨 나가자 로이스는 지체하지 않고 따라붙었다.
그 짧은 사이에 카이더스로부터 산탄과도 같은 공격이 로이스를 향해 쏟아졌다.
펑- 펑- 펑-.
하지만 그 모든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내는 로이스.
그 둘의 모습은 도무지 육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흑과 백의 궤적이 맞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폭발음이 들려왔고, 소리가 났을 때는 이미 흑백의 궤적이 멀리 떨어진 뒤였다.
소리조차 둘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쾅-.
카이더스를 몰아치는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산드라 원로님의 생각이 옳았어.’
그녀는 말했었다.
어쩌면 카이더스가 2개의 제로급 속성밖에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
그러니 도박을 한번 해 보자고.
그리고 그런 산드라의 도박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만약 카이더스가 전설처럼 3속성 제로의 경지를 모두 사용했다면,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밀리고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다.’
카이더스가 온전히 제 상태로 돌아가기 전.
이렇게 놈을 몰아칠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가 놈을 끝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리라.
‘네 실수는… 단번에 나를 끝내지 않은 거다.’
쾅- 쾅-.
카이더스와의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로이스의 움직임은 더욱 빠르고 매끄럽게 변해 갔다.
‘아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카이더스가 일전에 말한, 2개의 속성이 제로급에 도달하면 세계의 법칙을 조작할 수 있다는 말.
‘그게 이런 의미였구나.’
1개의 속성이 제로급에 올랐을 때 비로소 세계의 법칙에 간섭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운전으로 치면 조수석에 앉아 운전자에게 말로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과 비슷했다.
방향을 알려 주거나, 신호등을 알려 주는 등의 일 말이다.
‘하지만 조작은…….’
세계에 깊숙이 관여해 법칙을 틀고 조작하는 일.
그건 운전사가 있음에도 차의 핸들에 손을 대는 일이었다.
차의 움직임에 순간순간 관여하는 행위.
‘…이건 위험한 힘이다.’
운전사가 있음에도 핸들에 손을 대는 것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세상 만물, 모든 법칙은 정해진 경로라는 게 있지.’
간섭을 통해 일시적으로 법칙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틀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가고자 하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잠시 벗어났다고 해도 운전사가 다시 방향을 틀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조작의 힘을 사용하면 모든 게 어긋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양날의 검…….’
적절하게 사용하면 간섭력 따위는 무시할 수 있는 강한 힘이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법칙이 크게 틀어져 세상 자체가 망가지는 힘.
이를 깨달은 로이스가 씨익 미소 지었다.
“이 좋은 걸 너만 썼다고?”
그리 외친 로이스의 손에서 거대한 흑검이 생겨났다.
이를 본 카이더스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로이스으으으!”
로이스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왜 불러어어어!”
곧 둘이 서로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백과 흑의 궤적이 허공을 가로질러 맞부딪쳤고.
쾅-.
둘이 격돌한 지점에 무형의 벽이 생겨났다.
로이스의 조작력.
카이더스의 조작력.
둘의 조작력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무형의 뇌전을 피워 올렸다.
치지직-.
둘을 기점으로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고, 빛과 어둠이 초 단위로 번갈아 가며 밤과 낮을 만들어 냈다.
조작력의 격돌로 인해 세상의 법칙이 뒤죽박죽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치지지- 직!
한참을 팽팽하게 맞붙었던 둘.
동등했던 힘의 균형이 어느 순간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힘의 균형에서 우위를 가져간 것은 로이스였다.
우지직-.
로이스의 흑검이 조작력으로 만들어진 무형의 벽을 꿰뚫었고.
콰즉-.
이내 카이더스의 가슴마저 관통했다.
그러자 무형의 벽이 사라졌으며 로이스는 그대로 흑검과 함께 카이더스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콰아아앙-.
흑검에 꿰뚫린 카이더스는 로이스와 바로터스가 보강한 마혈의 결계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탁-.
자신이 만들어 낸 거검에 사뿐히 올라선 로이스는 카이더스를 바라보았다.
쿨럭-.
끊임없이 피를 토해 내는 주둥이.
검은 기둥에 깊숙이 틀어박힌 것도 모자라 가슴이 검에 꿰뚫려 박제된 육체.
카이더스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로이스를 노려보았다.
“끄륵… 2속성의… 제로라…….”
놈의 성장 속도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토록 견제했건만, 기어이 놈이 재능을 꽃피워 낸 것이다.
연신 피거품을 게워 내는 그에게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큭… 크크큭. 아이야… 내 재밌는 사실을… 말해… 줄까?”
“아니.”
로이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또한, 서늘했다.
“난 어떤 병신처럼 적을 두고 기다려 주는 성격이 아니라서.”
“후회… 할 것이… 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이스가 가볍게 손을 좌에서 우로 내저었다.
그리고.
촤아아악-.
카이더스의 목이 베이며 떨어져 나갔다.
이를 바라보는 로이스에게서 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안 해.”
뒈진 놈 말 따위에 내가 후회를 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