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게이트 (6)
육중한 드래곤의 머리가 떨어져 내렸고, 잘린 목의 단면에서는 피 분수가 솟구쳤다.
이를 바라보는 로이스의 눈에 허탈함이 감돌았다.
‘고작 이런 놈에게…….’
실비오, 그리고 산드라.
용족을 이끌던 훌륭한 원로 둘이 당했다.
비록 그들과 큰 접점은 없었다지만 그래도 같은 일족으로서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을 빨리 처리했다는 거네.’
만약 놈의 힘이 온전했다면 이렇게 처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실비오와 산드라의 죽음뿐 아니라 드래곤 일족 전체, 아니, 전 세계가 위험해졌을지도 몰랐다.
‘이제 끝난 건가…….’
로이스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하게 따라다니던 죽음의 그림자.
아마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카이더스가 배후일 것이다.
‘하긴 그 덜떨어진 철수88 놈이 배후라는 게 더 이상하지.’
진즉 생각을 해 봤어야 했다.
이능(異能)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에서.
그것도 평범한 웹툰 작가가 한 일치고는 너무 상식 밖의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끼어들었다면 말이 되지.’
어쩌면 철수88 또한 카이더스에게 이용을 당한 것뿐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이번 사건을 단정 지은 로이스.
한참을 서 있던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응?”
그의 시선이 목이 떨어진 드래곤의 사체에 닿았다.
“…저건 왜 안 없어지냐?”
만약 놈이 죽었다면 사체 역시 작은 입지가 되어 사라졌어야 한다.
산드라가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심장이 꿰뚫리고 목이 잘렸음에도 놈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로이스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이레귤러 같은 존재여서 그런가?’
저 드래곤의 육체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놈의 시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말이 되기는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하냐?’
가슴속에 드는 찝찝함.
이내 로이스는 찝찝함의 원인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 결계는 어째서 안 풀리지?’
이를 깨닫기 무섭게 로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곧바로 손을 휘둘렀다.
스걱- 스걱-.
로이스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카이더스의 육신이 잘려 나갔다.
수십 토막.
아니, 수백 개의 육편으로 갈기갈기 잘린 카이더스.
‘저 상태가 되면 드래곤은 물론 드래곤 할아버지가 와도 살아나는 게 불가능하지.’
로이스는 그제야 안심했다.
그때였다.
[소용없다.]어디선가 들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로이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다급히 기감을 확대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카이더스의 존재감은 잡히지 않았다.
[푸흐흐,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후회할 거라고.]연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로이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응, 그러게… 들을걸.”
그랬다면 최소 그 더러운 면상에 몇 방 더 갈겨 줄 수는 있었을 텐데.
그건 좀 후회된다.
로이스가 속으로 한탄하고 있을 때 다시금 카이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어찌 지금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 볼 테냐? 꽤 재밌을 거다.]“…해 봐. 근데 재미없어도 뒈지고, 재미있어도 뒈진다.”
로이스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언뜻 보기에는 태연한 모습.
하지만 로이스는 빠르게 주변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 새끼, 어딨는 거야?’
일단 시간을 끌면서 카이더스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너는 네가 최초로 4속성을 타고났다고 여기고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미 너 이전에 4속성을 타고난 이가 있었다는 것을 아느냐?]카이더스의 이야기에 로이스의 뇌리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딱 한 존재가 떠올랐으니까.
“…로트베리어?”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그럼 말이다… 그런 로트베리어가 왜 나에게 졌는지 아느냐?]“알아.”
[호오?]“그냥 쎈 놈이 이긴 거지, 뭔 이유가 필요해?”
로이스의 단호한 목소리에 카이더스는 흥미를 보였다.
[큭큭, 크하하하!]한참을 웃어젖힌 카이더스.
그가 말했다.
[참으로 옳은 소리구나! 그래, 강한 놈이 살아남은 거지! 크하하!]“…….”
[너의 말처럼 녀석은 너무 정이 많았고, 그만한 힘을 타고났어도 쓸 줄 몰랐다. 힘 있는 자에게 나약한 심성이란 죄악과 같은 거지.]“흠… 인정하긴 싫지만, 그 점은 동의해.”
[그 나약한 심성이 녀석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 만약 놈이 조금만이라도 독했다면… 그리고 놈이 4개 속성을 모두 제로급으로 끌어올렸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겠지.]“그런데? 그래서? 재밌는 이야기는 언제 들려줄 건데?”
그리 묻는 로이스의 마음속에 짜증이 치솟았다.
‘이놈, 대체 어딨는 거지?’
아무리 탐색 범위를 넓혀 보아도 카이더스의 존재감은 잡혀 들지 않았다.
[이곳을 후대의 아이들은 마혈이라 부른다지?]“그게 재밌는 얘기냐?”
[한데 말이다, 이 마혈을 누가 만들었을까?]“…뭐?”
[나약한 심성을 가진 놈이 과연 이 마혈을 뚫었을까?]“망할… 네놈 짓이었냐?”
로이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산드라가 들려 준 용족의 역사에는 로트베리어가 마혈을 뚫고 드래곤 로드가 이를 막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래서는 앞뒤가 안 맞지.’
역사대로였다면 지금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놈이 로트베리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로이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듯 카이더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크흐흐… 그래, 마혈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로트베리어는 오히려 이를 막으려 했지.]“…….”
[네놈이 살았던 지구에 그런 말이 있지 않으냐.]로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던 자신이 환생했다는 비밀.
카이더스에게 이를 확인받으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역사란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이라고.]그 말을 듣는 순간 로이스는 의문이 생겨났다.
만약 정말 카이더스가 마혈을 뚫은 것이라면…….
‘목적이 뭐였을까?’
남부러운 것 없는, 최강의 드래곤이라 불리던 그가 어째서 마혈을 만든 것일까?
그가 그런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
촤아악-.
마해의 바닷물 속에서 무언가 위로 솟구쳤다.
이를 확인한 로이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거……?!’
하늘로 솟구친 무언가.
그건 바로 자신이 잘라 낸 카이더스의 머리였다.
로이스가 있는 위치까지 올라온 카이더스의 머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것도 모자라 나불거리는 입술.
“시간을 끄는 건 너뿐인 줄 알았더냐?”
로이스가 시간을 끌며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말투.
이어 놈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자 마해에서 여러 파편이 튀어 올랐다.
그 모두가 로이스의 손에 의해 작게 잘린 카이더스의 육신이었다.
상공으로 솟구친 육편들은 이내 머릿밑으로 차곡차곡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퍼즐이 조립되듯 완성되는 카이더스의 육신을 보며 로이스가 다시금 손을 휘둘렀다.
촤르르-.
그럴 때마다 다시금 잘려 나가는 카이더스의 몸.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상하게 카이더스의 육신은 계속해서 새로이 조립되었다.
이를 본 로이스가 이를 악물었다.
‘물리적으로 손상을 줄 수 없다면… 아예 나눠 버리면 그만!’
로이스는 카이더스의 육신을 베어 냈다.
스걱-.
다시금 커다란 덩어리로 나뉜 육신을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하지만.
[헛된 짓이다.]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며 빈 허공에 입자가 만들어지더니 로이스가 아공간에 가둔 카이더스의 육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로이스를 보며 웃었다.
“설사 내 육신을 불태우고, 먼지로 만든다고 하여도… 마혈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얼마든지 살아날 거다.”
“……?!”
그 말에 로이스는 깨달았다.
카이더스가 어째서 마혈을 뚫은 것인지.
로트베리어가 어째서 마혈을 막으려 한 것인지.
‘놈은… 마혈을 통해 불사를 얻는 거다!’
다시 말해 이 마혈이 놈의 약점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것은 강한 확신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바로터스.
아니, 드래곤 일족은 지난 오랜 시간 카이더스의 약점을 지키기 위한 결계를 쌓아 왔던 것이다.
그 모두가 카이더스의 계략일 터.
‘설마, 놈이 2개 속성의 제로급밖에 사용하지 못한 것도?!’
그런 로이스의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쩌적- 쩌저저저적-.
마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얼음의 색이었다.
쩌적-.
마치 흑요석처럼 보이는 검은 얼음.
순식간에 마해 전역을 얼어붙이는 힘의 진원지는 드래곤들이 수만 년간 다져 온 공간 속성 결계의 기둥이었다.
와작-.
마해가 얼어붙는 것과 동시에 기둥 역시 이내 검은 수정체로 뒤덮였다.
날카로운 수정에 뒤덮인 기둥의 모습은 마치 검은 밤송이를 연상케 했다.
이를 뒤에 둔 카이더스가 눈웃음을 지었다.
“고맙구나,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 준 덕분에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어.”
카이더스의 비아냥에 로이스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제기랄.’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카이더스가 단지 2개 속성의 제로급밖에 쓰지 못한 이유는 이것을 위함이었다.
바로 자신의 약점을 지키는 완벽한 울타리를 치기 위해.
‘…망했네.’
그것도 아주 대차게 망했다.
3속성 제로급.
거기다 불사.
저런 놈을 어찌 상대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어찌… 제법 재밌는 이야기지 않았느냐?”
“…퍽이나.”
“오래 걸렸구나. 이만 끝내자.”
그 말을 마치며 조각났던 카이더스의 마지막 육편이 달라붙었다.
동시에 치솟는 카이더스의 기운.
이를 느낀 로이스는 직감했다.
‘저건 못 이긴다.’
만약 이대로 다시 붙는다면, 이 싸움 끝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일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로이스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튀자.’
죽기도 싫었거니와 누군가에게 놈의 비밀을 전해야 했다.
그리고 살아서 저 괴물을 처리할 방법을 논의해야 했다.
그리 판단한 로이스는 즉각 행동했다.
츠팟!
신형이 사라진 로이스.
그가 나타난 곳은 조금 전 있던 곳으로부터 불과 2m 떨어진 곳이었다.
‘어라?’
이에 로이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곧 카이더스의 비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칠 셈이었더냐? 한데 이걸 어찌할까?”
“…….”
“넌 이곳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데?”
“하아…….”
로이스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첫 번째 계획, 삼십육계 줄행랑은 물 건너간 듯싶었다.
‘그렇다면…….’
주먹을 옹골차게 말아 쥔 로이스.
“되든 안 되든 일단 붙어 보자고!”
튀지를 못한다면 기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할 뿐.
그렇게 로이스는 다시금 몸을 돌려 카이더스를 향해 날아갔다.
이를 본 카이더스가 웃었다.
“크하하하! 오너라!”
그렇게 카이더스와 로이스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3차전이 임박한 순간.
슥-.
딱딱하게 얼어붙은 심해에서 빠른 속도로 새하얀 빛이 위로 솟구쳤다.
얼어붙은 마해를 그대로 통과한 빛은 이내 카이더스와 로이스가 충돌할 중간 지점으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빛이 둘을 감쌌다.
번쩍-.
검은 마해 전역을 전부 하얗게 물들일 정도의 어마어마한 광량.
그 빛이 어찌나 강했던지 카이더스조차 순간 시력을 잃을 정도였다.
잠시 뒤.
세상을 집어삼켰던 빛이 사라졌고.
“……?!”
그와 함께 로이스도 사라진 상태이었다.
온데간데없이 증발한 로이스.
현재 상황을 빠르게 분석한 카이더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설마……?’
자신의 영역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로이스를 데려갈 만한 존재.
그런 이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를 인지한 카이더스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로트베리어어어! 이노옴! 네놈이… 네놈이 끝까지!”
* * *
한편, 빛에 집어삼켜졌던 로이스.
그는 난데없이 끌려온 새하얀 공간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아무리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온통 새하얀 색깔뿐이었다.
로이스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하늘에서 민들레꽃 씨처럼 생긴 빛 덩어리가 천천히 로이스의 앞으로 내려왔다.
“응?”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로이스가 손을 내밀었고.
턱-.
그의 손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은 민들레꽃 씨는 하나의 물건을 남겨 놓고 사라졌다.
“…….”
제 손안에 남은 물건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이스.
“어라……?”
그의 입에서 홀린 듯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스마트… 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