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게이트 (7)
환생한 이래,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물건.
지구에서 살 적에, 세계 곳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현대의 문물이자, 나아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
로이스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왜 여기서 튀어나와?”
일생일대, 가장 큰 위기의 순간.
난데없이 이상한 장소로 끌려와 목숨을 부지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떡하니 등장한 것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이왕 줄 거면 새 걸로 줄 것이지, 중고가 뭐냐?”
로이스의 손에 쥔 스마트폰에는 이런저런 흠집이 가득했다.
후면부와 액정, 어디 하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최신형도 아니고, 내가 이 기종 쓸 때만 해도… 어?”
오랜만에 스마트폰을 잡은 탓에 재잘거리던 로이스의 입이 우뚝 멈췄다.
그의 눈이 떨려 왔다.
‘에이, 설마…….’
로이스는 조금 더 꼼꼼히 스마트폰을 살폈다.
액정과 기체에 난 기스.
그리고 기체의 후면에 부착된 낡은 거치대.
모든 것을 꼼꼼히 살핀 로이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거 내 거야?”
핸드폰에 남은 흔적.
처음에는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익은 흔적들이 발견됐다.
처음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을 때 생긴 우측 상단의 찌그러짐.
수없이 스크롤을 오르락내리락했기에 생긴 액정의 스크래치.
나날이 약해지는 근력 때문에 부착한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거치대까지.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다지만 어찌 잊겠는가.
병에 걸려 하루하루 나약해지는 나날.
지옥 같은 일상에서 유일하게 세상과의 소통구가 되어 준 것이 바로 이 작은 액정을 가진 구형 스마트폰이었는데.
“아…….”
로이스에게 스마트폰은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했던 애착이자 집착의 정수 같은 물건이었다.
이를 인지한 로이스의 손이 살짝 떨렸다.
“이게 왜……?”
살짝 심호흡한 로이스는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두근두근-.
그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에반 차원의 시간으로 대략 수백 년.
지구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수88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죽고 나서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쓰던 스마트폰은 꽤 오래된 기종이었다.
몇 시간 못 가서 방전되는 일이 허다했던 고물 중의 고물이었기에 전원이 안 켜질 확률이 높았으나.
“켜졌네?!”
그런 로이스의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보통 스마트폰의 전원이 들어오면 맨 처음 뜨는 것은 제조사 혹은 통신사의 로고였다.
하지만 지금 핸드폰 액정에 나타난 것은 한 줄기의 글귀였다.
[그를 찾으세요.]검은 바탕에 떠오른 하얀 글자.
이는 곧 사라지며 다음 문자가 떠올랐다.
[그만이 최고의 혼천검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그것을 끝으로 검은 바탕이 사라지고 완전히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로이스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꼴랑… 이것뿐?”
자신이 썼던 수많은 앱이 사라진 상태였다.
심지어 통화 버튼, 메시지 등의 기본 애플리케이션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화면에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
아무런 이름도 없는, 문(門)의 형상을 한 기괴한 애플리케이션뿐.
“음…….”
로이스는 가만히 액정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이걸 눌러 말어?’
가슴속에서 강렬한 호기심과 충동이 일어났지만, 로이스는 가까스로 참아 냈다.
‘만약 카이더스의 함정이라면?’
갑자기 영문 모를 곳으로 전송되지를 않나.
과거 자신이 쓰던 핸드폰이 튀어나오지를 않나.
여러모로 수상쩍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놈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조금 전의 상황은 무조건 카이더스에게 유리했다.
9 대 1.
아니, 99 대 1의 확률로 자신의 패배가 확정된 상황.
그런 와중에 카이더스가 번거롭게 이런 상황극을 꾸밀 필요가 있을까?
그저 간단하게 자신의 목숨만 취하면 되는 상황에서?
‘놈이 귀찮게 함정을 팔 확률은 적어.’
로이스는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카이더스가 꾸민 짓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럼 누구일까?’
대충 마음에 걸리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역시 로트베리어?’
그의 뇌리로 카이더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라져 줘야겠다. 로트베리어의 변수여.]카이더스는 분명 그리 말했었다.
‘로트베리어의 변수라…….’
이에 로이스는 상황을 가정해 봤다.
카이더스가 에반 차원에 악영향을 끼칠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고, 로트베리어가 이를 알아차렸다.
카이더스의 계략을 막기 위해 로트베리어가 죽은 자신의 영혼을 이 세계로 불러들인 거라면?
‘대략적인 그림은 얼추 맞아떨어지네.’
로이스는 다시 시선을 스마트폰으로 돌렸다.
“그럼 이게 로트베리어가 준비한 안배라면…….”
그래서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확인해 봐야겠지.”
그리 결정을 내린 로이스는 서서히 액정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톡-.
그의 손가락 끝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앱을 가볍게 터치하자,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곧이어 떠오른 새하얀 글귀.
[늦지 않게 돌아오세요.]‘…이건 또 무슨 소리냐?’
로이스의 의문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화악-.
새하얀 글귀에서 갑자기 퍼져 나온 강렬한 빛.
“윽!”
방심하고 있다가 빛에 노출된 로이스는 다급히 눈을 감았다.
“…….”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빵- 빵-.
무언가 귀에 익은 듯,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들어 보는 소리에 로이스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로이스의 입이 살며시 벌어졌다.
“……?!”
너무 놀란 로이스는 멍하니 굳어 버렸다.
그런 그의 콧속으로 매캐한 매연 내음이 흘러들며 정신을 일깨웠다.
“아…….”
빵빵-.
길에 늘어선 자동차, 끼어드는 차량을 향해 울려 대는 경적.
바쁘게 횡단보도를 오가는 사람들.
주변에 자리한 높은 고층 빌딩.
마지막으로.
[종각 4출입구]낯익은 이름의 지하철 출입구를 본 순간 로이스는 참을 수 없는 탄식을 토해 냈다.
“미친… 이건 뭔 개같은 경우야?”
다시는 되돌아올 리 없다고 여겼던 지구.
그것도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
“허…….”
고작 눈부심에 잠깐 눈 한 번을 깜빡인 것뿐이건만, 로이스는 전(前) 모국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 * *
서울의 밤.
그중에서도 직장인이 많은 종각 일대이다 보니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로이스는 종로 주변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런 그를 향해 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와! 저 외국인 봤어? 사람 맞나?”
“허얼? 엘프?”
“얼굴 작은 거 봐…….”
“미친 만찢남이잖아?!”
로이스의 외모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압도적인 비주얼.
더군다나 하얀 머리와 자줏빛 눈동자라는 다소 이질적인 특징 때문에 수백 명 사이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특징이 너무도 로이스와 잘 어울렸기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이질감보다는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가서 전화번호 물어볼까?”
“너 영어 잘해?”
“…아니.”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홀리며 배회하던 로이스는 상점 인근에 마련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인생… 아니, 용생에 뭔 평지풍파가 이리 잦냐…….”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카이더스와 박 터지게 싸우면서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난데없이 서울의 한복판에 떡하니 버려져 있었다.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꿈인가……?’
살짝 고개를 드니, 로이스의 시선이 상가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닿았다.
환생 전 모습이 아닌 수백 년간 보아 온 로이스로서의 모습이 유리창에 담겨 있었다.
쭈욱- 쭈욱-.
로이스는 유리창을 보며 양 볼을 옆으로 잡아당겼다.
볼에서 옅은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도 있고.’
거기다…….
‘희박하지만 마나도 있어.’
쥐똥만큼이기는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마나.
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로이스는 현 상황이 꿈이 아님을 확인했다.
더군다나 지금의 일이 현실임을 뒷받침해 주는 물건이 자신의 손에 떡하니 존재하지 않는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로이스.
“으음…….”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지 모른단 생각에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지던 그의 얼굴에 짜증이 치솟았다.
예상치 못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거… 왜 안 켜지는 건데?”
자신을 지구로 보내 버린 스마트폰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로이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마 일회성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분명 ‘늦지 않게 돌아오세요’라는 문구가 나타났었다.
그건 분명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터
로이스는 복잡한 심경을 정리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고.’
스마트폰을 남긴 존재가 로트베리어라면 그는 분명 단서를 남겼을 거다.
‘그를 찾으라고 했어, 그리고 혼천검……. 일단 혼천검인지 뭔지는 ‘그’라는 놈을 찾은 다음에 해결할 일이니 잠시 미뤄 두고.‘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아니,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단서가 너무 없었다.
로이스는 나름 단서라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추려 보기 시작했다.
‘일단 로트베리어는 그를 찾으라고 나를 지구로 보냈다.’
이건 ‘그’라는 존재가 지구에 있다는 뜻이며, 최소 ‘그’가 자신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추리하던 로이스의 뇌리로 한 존재가 떠올랐다.
“에이… 설마……?”
지구에 존재하며 에반 차원에서의 일과 관련된 존재.
로이스가 알기로 그런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철수88?”
아무리 생각해도 그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놈을 어디서 찾냐는 것이었다.
사는 곳은 물론 이름, 성별, 나이조차 알지 못하는데?
‘닉네임만 보면 대충 철수라는 이름에 88년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일단 단서가 될 만한 것이라고는 그가 운영했던 블로그와 철수88이란 닉네임뿐.
“하… 손가락 한번 잘못 놀렸다가 이게 뭔 개고생인지.”
크게 한숨을 내쉰 로이스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일단 그라는 존재가 철수88이라고 가정하고 찾아봐야겠네.’
만약 ‘그’가 철수88이 아니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로이스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철수88 그 새끼는 이런 일이 아니었어도 꼭 찾아야지.’
로이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 새끼 때문에 내가 개고생한 게 얼만데?”
최소 자신이 개고생한 것에 대한 소.소.한. 보답 정도는 해 줘야지 않겠는가.
‘그럼 이 새끼를 어디서 찾는다?’
철수88을 찾을 단서는 블로그와 닉네임뿐.
이것만 가지고 로이스가 놈을 찾는 건 솔직히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현재 로이스는 주민등록증은 물론 여권도 없는 상태.
어찌 보면 불법체류자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재수 없는 일에 휘말렸다가 불상사가 벌어지기 딱 좋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로이스는 태연했다.
아니, 여유가 넘쳐흘렀다.
‘마나가 희박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쓸 정도는 되고… 아공간도 무리 없이 잘 열리고…….’
비록 주민등록증도 여권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만국 공통으로 통용되는 전가의 보도가 있지 않은가.
바지 주머니에 들어갔던 로이스의 손이 아공간을 휘적거리다가 누런 금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에 로이스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역시 이런 일은 전문가한테 맡겨야겠지?”
전생의 삶을 회상해 볼 때, 이 나라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었다.
로이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 이참에 나도 옛날에 못 해 본 돈지랄이란 것도 좀 해 보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였다.
어차피 당분간 돌아가지도 못할 거라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야지 않겠는가.
“후후후.”
로이스가 음흉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그때 로이스에게 두 명의 외국인 여성이 다가왔으니.
“Excuse me!”
외국인 여성의 한마디에 움찔한 로이스가 다급히 외쳤다.
“저 한국 사람입니다. 영어 못해요. 아엠 코리언! 노 스피킹 잉글리쉬!”
그러고는 총총걸음으로 도망치는 로이스.
“…….”
누가 봐도 외국인 같은 외모의 청년에게서 흘러나온 유창한 한국어와 어색한 영어.
외국인 여성들은 벙찐 표정으로 사라지는 로이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