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그가 없는 사이 (2)
화염의 열기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주변에 쌓였던 눈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유형화된 속성력의 불꽃은 쉬이 꺼지지 않는 법.
밝게 타오르는 불꽃의 벽 속으로 켄드릭과 타니아는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그 순간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화염 속에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샛노란 파충류의 눈동자를.
왈도는 불꽃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던 것이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왼쪽!”
“그럼 내가 오른쪽!”
하지만 이미 그럴 것이란 것을 예상했다는 듯 불꽃 남매는 별다른 동요 없이 좌우로 흩어졌다.
크르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드는 불꽃 남매를 보고는 심기 불편한 울음을 흘렸다.
놈도 느낀 것이다.
화염을 등지고 다가오는 인간들이 절대 만만하지 않은 존재란 것을.
하지만 왈도 역시 마해에서도 최상위 포식자에 군림하는 마물.
심지어 드래곤조차 경각심을 가지는 괴물이었다.
그런 놈이 고작 인간 따위를 상대로 물러날 리 없었다.
-크륵!
놈은 오히려 기쁜 미소를 머금고 불꽃 남매를 향해 달려들었고, 곧이어 2 대 1의 격돌이 벌어졌다.
콰앙-.
피육을 지닌 생명체끼리 맞부딪힌 결과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쾅- 쾅-.
켄드릭의 붉은 영성검이 왈도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고, 왈도에게 바짝 붙은 타니아의 주먹이 산탄처럼 날아들었다.
콰즉-.
이에 맞서는 왈도의 여섯 팔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였다.
또한, 놈의 육신에서 뿜어지는 검은 마기가 위협적으로 불꽃 남매의 목과 심장을 노렸다.
투드득-.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맞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셋.
제로의 벽을 앞둔 불꽃 남매를 상대로 팽팽한 싸움을 벌이는 왈도는 확실히 마해의 지배종이라 부를 만했다.
그렇게 한동안 유지되던 균형에 하나의 무게추가 더해졌다.
푸슉-.
주변의 화염 벽을 통과해 푸른색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갑자기 난입한 화살은 불꽃 남매와 왈도가 벌이는 싸움, 찰나의 틈을 통과해 왈도의 급소를 노렸다.
고작 0.1초를 계산해 그 틈으로 화살을 날리는 솜씨.
이는 신의 영역에 도달한 궁술이라 부를 만했다.
그렇게 날아든 푸른 화살이 불꽃 남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줬다.
콰즉-.
왈도가 화살에 신경을 쓴 틈을 타서 켄드릭의 검이 놈의 여섯 팔 중 두 개를 잘라 냈다.
치이익-.
“잘했어, 제롬!”
잘린 팔의 단면이 매캐한 연기를 내며 끓어올랐다.
일격을 허용한 왈도.
덕분에 빈틈은 더욱 커졌고, 이를 타니아는 놓치지 않았다.
우웅-.
0.3초.
강대한 기운이 타니아의 주먹에 응집됐다.
0.5초.
앞으로 뻗어지는 팔.
0.7초
수없이 단련된 주먹이 왈도의 복부에 닿았고.
0.8초
퉁-.
나직한 소리와 함께 타니아의 몸이 왈도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1초.
푸화학-.
왈도의 등 뒤로 화염이 분출되며 타니아의 주먹이 닿았던 복부에 30㎝ 지름의 구멍이 생겨났다.
화르륵-.
타니아가 만든 구멍에서 시작된 열기는 이내 왈도의 육신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놈을 새까만 재로 만들었다.
털썩-.
복부에 생긴 구멍으로 인해 몸이 이등분이 된 왈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를 무심히 내려다보던 타니아는 어느새 새까만 숯덩이가 된 왈도를 밟아 으스러뜨렸다.
그녀의 곁으로 켄드릭이 다가왔다.
“고생했다.”
하지만 그런 오빠의 이야기에도 타니아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들었다.
끼에엑!
크악!
크허엉!
그녀의 시야에 마물의 틈에서 종횡무진 놈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나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내 타니아도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멀어지는 여동생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켄드릭은 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그의 귀로 엘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켄드릭! 서쪽으로 지원 부탁한다! 그쪽 뚫리려고 해!”
“…알았다.”
타니아의 모습을 한 번 더 흘끗거린 켄드릭은 엘비스의 작전 명령에 따라 몸을 날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와아아아아!
대방벽으로부터 오늘도 살아남은 자들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처절했던 전투가 끝나고.
켄드릭은 대방벽 안쪽의 야영지를 거닐었다.
그러다 만난 하얀 활을 상체에 두르고 있는 백금발의 사내.
켄드릭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제롬. 아까 지원사격 좋았다.”
“…….”
제롬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제롬이 자신을 무시한 게 아니라 원래 저런 성격임을 잘 알고 있는 켄드릭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것을 질문했다.
“아벨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말수가 적은 제롬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아벨에 관해 물으면 됐다.
그가 유일하게 많은 말을 하는 순간은 아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뿐이었으니 말이다.
이에 켄드릭이 시선을 멀리 돌렸다.
그곳에는 흰옷을 입고 병자들 사이를 바삐 오가는 여인이 있었다.
겨울 대륙에서 성모라 불리는 여인.
전투 중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가 더 바쁜 아벨이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켄드릭은 지휘부 쪽을 바라보았다.
‘엘비스는 북쪽 상황을 보고하러 갔을 테고.’
며칠 전, 북쪽 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전신의 교단으로부터 온 지원 요청.
그 일을 해결하고 방금 도착하였기에 아마도 그와 관련된 사항을 지휘부에 보고하러 갔으리라.
켄드릭이 그리 생각할 때 한쪽에서 라비나 외 세 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라비나가 켄드릭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너도.”
켄드릭과 라비나는 서로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냈다.
이에 라비나의 뒤쪽에 있던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두 분, 너무 뜨거우신 거 아니에요?”
“시, 시끄러워! 부, 부러우면 너도 남자 친구 만들든가!”
라비나가 얼굴을 붉히며 역정을 냈다.
그런 상황에 피식 웃던 켄드릭이 이번에는 살짝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타니아는?”
그 물음에 라비나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아마… 성벽 밖에 있겠지.”
“그렇겠네… 고맙다.”
고개를 끄덕인 켄드릭은 다시 발길을 돌려 성벽 밖을 향했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들 중, 한 사내가 물었다.
“라비나 님.”
“왜?”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권성님은 왜 대방벽에만 오면 성벽 밖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라비나는 질문을 던진 사내를 바라보았다.
‘흠…….’
겨울 대륙에 온 이래 끊임없이 마물과 싸워 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연을 맺었고 또한 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렇게 햇수로 6년.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어느새 자신들의 뒤를 쫓는 세력이 생겨났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재능 있고 투지 넘치는 이들.
그중에서도 눈앞의 사내는 겨울 대륙에서의 싸움 초창기부터 자신들을 쫓아다니던 녀석이었다.
또한, 켄드릭과 타니아에게 몇 수의 재간을 얻어 배우기도 했다.
어찌 보면 제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이… 타니아를 좋아했었지.’
살짝 냉담해 보이지만 준수한 외모.
더군다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2티어에 오른 뛰어난 재능.
딸을 가진 귀족이라면 탐을 낼 만한 인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벽이 너무 높다, 인석아.’
라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긴… 이제는 알 때도 됐지.’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지 마음을 단념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
라비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그거 알아?”
“예?”
“타니아가 예전에는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는 귀여운 녀석이었던 거?”
“예?!”
“정말요?”
라비나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이 놀라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본 타니아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며, 장난 따위는 모르는 무감정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응.”
“그런데 왜 지금은…….”
“웃어야 할 이유를 잃었으니까.”
“……?”
“아까 물었지, 타니아가 왜 여기만 오면 늘 성벽 밖으로 나가는지.”
“네, 그랬죠.”
“그 녀석… 기다리고 있거든.”
“뭘요?”
“사랑하는 존재.”
“아…….”
처음으로 듣는 타니아의 과거사에 주변 사람들의 낯빛이 침울해졌다.
그때 처음 라비나를 놀렸던 여인이 물었다.
“그래서… 타니아 님이 기다리시는 분은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
이에 라비나는 말없이 성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도 ‘그’를 기다리고 있을 타니아를 떠올리며 라비나가 입술이 달싹였다.
“못 돌아와.”
“네?”
“…죽었거든.”
“……?!”
놀라는 주변 반응을 보며 라비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타니아가 웃는 모습을.”
서서히 내려앉고 있는 석양빛이 오늘따라 유달리 서글퍼 보였다.
* * *
한편, 그 시각.
아무것도 없는 높디높은 상공.
구름조차 닿지 않는 장소에 새하얀 실선이 생겨났다.
츠츠츠-.
맑은 빛을 토해 내는 실선은 점차 좌우로 그 영역을 넓혀 갔고, 이내 직사각형의 새하얀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측!
“켁!”
“읏차!”
두 개의 인영을 토해 냈다.
* * *
“여기 있었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비를 껴안고 있던 타니아는 짧게 답했다.
“응.”
대답은 했지만, 타니아의 시선은 정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
조금 전까지 마물들이 몰려오던 마해였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켄드릭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면 됐지 않냐? 벌써 6년… 아니, 곧 있으면 7년째다……. 이제 잊을 때도 된 거 아냐?”
켄드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니아가 고개를 획 돌렸다.
매섭게 부릅뜬 그녀의 눈.
타니아에게서 날 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잊으라고? 선생님을? 지금 그게 할 소리야?”
“하지만 7년이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으시는 걸 보면… 쌍둥이님들의 말이 맞는 거겠지.”
“닥쳐!”
냉랭한 동생의 반응에 켄드릭의 근심이 짙어졌다.
활기차고 잘 웃던 동생이 이렇게 변한 건 약 7년 전, 스승의 명령에 따라 반년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부터였다.
오랜 여정 끝에 돌아온 그날.
자신들을 반기는 건 로이스가 아니라 울먹이는 쌍둥이들이었다.
‘얘들아… 로이가…….’
‘로이가… 죽었대.’
쌍둥이들이 전해 준 비보는 너무도 충격적이었고 비현실적이었다.
절대로 죽을 거 같지 않았던 로이스.
죽음이란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던 스승.
처음에는 모두가 비보(悲報)를 믿지 못했다.
그리고 연이어진 이야기는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인간은 닿지 못하는 금지, 마해.
그곳에 설명할 수 없는 강대한 적이 나타났다.
당시 마해에 있던 제로급의 고룡 넷 중 한 명만이 겨우 빠져나왔고, 로이스를 비롯한 나머지 셋은 그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
드래곤들이 직접 몇 번이고 파악한 내용이었기에 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로이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타니아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후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타니아.
어느 날 그녀가 방을 빠져나와 말했다.
‘겨울 대륙으로 가겠어.’
타니아는 로이스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믿었다.
스승이 죽지 않았다고.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고.
그래서 로이스의 마지막 행적지였던 마해의 인근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 타니아의 결정을 존중한 일행은 그녀를 따라 겨울 대륙으로 넘어왔다.
이후 타니아는 마해로부터 쏟아지는 마물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마물을 죽이면 로이스의 귀환이 조금이라도 빨라질까.
혹은 자신의 믿음이 나약해져 로이스의 죽음을 받아들일까 싶어서.
타니아는 미친 사람처럼 마물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7년여간 사력을 다해 마물과의 싸움을 이어 나간 것이다.
덕분에 그녀의 실력은 급박하게 올라갔고 지금은 제로의 벽을 눈앞에 둘 수 있었지만, 정작 그보다 더 높은 마음의 벽이 쌓여 버린 상태였다.
‘하아…….’
켄드릭은 자신을 향한 여동생의 살벌한 눈빛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내가 실언했다.”
“앞으로 입조심해. 다른 사람 모두가 선생님의 죽음을 받아들이더라도… 나는… 그리고 오빠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선생님이 우리에게 베푼 것을 생각해 보라고!”
“그래… 네 말이 옳다.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다.”
켄드릭의 사과에 타니아는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런 그녀를 위로하듯 나비가 타니아의 손등을 핥아 주었다.
켄드릭도 더는 별다른 말 없이 타니아의 옆에 섰다.
그렇게 남매는 하염없이 마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씰룩!
타니아의 품에 안겨 있던 나비의 코가 움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