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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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화. 혼천검 (1)
“아아……!”
크게 떨리는 제네로커의 어깨.
노인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으아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혹은 꿈이 아닐까 싶은 듯.
주체할 수 없이 부들거리는 손을 뻗어 아들의 얼굴을 감쌌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존재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네로커는 심장이 쪼개지는 아픔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카이더스란 놈을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들은 떠나갔지만, 그에게는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존재가 있었으니까.
그러기에 끓어오르는 마음을 억눌렀고, 참고 또 참아 냈다.
언젠가는 이 분노를 터뜨릴 날이 올 거라고.
그날을 위해 준비를 하자고.
가슴속에 복수의 칼날을 세운 제네로커는 카이더스의 심장에 꽂을 비수를 찾아 헤맸다.
언젠가는 적의 심장을 불태워 아들의 죽음을 위로할 것이라 다짐하며.
그런데…….
“로이스…….”
살아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우리 로이로구나…….”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들끓던 가슴 속 분노를 사그라뜨렸다.
“우리 아들이야…….”
맑아진 이성이 눈앞의 존재가 허상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줬다.
제네로커의 눈에서 맑은 물줄기 한 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기쁨이고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로이스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제네로커.
“인석아…….”
로이스의 어깨를 쥔 그가 언제나 아들을 반기던 미소를 지었다.
“…늦었잖으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야단치지도 않았다.
그저 이거면 되었다는 듯, 장난기 어린 타박.
이에 로이스가 볼을 긁적이며 피식거렸다.
“그러게요. 조금 늦었네요.”
그렇게 두 부자(父子)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 * *
짧은 해후 이후.
로이스는 쌍둥이와 제네로커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짤막하게 설명해 주었다.
카이더스의 부활.
타 차원으로의 전송.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돌아오니 7년이 흘렀다는 사실까지.
“그랬구나… 그래서 너의 존재감이 잡히지 않은 거였어.”
모든 것을 들은 제네로커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쌍둥이는 다른 차원이라는 소리에 눈을 빛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녀석들이 먼저 재잘재잘거릴 것이 분명했기에 로이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카이더스는 어떻게 됐죠?”
로이스가 에반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정보.
아들의 물음에 제네로커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7년 전, 바로터스 원로님이 마해의 상황을 알린 그날… 전 원로들이 마해로 날아갔다.”
“그래서요?”
“우리는 마해로 들어갈 수 없었단다. 최선을 다해 마해의 결계를 뚫어 보려고 했지만… 뚫리지 않더구나.”
“…….”
“이후 소집령을 발동했다. 사유가 있는 드래곤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용족이 마해를 감시하고 있지. 그런데 지금까지도 마해에서 카이더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없구나.”
“흠…….”
로이스가 턱을 쓸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이더스는 무얼 하고 있기에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가장 합리적인 의심은…….
“…약점을 감추기 위한 준비인가.”
“그게 무슨 소리니?”
의아해하는 제네로커에게 로이스는 마혈과 카이더스의 관계에 대해 알렸다.
거기에 더해 로이스는 자신이 추측한 카이더스와 로트베리어의 관계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진짜 선마대전을 일으킨 존재는 카이더스이며 이를 막으려 한 이가 로트베리어이고.
세상에 알려진 역사는 카이더스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것을.
그 내용이 사뭇 심각했기에 제네로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얘기는 원로회에 보고해야겠구나.”
마혈이 남아 있다면 영원토록 부활할 수 있는 카이더스.
아직 카이더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결코 세상에 이롭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또 한 번 세상이 피로 물들게 되겠지.’
과거 선마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혼란에 잠식될 우려가 있었다.
용족의 원로로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킬 의무가 제네로커에게는 있었다.
그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로이스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저 인간은 뭡니까?”
로이스의 시선은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무릎을 끌어당겨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다.
로이스의 물음에 제네로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거프란 자다.”
“…거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이름에 로이스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제네로커가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그리고 인간은 아니란다. 드워프지.”
그 말에 쌍둥이가 놀라 소리쳤다.
“드워프요?”
“와! 파브로 말고 저렇게 큰 드워프가 있었구나.”
“저자도 혼혈인가요?”
그들의 물음에 제네로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저자는 순수한 드워프란다.”
“근데 저렇게 크다고요?”
일반적인 드워프에 관한 상식에서 벗어난 신장을 가진 존재에 쌍둥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 로이스는 로이스대로 놀라는 중이었다.
‘드워프 거프……?’
자신이 읽은 원작 속에서 거프라는 이름을 쓰는 드워프는 단 한 명뿐이었다.
자신의 생각에 확답을 듣기 위해 로이스는 조용히 제네로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프 반 드미슈트. 고대 드워프의 마지막 왕이자, 드워프 일족이 피의 굴레를 쓰게 만든 장본인.”
“…….”
“그로 인해 저주를 받아 무한의 삶을 살아가는 괴물이지.”
제네로커의 이야기에 로이스는 확신했다.
‘그자다!’
원작의 후반에 등장하여 참룡검의 녹을 벗기고 날을 벼려 내는, 거프라는 이름을 가진 드워프.
원작에서 드워프 거프는 신비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 어떤 사연도 알려지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드래곤 슬레이어 파티에게 도움을 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존재.
그게 드워프 거프이었다.
그런데…….
‘왜 저 모양이냐?’
원작에서의 묘사도 미약했기에 그가 드워프란 사실도 대략적인 설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원작 속에서 거프는 최소 정상적으로 묘사되었다.
한데, 지금 거프의 상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로이스의 의문을 칸이 대신해 물었다.
“어… 음… 드워프의 왕이었다는 자치고는 뭐랄까… 상당히 모자라 보이는데요.”
“그럴 수밖에.”
“네?”
“저자는 카이더스 시대의 존재란다.”
“헐… 그럼 나이가 얼마인 거예요?”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다만 엄청 많다는 것뿐. 그리고 그가 지내 온 세월이 저자를 저리 만든 거지.”
“그게 무슨……?”
칸의 의문 어린 시선에 제네로커는 피식거렸다.
“치매란다.”
“네? 치, 치매요?”
“며칠에 한 번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는 한다는데 대부분은… 보다시피 반미치광이 상태지. 그래도 오랜 습관은 어디 안 간다고 광산 지하에 숨어 살고 있더구나. 하여간 드워프들이란.”
쌍둥이가 거프를 보면 눈을 끔뻑였다.
그때 로이스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잡아 오신 건가요?”
“…너 때문이었단다.”
“엥? 저 때문요?”
로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제네로커.
“아들이 살해당했는데 부모 된 이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냐.”
“…….”
“아리아나가 깨어나면 널 죽인… 아니, 널 죽일 뻔했던 그놈의 목을 베어 네 영혼을 위로하려 했지.”
제네로커의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로이스는 안개가 낀 거 같았던 머릿속이 서서히 개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거랑 저 치매 걸린 드워프랑 무슨 상관인데요?”
카니의 물음에 제네로커가 담담히 답했다.
“카이더스의 목을 벨 검을 저자가 알고 있었기에 잡아 온 거다.”
“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에 쌍둥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제네로커에게서 마치 손주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워프들이 왜 피의 굴레를 짊어지게 된 줄 아니?”
“왜요?”
“만들어서는 안 될 걸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
“혼을 담는 검. 우리는 이를 혼천검이라 불렀지.”
“그게 문제 되는 건가요?”
“어쩌면 그저 특별한 능력을 지녔을 뿐인 검으로 들리겠지만, 이 혼천검은 담은 영혼의 격이 높을수록 그 위력 또한 커진단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이스의 뇌리로 뇌전이 번뜩였다.
‘역시!’
혼을 담는 검.
그런 능력을 지닌 검이 로이스의 아공간에 고이 잠들어 있지 않은가.
참룡검이라 불리는.
로이스의 심장이 두근거릴 때, 제네로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것뿐이라면 상관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고대의 드워프들과 거프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설마?”
“그래, 카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혼천검에… 드래곤의 영혼을 담은 거지.”
“……?!”
“그리고 그 혼천검의 칼끝이 향한 곳이 바로 우리 용족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동족의 영혼을 품은 혼천검은 완벽한 용살(龍殺) 무기였다고 한다. 그 칼끝에 많은 드래곤이 죽었다고 하더구나.”
“아, 그래서 아저씨는… 그 혼천검을 얻으려고…….”
“그랬지. 혼천검이라면 카이더스를 상대하는 데 좋은 무기가 될 테니까.”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로이스는 잔잔히 제네로커를 바라보았다.
들은 정보를 조합해 보면 참룡검의 진짜 이름이 혼천검인 게 분명했다.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네.’
원래 참룡검의 칼날에 목이 잘리는 건 제네로커였다.
하지만 지금은 제네로커가 그 참룡검을 원하고 있었다.
다른 드래곤의 목을 베어 내기 위해.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로이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가 다급히 이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고 보니… 드워프들에게 피의 굴레를 씌운 건 누구죠?”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놈들이 혼천검으로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피의 굴레를 뒤집어썼다는 것뿐이다.”
“혹시…….”
무언가를 짐작한 로이스.
그가 막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큭큭큭큭.”
어디선가 걸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좌중의 시선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거프가 있었다.
“크크크!”
난데없이 실소를 흘리는 거프.
그가 고개를 든 순간, 로이스의 얼굴에 이채가 스쳤다.
‘저자… 눈빛이 돌아왔다.’
방금 전에 보았던 초점과 이성이 없는 눈이 아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거프의 눈에는 명백한 이지(理智)가 깃들어 있었다.
“큭큭, 크하하!”
대소를 터뜨리던 거프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그가 살벌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었다.
“어디서 역겨운 비린내가 난다 했더니만, 파충류 굴에 들어와 있었구만.”
드워프의 왕 거프.
그는 다른 드워프와는 달랐다.
드래곤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은 것.
대신 그의 두 눈 깊이 자리 잡은 것은 2가지 감정이었다.
하나는 분노.
그리고 하나는…….
‘증오.’
거프는 자신들을 혐오로 얼룩진 증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살짝 상체를 일으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땅굴에서 어떤 놈이 무슨 목적으로 날 끄집어냈는가 싶었더니만…….”
거프의 시선이 제네로커에게 향했다.
“카이더스의 멱을 따기 위해 나를 끄집어냈다고?”
“…….”
“그렇다면 아주 날 제대로 찾아왔구나.”
거프의 시선이 이번에는 로이스에게 향했다.
“우리에게 굴레를 씌운 게 누구인지 물었던가?”
“…….”
“그거 아느냐? 혼천검은 원래 어느 드래곤의 멱을 따기 위해 만들어진 거란 걸?”
“설마…….”
“낄낄, 그래 맞다.”
거프의 눈이 번뜩였다.
“혼천검은 카이더스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였지.”
“…….”
“그리고 우리 일족을 이 꼴로 만든 것도 바로 그 씹어 먹을 카이더스와 너희 드래곤들이고!”
거프의 쩌렁쩌렁한 외침.
그 속에는 끔찍한 증오와 처절한 한(恨)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