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혼천검 (4)
주신(主神)이라는 거창한 명칭에 로이스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주신의 장난감? 에반에서 주신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있었던가?’
에반에 종교와 토속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주신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없었다.
물론, 자신이 에반의 모든 역사를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로이스는 의문을 뒤로하고 질문을 던졌다.
“주신의 장난감이라… 그게 뭔데?”
“그… 어… 음… 아이템? …이라고 할 수 있죠.”
“아이템?”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명칭에 로이스의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거기에 주신이라는 거창한 명칭이 붙었으니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자세히 설명해 봐.”
“그, 그러니까… 제가 어지간한 거는 그냥 꿈에서 보이는 대로 그렸는데… 그건 제가 유일하게 설정해서 만든… 어… 음… 창작물 같은 거랄까요?”
왕철수가 만든 창작물?
그 대목에서 이상함을 느낀 로이스.
그가 서서히 꺼져 가는 기대감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되물었다.
“야, 내가 설마 싶어 묻는 건데 주신의 장난감에서 그 주신이… 널 말하는 거냐? 막 네가 창조주니 뭐니 하는 생각으로 주신의 장난감이라는… 그딴 이름을 붙인 거는 아니지?”
“…….”
“아니지?”
“마, 맞을걸요?”
스리슬쩍 시선을 피하는 왕철수를 보며 로이스는 고민했다.
이 새끼를 지금 죽일지 말지.
하지만 죽일 때는 죽이더라도 그 아이템의 성능이 뭔지는 듣고 죽이기 위해 로이스는 인내했다.
“그래서 무슨 아이템이냐고?”
“그게…….”
“성능이 뭐냐니까?”
“그…….”
다시 슬쩍 눈을 내리깐 왕철수가 작게 웅얼거렸다.
“랜덤 뽑기… 상자요.”
“…….”
침묵이 감돌았다.
로이스는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뭐?”
“랜덤 뽑기 상자요…….”
“뭔 뽑기 상자?”
“랜덤 뽑기…….”
“이 새끼를…….”
결심이 섰다.
이 새끼를 지금 이 자리에서 잡아 족치겠다고.
그런 속내에 따라 로이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히, 히익?!”
살기를 느낀 왕철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 그래도 성능은 괘, 괜찮습니다!”
“그딴 걸 어디다 써먹어? 그걸로 카이더스 잡을 수 있냐?”
“호,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거기서 막 엄청 쎈 무기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게 이승에 남기는 네 마지막 유언이냐?”
“카, 카테고리만 조정하면 원하는 건 뭐든지 뽑을 수 있습니다!”
“잘됐네, 거기서 네 유언장도 뽑아 봐.”
“사, 살려 주세요!”
주먹을 꺾으며 다가가던 로이스가 멈칫했다.
“어라? 가만…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사, 살려 주…….”
“아니, 그 전에.”
“네?”
“카테고리만 조정하면 뭐든지 뽑을 수 있다고?”
“그, 그렇습니다!”
“설마 그럼…….”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영혼도 뽑을 수 있냐?”
“여, 영혼요?”
“어.”
“음…….”
“뽑을 수 있어 없어?”
“아… 아마 가능할 거 같습니다. 설정상으로 뭐든지 뽑을 수 있다고 해 둬서…….”
그 답변에 로이스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찾았다. 왕철수가 지닌 열쇠!’
어째서 자신을 지구로 보내 왕철수를 데려오게 했는지.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정말로 있던 것이다.
최고의 혼천검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
“그거 지금 어딨냐?”
왕철수의 입이 꾹 다물렸다.
지진이 난 그의 동공.
자신을 노려보는 찌릿찌릿한 시선에 왕철수가 살그머니 입을 열었다.
“모, 모르는데요.”
“몰라?”
“설정만 해 두고 써먹지를 않아서…….”
“정말 몰라?”
“에이, 그런 걸 어디다 써먹겠습니까? 저도 심심풀이로 그냥 만든 건데.”
“그래… 모른다 이거지?”
“넵!”
“모르면 죽어야지.”
“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왕철수가 다시금 바닥에서 바둥거렸다.
이에 살짝 한숨을 내쉰 로이스가 물었다.
“그 랜덤 뽑기 상자… 확실히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거지?”
“화, 확실합니다! 제가 설정을 해 둔 거는 따로 그리지 않아도 분명 세상에 구현됐어요! 그 로트베리어의 심장… 아니, 카이더스의 심장도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거였는데 나타난 걸 보면 주신의 장난감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로이스가 턱을 쓸었다.
“흠… 그거 어떻게 생겼냐?”
“그게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감지한 왕철수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그린 유일한 아이템에 관해 설명했다.
그에게 뽑기 상자의 설명을 들은 로이스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대충 30㎝ 정도의 나무 상자에 슬롯머신에 쓰이는 레버가 달린 형태라고?”
“네, 전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로이스의 미간이 모여들었다.
‘어라? 이거?’
그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야, 설마… 그거 막 한 달에 한 번 물건 토해 낸다는 설정도 있냐?”
“어?! 어, 어떻게 그걸?!”
왕철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젠장! 물건에 하자 있다고 또 죽인다고는 하지 않겠지?’
그 때문에 일부러 한 달에 한 번만 뽑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알리지 않았는데, 로이스가 이를 귀신같이 알아차린 것이다.
왕철수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 그래도 방법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그냥 무…….”
왕철수가 무어라 외쳤지만, 로이스는 듣지 않았다.
대신 그는 빠르게 아공간을 열었다.
잠시 뒤, 로이스의 손에 한 권의 책이 들려 나왔으니.
[세계 유명 기물 100선 모음집-3335년 개정]로이스가 강제 가출을 당해 세계를 떠돌던 당시, 그를 염원의 탑으로 인도한 물건.
또한, 전대 탑주인 덱스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필한 서적.
사락- 사락-.
로이스의 손가락이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염원의 탑이 보유한 녹슨 검’, 지금에 이르러서는 혼천검이라 불리는 검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이스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혼천검이 수록된 페이지의 바로 직전에서 로이스의 손이 멎었다.
그곳에는 왕철수가 말한 것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 조악한 삽화로 그려져 있었으니.
로이스가 펼친 부분을 왕철수에게 보였다.
“야, 이거 맞냐?”
“어?”
펼친 부분의 삽화를 본 왕철수가 살짝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거 맞습니다!”
왕철수의 답변에 로이스는 소름이 돋아 올랐다.
로이스는 어이없다는 듯 자신이 펼친 부분을 다시 한번 살폈다.
* * *
번외: 복불복 상자
구분: 구분 불가
연원: 미상
특징:
한 달에 한 번, 다양한 물건이 한 가지씩 등장한다.
그 원리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상자 안에서 나타나는 물건의 값어치는 매번 다르다.
어떨 때는 쓸모없는 돌멩이가, 어떨 때는 금덩어리가.
매번 등장하는 물건이 달라지기에 이 기물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
* * *
당시에는 그저 신기하게 단순히 ‘재밌는 물건이네?’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던 일.
그때는 그저 혼천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거였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로이스는 속으로 감탄했다.
‘설마 이것 역시… 로트베리어의 안배인가?’
자신이 여행하며 염원의 탑과 얽히게 된 것.
과정이 어떻게 됐든 그 역시 로트베리어의 안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좋아.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 가장 우선해야 할 거는 이 복불복 상자라고 명시된 물건을 손에 넣는 거였다.
“흠…….”
로이스가 턱을 쓸었다.
덱스터가 저술한 기물 백과사전에는 하나같이 전부 삽화가 들어가 있었다.
그 소리는…….
‘최소 탑주 할배가 보았거나 사용해 본 물건이라는 거지.’
그랬기에 이토록 자세하게 설명을 써 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게 어디 있을까?’
그 순간 로이스의 뇌리로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덱스터가 살아 있던 당시.
성탑 학술제가 끝날 무렵.
[…거기에 또 뭐 들었어요? 신기한 게 많이 나오네요.] [인석아, 노리지 마라. 내 청춘을 바쳐 모아 놓은 보물들이니.] [저 이제 탑주인데 그건 안 물려주시나요?] [네 보물은 네가 모아!] [쳇!]덱스터가 말한 청춘을 바쳐 모은 보물 주머니.
아공간 구슬이 담긴 바로 그 주머니!
이를 떠올린 로이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거다!”
로이스의 직감이 알려줬다.
자신이 찾는 물건이 그곳에 있을지 모른다고.
갑작스러운 그의 외침에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켄드릭, 타니아!”
“네!”
“나 잠시 어디 좀 다녀올 테니 저 자식 잘 감시하고 있어!”
“또요?”
“이번에는 더 얼마 안 걸릴 거다! 금방 다녀오마!”
“네!”
켄드릭과 타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왕철수를 불꽃 남매에게 맡긴 로이스.
츠팟!
그의 신형이 사라지고.
“어?”
난데없이 사라진 그의 모습에 놀란 왕철수가 소리쳤다.
“아, 아니! 저는요! 저는 어쩌고요! 제발 이 야만인들 사이에서 저 좀 구해 달란 말입니다!”
그런 왕철수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를 들은 불꽃 남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자식, 뭐라는 거야?”
“몰라. 또 욕하는 건가?”
“다시 매달까?”
“그러자.”
뜻을 맞춘 두 남매가 다시금 왕철수를 도르래에 매달았고.
“끄에에엑!”
이세계에 떨어진 어느 존재의 구슬픈 비명이 겨울의 상공을 수놓았다.
* * *
대방벽을 떠난 로이스가 향한 곳은 백치 산맥의 북쪽이었다.
“어?”
“누구냐!”
공간 이동으로 난데없이 나타난 그를 보고 경계를 서던 전사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평소였다면 대충 대꾸라도 했을 로이스였지만, 그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 막아……!”
“비켜, 임뫄!”
“으악!”
경계병을 날려 버리고 불도저처럼 밀고 어느 막사 안으로 들이닥친 로이스.
“무슨 일이냐!”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막사 안에 모여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랜드 마이스터 3인방과 몇몇 마이스터.
파브로와 교단의 상급 전사들까지.
그들은 막사 안으로 밀고 들어온 로이스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탑주님?!”
“로, 로이스 님?!”
자신을 향한 시선에 로이스가 성큼성큼 더글라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냅다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야! 그거 어딨냐?!”
“켁?! 네? 뭐, 뭘 말입니까?”
“그거! 덱스터 할배 보물 주머니!”
“이, 이것 좀 놓… 켁켁!”
로이스의 손에 들려 짤짤짤- 흔들리는 더글라스.
그때 그를 구해 주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스승님의 보물 주머니요? 아, 그건가……?”
로이스의 고개가 돌아가니 그곳에는 자신의 아공간을 뒤적거리고 있는 플로리아가 있었다.
곧 그녀의 손에 20㎝ 크기의 낡은 나무 상자가 들려 나왔고.
“스승님 유품이라면… 제가 여기에 모아 뒀어요.”
그 말에 더글라스는 겨우 로이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로이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빠르게 플로리아에게 다가갔다.
“오! 역시 우리 똑순이 플로리아!”
재빨리 덱스터의 유품 상자를 건네받은 로이스.
‘제발 있어라!’
그가 기대를 품고 상자를 열었다.
달칵-.
낡은 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 든 여러 가지 물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낡은 깃털 펜.
설계도로 보이는 종이 뭉치.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 시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다!’
로이스가 찾는 물건이 있었다.
닳고 닳아 구멍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주머니가 말이다.
재빨리 주머니를 열어 그 안의 물건을 쏟아 냈다.
촤르륵-.
상자 안에 굴러다니는 작은 구슬들.
투명한 구슬 속에는 각종 물건이 담겨 있었고 로이스가 빠르게 이를 살폈다.
잠시 뒤.
“하하…….”
작은 웃음을 토해 내며 로이스가 구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막사 안을 밝히는 조명에 구슬을 가져다 대니 그 안에 자리한 작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덱스터가 그린 삽화와 똑같이 생긴 기묘한 물건.
그리고 진정한 혼천검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왕철수가 이름 붙인 주신(主神)의 장난감.
“탑주 할배… 마지막까지 큰 선물 주고 가시네요.”
로이스의 붉은 입술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