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혼천검 (5)
짙고 짙은 심연.
그 안에 자리한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크르르…….
낮은 울림이 고요한 어둠을 타고 퍼져 나왔다.
살기와 광기를 머금은 파충류의 두 눈은 하늘을 향했다.
쿠르릉-.
먹구름에 휩싸여 주홍빛 뇌전을 번뜩이는 상공.
이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는 기묘한 빛을 발했다.
흥분, 기대, 기쁨 등.
상당히 고조된 감정이 그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한참이나 상공을 응시하는 붉은 눈동자.
깊게 가라앉은 심연으로부터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때가… 머지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넘실거리는 어둠이 붉은 눈동자를 집어삼켰다.
* * *
짧은 외출을 다녀온 로이스.
그는 불꽃 남매의 손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왕철수를 구해 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덱스터의 보물 주머니에서 찾아낸 물건을 내려놓았다.
탁-.
“이거 맞냐?”
“으어어어…….”
“이거 맞냐고.”
“어으…….”
붉은 머리 악마들의 마수에서 겨우 벗어나 골골거리던 왕철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안 차리면 한 대 얻어맞을 거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그는 재빨리 자신 앞에 놓인 물건을 살피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그 답변에 팔짱을 낀 로이스가 씨익 미소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카테고리 설정을 해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거 저만 할 수 있습니다.”
“해 봐.”
“그…….”
“쓰읍!”
무언가 웅얼거리려던 왕철수는 구겨지는 로이스의 얼굴을 보고 다급히 랜덤 뽑기 상자를 잡아 뒤집었다.
그는 로이스의 눈치를 보며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이, 이거 안 되면 어쩌지?’
설정상으로 주신의 장난감은 말 그대로 왕철수만을 위한 아이템.
기본적으로는 일반적인 존재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주신의 장난감이 가진 제대로 된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왕철수뿐이다.
하지만.
‘그, 그건 말 그대로 설정일 뿐인데.’
그 설정이 제대로 먹힐지 안 먹힐지는 자신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주, 죽는다!’
100% 로이스의 손에 죽게 될 거다.
랜덤 뽑기 상자를 쥔 왕철수의 손이 달달 떨려 왔다.
“뭐 하냐? 안 해?”
“지, 지금 하려고 했습니다!”
왕철수가 검지를 뻗어 상자의 밑바닥에 ‘영혼’이라는 한글을 슥슥 적었다.
‘제발, 제발 돼라!’
왕철수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의 기도가 먹힌 것일까?
츠츠츠-.
‘영혼’이라는 글자가 빛을 발하더니 이내 상자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를 본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고, 더불어 왕철수의 얼굴에 안도가 서렸다.
왕철수는 상자를 내려놓고 당당하게 외쳤다.
“됐습니다!”
“그래?”
로이스가 신이 나서 뽑기 상자를 넘겨받았다.
그는 힘차게 상자의 레버를 당겼다.
다라라락-.
상자로부터 슬롯머신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묘한 소리가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잠시 뒤.
팅-.
상자의 윗면이 상하로 입을 벌렸다.
“오?”
“오와?”
로이스를 비롯한 불꽃 남매가 개방된 상자를 예의 주시했다.
과연 무엇이 튀어나올지 기대를 한 로이스.
곧 상자의 어둠 속에서 반딧불 같은 작은 빛이 살랑살랑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상자 주변을 잠시 맴돌던 작은 빛은 이내 사라졌다.
“에게……?”
“뭐냐, 저게?”
기대하고 있던 불꽃 남매의 얼굴에 대놓고 실망이 드러났다.
이는 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나타난 영혼의 빛.
제대로 된 형상도 갖추지 못하고 그저 빛의 형태로 존재하는, 아주 미약한 영혼이었다.
아마 살아 있을 때도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로이스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최소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드래곤의 영혼을 뽑아야 하는데…….’
아무리 상황이 심각하다고 해도 동족의 영혼을 강제로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로이스는 동족의 영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는 못 해도 최소 지성과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영혼이 필요했다.
그리 생각한 로이스가 다시금 레버를 당겼다.
하지만.
달칵-.
“응?”
달칵- 달칵-.
아무리 레버를 당겨 봐도 상자는 다시 작동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왕철수에게 돌아갔다.
“야, 이거 왜 안 되냐?”
우물쭈물, 로이스의 눈치를 보는 왕철수.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 그게… 한 달에 한 번만 공짜라서요.”
“……?”
로이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왕철수의 말을 곱씹던 그가 눈을 끔뻑였다.
“한 달에 한 번만 공짜?”
“…….”
“설마… 이것도 현질 해야 하는 거냐?”
“네…….”
슬쩍 시선을 피하는 왕철수를 보며 로이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새끼가!’
자기가 만든 창작물이라더니만, 창작물은 개뿔!
그냥 현대의 과금 뽑기 상자를 그대로 가져와서 만든 거잖아!
로이스의 눈빛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너, 이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냐?”
“돈 없어서 현질 못 해 본 게 한이 되었던지라…….”
“에휴…….”
로이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심정이 이해됐다.
같은 게임을 해도 아낌없이 과금해 좋은 장비를 맞추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도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까.
이번만큼은 로이스도 어느 정도 공감했기에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그래서, 현질은 어떻게 하는 건데? 설마 지구 돈으로 해야 하는 거는 아니지?”
“골드면 됩니다! 1골드에 한 번씩 뽑을 수 있죠. 거기 보이시는 작은 홈에 골드 넣으면 됩니다!”
왕철수의 말처럼 상자의 측면에 동전 투입구처럼 생긴 것이 있었다.
이를 본 로이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골드? 실버도 아니고? 더럽게 비싸네.”
“죄, 죄송합니다.”
툴툴거린 로이스가 1골드를 꺼내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퉁-.
골드를 내뱉는 상자.
로이스가 눈을 끔뻑였다.
그는 내뱉어진 골드를 받아 다시 집어넣었다.
“응?”
퉁-.
“뭐야?”
퉁-.
의아한 로이스가 여러 번 골드를 집어넣었지만, 상자는 그때마다 계속해서 골드를 내뱉었다.
결국, 폭발한 로이스가 왕철수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거 왜 이래?! 한 번 썼다고 고장 났냐?”
“아, 그거요…….”
왕철수가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그거 이름이 주신의 장난감이잖아요?”
“…설마.”
“하하, 현질 시스템은 주신인 저만 할 수 있게 설정해 둬서…….”
퍽-.
참다못한 로이스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런 거는 빨리빨리 말하라고!”
“컥!”
명치를 부여잡은 왕철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를 본 로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이 새끼를 데려오게 한 거구나.’
저 랜덤 뽑기 상자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왕철수가 필수 요소였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왕철수의 앞에 로이스가 쭈그리고 앉았다.
“어이, 왕씨 머저리.”
“네?”
“너한테 미션을 주마.”
“미, 미션요?”
“어떻게 해서든 드래곤의 영혼을 뽑아내.”
“하, 하지만… 쉽지 않을 걸요… 골드도 많이 들 거고…….”
소심한 왕철수의 항변에 로이스가 씨익 미소 지었다.
“너, 지금 드래곤 재력 무시하냐?”
그리 말한 로이스는 뽑기 상자와 왕철수의 뒷덜미를 잡았다.
“나 잠깐 나갔다 온다.”
“다녀오세요!”
이제는 현 상황에 익숙해진 불꽃 남매가 로이스를 배웅했다.
그리고 로이스와 왕철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츠팟!
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곳은 거대한 석문 앞이었다.
“우욱-.”
공간 이동을 처음 경험한 왕철수는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있는 공간을 살피며 조심히 물었다.
“여, 여긴 어딘가요?”
그 물음에 로이스는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그랬지. 드래곤 재력 무시하지 말라고.”
그 말과 함께 로이스가 눈앞의 석문을 밀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수영을 즐기던 황금 창고의 문을 말이다.
구그그긍-.
기괴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열리는 문.
그리고 뿜어지는 황금빛 광채.
“아…….”
왕철수는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인 황금의 물결을 보며 턱을 늘어뜨렸다.
이에 로이스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현질 못 해 본 게 한이 되었다고?”
“…….”
“이번 기회에 원없이 하게 해 줄게.”
창고를 등진 로이스.
황금의 산에서 뿜어지는 광채가 마치 후광처럼 그를 감쌌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 달린 미소가 사악하게 변해 갔다.
“다만 현질 하다가 토해도 나는 모른다.”
로이스의 미소를 마주한 왕철수는 자신의 암담한 미래를 예감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자동 뽑기 인형 왕철수를 황금 창고에 처박아 두고 칸과 카니에게 감시를 맡긴 뒤로 한 달이 흘렀을 무렵.
콰가가가-.
여름 대륙의 어느 한 계곡.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는 폭포 아래 로이스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뒤, 그가 눈을 뜨며 볼을 긁적였다.
“음… 안 되네? 무협지에서는 보통 이렇게 명상하다가 깨달음을 얻던데.”
그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2속성 제로에서 정체된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함.
‘최악의 경우 혼천검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어.’
벌써 한 달째 왕철수가 영혼 뽑기를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영혼이 나오고 있지 않았다.
언제까지 혼천검만을 믿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로이스도 자신의 경지를 올리려는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힘 속성과 정신 속성.
둘 중 하나만이라도 제로급으로 올린다면 역사상 3번째 3속성 제로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이더스와 비벼 볼 수 있고 말이지.’
하지만 3번째 제로의 경지는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1속성 제로가 법칙에 간섭하는 힘, 2속성 제로는 이를 조작하는 힘이었다면… 3속성은 뭘까?’
로이스는 직감했다.
3속성 제로의 경지가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아야지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은 마치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계속해서 답을 써넣는 일과 같았다.
‘이 짓도 벌써 한 달째.’
답을 찾는 일을 한 달이나 하고 있음에도 아직 성과는 없었다.
‘시간이 없는데…….’
언제든지 카이더스가 저 얼음벽을 깨고 나타날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옥죄어 왔다.
“후우…….”
나직한 한숨으로 답답함을 털어 낸 로이스.
그가 다시금 정좌하여 잡념을 털어 내려 할 때였다.
우웅-.
통신석의 울림이 그를 다시금 일깨웠다.
“응?”
통신석의 발신자는 다름 아닌 핀이었다.
로이스가 통신석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로이스 님!
“오냐.”
-끝났어요!
“뭐가?”
-검(劍)이요! 그 검, 완성됐어요!
“아!”
핀의 밝은 목소리에 로이스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모습이 폭포수 아래서 사라졌다.
츠팟!
로이스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곳은 제네로커의 레어.
그중에서도 지하에 마련된 대장간이었다.
츠으으-.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로이스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폭포수의 물을 날려 버린 로이스.
그가 한 용광로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앞에는 거프와 제네로커, 그리고 쌍둥이와 핀이 모여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로이스가 물었다.
“끝났다고?”
그 물음에 거프가 조용히 몸을 비켜섰다.
그러자 보이는 넓은 모루와 그 위에 놓인 한 자루의 검.
“아…….”
로이스가 홀린 듯 검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로이스로서도 처음 보는 형태의 검이었다.
빛을 머금은 듯한 순백의 손잡이와 가드.
하지만 그 위로 뻗은 검신은 마치 유리처럼 투명했다.
마치 이게 살상력이 있는 검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
다만 살갗에 닿는 서늘한 예기가 눈앞의 이 투명한 검이 단순 장식품이 아닌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이에 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이게… 혼천검.”
원작 속 제네로커의 목을 베어 낸 신기.
하지만 이제는 카이더스의 목을 베어 낼 무기가 온전히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