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세이렌의 노래 (3)
눈은 창밖을 향했지만, 로이스의 모든 신경은 자매의 대화에 쏠려 있었다.
“진짜 나가게?”
“응. 내일부터는 축제 때문에 바쁠 텐데 우리도 오늘만큼은 놀자.”
“알았어!”
내심 루시아도 축제 구경을 하고 싶었던지 재빠르게 앞치마를 벗었다.
이에 로이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뭔가… 느낌이 좋은데?’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
“얘들아 나가자!”
모아나의 부름에 로이스는 경쾌하게 답했다.
“네에!”
자신의 느낌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잠시 뒤.
“까까!”
“사탕 사탕!”
신난 쌍둥이가 모아나의 손을 잡았고 루시아는 로이스를 챙겨 여관을 나섰다.
안 그래도 빙의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축제를 구경하고 싶었던 로이스도 살짝 들떠 올랐다.
그렇게 미인 자매의 손을 잡고 구경에 나선 로이스 일행.
‘굉장하네.’
겨울 대륙 최고의 축제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게 거리 곳곳에 사람이 넘쳐났다.
또한, 그 못지않게 여기저기 좌판을 펼친 행상인들과 갖가지 구경거리도 넘쳐났다.
‘축제 첫날인데도 이렇다고?’
축제가 절정을 이루는 것은 기원제가 있는 5일째라고 했다.
벌써 이런 데 5일째는 어떨지 감이 오지 않았다.
미인 자매와 축제 구경에 한창인 로이스 일행.
시간이 흘러 쌍둥이의 손에 여러 개의 사탕 꼬치가 쥐여졌을 무렵.
“응?”
로이스의 시야에 무언가 잡혀 들었다.
루프트하겐의 광장.
그 안에 펼쳐진 하나의 무대 자리해 있었다.
로이스가 모아나에게 물었다.
“저게 뭐예요?”
“아, 올해도 하는구나. ‘가인의 밤’이란 거야.”
“그게 뭔데요?”
“그냥 뭐… 악기 연주하고 노래해서 상금 주는 행사야. 우리 루시아가 어릴 때 저기서 1등 했었다?”
“언니도 참…….”
“오?”
루시아가 부끄러워하자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렇단 말이지?’
로이스가 흥미를 보이자 모아나와 루시아가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래 로이스가 루시아에게 바흄을 배우고 있는 것을 그가 악기에 흥미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기에 ‘가인의 밤’을 구경시켜 주려 한 것이다.
로이스 일행이 자리 잡기 무섭게 무대 주변으로 많은 관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혼자 오거나, 가족 단위로 오거나.
혹은 연인과 같이 무대 앞을 차지한 이들까지.
가인의 밤이 루프트하겐의 유명 행사인지 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무대 주변이 바글바글 거리 때쯤 한 명의 진행자가 올라와 ‘가인의 밤’이 시작됨을 알렸다.
곧이어 악기를 든 몇몇 사람들이 올라가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한 명, 두 명, 세 명…….
막 5명의 무대가 끝났을 때 로이스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루시아에게 물었다.
“다들… 왜 저렇게 못 해요?”
“응? 아하하, 예선이라 그래. …아마 그럴걸? 본선은 며칠 있다가 진행하는데, 그건 볼 만할 거야.”
“흐음…….”
로이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루시아의 말처럼 간혹 가다가 제법 괜찮은 연주를 하는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로이스의 귀를 만족하게 하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로이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루시아의 연주가 정말 훌륭했다는 사실과 고작 며칠 배운 자신의 실력이 저들보다는 낫다는 것을 말이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지던 예선전.
간혹 관중들이 가볍게 손뼉을 치기는 했지만, 우레와 같은 환호는 없었다.
‘흐음, 그냥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먹고 마시러 온 사람들 같네.’
실제로 관중들은 무대보다는 같이 온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들리던 음악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혹시 더 참여하실 분 안 계십니까?”
무대 진행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외쳤다.
그 순간 로이스의 시야에 아련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루시아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때 로이스의 뇌를 스친 모아나의 이야기.
‘루시아가 예전에 저기서 1등을 했었다고 했지?’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거였다!’
자신의 기분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런 예감이 든 것이리라.
그리 확신한 로이스가 루시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으, 응? 왜 그래?”
“누나, 나랑 저기 가자.”
“어딜?”
그녀의 물음에 로이스는 부연 설명 없이 그저 루시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힘에 루시아가 어어- 하며 끌려갔다.
모아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엉겁결에 로이스를 따라 무대에 올라 버린 루시아.
“응?”
막 무대를 정리하려던 진행자는 갑자기 올라온 어린아이와 루시아의 모습에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어? 루시아?”
무대 진행자는 루시아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이렌 쉼터의 루시아 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실제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관객 중에서도 루시아를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이가 있었다.
“세이렌의 루시아 아냐?”
“어? 정말이네?”
“쟤가 왜? 루시아 요새 노래 안 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사고 난 뒤로는 노래 못 한다고 하더라고.”
수군거리는 관중들을 보고 루시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로, 로이스…….”
당황한 루시아가 로이스의 손을 뿌리치고 무대에서 내려가려 했다.
그때였다.
“아저씨, 바흄 빌려주세요!”
로이스가 무대 아래 있던 연주자에게 달려가 바흄을 빌려 왔다.
너무도 당돌한 그 태도에 어버버-하다가 바흄을 내준 연주자.
바흄을 얻어온 로이스는 그것을 루시아에게 건넸다.
“로이스?”
“누나가 연주해요.”
“하지만…….”
“쭉 들었는데, 여기서 누나보다 더 연주 잘하는 사람은 없는걸요?”
루시아는 로이스가 자신의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토록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것이리라.
사정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살포시 한숨을 쉰 루시아가 바흄을 받아 들었다.
남의 악기이기는 했지만,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후우…….”
루시아는 무대를 응시하고 있는 관중들을 훑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옅은 불안감이 새어 나올 때, 로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가 연주하면 제가 노래할게요.”
“노래……?”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로이스가 해맑게 웃어 보였다.
“네!”
로이스와 루시아가 눈을 마주하고 있던 때였다.
무대 밑에서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준비 안 되신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루시아가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녀는 지금 다짜고짜 무대에 끌려왔기에 정신이 없는 상태.
지체되는 무대 상황에 진행자와 관중들이 의아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거기에 ‘빨리빨리’라는 시선을 보내는 로이스까지.
“후우…….”
루시아가 차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는 바흄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곧이어 가볍게 현을 튕겨 보았다.
디리링-.
맑은소리가 무대 위에 울려 펴졌다.
악기 상태를 점검한 루시아가 물었다.
“무슨 노래 부를래?”
이번만큼은 귀여운 악동의 장난에 어울려 주기로 한 루시아였다.
이에 로이스가 고민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게… 뭐 부르지?’
루시아가 도망치려 하자 일단 자기가 노래를 부른다고는 했지만, 무얼 부를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질러 버린 것뿐.
더욱이 살면서 경험해 본 무대라고는 전생 시절 꼬꼬마 학예회가 전부였다.
로이스가 살짝 볼을 긁적였다.
‘뭐, 무대가 별거 있나.’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무대임에도 로이스는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다.
‘뭐, 이것도 나름 학예회 아니겠어?’
드래곤이 되며 심장까지 강심장이 된 것일까.
로이스는 태연해도 너무 태연했다.
‘그나저나 진짜 뭐 부르지?’
로이스가 루시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무거나 불러도 돼요?”
“아무거나? 음… 일단 불러 보렴. 내가 알아서 반주 맞춰 줄게.”
“네!”
로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가 아는 노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나마 가사를 외우고 있는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가 곡을 결정하고 살짝 앞으로 나섰다.
‘대충 부르자.’
무대의 중앙에 선 똘망똘망하고 귀여운 아이에게 많은 이들이 이목이 쏠렸다.
“저 애가 부르는 건가?”
“루시아가 아니고?”
“그런가 본데?”
“쟤 누구지? 진짜 예쁘다!”
처음에는 루시아가 아닌 로이스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너무도 예쁜 로이스의 외모에 모두의 신경이 집중됐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딱히 로이스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후우….”
무대 앞으로 나선 로이스는 살짝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곧 그의 작은 입술에서 첫 소절이 흘러나왔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착 가라앉은 맑은 목소리.
맑고 가늘지만, 묘하게 무겁고 먹먹한.
상당히 모순된 느낌을 지닌 기묘한 목소리였다.
[한 오백 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오오-]로이스가 고른 노래는 다름 아닌 강원도의 전통 민요 중 하나였던 ‘한 오백 년’이었다.
맑고 고운 목소리와는 달리 심금을 울리는 첫 구절이 아닐 수 없었다.
“……?!”
좌중은 깜짝 놀라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루시아 역시 놀란 빛이 역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이스는 자신의 목소리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호?! 이야?! 노래가 쉽네? 목소리가 이렇게 쫙쫙 뽑히는 거였어?!’
또다시 드래곤 보정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노래에 빠진 로이스는 가사에 감정을 듬뿍 담았다.
세상살이의 한탄 하면 로이스만큼 할 말이 많은 이가 또 있을까.
전생부터 현생.
시한부 인생과 감정이 노랫말에 듬뿍 녹아들었다.
거기에 로이스가 즉석에서 붙인 가사까지 찰떡궁합을 이뤄냈다.
[나 좀 살아보겠다는데 그게 그리 못마땅하오-]로이스가 노래를 이어 가는 사이 정신을 차린 루시아가 적당한 반주를 넣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 듣는 노래임에도 적절한 반주를 넣는 루시아의 재능은 놀라울 정도였다.
디링- 디리링-.
느리지만 낮게 깔리는 바흄의 청명한 소리와.
[이번 생은 남들만큼만 살아보고 싶소-]고운 목소리와는 달리 전생과 현생을 합쳐 수백 년의 고난과 애환을 가득 담은 로이스의 노랫말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가 싶던 관중들이 순식간에 둘의 무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어흑… 뭔 애기 목소리에 애환이 이렇게 많냐.”
“흑, 살날 창창한 꼬맹이가 곧 죽을 것처럼 노래를 해……?”
“가슴이 먹먹하네…….”
기어코 로이스의 노래에 가슴을 부여잡거나 눈물을 찍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몇 번의 후렴구를 반복한 로이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만 년만 잘 살아 보오세에-]그가 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순간 무대 주변에 적막이 감돌았다.
환호성은 없었다.
단지 훌쩍거리는 소리만이 맴돌 뿐.
‘…별로였나?’
지금까지 대충이라도 박수를 쳐 주던 관객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로이스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했나?’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휘익-.
어디서인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최고다!”
“애기야! 다른 노래 없니?”
“한 곡 더!”
곧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같은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진 로이스.
그는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관객들이 보내오는 환호해 취해 갔다.
“헤헤.”
로이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으헤헤헤헤.’
기분 좋게 헤실헤실 웃는 로이스.
기어코 그의 얼굴이 헤벌쭉 풀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나… 무대 체질인가 봐!’
그런 로이스를 루시아는 놀라움과 착잡함이 섞인 묘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