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세이렌의 노래 (6)
관객들은 노래하지 않는 로이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지?”
“그러게?
“끝난 건가?”
“연주는 여전히 하고 있잖아?”
한참이나 노래를 하지 않았기에 진행자도 로이스를 내려 보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추운 겨울밤…….]무대 뒤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곱게 뻗어 나가 관객들의 귀에 스며들었다.
“어?”
“뭐야?”
관객들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로이스의 목소리가 아님을.
이를 들은 로이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와 함께 바흄을 켜는 로이스의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불을 덮고 잠든 예쁜 우리 아이를 내려다보았네.]다음 가사가 이어지며 목소리의 주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루시아?”
“세이렌의 루시아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루시아에 관중들이 놀라 수군거렸지만, 잡음은 이내 잠잠해졌다.
맑게 울리는 루시아의 목소리가 청중을 집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여쁜 아이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나 봐요. 아주 예쁘게 웃고 있어요.]노래를 부르며 어느덧 무대 중앙으로 나온 루시아.
그녀는 고요하게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서고 싶었음에도.
이렇게 노래 부르고 싶었음에도.
두려워 오를 수 없었던 무대가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편안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치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말이다.
루시아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노래를 이어 갔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관중들은 넋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쌍둥이의 효과음.
“새근 새근.”
[아이가 기분 좋게 웃네요.]미리 합을 맞춰 보기라도 한 것처럼 쌍둥이와 루시아의 호흡은 척척 맞아떨어졌다.
새근 새근-.
어쩜 이리도 예쁠까.
끄응 끄응-.
아이가 몸을 뒤척이네요.
흐윽 흐윽-.
우리의 아이가 울먹여요.
무서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요?
예쁜 얼굴에 두려움이 번져 가네요.
청명한 목소리가 가사를 읊고 노래의 마지막을 장식할 후렴구에 도달했다.
루시아는 자신을 위해 무대를 마련한 로이스와 쌍둥이를 보며 미소를 보냈다.
‘같이 할래?’
루시아의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이를 대변하듯 후렴구의 선창은 루시아가 시작했다.
쓰담 쓰담-.
[괜찮단다, 아가야. 우리가 있잖니?]오래전, 부모님이 어린 루시아에게 했던 말을 이제는 그녀가 하고 있었다.
그것은 루시아가 로이스에게 보내는 노랫말이기 이전에, 과거에 사로잡혀 노래하지 못하던 루시아에게 그녀의 부모님이 했을 이야기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루시아는 만약 부모님이 살아 계셨으면 자신에게 했을 위로의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중이었다.
[아아! 아아아!]루시아가 나른하게 허밍을 깔아 주자 로이스가 이를 받아 입을 열었다.
[아아, 소리가 사라졌어요. 괴물이 멈추었네요.]이후 로이스와 루시아, 그리고 쌍둥이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섞였다.
쌍둥이는 효과음을.
루시아는 부모의 노래를.
로이스는 아이의 노래를.
쓰담 쓰담-.
우리 아가, 걱정할 거 없어요. 아빠가 도끼로 괴물을 물리쳐 줄게.
아빠! 괴물이 멀어져 가요. 괴물이 도망쳐요!
쓰담 쓰담-.
우리 아가,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래도 괴물이 쫓아오면 엄마에게 안기렴.
엄마! 세상을 회색으로 물들이던, 진눈깨비가 멈췄어요.
아이의 꿈의 전체 노랫말은 부모의 사랑으로 꿈속의 괴물이 사라지고 아이가 평온을 되찾는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가사와 가사가 전달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관객의 몰입감이 절정에 달했다.
더불어 루시아와 로이스가 주고받던 감정의 교류도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쓰담 쓰담-.
사랑하는 아가, 너에게는 우리가 있단다.
아아,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눈이 녹아내려요.
아아아!
아아아!
마지막, 로이스와 루시아의 잔잔한 허밍이 조용히 점점 사그라들며 적막이 찾아들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렇지만 관중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로이스와 루시아가 펼쳐낸 몽환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한쪽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흑… 흐어… 세이렌이다… 세이렌이 돌아왔다.”
“도, 도련님.”
흐느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캐리였다.
그는 다시금 노래를 부른,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노래한 루시아에게 감명받아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짝짝짝-.
“훌륭합니다. 너무 훌륭합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캐리가 열렬하게 박수쳤다.
그런 그의 품에는 커다란 꽃다발 두 개가 안겨 있었다.
환호의 시작은 캐리의 박수였다.
그리고 이를 그가 불러 모은 부하들이 이어받았고.
짝짝짝-.
박수의 파도는 관중석으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장대비 소리 같은 박수 소리가 금세 광장을 잠식했다.
곧이어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환호성이 잇따랐다.
와아아아-.
이를 들으며 진행자와 심사 위원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뭐… 심사를 할 필요가 없겠군.’
만약, 심사를 하더라도 우승을 제외한 이들의 등수가 정해지리라.
“아아…….”
그리고 무대를 지켜보는 모아나는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찍어 내기 바빴다.
‘잘했어… 내 동생.’
지난 몇 년간 동생이 마음고생한 것을 떠올리니, 이번 무대는 더욱 뜻깊었다.
루시아와 모아나… 모두에게 말이다.
“루시아!”
“로이스!”
“쌍둥아아!”
자신들에게 이어지는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 루시아는 로이스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반의반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아이.
“헤헤.”
바로 그 아이가 자신을 향해 맑은 웃음을 보내왔다.
이를 보며 루시아도 덩달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고마워…….”
“와아아아아!”
커다란 함성 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묻혔지만, 마주한 둘의 눈은 감사의 의미가 제대로 전해졌음을 알고 있었다.
그때, 로이스가 루시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이리 와요.”
“응? 어?!”
그들이 무대에서 내려갔지만, 환호성은 여전했다.
이를 무시한 로이스는 빠르게 걸어갔다.
그런 그들이 도착한 곳은 캐리가 있는 곳이었다.
잠시 루시아는 세운 로이스는 커다란 꽃다발 두 개를 들고 온 캐리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캐리에게 꽃다발 하나를 뺏어 들었다.
“헤헤,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
“…….”
캐리는 그제야 어째서 녀석이 꽃다발을 준비하게 시켰는지 알 거 같았다.
캐리가 뚱한 얼굴로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네가 받으려고 나보고 가져오라 한 거냐?”
“어휴, 난 또 이런 걸 준비해 줄 줄은 몰랐네.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네가 시켰잖아.”
“준비한 성의가 있으니 내가 받아 주는 거야, 헤헤.”
자기가 시켜 놓고 마치 마지못해 받아 준다는 듯한 로이스를 보며 캐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제 몸만 한 꽃다발을 챙겨 든 로이스가 캐리에게만 들리게끔 작게 속삭였다.
“뭐 해?”
“응?”
“꽃다발이 두 개네? 나머지는 다른 사람 주려고 가져온 거 아냐?”
“아…!”
그제야 캐리가 자신의 손에 남은 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한쪽에 서 있는 루시아에게 시선이 갔다.
이쪽을 바라보는 루시아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캐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얼음이 되어 버린 캐리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로이스가 중얼거렸다.
“꽃은 이럴 때 줘야 더 의미 있는 법이라고.”
그리 말한 로이스가 캐리의 등을 밀었다.
턱-.
로이스의 힘에 밀린 캐리가 살짝 머뭇거리며 루시아를 향해 나아갔다.
쑥스럽게 꽃을 건네는 캐리와 살짝 미소 지으며 이를 받아 드는 루시아.
이를 보며 로이스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춘이로구나…….”
그러면서 그는 별이 밝게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만선기원제의 마지막 날.
오랫동안 들려오지 않던 세이렌의 노래가 루프트하겐의 밤하늘에 긴 여운을 남겼다.
***
다사다난했던 만선기원제가 끝나고.
드디어 로이스 일행이 겨울 대륙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는 날.
선착장 앞에서 신파극이 펼쳐졌다.
“진짜 가는 거야?”
“으응…….”
그새 정이 들어도 단단하게 들어 버린 세이렌 쉼터의 자매들이 로이스와 쌍둥이를 껴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를 보며 파브로가 물었다.
“음… 저기… 나도 가는데?”
“시끄러워요! 애들 떼 놓고 맨날 술만 드셨으면서!”
“그게 다 필요한 술자리라…….”
“뭘 잘했다고 변명이에요!”
“끄응…….
마치 술 마시고 들어와 바가지 긁히는 남편처럼 파브로가 앓는 소리를 내며 슬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 파브로에게서 신경을 끈 모아나는 다시 쌍둥이의 양 볼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울먹였다.
“우리 칸, 카니… 나 잊으면 안 돼…….”
“으응. 안 잊을게!”
“걱정 마!”
“또, 올 거지?”
“그럼 그럼!”
“응응!”
찹쌀떡처럼 양 볼이 짓눌린 쌍둥이가 꺄르륵거리며 팔을 파닥거렸다.
그런 상황은 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로이…….”
“응.”
“누나 동생 하면 안 될까? 안 가고 여기서 살면 안 돼?”
“안 돼요.”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한시 급히 돌아가도 모자랄 판에 자신을 붙잡으려는 루시아의 애원을 로이스는 단호히 거절했다.
루시아가 눈물을 글썽이자 로이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또 올게요…….”
“꼭이야! 꼭!”
루시아가 자신을 꽈악 끌어안자, 로이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득-.
선착장의 한쪽에서 눈에 불을 켠 소년이 로이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만요.”
루시아를 떼어 낸 로이스가 질투로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캐리에게 다가갔다.
“왔네?”
“…….”
“아, 루시아 누나의 품은 정말 포근했지, 쿡쿡.”
“너 이 자식…….”
로이스의 도발에 캐리가 그를 노려보았다.
이에 로이스도 지지 않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진 둘의 눈싸움.
그것은 캐리가 로이스에게 무언가를 집어 던지며 끝이 났다.
턱-.
“……?”
로이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목함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씨익 미소 지었다.
목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캐리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약속했던 거다.”
세이렌에게 다시 노래를 돌려주면 받기로 한 목걸이.
캐리는 약속을 지켰다.
로이스가 기대에 찬 얼굴로 목함을 열었다.
달칵-.
“응?”
목함 안을 본 로이스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목함 안에는 약속했던 세이렌의 눈물 말고도 굵은 반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로이스가 의문을 담아 캐리를 바라보았다.
“뭔데 이건?”
“…가지고 가.”
“……?”
“나중에 루프트하겐에 오면 그 반지를 보여. 그럼 번트 가와 관련된 모든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야.”
“아하.”
“뭐, 나는 네가 영영 안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툴툴거리는 캐리를 보며 로이스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캐리의 목소리.
“야!”
“왜!”
“고, 고마웠다, 이것저것.”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캐리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뛰어갔다.
그의 등 뒤에 대고 로이스가 외쳤다.
“괜히 덩어리 아저씨들 말 듣고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내가 알려 준 방법대로 해!”
“시, 시끄러!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로이스가 알려 준 방법이 여심을 공략하는 것임을 깨달은 캐리가 뛰다 말고 버럭 소리쳤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로이스가 빠르게 사라지는 캐리의 뒷모습을 보며 킬킬거리던 순간.
“가을 대륙행 여객선이 곧 출발합니다. 탑승객께서는 속히 승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헤어짐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는 세이렌 쉼터의 자매를 뒤로하고 로이스 일행이 대형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뿌우우-.
길 뿔 나팔 소리가 울린 뒤, 커다란 노가 저어지며 배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얘들아, 또 와!”
“꼭 와야 해!”
선착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손을 흔드는 자매에게 로이스와 쌍둥이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응?”
돌아간 줄 알았던 캐리가 선착장 끝자락에서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게 로이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에 로이스가 피식거렸다.
“짜식, 귀엽기는.”
귀엽기는 자기가 더 귀여웠지만, 하는 짓을 보면 캐리 녀석도 제법 귀여웠다.
캐리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는 못했지만, 겪어 보니 알게 되었다.
녀석이 좋은 녀석이란 걸.
‘루시아랑 잘해 봐. 조금 더 크고 나서 100번 찍으면 한번은 넘어오지 않겠어?’
로이스는 속으로 캐리의 건승을 기원해 줬다.
화앗!
그 순간 거대한 돛이 활짝 펴지며 범선이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루프트하겐의 정경.
“으랴! 잘 놀다 갑니다!”
기지개를 켠 로이스가 겨울 대륙에서 등을 돌렸다.
이제 그들이 가야 할 곳은 가을 대륙.
벌써 가을의 풍성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