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제자 쟁탈전 (2)
로브를 뒤집어쓴 이에게서 어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엉?”
“저 돈 없어요.”
“…….”
짧게 답하고는 휙- 고개를 돌려 버린 로이스.
녀석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던 로브의 인물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가야… 나는 잡상인이 아니라.”
“읭? 물건 팔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허허, 내가 어딜 봐서 잡상인으로 보인다는 게냐?”
“뭐가 보여야 잡상인인지 아닌지 알죠.”
“아!”
그제야 정체불명의 인물이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로브를 넘겨 젖혔다.
그러자 회색의 머리칼과 길게 늘어진 수염이 드러났다.
언뜻언뜻 현기를 내비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결코 잡상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로이스가 더 경계심을 품었다.
‘원래 진짜 사기꾼들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법! 진짜 꾼들은 눈빛마저 속인다던데.’
로이스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할아버지?”
“허허허, 그게 말이다…….”
산타클로스같이 인자한 눈빛을 한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잔뜩 기대감을 담아서 말이다.
“혹여 갑판에 쓰러져 있던 이에게 성법을 건 게 너 아니더냐?”
로이스의 게슴츠레한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뭐야, 이 노인네?’
로브 안쪽에서 전해진 진한 속성력의 느낌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인을 잡상인 취급한 것은 그가 무슨 의도로 접근했는지를 몰라서였다.
‘만사 불여튼튼! 뭐든지 조심하고 보는 거지!’
로이스가 찔끔찔끔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저 아닌데요?”
“허허허, 너 맞지 않느냐? 내가 지켜보았는데…….”
“헐, 지금 보고 못 본 척하면서 저한테 접근하신 건가요?”
경악한 표정을 지은 로이스가 크게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자신을 위험인물로 보는 듯한 로이스의 눈빛에 노인이 크게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그게 아니다!”
“뭐가 아닌데요?”
“그러니까…….”
자신이 언제 이런 눈빛을 받아 보았던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자신을 향한 눈빛에는 언제나 선망이 가득했었다.
당황한 안색의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알고도 모른 척 접근한 내 잘못이구나. 미안하다, 아가야.”
“음…….”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에 한 발짝 더 물러서려던 로이스가 살짝 경계를 누그러트리며 뒷걸음질을 멈췄다.
노인과 아이.
두 시선이 마주하고.
로이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한테 무슨 용건이신가요?”
아이답지 않은 또렷하고 정확한 의사 표현에 노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노인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전에 물을 것이 있단다. 답해 줄 수 있겠니?”
“들어 보고요. 뭔데요?”
“음… 그게, 올해로 네 나이가 몇이더냐?”
“몇 살처럼 보이는데요?”
“어?”
자신의 질문의 답 대신, 역으로 날아온 질문에 노인은 당황했다.
어디 한번 맞혀 보라는 듯한 로이스의 표정에 노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한 여섯…….”
스슥-.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이스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 일곱!”
스슥- 스슥-.
이번엔 두 걸음.
뒷걸음질 칠 때마다 로이스의 볼이 빵빵해져 갔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부른 나이가 틀렸음을 깨달은 노인이 다급히 외쳤다.
“아, 아호오…….”
스으—
“옵… 이 아닌 열!”
우뚝-.
아홉 살에서 뒤로 또 물러나려던 로이스의 발걸음이 그제야 멈췄다.
만족한다는 볼에 바람을 뺀 로이스가 활짝 웃어 보였다.
“헤헤, 정답! 그래서 무슨 일이신데요.”
“허허허허.”
영악하기 짝이 없는 로이스의 행동.
반백 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있는 아이에게 농락당했음에도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되레 기꺼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암! 천재가 괜히 천재던가!’
눈앞의 아이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재능이 아닌 하늘이 내린 재능이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여길 만한데 영악하기 짝이 없는 아이였다.
노인은 조금 전의 대화로 로이스에게 홀딱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눈에는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노인이 로이스를 향해 두 발짝 다가가며 물었다.
“혹여 네게 가르침을 준 스승이 있더냐?”
“엉?”
생각지도 못한 말에 로이스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놀랄 만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아니다! 스승이 있다면 어떠한가. 아가야.”
“왜요?”
“날 네 스승으로 받아 다오!”
“…엉?”
사랑 고백에 가까운 노인의 외침에 로이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
순간 자신이 뭘 들었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것도 잠시.
로이스가 어이없다는 눈길로 물었다.
“뭘… 받아 달라고요?”
“스승! 스승 말이다!”
로이스의 얼굴에 떨떠름함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와 함께 그가 후다닥- 다섯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노인의 집착은 대단했다.
로이스가 물러서기 무섭게 노인이 다가섰다.
“날 스승으로 받아 다오!”
“…아니, 보통 그 반대 아닌가요?”
누군가가 제자로 받아 달라 애원하는 경우는 봤어도 스승으로 받아 달라고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뚱한 로이스의 답에 노인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허허,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느냐.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눈앞에 복덩이가 있는데 눈치만 보다가 놓치면 얼마나 원통하겠느냐? 용기 있는 자가 귀한 제자를 얻는 법이다!”
“…저에 대해 뭘 아신다고?”
“알지, 아주 잘 알지!”
“뭘요?”
“아주아주 똑똑한 아이라는 걸 말이다!”
“…그게 끝?”
“내 똑똑히 보았다! 네가 펼친 성법을! 분명 정신 속성을 타고난 것이렸다? 거기다 그 나이에 벌써 4티어의 경지라니… 눈앞에 이런 보물이 있는데 어찌 두고 보겠느냐!”
로이스의 입이 꽁하고 다물어졌다.
그가 노인에게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뭐 하는 노인네지?’
다짜고짜 스승으로 받아 달라니.
로이스가 노인을 탐색하듯 바라보며 물었다.
“좋아요. 대충 그렇다 치고… 그러는 할아버지는 뭐 하는 분이신데요? 할아버지가 유괴범일지 사기꾼일지 어찌 알고 저보고 제자가 되라는 겁니까?”
“아차차! 이런… 아직도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구나!”
그리 말하며 노인이 허리춤에서 손바닥만 한 금속 막대기를 꺼냈다.
“잘 보거라.”
의기양양하게 금속 막대를 꺼낸 노인이 마나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창-.
손바닥만 했던 금속 막대가 삽시간에 1.5m 크기로 늘었다.
막대는 그냥 단순히 커진 것만이 아니었다.
그 외형 또한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오?!”
은색의 몸체에 붉은 오오라를 두른 금속봉은 꽤 멋져 보였다.
‘붉은색이라… 화속성 혹은 정신 속성인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정신 속성이다!’
붉은 오오라는 유형화된 정신 속성력이었다.
은빛과 적빛의 조화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특히, 봉의 첨단에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속성력 덩어리가 화룡정점이었다.
‘멋있네… 나도 저거 하나 사야겠다!’
로이스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런 반응에 노인의 입꼬리가 거침없이 올라갔다.
“어떠냐?”
“멋있어요!”
“그렇지? 어찌 이제는 나를 스승으로 받아 줄 터냐?”
“왜요?”
“엉?”
아이와 노인이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거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노인이었다.
“왜, 왜냐니? 이걸 보고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냐?”
노인이 금속 봉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로이스의 표정은 요지부동.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뭔데요?”
“마, 마나 스틱을 모르는 게냐?”
“아? 그게 마나 스틱이었어요?”
“……?!”
노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법을 펼치는 아이가 마나 스틱을 모른다니.
그 순간 노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몸에 마나 스틱을 지니고 있지 않구나?!’
아이가 떠나가면서 곧바로 따라온 노인이었다.
그런데 로이스의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마나 스틱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허허허, 그럼… 조금 전에는 마나 스틱 없이 성법을 펼쳤다는 겐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매우 어려울뿐더러 극악의 효율을 자랑했다.
마나 스틱 없이 4티어의 성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4티어 성법 2~3개를 펼칠 속성력이 들어간다.
또한, 마나 스틱 없이 속성력을 제어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아이는 마나 스틱 없이 성법을 사용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대체… 속성력 보유량이 얼마나 되는 게냐?!’
종종 그런 사람이 있었다.
태어나길 남들보다 월등히 많은 속성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이들.
눈앞의 어린아이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선천적으로 많은 속성력과 높은 제어 감각.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실로 어마어마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 여겼거늘… 이미 세공을 끝낸 보물이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니 로이스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졌다.
‘이것까지는 보여 줄 생각이 없었는데.’
하지만 눈앞의 보물을 품에 거둬들이려면 밑천을 숨길 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보이고 품에 끌어안아야 했다.
결정을 내린 노인이 마나 스틱을 갈무리한 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로이스에게 보였다.
매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이다.
“자, 이거면 내게 어느 정도 믿음이 가지 않겠느냐?”
노인이 보인 것은 백금색의 작은 패였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패의 중앙에 작은 왕관이 새겨진 물건이었다.
노인은 이번만큼은 자신이 있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건 또 뭐예요? 딱 보니까 백금 같은데? 비싸겠다.”
제네로커의 창고에서 놀면서 비싼 물건은 어지간해서 다 만져 본 로이스였다.
그 덕분에 노인이 내민 패의 재질이 백금임을 단번에 알아맞혔다.
그런 로이스의 답에 노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 이걸 모르는 게냐?”
“네.”
“뭬라?! 네 스승은 이런 기초 상식도 안 가르쳐 주고 뭘 한 게야!”
“저 스승 없는데요.”
“…스승이 없다고?”
“네.”
“그럼 성법은 어찌 익힌 게냐?”
“혼자서, 책 보고.”
“허…!”
성법을 독학으로 익혔다는 로이스의 말에 노인이 탄식을 늘어놓았다.
그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 아이만 있다면 만년 2등이라 불리던 자신의 성탑이 정상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노인이 당황과 기대감을 갈무리 했다.
얼굴 전체에 인자한 미소를 띤 그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가야, 이건, 4대륙 성법 연구회에서 지급한 증명패란다.”
“오?”
“그리고 백금은 2티어의 경지를 뜻하는 거지.”
“오오!”
“또한!”
노인이 패를 로이스의 얼굴 가까이 들이밀며 손가락으로 작은 왕관을 톡톡 건드렸다.
“이 작은 왕관 문양은 성탑의 부탑주를 뜻하는 거고!”
“우와!”
로이스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2티어의 경지 그리고 부탑주.
인간 세상에서는 꽤 강한 축에 드는 경지와 직위였다.
실제로 노인은 로이스가 밖에 나와 만난 인간 중 가장 강했다.
그러나 로이스는 정작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도 내 경지를 파악하지 못하는구나.’
인간과는 인체 구조부터가 다른 드래곤.
그 경지를 헤아릴 존재는 같은 드래곤뿐이었다.
로이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내 이름은 에이든. 가을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여명의 탑’에서 부, 탑, 주를 맡고 있단다!”
에이든의 당당한 자기소개에 반짝이던 로이스의 두 눈이 빛을 잃었다.
동시에 로이스의 흥미가 빠르게 식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