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염원의 탑 (2)
촌장에게 대략적인 사정을 들은 이후, 로이스는 몇 번이나 더 염원의 탑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덱스터의 얼굴조차 구경 못 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안에서 간혹 땅땅거리며 쇠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는 게 사람이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덱스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로이스는 결심했다.
‘꿩 대신 닭이다!’
덱스터를 공략하지 못한 대신 제자들을 공략해 보기로.
4명이나 된다는데 그중 한 명은 녹슨 검에 대해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로이스 일행은 3일째 촌장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길어진 숙박에 파브로가 사례한다고 했지만, 촌장은 이를 거절했다.
‘집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만으로 난 좋으니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게.’
그 말을 하면서 촌장은 환하게 웃었다.
종종 애교를 떨어 주는 쌍둥이와 제법 맛깔나는 요리를 대접해 주는 파브로까지.
촌장은 오랜만에 찾은 손님들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그는 밭일을 나갈 때도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다.
그런 촌장의 배려 덕분에 로이스 일행은 편하게 마을에 머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로이스는 파브로와 쌍둥이를 대동하고 촌장의 집을 나섰다.
덱스터의 제자들을 만나 보기 위함이었다.
“이름이… 빅터, 플로리아, 에리카, 더글라스라고 했었지.”
“예.”
로이스는 촌장이 알려 준 덱스터 제자들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러고는 활기차게 외쳤다.
“좋아, 먼저 빅터부터 만나러 가자!”
“마차는 안 타고 가십니까?”
“좀 걸어. 너 그러다 살쪄. 아니… 이미 찐 건가?”
“이, 이건 살이 아닙니다! 근육입니다!”
“그래. 근육 찐 돼지야.”
투닥거리며 길을 나선 로이스 일행.
푸르름이 가득한 가을 하늘과 들판에 자란 노랑, 분홍빛의 들꽃들.
화창한 가을 풍경 속에 쌍둥이가 잠자리를 쫓아 활기차게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한참이나 뛰어다니던 카니가 갑자기 로이스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로이, 로이!”
“왜?”
“가까이 와 봐!”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수줍게 말하는 카니.
로이스가 미심쩍은 얼굴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카니가 활짝 웃으며 뒤에 감춘 것을 꺼내 들었다.
이를 본 로이스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꽃?’
카니가 챙겨 온 것은 노란 빛깔의 작은 꽃이었다.
녀석은 그것을 로이스의 귀에 살며시 꽂아 주며 배시시 웃었다.
“로이 예뻐!”
“…….”
“헤헤.”
카니는 양 볼을 발그레 물들이더니 수줍은 얼굴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그러고는 다시 칸과 어울려 들판을 뛰어다녔다.
“큭큭.”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벙쪄 있던 로이스는 옆에서 들려온 웃음소리에 눈을 흘겼다.
파브로가 웃는 얼굴을 감추고자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러나 이미 웃는 것을 들켜 버린 파브로.
이를 두고 볼 로이스가 아니었다.
“파브로.”
“…네?”
“숙여 봐.”
로이스의 명령에 파브로가 떨떠름한 얼굴로 상체를 숙였다.
그러자 로이스는 자신의 귀에 꽂힌 꽃을 파브로의 귀에 옮겨 주었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자라난 한 송이 꽃.
파브로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핀이 자지러지며 나뒹굴었다.
“저… 로이스 님?”
“빼면 죽는다.”
“네…….”
파브로가 울상을 지었지만, 로이스는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어깨를 늘어뜨린 파브로가 털레털레 로이스를 쫓았다.
머리에 꽃을 꽂고서…….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을 돌아다니던 일행이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여기 맞지?”
“그런 거 같은데요?”
로이스의 물음에 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이 알려 준 염원의 탑 제자들의 집은 총 4개.
로이스 일행이 도착한 곳은 그중 첫 번째인 빅터의 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사람이 사는 게 맞는지 빅터의 집 주변에 잡초가 무성했다.
로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파브로에게 턱짓했다.
이제 척이면 척.
로이스가 무얼 원하는지 눈치챈 파브로가 작게 한숨을 쉰 뒤 문을 두들겼다.
“계시오!”
쾅쾅-.
“안에 아무도 없습니까!”
안에 사람이 있다면 절대 듣지 못할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
다행히도 안에서 이를 들었는지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륵- 그륵-.
무언가 나무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갈색 장발의 청년.
“뭡니까?”
청년은 파브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염원의 탑의 일원이신 빅터…….”
“가시오.”
쾅-.
파브로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렸던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떨떠름한 얼굴을 한 파브로가 다시 문을 두들겨 보았지만,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파브로가 인상을 구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원… 그 스승에 그 제자군요.”
사람을 문전박대하는 걸 가르치는 게 염원의 탑인가?
파브로가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는 사이 로이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빅터의 다리를 떠올렸다.
‘의족…이었지?’
조금 전 안에서 들려온 나무판을 긁는 듯한 소리.
그것은 다름 아닌 사내의 의족이 만들어 낸 소리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은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인간이 아니야.’
로이스는 청년에게서 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거친 기운. 그리고… 노린내.’
그것은 후각으로 전해지는 냄새가 아니었다.
사내가 지닌 본연의 기운에서 ‘냄새’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마치 짐승과 같은 노린내가 말이다.
이를 통해 로이스는 사내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수인족이구나.’
정확히 어떤 수인족인지는 모르지만, 그 일족인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고민에 빠진 로이스에게 파브로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어찌할까요?”
“…일단 다른 집도 찾아가 보자.”
아쉬움을 뒤로하고 로이스 일행은 발길을 돌렸다.
비록 첫 번째 집은 성과가 없었지만, 아직 찾아가 볼 집이 3개나 남아 있었으니 낙담하긴 일렀다.
그렇게 두 번째로 찾은 집.
“계시오!”
“…누구세요?”
두 번째 집에서 나온 존재는 눈이 번쩍 뜨일 미인이었다.
밝은 은발과 새하얀 피부.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두 눈을 검은 붕대로 가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혹시 덱스터 탑주님의 제자이신 플로리아 양이 맞으십니까?”
“맞긴 해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제가 지금 좀 바빠서. 다음에 다시 와 주세요.”
“…….”
그렇게 말한 플로리아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말투만 상냥했지 결국 빅터 때처럼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로이스와 파브로는 똥 씹은 얼굴로 다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설마 다음 집도 이러려고?’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아 누군데 남의 집을 대문을 부술 듯이 두들겨!”
“그 혹시 덱스터 탑주님 제자이신 에리카 양…….”
“꺼져!”
맑고 고운 목소리, 찰랑거리는 붉은 머리카락과 화사한 외모를 뽐내며 나타난 3번째 집의 주인.
그녀는 문을 열기 무섭게 거친 욕설을 내뱉은 뒤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이것들이…….”
거듭되는 문전박대에 로이스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그의 인내심이 서서히 한계에 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로이스를 보며 파브로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그간 많이 참으셨지…….’
로이스의 성격에 문전박대를 이 정도로 참았으면 큰 인내심을 발휘한 거였다.
만약 그가 저들에게 원하는 게 없었다면, 진즉에 폭발해도 몇 번을 폭발했으리라.
“후우……. 좋아… 일단 다음 집으로 간다.”
로이스는 다시금 참을 인(忍)을 새기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 로이스의 뇌리로 조금 전 다녀온 두 개의 집주인이 스쳐 지나갔다.
‘그 둘도… 인간이 아니었어.’
두 번째 집에서 만난 검은 붕대로 눈을 가린 플로리아.
로이스는 그녀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맑고 정순한 기운이라…….’
인간이 아닌 존재 중 그토록 자연과 닮은 기운을 가진 존재가 누가 있을까?
결론은 하나였다.
‘엘프.’
인간 세상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엘프가.
그것도 촌구석이라 할 수 있는 마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집의 주인, 붉은 머리의 미인, 에리카.
그녀의 정체는 로이스도 아리송했다.
‘분명 인간은 아닌데… 정체가 뭐지?’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아직 경험이 크게 모자란 로이스이다 보니, 에리카의 정체를 쉽게 유추해 내지 못했다.
그렇게 로이스가 에리카의 정체를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마지막 집에 도착했다.
쾅쾅-.
“계시오! 더글라스 있소?”
이제는 자동으로 문을 두들기는 파브로.
마지막 집은 이전에 방문했던 집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이 나왔다.
“어떤 놈이야!”
문이 벌컥 열리고.
“응?”
파브로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허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 상대방의 정수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집의 주인인 더글라스도 문 앞을 가로막은 파브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떡대는?”
“그… 덱스터 탑주님의 제자인 더글라스가 맞소?”
“맞다. 넌, 뭐 하는 놈인데 남의 집 앞에서 소란을 떨어?”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리는 더글라스.
그의 왼쪽 소매는 헐렁했다.
이를 본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한편 외팔이 더글라스는 파브로를 보며 혀를 찼다.
“얼씨구? 머리에 꽃도 꽂고? 미친놈이었나?”
“…….”
더글라스의 말에 와락 구겨지는 파브로의 얼굴.
그 순간 파브로와 더글라스의 눈이 마주쳤다.
“응?!”
“엉?!”
둘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더글라스였다.
“킁킁? 떡대, 너 정체가 뭐냐? 분명 우리 동족 냄새가 나는데?”
“당신… 드… 워프요?”
“그럼 내가 드워프지 엘프겠냐? 그것보다 너 우리 일족이냐? 아니, 이건… 섞인 거 같은데? 인간과 혼혈?”
“그, 그렇습니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드워프 종족에서 이런 떡대가 나온다고? 너 돌연변이냐?”
더글라스, 그는 다름 아닌 드워프였다.
실로 오랜만에 동족과 마주한 파브로가 놀람 반, 반가움 반으로 더글라스를 응시했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헛! 이, 이런?!’
파브로는 황급히 무언가를 떠올리고 필사적으로 문을 가렸다.
사색이 된 얼굴의 파브로가 더글라스를 향해 입을 벙끗거렸다.
‘도망가! 도망가!’
차마 소리를 낼 수 없기에 최대한 입을 벌려 신호를 날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신호는 눈앞의 가련한 드워프에게 닿지 못했다.
“뭐여? 지금까지 말만 잘해 놓고 갑자기 웬 벙어리 흉내냐?”
‘이 답답한 드워프야!’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했음에도 파브로는 끝없이 신호를 줬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서 불쌍한 드워프 하나를 구제해 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눈앞의 답답한 드워프는 끝내 파브로의 신호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아가 절대 알아서는 안 될 이가 파브로의 신호를 먼저 알아듣고 말았으니.
[너 지금 뭐 하냐?]뜨끔한 파브로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눈앞 드워프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난 최선을 다했소. 나머지는 당신 몫입니다.’
그러면서 파브로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섰다.
그로 인해 더글라스와 로이스의 시선이 일직선으로 마주쳤다.
“응?”
큰 덩치의 동족 뒤에 서 있던 작은 아이와 마주한 순간, 더글라스는 하나뿐인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새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릿속.
‘이, 이건?’
그것은 본능에 각인된 공포였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색이 된 더글라스가 입을 벙끗거렸다.
“드, 드, 드…….”
[거기까지. 한마디만 더 내뱉으면……. 알지?]“끕!”
더글라스가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의 모습에 로이스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이야, 막판에 제대로 건졌네.”
지금껏 3개의 집을 거쳐 오며 쌓인 스트레스가 더글라스와의 만남으로 한꺼번에 사르르 풀렸다.
로이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반면…….
‘안타깝구려…….’
더글라스를 지켜보는 파브로의 눈에 동병상련의 아픔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