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염원의 탑 (3)
로이스를 마주한 더글라스는 말 그대로 공황 상태였다.
‘어, 어째서… 드, 드래곤이?!’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백발의 어린 드래곤 뒤에 서 있는 쌍둥이 역시 드래곤이었다.
드워프의 본능이 이를 여실히 경고하고 있었다.
‘드, 드래곤이다! 드래곤이라고!’
비록 고작 자신만 한 어린 드래곤이지만, 더글라스는 항거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드워프에게 드래곤의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드래곤이란 종족이 드워프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니 말이다.
“으, 어어…….”
놀라 입술을 벙끗거리는 더글라스.
뭔가 말은 해야겠는데 눈앞에 드래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 사이 로이스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나 언제까지 여기에 서 있어야 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컥 열리는 문.
“드, 들어오십쇼!”
“들어가도 되는 거 맞지?”
“아무렴요! 그럼요!”
싫었다. 죽기만큼 싫었다.
세상에 어떤 미친 드워프가 자신의 공방에 드래곤을 들이고 싶겠는가.
하지만 정의는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싫은 티를 내는 드워프는 정신 나간 드워프뿐이리라.
더글라스가 한쪽뿐인 팔을 공손하게 뻗었다.
“어, 어서 오십쇼!”
“엣헴!”
“에헤헴!”
쌍둥이가 개선문을 통과하는 장군처럼 뒷짐을 지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간 로이스.
내부로 들어선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수많은 공구가 빼곡하게 걸린 벽이었다.
‘팔 하나로 잘도 꾸몄네.’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집이었다.
쌍둥이가 신나서 집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더글라스가 재빠르게 의자를 가져와 대령했다.
“아, 앉으십쇼!”
집이 드워프 전용으로 만들어진 탓에 일반인이었다면 좁고 낮게 느껴졌겠지만, 로이스와 쌍둥이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의자까지 로이스의 신장에 맞춘 듯 딱 맞아떨어졌다.
의자에 앉아 짧은 다리는 살짝 꼰 로이스가 살짝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
“네가 더글라스지? 염원의 탑의 제자인?”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쇼! 친절과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누가 드워프 아니랄까 봐 드래곤 눈치 보는 능력은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즉각적인 더글라스의 대답에 로이스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거 뭔가… 취조하는 기분인데?’
가뜩이나 집안 분위기도 우중충하고, 빛도 적다 보니 취조실 느낌이 났다.
분위기에 취한 로이스가 영화에서 본 것을 흉내 내며 물었다.
“나이.”
“오, 올해로 169살입니다.”
“고향.”
“그… 가을 대륙 북동쪽에 있는 뮌이란 섬입니다.”
“고향이 거긴데 왜 여기에 있어?”
“그게…….”
더글라스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팔을 흘끗거렸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로이스가 물었다.
“팔 때문에?”
“예, 그렇습니다.”
“음… 뭐, 안 좋은 기억이라면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어.”
로이스의 말에 드워프가 살짝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선대부터 대대로 드래곤에 관한 소문을 들어온 더글라스.
그가 들은 드래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책으로 쓴다면 큰 책장 하나는 거뜬히 채우고 남으리라.
그랬기에 자신을 배려하는 듯한 로이스의 말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로이스가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조금 착한 드래곤이라서, 후후. 세상에는 여러 드래곤이 있는 거야. 그중에는 나처럼 착한 드래곤도 있는 거고…….”
와장창-.
그때 한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지 않아도 범인을 알 수 있었다.
“아악! 칸 그거 당기지 말라고!”
“누나가 먼저 만졌잖아!”
역시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옴에도 로이스는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렇게 살짝 덜떨어진 드래곤도 있는 법이지.”
“그, 그렇습니까?”
“…그런 거지.”
로이스와 더글라스가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대충 상황을 얼버무린 로이스가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말야.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게 궁금하십니까?”
“음… 일단, 너 말고 다른 염원의 탑 제자들. 한 명은 엘프, 한 명은 수인, 한 명은… 그 빨간 머리는 뭐지? 에리카라는.”
“아! 에리카는 조인족입니다.”
“조인족?”
로이스가 살짝 놀란 얼굴을 지었다.
그가 조인족을 왜 모르겠는가.
문헌상으로 엘프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종족이라고 기록된 이들.
어지간한 수인족보다 더 구경하기 힘든 게 바로 조인족들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조인족이 살아가는 장소가 인간이 쉽사리 도달하기 힘든 높은 절벽이나 산꼭대기였기 때문이다.
‘조인족이었구나… 어?’
조인족, 에리카를 떠올리던 로이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조인족이라고? 날개가 없던데?”
“아, 그건…….”
로이스의 물음에 더글라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희 염원의 탑에 모인 놈들은 전부 하나씩 결여된 게 있는 이들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처럼 말입니다.”
더글라스가 자신의 팔을 가리키며 답했다.
“저는 그저 평범한 드워프들과 마찬가지로 강철을 두드리며 살아가던 놈이었습니다. 그랬던 제 삶이 어그러진 것은 이 팔을 잃으면서였죠.”
더글라스의 눈에 아련함과 아픔이 스쳤다.
“원래… 있던 거였어?”
“예. 사고로 잃어버린 팔입니다.”
“상실감이 컸겠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글라스의 눈에 새삼스럽다는 빛이 떠올랐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는 드래곤이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동정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들은 드래곤에 관한 소문이 와전된 건가?’
로이스에게 살짝 감동한 더글라스.
그는 조금 전보다 더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평생 철을 두드려 온 드워프가 하던 일을 못 하니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이 염원의 탑에 관한 소문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소문?”
“이곳에 오면 잃어버린 것을……. 염원하는 것을 되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탑의 이름이 염원인 건가?”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집니다.”
더글라스의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리를 잃은 늑대 인간, 날개를 잃은 조인족, 두 눈을 잃은 엘프.”
“…….”
“그들 모두 상실감을 겪고,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염원의 탑을 찾은 이들입니다.”
로이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제야 그는 더글라스가 말한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단지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쇠를 두들기는 느낌을 잃어버린 드워프.
초원을 달리며 대지를 박차는 감각을 더는 알 수 없게 된 늑대 인간.
맑은 하늘의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없게 된 조인족.
숲의 푸르름을 볼 수 없는 엘프.
그들로서는 삶의 큰 축을 잃어버린 것이리라.
그리고 로이스는 그들의 상실감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역시도 그러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욱 심각했었다.
루게릭병.
갑작스럽게 찾아든 병마로 인해 전신이 굳어 가며 느낀 상실감과 좌절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염원의 탑에 모인 이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로이스가 아무런 말이 없자 자리에서 일어난 더글라스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이를 본 로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이게 제 염원입니다.”
더글라스가 가져온 것은 팔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의수.
그는 그것을 자신의 팔에 부착시켰다.
구극 구극-.
금속의 팔이 부르르 떨리며 움직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이에 더글라스가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아직 염원을 이루기에는 모자라지만, 언젠가는… 이 팔로 다시 망치를 잡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뿐만 아닙니다. 빅터는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길, 에리카는 창공의 신선함을 느껴 보길, 플로리아는 숲의 푸르름을 바라보길 염원하고 있죠.”
더글라스의 말에 로이스는 그제야 그들이 어째서 집에서 나오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로이스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들 미쳐 있는 거구나.”
저들은 미쳐 있었다.
자신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남은 삶의 모든 시간을 아낌없이 쓰고 있는 것이다.
로이스의 말에 더글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예. 그렇죠. 저희는 미쳐 있습니다. 이곳 염원의 탑은 생에 마지막 바람을 실현할 유일한 곳이고, 탑주님은… 저희에게 희망을 보여 준 존재입니다.”
“과연…….”
더글라스의 말에 로이스의 눈이 번뜩였다.
염원의 탑과 탑주.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간단했다.
로이스가 더글라스의 팔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기물이었구나.”
“맞습니다. 일반적인 기계 장치로는 저희가 원하는 정도의 정교한 동작을 구현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걸 완성하기 위해서는 기물에 대한 지식이 필수죠. 그리고 세상 어디서도 이 염원의 탑만큼 저희가 바라는 정도의 기물 지식을 알려 줄 곳은 없습니다.”
로이스는 염원의 탑 제자들에 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궁금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해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어… 그런데 왜 쫓겨난 거야? 탑주가 너희 쫓아냈다며?”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촌장이 알려 주던데?”
“하여간 입 싼 노인네.”
생긴 거 답지 않게 입술을 삐죽거린 더글라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 음… 그게 말입니다”
“……?”
“어느 날 탑주님이 묻더군요. 저희 중, 다음 대 탑주 할 놈 나오라고.”
“…그런데?”
“이것저것 연구할 게 산더미인데 어떤 놈이 탑주를 하겠다고 했겠습니까. 너도 나도 안 한다고 서로 미뤘죠.”
“…….”
“…그래서 쫓겨났습니다.”
로이스가 어이없다는 듯 더글라스를 바라보았다.
이에 그도 민망한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까는 무슨 탑주님이 너희한테 희망을 보여 준 존재니 뭐니 하더니만?”
“그, 그거랑 탑주가 되는 거랑은 다른 문제지 않습니까? 무, 물론 덱스터 탑주님께 감사한 마음은 충만합니다!”
“예, 예. 그러시겠죠.”
더글라스를 바라보는 로이스의 시선은 매우 짰다.
그 순간이었다.
‘어라?’
불현듯 무언가가 떠오른 로이스.
그가 다급히 물었다.
“염원의 탑은 어떻게 제자를 받아들이지? 아무나 지원하면 받아 주나?”
“음, 저희 탑 기본 방침이 ‘염원하는 자라면 거부하지 마라!’인데……. 그래도 아무나 막 받아들이는 거는 아닌 거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그건?”
“저희 넷은 탑주님이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 던지고 바로 입탑을 시켜 줬는데… 그 뒤에 찾아온 몇몇은 바로 쳐 내더군요.”
“명분도 없이, 바로?”
“뭐, 탑주님이 간단하게 입탑 시험을 치른 거 같기는 한데… 사실 저희가 봐도 억지로 쳐 낸 거 같았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때 탑주님이 낸 입탑 시험은 지금 저희가 봐도 모를 문제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턱을 쓸어 낸 로이스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쌍둥아!”
“응?”
“왜?”
“여기서 놀고 있어.”
“알았어!”
“걱정 마!”
갑작스러운 로이스의 말에 더글라스가 당황하여 물었다.
“어, 어디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그 질문에 로이스가 씨익 미소 지으며 답했다.
“입, 탑, 시험 치르러.”
짧게 답한 로이스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더글라스.
그의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장창-.
더글라스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분들 좀 데려가 주시지.”
와장창-.
평화로웠던 그의 보금자리가 두 망나니 헤츨링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변해 갔다.
이에 비례하듯 더글라스의 얼굴도 울상으로 변했다.
그 순간, 그런 그의 어깨 위로 올라오는 두툼한 손이 있었으니.
“힘내시오…….”
낮은 천장 때문에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파브로.
그가 동족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작은 위로뿐이었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
와장장-장장창!
“크흡…….”
“울지 마시오……. 나도 눈물이 나오려 하니. 크흑…….”
그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로이스가 떠난 자리.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드워프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