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성탑 학술제 (3)
론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물론 로이스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괜히 알은척을 했다가는 또 이상하게 엮일지 모르니까.
‘아… 나 진짜 어른들한테 인기 있는 얼굴인가?’
계속해서 노인들과 얽히는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로이스였다.
그는 자꾸 곁에서 얼쩡거리는 노인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걸 어찌 신경 쓰지 않는단 말인가.
그것도 저렇게 빤히 바라보는데.
결국, 로이스의 입에서 삐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바쁘세요?”
“나는 괜찮단다. 나보다야 밑에 애들이 바쁘지.”
“…그래 보이시네요.”
“허허허.”
뭐 하는 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사의 노인네는 아니었다.
‘1티어인가?’
로이스가 인간 세상을 떠돌면서 본 이들 중 가장 경지가 높은 인간이었다.
그런 노인네가 평범하겠는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네…….’
주변을 알짱거리며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저 눈빛이 영 신경에 거슬렸다.
그러나 그런 로이스의 속내를 모르는 론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질문을 던졌다.
“무얼 하는 게냐?”
“보면 모르세요?”
“그렇지… 보면 알 수 있지. 그걸 고치고 있는 건가?”
론이 민망하게 웃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스.
“제대로 보셨네요.”
“허허, 네가 그걸 고친다고?”
“못 고칠 게 있나요. 이걸 만든 게 전데.”
“허……? 그걸 네가 만들었단 말이냐?”
론의 얼굴에 놀람이 나타났다.
그는 두 눈을 끔뻑이며 로이스와 드래곤 플라이 호를 번갈아 보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을 소리였다.
솔직히 어느 누가 믿겠는가.
저토록 작은 아이가 눈앞의 거대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이더냐?”
“전 사실만 말했어요. 그걸 믿는 거는 할아버지 자유죠.”
“흠… 그렇구나.”
로이스의 당돌한 답에 론은 당황한 얼굴을 감추고자 태연하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지만, 로이스는 굳이 드래곤 플라이 호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뭐 하러 자신이 그런 수고를 한단 말인가.
로이스는 론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거기 계실 거예요?”
“응…?”
“자꾸 옆에서 왔다 갔다 하셔서 제가 집중이 안 되거든요.”
“…….”
언제 론이 이런 푸대접을 받아 봤겠는가.
어릴 때부터 성법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차차 경지가 하나씩 상승할 때마다 항상 그의 주변에는 온갖 아부와 찬사만이 가득했었다.
비록 나이를 먹은 만큼 사회생활을 통해 그 대부분이 가식이란 것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로이스처럼 대놓고 자신을 밀어내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허허허.”
론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런 론을 뚱하게 바라보던 로이스는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무시에 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재밌는 아이구나.’
비록 로이스에게 푸대접을 받고는 있다지만, 묘하게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로이스가 관심을 거두면 거둘수록 되레 자신 쪽에서 더 관심이 생겨났다.
‘이상하구나, 이상해. 자꾸만 눈길이 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로이스의 독특함도 독특함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론이 힘 속성력의 성법사이기 때문이었다.
로이스 역시 힘 속성을 다루는 존재.
비록 경지는 론에 비해 낮은 2티어지만, 드래곤 하트가 품은 힘 속성력의 순도만큼은 론을 훌쩍 뛰어넘었다.
자신보다 순수한 속성력에 론은 로이스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고 있던 것이다.
‘허… 이 나이에 짝사랑이라도 하는 건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론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묘하게 신경 쓰이는 아이인 것을.
이게 만약 진짜 짝사랑이라면 아쉬운 쪽에서 먼저 다가가야 하는 법이었다.
로이스에게 슬그머니 다가간 론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혹여 내가 도와줄 것은 없는 게냐?”
“없어요.”
물론 돌아오는 답은 냉랭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론은 로이스의 곁을 맴돌 뿐이었다.
* * *
로이스가 성문을 박살을 낸 날로부터 이틀 뒤.
광휘의 탑 부탑주가 고위 법사들을 보며 물었다.
“탑주님은?”
“외출하신 거 같습니다.”
“혹시 또 거기에 가신 거냐?”
부탑주의 물음에 고위 법사가 어색한 얼굴로 답했다.
“…아무래도 그러신 거 같습니다.”
“흠…….”
부탑주가 턱을 쓸었다.
학술제가 열리는 루마시안의 수도 프라나.
학술제 첫날 행진 행사가 있고 난 이후, 발표 준비를 위한 마지막 점검 시간이 사흘이나 주어졌다.
그중 이틀이 흐르고 당장 발표일이 다음 날로 다가온 그 시각.
한데, 행진 행사 이후 론의 외출이 잦아졌고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리저리 둘러볼 게 있어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제자들이 전해 온 소식은 그런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로이스라고 했던가…….’
론 탑주가 염원의 탑의 제자와 같이 있다는 증언이 쏟아진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 부탑주가 입을 열었다.
“그 로이스란 아이에 대해 알아보란 것은 어찌 되었느냐?”
“그것이….”
부탑주의 물음에 고위 법사가 난색을 보였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봐도 딱히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가을 대륙에 연고를 둔 아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더냐?”
“예. 다만 알려지길, 여명과 백야의 부탑주들이 그 아이를 제자로 삼기 위해 하프써니 호에서 실랑이를 벌였다고 합니다.”
“하프써니 호?”
“겨울 대륙과 가을 대륙 사이를 운항하는 여객선입니다.”
“겨울 대륙에 연고가 있는 아이라는 소리구나.”
“추측하기로는 그렇습니다.”
톡톡-
탁자를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긴 부탑주.
그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너희가 보기에는 어떻더냐?”
“무엇이 말입니까?”
“탑주님이 그 아이에게 왜 관심을 가진다고 보냐 이 말이다.”
“글쎄요….”
부탑주 주변에 자리한 법사들인 고개는 내저었다.
론이 누구던가.
가을 대륙 수많은 인재를 눈앞에 두고도 성에 차지 않는 이였다.
그런 탑주가 어린아이 주변을 맴도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냥 귀여운 아이라 그러시는 게 아닐지…….”
“진정 그렇게 생각하냐?”
“…….”
“내가 부탑주로 탑주님을 모신 지 벌써 40년이다. 그간 탑주님이 의미 없는 행동을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
“혹여… 탑주님께서 그 아이를 제자로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완전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지나친 억측입니다. 그 아이를 본지 고작 며칠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뭘 보고 탑주님이 제자로 삼으려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보지 못한 무언가를 탑주님은 보셨을 수도 있지 않으냐.”
“그렇기는 하지만….”
광휘의 탑 론 그레미온.
그는 광휘의 탑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이였다.
때문에 론의 행동 하나하나에 탑의 제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간부가 입을 열었다.
“혹여 정말로 탑주님께서 그 아이를 제자로 들이려 한다고 하여도… 문제지 않습니까?”
“음….”
“듣자 하니 염원의 탑 제자라 하였습니다. 그런 아이를 어찌 제자로 들이시겠습니까.”
“가을 대륙에서 탑주님이 제자로 삼지 못할 아이가 있겠느냐. 아직 어린아이라고는 하나, 녀석도 알겠지. 염원의 탑과 광휘의 탑, 둘 중 어떤 것이 제 앞날에 이득이 되는지를.”
고위 법사들이 부탑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자꾸나. 탑주님께서 무슨 의도로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건지.”
“그리하겠습니다.”
“예, 아직 섣부른 판단은 이르지요.”
그 말을 끝으로 대화가 사라졌다.
* * *
광휘의 탑 일행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시각.
“내보내 주십쇼!”
“…자네 진짜 왜 그러나.”
여명의 탑 탑주는 생떼를 쓰는 부탑주 에이든을 보며 피곤한 얼굴을 해 보였다.
지난 며칠간 계속되는 에이든의 항의.
이에 참다못한 여명의 탑주가 버럭 소리쳤다.
“우리 탑의 체면도 있지. 대체 뭐에 눈이 돌아가서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가!”
“아니, 지금 체면이 문젭니까? 이러다 우리 로이스가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걱정마라. 그 로이스란 아이는 며칠째 성벽에서 가만히 있다더군.”
“아, 그건 다행이군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외출 금지령을 풀어달라 이 말입니다!”
“…….”
“이러다 우리 로이스를 다른 엄한 놈이 채가면 어쩝니까! 그러면 탑주님이… 아니, 형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입탑한 시기도 같고 함께한 세월도 길었기에 평소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하는 두 사람.
이토록 막무가내로 나오는 에이든을 처음 보았기에 여명의 탑주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풀어주면? 또 그 아이를 찾아가서 난리를 치려고?”
“제가 언제 난리를 쳤다고 그럽니까?”
“네놈과 백야탑 부탑주가 한 짓거리를 잊은 게냐?”
탑주의 매서운 시선에 에이든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헛흠! 이, 인재를 얻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
에이든의 뻔뻔스러움에 탑주의 한숨이 더욱더 짙어졌다.
“하아… 대체 그 아이의 무얼 보고 네가 이 난리인 거냐?”
“저 에이든의 이름에 걸고 장담하죠. 로이스는 반드시… 반드시 우리 탑의 제자로 받아들여야 할 아이입니다. 그 아이를 제자로 삼을 수만 있다면 여명을 광휘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겝니다.”
“…….”
그간 에이든을 억류하기만 했을 뿐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던 탑주.
그는 에이든의 진지한 이야기에 옅게 탄식했다.
“…진정으로 하는 소리냐?”
“형님… 제가 여명에 몸을 담은 지가 벌써 60년입니다. 7살에 형님과 같이 입탑 해 오로지 여명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런 저의 목표가 뭔지 잊으신 겁니까?”
“알지… 내가 왜 모를까. 광휘의 이름을 넘어서는 것.”
“맞습니다. 그런 제가 어찌 일평생의 목표를 두고 농을 하겠습니까?”
“…….”
에이든이 얼마나 여명의 탑을 아끼고 위하는지.
또한, 얼마나 광휘를 넘어서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탑주였기에, 그는 에이든의 말을 더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잠시 잠깐, 둘의 시선이 마주하고.
“…알겠다.”
“그 말씀은…?”
“쯧, 하나뿐인 부탑주가 여명을 위해 그런다는데… 더는 막을 수 없겠지. 단!”
“……?”
“제발 정상적으로 그 로이스란 아이한테 접근해라. 체통을 지키면서!”
“흐허허!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체통을 아주 자아알 지키면서 반드시 로이스를 우리 탑에 데려오겠습니다!”
말하는 본새를 보니 아무래도 체통 따위는 이미 뇌리에서 지운 듯 보였다.
한숨을 내쉰 탑주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가 보라는 의미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가는 에이든.
그가 향하는 곳은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곳은 여명의 탑뿐이 아니었으니.
“껄껄, 탑주님, 조금만 기다리십쇼. 제가 우리 로이스를 반드시 데려올 터이니!”
“다물고 나가라, 좀!”
오랜 설득 끝에 드디어 외출 금지령을 푼 로건.
그 역시도 탑주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로이스를 향해 사라졌다.
그렇게 한날한시, 각기 다른 세 곳에서…….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켠 이들의 소리 없는 로이스 쟁탈전이 다시금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