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성탑 학술제 (4)
로건과 에이든의 감금령이 풀린 그 시각.
높은 성벽 위에 자리한 론.
그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허… 진짜로구나.”
처음 로이스란 아이가 저 거대한 탈것을 수리한다고 했을 때.
또한, 자신이 그것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만 해도 론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파(半破)됐던 드래곤 플라이 호가 차츰 제 형상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정 로이스란 아이가 저 거대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그간 염원의 탑 일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성문으로 다녀가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일은 로이스 혼자서 하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는데 로이스는 홀로 열심히 저 거대한 탈것을 고치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론은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흘흘,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건만…….”
론이 성벽 위에서 숨어서 로이스를 구경하고 있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쫓겨났으니까.
누구한테?
당연히 로이스였다.
‘아 좀! 진짜 신경 쓰인다고요!’
‘음… 미안하구나. 내 이만 가 보마.’
로이스에게 쫓겨난 론은 가는 척을 하고 숨어서 로이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흘흘흘.”
그 순간, 성벽 아래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던 로이스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응? 왜 저러는 거지?”
무언가 신난 보이는 모습에 의아한 눈빛을 한 론.
그는 로이스가 어째서 저리 신난 것인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드디어 다 고친 모양이구나.”
지난 이틀간 제대로 쉬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더니만 드디어 수리를 끝낸 듯싶었다.
론의 얼굴에 흐뭇함이 감돌았다.
‘좋은 인내심이다.’
보통 저 나이대 아이들에게 인내심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쉽게 질려 하고 쉽게 포기한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로이스는 달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홀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지 않던가.
심지어 어지간한 어른도 힘들어할 일을 혼자서 해냈다.
그런 점이 론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론이 흐뭇한 눈빛으로 로이스를 바라보던 그때.
“응?”
이번에도 로이스가 이상 반응을 보였다.
만세를 부르며 기뻐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엄청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 저럴까?”
론이 턱수염을 쓸며 로이스의 이상행동을 분석해 봤다.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로이스으으!”
“우리 로이스! 내가 왔다!”
성문 너머에서부터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곧 두 개의 인영이 경쟁하듯 성문을 통과했다.
“저리 가라!”
“네놈이나 가거라!”
아웅다웅하며 드래곤 플라이 호로 뛰어가는 이들은 다름 아닌 로건과 에이든이었다.
이를 본 론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그랬구나.”
학술제 행사 첫날 여명과 백야의 부탑주들이 로이스를 놓고 벌인 일은 론 역시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니, 론뿐 아니라 당시 행진을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다.
어찌나 그들이 로이스에게 집착하던지 여명과 백야의 탑주들이 두 사람을 감금했겠는가.
그런데 오늘 이렇게 밖에 나온 것을 보니 감금이 풀린 모양이었다.
론은 로이스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두 부탑주의 등장을 어찌 알았는지 드래곤 플라이 호의 밑바닥으로 기어들어 간 로이스.
로건과 에이든은 로이스를 발견하지 못하고 드래곤 플라이 호 주변을 서성였다.
로이스를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했다.
“네놈 때문에 로이스가 도망간 거 아니냐!”
“누가 할 소리!”
그렇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드래곤 플라이 호 밑바닥에서 빼꼼 작은 머리가 튀어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론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헛! 저 녀석, 클클.”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로이스는 여전히 싸우고 있는 로건과 에이든을 피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조심조심 움직이며 드래곤 플라이 호로부터 멀어지는 로이스.
로이스의 은밀한 행동에 로건과 에이든은 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론은 성문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는 로이스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클클클.”
확실히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녀석이었다.
그때였다.
금방이라도 뛰어갈 듯싶었던 로이스.
그의 시선이 성벽 위를 향했다.
이에 론의 웃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아이… 내 위치를 알아차린 건가?”
이토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정확히 자신이 있는 곳을?
단순히 우연이라 치기에는 로이스의 시선은 너무도 정확하게 자신을 향해 있었다.
“허…….”
옅게 탄식한 론.
그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로이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꽤 오랫 동안이나.
* * *
한편, 로건과 에이든을 따돌리고 성안으로 들어온 로이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끈질긴 노인네들.”
하프써니호에서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노인네들의 집착은 어마어마했다.
그간은 어째 잠잠하다 싶었는데 결국 오늘 두 노인네가 다시금 나타났다.
‘거기에 이상한 관음증 할배도 있고.’
로이스가 론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그나마 로건과 에이든처럼 달려들지 않고 얌전하게 구경만 했기에 그냥 모른 척했을 뿐이었다.
‘듣자 하니 꽤 높으신 양반이라고?’
확실히 1티어급 실력이면 현재 로이스가 인간 세상에서 만난 그 누구보다 높은 경지였다.
하지만 론이 누구든 로이스에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인연.
로이스에게 론은 그저 피곤하게 엮이지만 않으면 될 인물 정도였다.
“하아… 피곤하다, 진짜.”
로이스는 어깨를 주무르며 골목길로 들어섰다.
조금 전 드래곤 플라이호의 수리를 마쳤다.
완벽하게 수리를 끝낸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가동시킬 정도는 됐다.
지금 로이스는 그러한 사실을 덱스터에게 알리러 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노인네, 고작 그런 거로 삐져서는…….”
첫날 로이스가 벌인 사고를 전부 뒤집어쓴 덱스터.
루마시안 수도관리국 직원들에게 시달리다 온 그는 로이스에게 삐쳐도 단단히 삐쳐서 말도 안 걸었다.
“하… 내가 늙는다, 늙어….”
그리고 문제는 덱스터뿐만이 아니었다.
염원의 탑 제자들은 이제 와서 방구석 폐인 기질이 발동한 것인지 숙소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핀과 파브로는 쌍둥이를 감시하라고 숙소에 붙여 뒀으니 이리저리 고생하는 것은 로이스뿐이었다.
‘진짜, 참룡검만 아니었어도!’
고생 끝에 보상이 있으니 참는 거지, 아니었으면 전부 뒤집어엎었으리라.
씩씩거리며 걷는 로이스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 * *
다음 날 아침.
팡- 팡-.
형형색색의 연기 폭죽이 푸른 가을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와 함께 법사들의 이동이 시작됐다.
그 속에 로이스와 아발론 일동도 있었다.
“괜찮아요?”
로이스의 물음에 덱스터가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뭐, 뭐가 말이냐?”
“지금 엄청 떨고 있잖아요.”
로이스가 후들거리는 덱스터의 다리를 흘낏거렸다.
이에 버럭 소리치는 덱스터.
“떠, 떨긴 누가 떨었다고 그러냐!”
누가 들어도 떨리는 목소리였다.
로이스가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파브로와 쌍둥이는 수많은 인파에 신나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문제는 염원의 탑 식구들이었다.
가볍게 스치는 옷깃에도 흠칫흠칫 놀라는 염원의 탑 제자들.
지난 며칠간 숙소에 틀어박혀 있다가 학술제 당일이 되어서야 나온 그들은 많은 인파가 낯선 듯 계속해서 불안한 눈을 해 보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기본 10년이다.
저들은 기본적으로 10년씩 방구석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던 이들이었다.
가장 연차가 오래된 빅터는 15년을 연구만 했다지?
그러니 이토록 많은 이들의 시선이 익숙하겠는가.
거기에 염원의 탑 제자들의 행색이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도 한몫했다.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린 플로리아.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 빅터.
의수를 장착한 난쟁이 더글라스.
눈부신 외모의 에리카.
그런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시선이 모여들었고, 남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괜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에리카의 상태가 남들보다 괜찮을 뿐이지 그녀도 딱히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에휴…….’
한숨을 쉬었지만, 로이스는 딱히 그들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같이 학술제에 동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충분히 용기를 낸 것이니까.
염원의 탑 일동에게 시선을 거둔 로이스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크긴 크네.’
지금 수많은 법사가 향하는 장소.
그곳에는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올림픽 경기장이랑 비슷하게 생겼네.’
현대의 올림픽 경기장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그곳에서 이번 학술제의 발표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평소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연극 등의 관람 용도로 쓰이는 곳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오로지 학술제에 쓰인다 했다.
“아 좀! 빨리빨리 걸어요!”
“가, 가고 있잖으냐!”
로이스의 재촉에 느릿한 발걸음을 부단히 움직이는 염원의 탑 일동.
잠시 뒤, 그들은 학술제 참여 성탑을 위해 준비된 천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아….”
“끄, 끔찍했다.”
“무,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집에 가고 싶다.”
숙소에서 발표장으로 오는 그 잠깐에도 기운이 빠졌는지 염원의 탑 제자들이 식은땀을 훔쳐 냈다.
방구석 폐인 4인방이 헉헉거리는 사이 로이스는 드래곤 플라이호에 실린 초월기를 바라보았다.
아직 덮어 놓은 천도 풀지 않은 초월기.
물끄러미 서 있는 로이스의 곁으로 덱스터가 다가왔다.
이에 로이스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 순서가 언제라고요?”
“첫 번째다.”
“음…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이번 학술제에 참여한 성탑의 숫자는 서른다섯 팀.
가을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탑을 생각하면 학술제 참여 성탑의 수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도 아니었다.
특히 처음으로 발표할 염원의 탑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첫 순서라…….”
보통 첫 순서는 많은 관심을 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담은 부담대로, 하지만 인식을 썩 좋지 않은 순번.
그래서 제법 영향력 있는 참가 팀의 발표 순서는 뒤쪽으로 몰려 있었다.
광휘의 탑 순서가 가장 마지막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로이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에게 딱히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것은 염원의 탑이 현재 어떻게 세간에 인식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 주었다.
덱스터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살짝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이에 로이스가 피식거리며 웃으며 그의 다리를 툭툭 쳤다.
“할배.”
“왜?”
“긴장하지 마요.”
“…긴장은 무슨.”
덱스터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로이스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녀석….’
떨지 말라고 자신이 격려를 해 줘도 모자랄 판에, 그 역할을 로이스가 하고 있었다.
탑주로서 면목이 없을 지경이었다.
‘허허, 탑의 막내가 이러는데 탑주인 내가 긴장해서야 되겠나!’
용기를 낸 덱스터가 성큼성큼 드래곤 플라이 호에 다가가 초월기를 덮고 있던 천을 걷었다.
확-.
펄럭이는 천이 바닥을 나뒹굴며 은빛으로 번쩍이는 초월기가 드러나고.
이를 등진 덱스터가 외쳤다.
“이놈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발표까지 30분 남았다! 마지막 점검 안 할 거냐!”
덱스터의 외침에 그제야 4명의 제자가 분분히 모여들었다.
조금 전까지 다 죽어 가던 이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하나같이 진지한 얼굴들.
염원의 탑 제자들이 방구석 폐인에서 한 분야의 대가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로이스가 당찬 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세상을 놀라게 해 보자고!”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그것만큼 현재 로이스의 기분을 표현할 말은 없었다.
곧 로이스도 초월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로부터 20여 분 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발표 시간에 법사들 대부분이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그 시각.
쿵- 쿵-.
“대체 저기는 뭘 하기에 이렇게 소란스러워?”
염원의 탑 천막 근처를 지나가던 한 법사의 발걸음이 큰 소음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위잉—.
거친 기계음을 토해 내며 염원의 탑 천막 밖으로 삐져나온 은빛의 팔.
“어?”
찌직-.
밖으로 나온 은빛 팔은 그대로 천막을 입구를 찢어발겼고, 곧이어 그 속에서 거체가 드러났다.
“헉?!”
우연히 염원의 탑 막사를 지나치게 된 법사.
그것이 그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다.
세계관을 뒤바꿀 혁신적인 발명품의 등장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