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89)
89화. 협상 (1)
후회하지 않냐는 로이스의 물음에 블레이크는 되레 노기를 드러냈다.
“…뭘 한 게냐?”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고 하더니, 쇠막대기에 금속선을 감은 게 전부였다.
그는 로이스가 자신을 농락했다고 여긴 것이다.
이에 로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좀 기다려 봐요. 칸, 카니, 누가 할래?”
“나나!”
“나나나나! 내가 할래!”
투덕거리는 쌍둥이.
이에 로이스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쌍둥이 손잡아.”
“왜?”
“싫어. 칸 손 더러워!”
“누나 손이 더 더럽거든!”
“…이것들이,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로이스는 질색하는 쌍둥이의 손을 억지로 맞잡게 했다.
그러고는 녀석들의 각 손에 구리 선의 양끝을 쥐여 줬다.
“이게 뭐야?”
“이걸로 뭐 해?”
로이스가 씨익 웃었다.
그가 쌍둥이를 왜 불렀겠는가.
당연히 효과 좋은 배터리로 써먹기 위해 부른 거지.
“자, 칸만 충전! 네가 쥔 구리 선에 뇌기 불어 넣어.”
“추웅전!”
이제는 충전이라는 소리에 칸이 반사적으로 뇌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구리 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
그렇게 타고 온 전류는 다시 카니에게 흘러들었다.
자기장이 형성되자.
드득-.
강한 자성이 몰아치며 멀찍이 떨어진 화살과 단검이 로이스가 만든 전자석에 날아와 붙었다.
무려 2m나 떨어진 거리를 날아서 말이다.
딱 봐도 블레이크가 만든 성법 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 위력.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고, 지척에서 이를 목격한 블레이크의 턱이 뚝 떨어졌다.
“이, 이게 무슨?!”
뇌기로 자력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데 무려 4년이 걸렸다.
그런데 눈앞의 작은 꼬맹이가 손 몇 번 꼼지락거려서 그와 비슷한, 아니, 더 강한 위력의 자력을 만들어 냈다.
놀라 굳은 블레이크를 향해 로이스가 입을 열었다.
“이거면 증명됐죠?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는 게?”
“…….”
“복잡한 술식은 필요 없어요. 뇌기만 있다면 이런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비슷한 효과를 내죠.”
“어, 어찌….”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블레이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원의 탑은 기물을 연구하며 각종 자연현상도 분석해요. 이것 역시 기물 연구로 쌓아 올린 지식일 뿐입니다.”
입에 침 한 번 바르지 않고 술술 거짓을 말하는 로이스.
그러나 이미 블레이크에게 그 말의 사실 여부를 가릴 정신은 없었다.
블레이크는 그저 넋이 나가 전자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귓속으로 로이스의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기물을 무시하지 마세요.”
로이스가 블레이크의 혼을 쏙 빼놓는 사이.
“카니도 추웅뎐!”
불려 나와 멀뚱히 서 있던 카니가 뇌기를 발산했다.
원래 전류는 한쪽으로만 흘러야 자기장이 발생하는 법.
전자석이 자성을 잃자 당황한 카니가 울먹이며 물었다.
“로, 로이… 이거 고장 났나 봐.”
“…그만하고 가자.”
로이스가 쌍둥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발길을 돌리던 로이스가 여전히 넋이 나가 서 있는 블레이크를 향해 말했다.
“그거는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가져가서 연구해 보세요.”
로이스가 쌍둥이를 이끌고 사라지자 홀로 남은 블레이크.
그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과 화살을 허무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로이스가 만든 전자석을 주워 들고 터덜터덜 사라지는 블레이크.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허탈해 보였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덱스터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로이스, 인석아……. 저거 내 거다.”
그러나 덱스터의 연장은 이미 블레이크가 챙겨 사라진 뒤였다.
* * *
폭뇌의 탑 발표가 끝나고, 다시금 주어진 약간의 시간.
지금까지 33번의 발표가 있었고, 그중 32개의 성탑이 로이스의 매서운 질문을 피해 가지 못했다.
다시 말해 염원의 탑 이후 발표한 모든 성탑이 로이스의 매서운 질문에 두들겨 맞았다는 소리였다.
상황이 이쯤 되니 사람들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꼬마 탑주님이 어떻게 나오려나?”
“그래도 남은 게 여명에, 백야. 거기다가 광휘인데. 저들은 다르겠지.”
사람들은 이번에도 로이스가 매서운 질문을 던질 것인지에 대해 삼삼오오 대화를 나눴다.
저 어린 법사의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나아가 로이스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완벽하게 답을 하는 성탑이 나올 것인지.
성법 연구 발표의 장이었던 성탑 학술제의 분위기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 다음 발표가 시작되면서 관객석에서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어? 뭐야?”
“세 사람?”
발표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이들이 무려 셋이나 됐다.
그것도 서로 다른 복식을 한 법사들이 말이다.
그들의 로브는 정확히 여명과 백야, 그리고 광휘의 것이었다.
각각 가을 대륙 1, 2, 3위의 성탑.
그들은 놀랍게도 공동 연구 주제를 준비해 온 것이다.
“저들이 같이 들어온다고?”
“허…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가을 대륙 법사 중 여명, 백야, 광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앙숙에 가까운 여명과 백야와 그들이 넘고 싶어 하는 광휘의 탑.
절대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니 저들이 하나의 연구를 공동으로 하여 발표한다는 게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로이스도 살짝 놀란 눈빛이었다.
‘최고의 성탑 셋이 뭉쳤다고?’
가을 대륙 최고의 명성을 가진 곳인 만큼, 저들이 무엇을 보여 줄지 호기심이 생겨났다.
모두의 관심 속에, 발표가 시작되고.
“안녕하십니까. 이번 공동 연구의 수석 연구 법사를 맡은 와트입니다. 아마 저희가 같이 등장하여 놀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와트도 세간에 퍼진 세 성탑의 인식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연구 발표가 불러올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도 충분히 숙지한 상태였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한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세 명의 법사.
한 차례 눈빛을 주고받자 그중 한 명이 수레를 끌고 나왔다.
수레 위에는 작은 수조 하나가 놓여 있었고, 천장의 영상이 수조를 비췄다.
‘저건?’
로이스의 시선에 의문이 서렸다.
수조 안에 든 물건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금속처럼 은빛을 띠지만, 액체처럼 찰랑거리는 물체.
‘수은?’
얼핏 보면 수은이라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을 가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성탑들이 공동으로 연구했다고 하겠는가.
로이스는 차분하게 이어질 발표를 기다렸다.
“저는 여명의 탑 소속이며 정신 속성을 다룹니다. 정신 속성의 성법은 한 생명체의 정신 연구를 기반으로 합니다. 거기서 저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정신이라는 게 과연 생명을 지닌 존재에게만 있는 것일까? 사물에는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모두가 와트의 말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저는 꽤 오랜 시간, 사물에도 정신이 깃들 수 있지 않을까 연구해 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헛수고라고 했지만, 여기 계신 두 분의 도움으로 미약한 결과물을 거둘 수 있었죠. 비록 아직 사물에도 정신이 있다는 것은 밝혀내지 못했으나 정신력에 반응하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술렁거림이 번져 나갔다.
정신력에 반응하는 물질.
이를 들은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어?!’
로이스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앞만을 응시했다.
“자, 그럼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와트의 옆에 있던 다른 법사가 마나 스틱을 꺼내 들었다.
그의 마나 스틱 끝에서 붉은 빛이 일렁이자, 액체처럼 찰랑거리던 물체가 스르륵 움직이며 형상을 취해 갔다.
정육면체, 원통형, 구체 등등.
빠르게 변화하는 액체를 보이며 와트가 말을 이어 나갔다.
“오랜 노력의 결실… 저희는 이것에 ‘정신파 변환 물질’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모양이 바뀌는 은빛의 액체.
“지금은 비록 정신 속성에만 반응하지만, 몇 번의 실험 끝에 일반적인 정신력에도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죠. 하지만 그것은 아직 내보일 수준이 못 되기에 완성된 것만 가져왔습니다.”
그 뒤로 조금 더 설명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빗발치는 질문들.
발표자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 바빴다.
“정신에 반응하는 물질이니 여명과 백야가 참여한 것은 알겠지만… 광휘의 법사는 왜 그 연구에 끼어 있소?”
“그건 연구와 관련된 내부 사항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밝히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저 물질로 무얼 할 수 있소이까?”
그간 막힘없이 답하던 와트의 입이 그 질문에서 다물어졌다.
한참 만에 그 입이 열렸다.
“이 물질은 저희 연구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일 뿐인지라… 아직 그 사용처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허… 세 성탑이 공동으로 한 연구라기에 기대했건만, 미완성의 연구를 들고 나왔군. 쯧쯧.”
혀를 차는 질문자의 태도에 와트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기도 했기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발표장에 자리한 여명과 백야, 광휘의 탑주와 부탑주들도 안색이 좋지 못했다.
와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는구나.’
가을 대륙에서 명성이 드높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적도 많다는 소리였다.
때문에 로이스가 아닌, 처음으로 비판하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이후 부정적으로 몰리기 시작한 여론으로 인해 ‘정신파 변환 물질’에 관한 반응 역시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와트에게서 식은땀을 줄줄이 뽑아내는 질문이 사그라들고.
“…더, 더 질문하실 분 안 계십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와트의 시선은 로이스에게 닿아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질문을 해 온 어린 탑주.
조금 전, 어린 탑주의 질문에 폭뇌 탑주가 넋이 나가 퇴장하는 것을 보았기에 와트가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정작 로이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와트는 살짝 안도했다.
“…그럼 이것으로 발표를 마칩니다.”
로이스가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고 발표가 마무리됐다.
그 순간에도, 로이스는 살짝 굳은 눈으로 ‘정신파 변환 물질’이라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어린 탑주의 질문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한편, 내심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정작 로이스는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으니.
‘저거…….’
분명 자신이 본 게 정확하다면 정신 속성이 발휘된 순간 일시적으로 힘 속성도 같이 발동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정신력을 물리력으로 바꿨어?!’
정신 속성과 힘 속성을 전부 다루는 그였기에 저들이 한 연구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에 로이스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력을 통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
현대에서는 이를 이리 불렀다.
‘염동력!’
로이스는 힘 속성을 단순히 인력과 척력이라는 한계 안에서 활용해 왔었다.
하지만 저들이 보여 준 것은 로이스가 정해 놓은 한계 이상의 것.
나아가 무엇보다 로이스를 감탄하게 한 것은 정신 속성을 힘 속성으로 치환했다는 점이었다.
그의 두 눈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로이스는 공간, 시간, 정신, 힘 속성을 모두 타고났음에도 그것을 개별적으로 운용해 왔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정신 속성과 힘 속성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지금까지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속성의 치환이라…….’
실로 놀라운 개념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드래곤들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저들이 이를 처음 발견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배웠네.’
학술제에 기대하고 왔다가 실망만 하고 가는 줄 알았지만,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것을 건진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한 걸음 더 나아갈 실마리를 얻어 기분이 좋아진 로이스.
그는 저들의 연구를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샘플도 얻고 싶은데…….’
또한, 로이스가 저들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발전만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파 변환 물질이라는 것을 본 순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것이 현재 염원의 탑에 절실히 필요한 물질이란 것을 말이다.
그와 함께 한 가지 의문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렇게 굉장한 게… 왜 알려지지 않은 거지?’
지금까지 정신파 변환 물질보다 더 혁신적인 연구는 없었다.
로이스는 시간만 조금 더 흐른다면 저들의 연구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작의 세계관에서 정신파 변환 물질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그 이야기를 연구진이 개량에 실패하였다거나, 혹은…….
‘이대로 묻혔거나.’
로이스의 머릿속에는 ‘정신파 변환 물질’을 활용할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저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물질인지 모를 수도 있었다.
조금 전, 탑주들의 반응만 봐도 그러했다.
아니, 정작 개발한 당사자조차 사용처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로이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이, 발표장으로 한 노인이 들어섰다.
마지막 발표가 시작된 것이다.
발표장에 선 노인을 보며 모두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학술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발표장으로 들어선 노인, 론 그레미온.
가을 대륙 최강의 법사.
그의 발표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 준 내빈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광휘 탑주 론입니다.”
짤막한 자기 소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빈들의 호응에 미소로 답한 론.
그가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그간 우리가 익혀 온 성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이어진 론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 어떤 성탑의 발표보다 커다란 파문을 불러왔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기존의 보조 제어 술식진을 뛰어넘는 새로운 보조 제어 술식진을 세상에 내놓으려 합니다.”
웅성웅성-.
넓은 강당이 울릴 정도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퍼져 나갔다.
혼잡스러운 상황.
그 한가운데서 로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조 제어 술식진?’
론이 언급한 보조 제어 술식진이란 명칭이 너무도 귀에 익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