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9)
9화. 흘러가는 세월 (1)
「차원력 3090년 2월 14일」
이유식을 거부하는 로이스를 위해 영양 간식을 준비했다.
간식을 들고 방으로 가니 로이스가 잠들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일반적인 수면이 아닌 듯싶었다.
드디어 1차 수면기에 접어든 것이다.
보던 책 위에 그대로 엎어져 잠든 게 귀엽기는 했지만, 수면기 전 충분히 영약을 섭취 못 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미 잠들어 버린 걸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무사히 깨어나길 바랄 뿐이다.
잘 자렴. 우리 아들.
「차원력 3090년 2월 18일」
로이스가 잠든 지 5일째.
잠든 로이스를 보러 갔는데 녀석의 침대가 무너져 있었다.
수면기의 헤츨링에게 큰 충격은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놀라 다급히 달려가니 다행히 로이스는 무사했다.
아들 녀석을 눕히고 침대가 무너진 원인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침대의 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파로틴 나무로 만든 침대가 부서졌다?
주변을 살폈지만,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 침대가 부러진 건 우연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린다.
좋지 못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차원력 3100년 2월 14일」
로이스가 잠든 지 오늘로 꼭 10년째이다.
처음 침대가 부러졌을 때 느꼈던 불안감은 기우가 아니었다.
로이스가 잠든 10년 동안 그 주변에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마치 누군가 로이스의 죽음을 바라는 듯한… 일들.
그럼에도 조금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도무지 믿기 힘든 일들이었다.
어떤 놈들이 로이스를 해치려고 수작을 부리는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내 감각을 속이고 로이스에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로이스가 위험하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섰다.
우리 아들을 위협하는 그 어떤 존재.
절대…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만일 로이스의 여린 비늘에 작은 흠집이라도 낸다면… 살아 숨 쉬는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리라!
기필코!
「차원력 3110년 2월 14일」
로이스 주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빌어먹을… 쳐 죽일 놈들!
반드시 찾아내고 말 것이다!
「차원력 3120년 2월 14일」
아들이 잠든 지 30년째.
로이스를 노리는 놈들의 정체를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대신에 로이스의 주변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내 수명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로이스의 안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문제다.
한시라도 빨리 로이스를 노리는 놈을 찾아내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하다.
「차원력 3130년 2월 14일」
로이스가 잠든 지 40년째.
로이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생각해 봤다.
놈은 무엇 때문에 로이스를 노리는 걸까?
이 어린아이를 죽임으로써 놈이 얻는 건 무엇이지?
하지만 아직도 좀처럼 놈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아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조차 알아내지 못했단 무력감이… 나를 옥죄이고 분노케 했다.
빌어먹을.
사락사락-.
일기장을 넘기던 제네로커의 손이 멈칫했다.
당시의 기록을 보니 그때 느꼈던 참담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지금도 로이스가 위험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분노가 차올랐다.
“후우…….”
작은 호흡으로 감정을 털어낸 제네로커가 다시 일기장을 넘겼다.
「차원력 3150년 2월 14일」
로이스가 잠든 지 60년이 흘렀다.
4,102번.
지난 60년간 로이스에게 일어난 정체 모를 암살 시도의 횟수다.
대략 1년에 68회.
평균 5일에 한 번꼴로 암살 시도가 일어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외부의 개입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세상은 용족을 잊었고 오로지 몇몇 이종족만이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과민했던 머리를 식히고 찬찬히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로이스의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이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어떤 존재가 드래곤의 감시를 피해 헤츨링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현시대에 그런 게 가능한 존재는 같은 드래곤뿐이었지만, 헤츨링을 귀중히 여기는 일족이 그런 짓을 벌일 리 없었다.
내 선에서는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아 이 일을 아버지께 상담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천재란 원래 운명의 시기를 받는 법이지.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고난과 시련이 끊임없이 그 아이에게 닥칠 것이다. 초대 용왕께서 그러했듯 말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런 걸까?
로이스의 재능이 너무도 뛰어나기에 운명이 이 아이를 데려가려는 것일까?
확실히 로이스의 재능은 하늘의 시기를 살 정도로 뛰어나기는 했다.
정녕 그런 이유로… 운명이 로이스를 거둬가려 한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신이든, 마족이든, 운명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어떤 것도 우리의 아이를 해칠 수는 없다.
우리 아들은 내가 지킬 것이다!
「차원력 3170년 2월 20일」
벌써 로이스가 잠든 지 8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아이를 시기하는 운명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아들의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늘에서야 든 생각이 있었다.
어떤 아이보다 빨리 배움을 청했고, 수면기 이전에 식사와 잠을 거부했던 로이스.
어쩌면 아들은 이런 자신의 상황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헤츨링들은 위기를 감지하는 본능이 매우 뛰어나다고 했다.
그렇다면 잠들기 전 로이스의 투정 같은 행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로이스가 투정을 부린다며 화를 낸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어린 아들을 볼 낯이 없다.
「차원력 3180년 2월 14일」
오늘로 로이스가 잠든 지 90년째.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로이스를 지켜왔다.
그리고 바로 어제, 로이스가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수면기가 끝나간다는 징조였다.
이대로라면 빠르면 10~20년 이내에 로이스가 깨어나리라.
어서 로이스가 일어나 날 향해 미소 지어주었으면 좋겠다.
「차원력 3189년 12월 22일」
곧 있으면 로이스의 100번째 생일이다.
또한, 태어나 실질적으로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기도 하다.
레어를 벗어날 수 없는 나를 대신해 친구에게 예전부터 생각해 둔 로이스의 선물을 부탁했다.
그리고 조금 전, 로이스의 선물이 내일이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이 선물을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
「차원력 3190년 1월 1일」
100번째 생일날에 딱 맞춰 로이스가 깨어났다.
잠에서 덜 깨서 멍한 표정이 너무도 귀엽다.
아직 녀석은 자신이 1차 수면기를 거쳤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당연히 그럴 만하지.
잠깐 눈을 감았던 거 같은데 100년이 지나 있으니 얼마나 어안이 벙벙할까.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 말이다.
나는 아들 녀석이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가 내가 준비한 선물을 건네줬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로이스가 선물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바로 뜯어봤으면 좋았을 것을…….
과연 로이스가 선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엄청 기대된다!
「차원력 3190년 1월 5일」
…로이스에게 야단을 맞았다.
나보고 왜 이딴 걸 선물해 줬냐고 했다.
왜지?
분명 또래 헤츨링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선물 1순위였는데?
로이스가 화낸 이유를 분석해 봐야겠다.
* * *
탁-.
빠르게 넘어가던 육아 일기장이 덮였다.
그대로 다 쓴 일기장을 책장에 꽂은 제네로커는 책상 서랍을 열어 새로운 노트를 꺼냈다.
아직 아무것도 기재되지 않은 노트.
그럼에도 두꺼운 가죽에는 이미 노트의 사용처가 적혀 있었다.
「로이스 육아 일기장 2」
그리고 그와 같이 생긴 노트가 제네로커의 서랍장에 가득 쌓여 있었다.
“오늘도 우리 아들은 귀여웠지!”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제네로커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로이스에 관한 기록을 육아 일기장을 써 내려갔다.
* * *
대지의 왼쪽 송곳니.
대지에서 솟아난, 하늘을 꿰뚫을 듯 날카로운 이빨.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산이 넓게 포진해 있었고 밑으로는 우거진 수풀이 가득했다.
멀리서 보면 뾰족 솟은 송곳니와 그 주변이 녹색 이빨 같다 하여 세간에서는 이를 ‘녹치(綠齒) 산맥’이라 불렀다.
녹치 산맥은 예로부터 속성력이 풍부하게 퍼져 있어 이종족은 물론이고 수련을 위해 은자(隱者)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이종족.
은자들이 만든 주거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몬스터들까지.
녹치 산맥은 각종 군상을 보듬어 품고 있었고 그들은 산맥 어디든 자유로이 오가며 자연의 선물을 얻어 썼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출입을 자제하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대지의 왼쪽 송곳니 근처에 자리 잡은 높은 봉우리였다.
다른 곳보다 속성력이 풍부하지만,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
어금니를 닮은 듯한 평평한 분지는 언젠가부터 금지(禁地)라 불렸다.
그런데 바로 그 금지에 한 아이가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반들반들한 피부와 윤기 있는 백발.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자줏빛의 눈동자.
이제 막 4~5살이 되었을 듯싶은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아직 어리디어린 아이의 미모가 심상치 않았다.
“핫!”
아이는 귀여운 기합을 내지르며 목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후웅- 팡!.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목검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거친 파공성이 들렸다.
한참이나 목검을 휘두르던 아이가 천천히 검을 회수하여 숨을 골랐다.
그런 아이의 곁으로 하얀 수건 하나가 저절로 날아들었다.
“주인님, 수건 대령했습니다!”
놀랍게도 수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놀라운 것은 수건을 받아 드는 아이의 태도였다.
“오냐.”
대수롭지 않게 수건을 받아 든 아이는 나지도 않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이가 수건이 받아 들자 그 아래 감춰져 있던 20㎝ 크기의 작은 인영이 드러났다.
찰랑거리는 긴 금발.
뽀얀 살결과 작은 얼굴 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아름다운 이목구비.
잠자리의 날개처럼 투명한 날개까지.
수많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요정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아이에게 수건을 건넨 존재의 정체는 요정이 맞았다.
다만 특이하게도 메이드복을 입은 요정이었지만 말이다.
땀을 닦는 시늉을 하던 아이, 이제는 110살이 된 로이스는 자신에게 수건을 가져다준 요정을 뚱하게 바라보았다.
“흐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요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그 주인님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냐?”
“하지만 주인님은 주인님이신 걸요!”
요정의 대답을 들은 로이스의 입에 삐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전혀 아이답지 않은 미소였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냐?”
“로이스 님, 위대한 용족의 자비를 베풀어주시지요.”
로이스의 협박이 있기 무섭게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며 굽신 굽신 거리는 요정.
이에 로이스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째인가?’
로이스의 기억이 핀을 만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