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92)
92화. 협상 (4)
그 뒤로도 로이스는 론과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얼마 뒤, 론이 곧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떠나갔다.
근처에서 멀뚱히 앉아 있던 염원의 탑 일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로이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모두를 대표해 덱스터가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
“거래를 했어요. 아니, 거래를 위한 협상의 장을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이 말이다.”
“별거 아니에요. 그저…….”
로이스는 대략적인 설명을 해 줬다.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덱스터가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러니까… 네가 2차 보조 제어 술식진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알고 있다고?”
“네, 그렇죠.”
“대, 대체 어떻게?!”
“그냥 보니까 알겠던데요?”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던지는 로이스의 저 말에 이제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터무니없는 재능.
보면 볼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덱스터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걸로 뭘 어쩌려는 거냐. 그냥 공동 개발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거라. 욕심을 부리다가는… 그마저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덱스터는 로이스를 걱정했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변화시킬 연구의 공동 개발자로 이름을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믿지 못할 업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모두 그렇게 긍정적으로 흐르지만은 않는다.
어떤 이는 로이스가 공동 개발자로 이름을 올린 걸 순수한 실력이 아닌 뒷거래를 통해 이뤄졌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로이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으리라.
덱스터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로이스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걱정 마세요. 알아서 할게요.”
“네가 얼마나 똑똑한 아이인지 충분히 알기는 하다만…….”
여전히 걱정스러워 보이는 덱스터를 보고 로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말하려 했는데…….’
저렇게 걱정하는 것을 보니 그냥 지금 말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 속에 로이스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이게 순전히 저를 위한 일이라고 보세요?”
“……?”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염원의 탑을 위한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뭘 어쩌려는 거냐고 물으셨죠?”
“…….”
“제가 원하는 건 어제 본 정신파 변환 물질의 사용권입니다.”
“그러니까… 그 해결책이란 걸 내주고 정신파 변환 물질의 사용권을 얻어 내려는 게냐?”
“네.”
“…그걸 어디에 쓰려고?”
“말했잖아요. 염원의 탑을 위한 일이라고.”
로이스가 빅터, 더글라스, 에리카, 플로리아를 빙 돌아보았다.
자신의 염원을 위해 삶을 바치고 있는 이들.
돌고 돌아온 시선이 다시금 덱스터에게 닿았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물질은 사용자의 정신에 반응해요.”
“그랬지.”
“그렇다면 그 물질로 금속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혹은 신경, 근육과 유사한 것들을 제작할 수 있다면요?”
“……?!”
덱스터를 비롯한 제자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로이스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선사했다.
“허!”
“맙소사!”
“맞아!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모두가 저마다 한마디씩 탄성을 내뱉었다.
덱스터에게서도 신음과도 같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설…마?”
“정신파 변환 물질을 잘만 이용하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정교한 기물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요.”
염원의 탑 제자 4인에게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빅터의 다리.
더글라스의 팔.
에리카의 날개.
플로리아의 눈.
오랜 시간 연구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실제 신체와 같이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로이스의 말처럼 정신파 변환 물질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꿈꾸는 염원을 이루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리라.
로이스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또한, 초월기에 정신파 변환 물질을 이용한다면…….”
로이스의 말을 덱스터가 이어받았다.
“…실제 무사와 같은 움직임, 나아가 조종 장치 없이 사용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초월기가 탄생하겠지.”
덱스터의 목소리에는 짙은 흥분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로이스가 말한 염원의 탑을 위한 일이란 것이 무엇인지.
또한, 로이스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염원의 탑 일동에서 술기운 따위는 진즉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덱스터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 해결책이란 거… 확실한 게냐?”
덱스터의 물음에 로이스는 그저 빙그레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 미소에서 확신을 얻은 덱스터가 눈을 빛냈다.
“내가 도와줄 게 있느냐?”
* * *
론에게 연락이 온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던 로이스와 덱스터는 론이 마련한 장소로 향했다.
광휘의 탑 제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
그곳에는 둥근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아홉 사람이 자리해 있었다.
광휘의 탑의 론과 부탑주.
여명과 백야의 탑주와 부탑주인 로건과 에이든.
그리고 정신파 변환 물질을 개발해 낸 3명의 법사까지.
덱스터와 로이스의 등장에 미리 자리하고 있던 이들이 의아한 눈빛을 해 보였다.
사전에 둘의 참석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덱스터와 로이스는 탁자의 한쪽, 비어 있는 곳에 자리했다.
의자에 앉았지만, 겨우 탁자 위로 빼꼼히 올라온 로이스의 하얀 머리가 무거운 실내 분위기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하얀 정수리를 내려다본 덱스터의 뇌리로 로이스가 한 이야기가 스쳤다.
‘일단 전 협상에 끼어들지 않을 거예요.’
‘어째서?’
‘대륙의 판도를 바꿀 막대한 이익이 오가는 자리예요. 어린 저보다는 덱스터 할배가 전면에 나서는 게 더 외관상 보기 좋아요.’
‘…하지만 론 탑주는 그 협상 자리를 만든 게 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냐?’
‘그분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알아서 행동하실 거예요.’
‘흠…….’
‘아무리 론 탑주님이 저에 대해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탑주들도 저를 인정해 준다는 보장은 없죠. 오히려 제가 불렀다고 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길 수도 있잖아요?’
‘확실히 그렇긴 하지……. 알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나설게요.’
‘허 참…….’
누가 어른이고 누가 어린애인지.
그럼에도 어린 로이스의 존재가 너무도 든든했다.
덱스터는 로이스에게 의지하는 자신의 속내에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있는 곳이 협상장이란 것을 깨닫고 곧장 정면을 바라보았다.
비어 있던 자리가 모두 차니, 여명의 탑주가 입을 열었다.
“저들이 마지막이라면 올 사람은 모두 온 것 같으니… 이제는 말해주시지요. 어찌하여 저희를 부르 신겁니까?”
이는 여명의 탑주만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로이스와 론, 덱스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가진 궁금증이었다.
난데없이 할 말이 있다며 은밀히 사람들을 불러 모은 론.
하지만 그조차 회담의 정확한 목적은 알지 못했다.
론의 시선이 염원의 탑 쪽으로 향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염원의 탑에서 말해 줄 것이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저희를 부른 게 론 탑주님이 아니었다는 말인지요?”
여명과 백야 탑주의 안색이 굳어졌다.
론이 자신들을 불렀을 때, 그들이 군말하지 않고 모인 것은 2차 보조 제어 술식진 때문이었다.
혹여 그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는 게 아닐까 싶어 찾았건만, 실상은 그들의 기대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그사이, 론은 말없이 염원의 탑 방향만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을 대신해 해명하라는 듯 말이다.
이를 알아차린 덱스터가 최대한 무덤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상체를 숙여 보였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어 부득이하게 론 탑주님의 명성을 빌려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차분한 덱스터의 목소리에 다른 이들이 불쾌한 기색을 가라앉혔다.
“대체 무슨 연유로 우리를 부르셨소?”
“그건…….”
덱스터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원의 탑에서 2차 보조 제어 술식진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고 하더이다.”
갑작스럽게 터진 론의 폭탄 발언.
광휘의 부탑주도 전후 사정을 모르고 끌려온 듯, 매우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타, 탑주님의 연구에 문제가 있다고요?”
“그렇네.”
론의 빠른 인정에 여명과 백야의 탑주가 다급히 물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무슨 문제입니까?”
“직접 사용해 보신 분들은 어찌 느끼셨습니까? 2차 보조 제어술식진을 적용한 마나 스틱에서 무슨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아뇨. 저는 몰랐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염원의 탑에서는…….”
잠시 뜸을 들인 론의 시선이 로이스에게 향했다.
“그 문제를 단번에 알아맞히더군요. 그것도 꽤 상세하게 말입니다.”
“…….”
짧게 이어지는 침묵.
모두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명과 백야의 사람들은 어째서 론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백야 탑주가 궁금증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한데, 그것이 저희를 불러 모으신 것과는 무슨 연관이……?”
백야 탑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덱스터가 끼어들었다.
“협상하고자 하외다.”
“협상? 무슨 협상 말입니까?”
“저희 염원의 탑은 정신파 변환 물질 사용권 체결 및 기술 협약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허,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덱스터의 발언에 좌중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특히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와트를 비롯한 정신파 변환 물질의 연구자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두 눈을 끔뻑거렸다.
론이 탄식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허… 그래서 이들을 모아 달라고 한 거군.”
그는 그제야 로이스가 이들을 왜 모아 달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정신파 변환 물질을 연구한 이들은 광휘와 백야, 여명에 소속된 법사들이었다.
따라서 정신파 변환 물질의 사용권과 기술 협약을 맺고자 한다면 각 탑의 최고 결정권자들이 필요했다.
여명의 탑주가 덱스터를 보다가 살짝 인상을 썼다.
“앞뒤 다 자르고 말하지 말고, 자세하게 이야기하시게. 시간 낭비를 하고자 우리를 부른 게 아니거든.”
“그렇소. 론 탑주와 염원의 탑에서 무슨 이유로 우리를 불렀는지는 대충 알겠습니다만… 염원의 탑이 론 탑주님께 해결책을 내놓은 것과 정신파 변환 물질을 원하는 게 무슨 연관이 있소?”
답답하다는 듯 짜증을 내는 둘을 보고 덱스터가 진짜 목적을 내뱉었다.
“저희 염원의 탑이 원하는 것은 정신파 변환 물질의 독점 사용권입니다.”
“그 무슨?!”
덱스터의 요구에 에이든이 버럭 소리쳤다.
이를 손을 들어 저지한 여명의 탑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사람을 불러다 놓고 장난을 치시는 게 아니라면… 과한 농담을 하시는구려.”
“농담이 아니올시다.”
“좋소, 염원의 탑에서 그걸 원한다 치고… 독점 사용권을 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얼 내주실 겁니까?”
“아시다시피 저희 염원의 탑은 소형 탑이기에 자금과 인력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독점 사용권의 값을 지급할 여력이 되지 못하지요.”
“…그래서?”
“때문에 그 값을 2차 보조 제어 술식진의 해결법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게요?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광휘의 탑이지 않소이까!”
백야 탑주의 성화에 덱스터는 사전에 로이스가 알려 준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그렇지요. 하지만… 2차 보조 제어 술식진의 수익 지분 중 일부를 귀하의 탑에 제공한다면 어떻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