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천장에서 떨어진 재신 (2)
인질이 된 순간, 로이스의 뇌리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처음에는 얼떨떨.
‘오? 나 지금… 인질 된 거야?’
그다음에는 감탄.
‘이야, 살면서 인질을 다 해 보네!’
살면서 인질이 될 거라고 언제 예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난생처음 겪는 색다른 경험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고.
그다음에 로이스의 뇌리를 강타한 것은 분노였다.
‘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나를 인질로 잡아?’
물론 겉모습만 보면 충분히 만만해 보이는 외모였지만, 당사자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차오른 분노를 표출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인질범이 바닥에 눕기까지 불과 15초 남짓.
통나무처럼 바닥에 누워 있는 인질범을 보며 파브로가 물었다.
“…죽었겠죠?”
“안 죽었어. 아니… 죽었나?”
살짝 과하게 힘을 넣기는 했다.
얼굴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났으니 말이다.
살짝 확인해 보니 상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살아 있기는 한가 보다.
그 순간 기절한 이의 가슴팍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응?”
로이스가 녀석을 집어 들었다.
-뀨…….
“…족제비?”
인질범의 가슴팍에서 나타난 것은 새하얀 털과 녹색 눈을 가진 족제비였다.
녀석은 로이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화들짝 경기를 일으켰고, 이내 시선을 내리깔며 오들오들 몸을 떨어 댔다.
‘이것 봐라?’
눈을 마주치자마자 덜덜 떠는 것을 보니 본능적으로 자신이 최상위 존재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영수인가?’
지붕에서 떨어진 괴한과 영수.
신기한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 로이스의 기감에 빠르게 여관 계단을 올라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저 인질범을 쫓아온 사람들 같은데…….’
한밤중에 일어난 소란도 저 괴한으로 인해 벌어진 소란이리라.
‘그냥 넘겨? 아니면 지켜봐?’
고민의 순간, 로이스의 본능이 냄새를 맡았다.
이번 일로 인해 자신에게 이득이 생길 것 같다는… 그런 향긋한 냄새를 말이다.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퍽-.
로이스가 방 한가운데 퍼질러진 괴한을 발로 찼다.
한쪽 구석으로 데구르르 굴러가는 괴한.
동시에 로이스가 성법을 펼쳤다.
‘투명화, 공간 왜곡.’
성법으로 기절한 괴한을 철저하게 숨겨 놓은 로이스.
몇 초 뒤, 로이스 일행의 방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하나같이 검을 옆구리에 차고 거친 기세를 뿌리는 무사들.
그들은 방 주인인 로이스 일행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구멍이 난 천장을 살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로이스가 파브로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메시지를 들은 파브로가 앞으로 나섰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약간 성난 듯한 파브로의 목소리에 무사의 대표로 보이는 이가 답했다.
“혹시 이곳에 검은 옷차림의 괴한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나타났었지.
나타나자마자 머리통 깨져서 저기 방구석에 기절 중이지만.
하지만 그것을 말할 정도로 파브로가 눈치는 없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극한의 눈칫밥 2년으로 인해 그의 눈치 보기는 새로운 경지에 올라 있었다.
파브로는 로이스가 무슨 이유에서 인질범을 숨긴 것인지 대략 깨닫고 상황을 꾸며 말했다.
“왔었소.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며 시커먼 게 뚝 떨어지더이다. 그 때문에 우리 애들 놀란 거 안 보이오?”
자고로 사기란 손발이 맞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이스와 쌍둥이는 파브로와 매우 합이 잘맞았다.
“흑…….”
“후에에엥.”
“사, 삼초오온… 무서워. 저 아저씨들 뭐야?”
파브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이스와 쌍둥이가 겁먹은 얼굴로 훌쩍였다.
당황한 무사들이 살짝 경계를 누그러트리며 물었다.
“그놈… 어디로 갔습니까?”
낯빛 하나 바뀌지 않은 파브로가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뭐가 바쁜지 그대로 나가더이다… 아니, 그렇게 가면 무너진 천장값은 누가 물어줍니까? 당신들 어디 소속이오? 천장값은 당신들한테 청구하면 됩니까?”
“크흠, 그게…….”
무사가 난감한 얼굴을 해 보였다.
눈치를 보던 파브로가 뒤를 흘낏거렸다.
“일단 여기는 애들도 있고 하니…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그 말에 무사들인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는 로이스와 쌍둥이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무사들을 이끌고 사라지는 파브로의 뒤통수에 대고 로이스가 메시지를 날렸다.
[자세하게 알아 와!]파브로가 보일락 말락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지고 한 참여 뒤.
혹시라도 또 무사들이 들이닥칠까 싶어 눈치를 보던 로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휘휘 주변을 살폈다.
“완전히 간 거 같지?”
“그런 거 같네요.”
로이스의 정수리에 매달려 있던 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찰을 마친 로이스가 방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펼쳐진 성법을 풀고 괴한을 질질 끌고 온 로이스.
“보자… 넌 정체가 뭐니?”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쓰러진 괴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복면을 휙- 벗겼다.
그러자 드러나는 괴한의 민낯.
이를 본 로이스가 살짝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여자……?”
분명 처음에 굵직한 목소리를 듣고는 호리호리한 남자인 줄 알았다.
한데, 천장을 뚫고 떨어진 괴한은 다름 아닌 여성이었다.
대략적인 나이는 서른 중후반쯤으로 추정.
옅은 구릿빛의 작은 얼굴과 긴 속눈썹.
오밀조밀 짙고 뚜렷한 이목구비.
비록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고는 있지만, 그것만 빼면 상당히 미인에 속하는 외모였다.
이를 본 흰족제비가 앞발로 눈을 가렸다.
마치 끔찍하다는 듯 말이다.
-뀨우…….
족제비의 나직한 울음소리를 들은 핀이 말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라고 하네요.”
“응?”
로이스가 살짝 놀라 핀을 돌아보았다.
“너… 저걸 알아듣는 거야?”
“당연하죠!”
그런 핀의 반응에 되레 로이스가 어이없어 했다.
“아니… 그게 왜 당연한 건데?”
“원래 요정이라면 동물 언어 한두 개쯤은 익혀 두거든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써먹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거냐?”
“넵! 모든 동물의 말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설치류 언어는 통역 가능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조류와 파충류 쪽 언어에 능통하셨고요!”
“그것참… 쓸모 있는 능력이네.”
“그럼요! 이 정도는 되어야 로이스님을 모신다고 할 수 있죠! 헤헤.”
오랜만에 한 건을 했다는 자부심에 핀의 콧대가 올라갔다.
그렇게 로이스와 핀이 떠드는 사이 파브로가 돌아왔다.
“다녀왔…….”
방 안으로 들어서던 파브로.
그의 시선이 방 한가운데 기절해 있는 괴한의 얼굴에 꽂혔다.
동시에 멍하니 풀려나는 파브로의 동공.
그는 한동안 방문 앞에 오도카니 서서 말이 없었다.
“파브로?”
“…….”
“파브로?”
자신의 부름에도 말이 없는 파브로를 보며 로이스가 인상을 썼다.
“파브로!”
“…네?”
“뭐 하냐?”
“아,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파브로는 쭈뼛쭈뼛 움직였다.
그러는 중에도 그의 시선은 기절한 여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를 무시한 로이스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예? 뭐, 뭐가 말입니까?”
“…정신 안 차리냐?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거!”
“아! 그게 말입니다.”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파브로가 알아 온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무엘 영주의 저택에 ‘밤족제비’의 예고장이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밤족제비?”
“20년 전부터 가을 대륙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도둑이랍니다. 도둑질하기 전 흰족제비가 그려진 예고장을 날리는 것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놈인데…….”
파브로의 설명을 요약해 보자면 이러했다.
가을 대륙에서 귀족의 저택만 터는 악명 높은 도둑.
예고장을 보내면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도둑이 사무엘 영주에게 예고장을 보냈다.
밤족제비가 훔치겠다고 한 것은 100년 전 가을 대륙 최고의 세공사 존윅의 마지막 유작.
사무엘 영주가 애지중지하는 보물이며, 꼭꼭 숨겨 둔 비보란다.
예고장에 적힌 날짜가 오늘이기에 도시 전체가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밤족제비가 경계망에 걸려들었다는데…….
이야기를 모두 들은 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가만… 대충 상황을 보면 이 녀석이 밤족제비라는 거잖아?’
그의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
만약 저 여인, 밤족제비가 지금 사무엘 영주의 비보를 털고 나오는 길에 발각된 것이라면?
‘오호라.’
그렇지 않다면 사무엘 영주의 무사들이 죽어라고 밤족제비를 쫓았겠는가.
로이스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후후후.”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에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오른 파브로가 로이스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어,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파브로의 물음에 로이스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인질극으로 인해 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보상할 치료비를 뜯어… 아니, 받아 내야지!”
드래곤이 친히 인질까지 되어 주었는데, 그 정도는 받아도 되잖아?
안 그래?
울끈 주먹을 말아 쥔 로이스를 보며 파브로가 뚱하게 물었다.
“방금 뜯어낸다고…….”
“조용히 해. 사소한 거는 넘어가.”
“…….”
“이건 치료비야, 치료비! 내 여린 마음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합당한 금전 요구라고!”
“…치료비는 저쪽에서 받아야 할 거 같은뎁쇼?”
파브로가 어이없다는 듯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로이스는 그런 시선 따위는 사뿐히 무시해 줬다.
‘이야, 어쩐지 뭔가 돈 냄새가 진하게 나더니 천장에서 재신(財神) 떨어졌네?’
홀쭉해진 토끼 지갑을 채워 놓을 생각에 로이스의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핀!”
“넵!”
“당장 몸수색을 해! 샅샅이 뒤져!”
“알겠습니다!”
로이스의 명령을 받은 핀이 밤족제비의 야행복으로 파고들었다.
곧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일었다.
잠시 뒤, 밤족제비의 앞섬에서 뽈록 머리를 내민 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엥? 없어?”
“네! 없어요!”
“뭐지? 중간에 어디로 빼돌린 건가?”
로이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쌍둥이 사이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흰족제비에게 닿았다.
재빨리 족제비의 뒷덜미를 집어 든 로이스가 녀석을 짤랑짤랑 흔들며 다그쳤다.
“너 이 자식… 순순히 불어. 어디다 숨겼어!”
-뀨엑!
녀석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를 핀이 해석해 줬다.
“자기는 모른다는데요?”
“어쭈? 이 와중에 의리를 지키겠다 이거냐?”
-뀻!
“죽으면 죽었지 자기는 말할 수 없대요.”
“오호라, 과연 그 의리가 얼마나 갈까?”
씨익 미소를 지은 로이스가 흰족제비를 쌍둥이에게 던져줬다.
“쌍둥이 받아.”
자신들의 손에 떨어진 흰족제비에 쌍둥이가 신나 물었다.
“족제비!”
“이거 맛난 거야? 잡아먹어?”
“맛있어?”
“나는 구워 줘!”
“나는 튀겨 줘!”
입맛을 다시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쌍둥이의 모습에 경기를 일으키는 흰족제비.
-뀨에엣!
발버둥 치는 녀석의 구슬픈 비명이 처량하게 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로이스 님?”
“어떡하긴! 일어나면 받아야지!”
“그런데 저 여자가 치료비를 순순히 내놓으려고 할까요?”
“후후, 핀.”
“네?”
“깽값은 받아 내는 게 아냐. 뜯어내는 거지.”
그 말에 파브로가 작게 중얼거렸다.
“봐 봐, 아까 분명 뜯어낸다고 했던 거잖습니까?!”
물론 로이스는 또다시 파브로의 중얼거림을 사뿐히 무시해 줬다.
대신 핀에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너무 걱정 마.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로이스의 눈이 밝게 빛났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로이스를 뒤로하고 핀이 파브로에게 물었다.
“파브로야…….”
“예?”
“근데 깽값이 뭔지 알아?”
“글쎄요…….”
파브로라고 알 턱이 있겠는가.
그저 로이스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겠거니 싶었던 거지.
파브로가 기절한 밤족제비를 보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그녀가 하필 도주로로 택한 지붕이 무너진 것도.
추락한 곳에 로이스 일행이 있었던 것도.
나아가 로이스를 인질로 택한 것도.
이는 어쩌면 운명일 지도 몰랐다.
비록 당사자에게는 일생에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운명일지 모르겠지만.
‘재수 없어도… 더럽게 재수가 없으시구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여인 바라보는 파브로의 눈에 진한 안타까움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