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03
Chapter 45. 공조(2)
“은호 씨?”
“아, 네.”
“무슨 소식을 들었길래 기분이 좋아 보여요?”
“하하, 아닙니다.”
빙그레 웃는 지은 씨의 어깨 너머로 팀원들이 보인다.
기다란 소파를 기역(ㄱ)자로 배치하고, 중앙의 소파 테이블을 치운 대신 라운지체어들을 모아 자리를 마련했다.
몇 명은 카펫 깔린 바닥에 앉았고.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도 안 불편혀! 무신 바닥 카페트가 앵간한 이불보다 좋은디?”
엉망이 된 지하 요새를 정비하는 동안, 사택에서 회의를 진행하기로 한 참이었다.
“저…… 은호 씨, 근데 여기 가구는 밖으로 못 빼냈어요. 제약이 걸려 있나 봐요.”
“아, 그건 괜찮습니다.”
“네? 하지만, 여기 곧 뺏길 거라고…….”
지하 요새의 가구들이 부서졌으니 여기 있는 걸 가져다가 쓸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택이야 올해의 사원 칭호와 함께 넘어갈 거라 생각했으니, 가구라도 살뜰히 챙길 생각이었지.
‘찾아보면 가지고 나갈 방법이야 있겠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으니까.
“그냥 계속 써도 될 것 같습니다.”
“편하고 좋아요!”
“그니까요. 회의실 상태도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럼 일단 다들 모인 것 같고.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해 볼까.
노사협력팀의 첫 회의.
‘먼저…….’
지은 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허공에 대고 뭔갈 누르나 싶더니.
파앗-
모두의 눈앞에 커다란 스크린이 떴다.
가로로 눕힌 A4용지 비율의 직사각형 화면.
흰 바탕에 깔끔한 검은색 폰트로 『노사협력팀 정기회의』라고 적힌…….
“파워포인트야?!”
“저게 뭐야!”
PPT.
“푸하, 완전 제대론데요, 팀장님?”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이예지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리더니 ‘오랜만이네.’하며 묘한 얼굴을 했다.
사실 지은 씨와 농담처럼 한 얘기였다.
영상 편집도 가능한 만큼, PPT처럼 화면을 공유할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진짜 있을 줄은 몰랐지.
아무튼 없는 게 없는 시스템이라니까.
“다음 장.”
스륵-
지은 씨의 터치에 PPT가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갔다.
오늘 회의의 아젠다, 그러니까 논의할 주제가 담긴 목차 페이지다.
“오늘 논의할 건 두 가지. ‘팀 목표 설정’과 ‘노사협의체 신설 동의서 수집 방법’입니다.”
모두의 눈이 화면을 읽어 내려가길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저마다의 반응을 내어놓는 팀원들.
“목표?”
“아무거나 세우면 되는 거예요?”
여고생들을 포함한 절반가량의 팀원들이 ‘목표?’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치. 목표부터 정해야지.”
“근데 이것도 위에서 실적 쪼려나?”
“실적이 뭔데요, 우리?”
“어…… 그러게?”
회사 생활을 해 본 이들은 곧장 고개를 주억거렸고.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다음 장.”
팟-
【핵심 목표(총 0%)】
1. ____________ (0%)
2. ____________ (0%)
3. ____________ (0%)
“핵심 목표 세 가지를 정하면, 그게 곧 ‘프로젝트’가 된다고 했습니다.”
“프로젝트요?!”
모두의 얼굴이 똥 씹은 사람처럼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자의 권한으로 ‘프로젝트’가 활성화됩니다.] [프로젝트명, ‘선별(選別)’]구조 조정 초반부터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었다고.
그게 이거였냐, 싶겠지.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될 거야.”
“아! 그럼 프로젝트에 따라 미션도 생기는 겁니까?”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젝트마다 가이드 미션이라는 게 있다고 하니까.”
“가이드 미션…….”
“네. 그러니 영 엉뚱한 목표를 설정하면 안 돼요. 진짜 할 걸 넣어야 합니다.”
팀원들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목숨을 좌지우지하던 미션에서 겨우 벗어났다 생각했는데 아직 끝이 아니라 말한 셈이니.
‘심경이 복잡하겠지.’
분위기가 너무 처지면 어찌해야 할까.
그리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럼 우리 팀 목표를 우리가 세우는 거네요?”
“그건 대박인데? 우리 마음대로 정하란 거잖아.”
“그쵸? 목표 때문에 한 달 내내 여기 보고하고, 그 위에 보고하고…… 아주 난리잖아요, 원래.”
‘음?’
내가 너무 약하게 봤나 보다.
다들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쓰는 건지, 장난스레 한마디씩을 던졌다.
이예지도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며 몸을 부르르 떠는 척을 하더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네? 뭐가요?”
“이 목표, 통과되려면 담당 처장 승인이 필요하거든요.”
“어…… 근데 저흰 처장이 없잖아요?”
이예지의 말이 맞다.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 낸 신생 부서다 보니 우리 부서를 맡고 있는 처장이 없는 상황.
“그럼 누구한테 승인을 받아요?”
“그 윗사람이죠.”
즉.
“국장.”
“예에?!”
인사국장 직속 부서라는 뜻이지.
“서, 설마 그렇게 높은 분이 우리까지 신경 쓸까요?”
예전 같았으면 나도 그리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개 신생 팀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겼다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러겠더라고.
“쓸 겁니다.”
쓰고도 남지.
어떻게든 훼방을 놓으려 할 테니.
“마뜩잖아하거든요. 지금 우리 팀.”
“으으…… 하긴 회사 측에서는 눈엣가시일 수 있겠네요. 그래도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너무해…….”
이예지가 혀를 툴툴 차며 말하자, 옆에 있던 보라가 끼어들어 물었다.
“오빠! 근데 그럼 국장이 엉뚱한 거 하라고 목표 바꿔 버리면 어떡해요?”
“최대한 방어해야지.”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목표가?”
중요하다마다.
왜냐하면.
“실패하면 팀 차원에서 페널티가 있을 거야.”
“!!”
그렇게 설명한 ‘목표 미달성 시 예상되는 페널티.’
첫째. 팀장 평가를 거지같이 받을 거다.
팀원들 또한 좋은 평가를 줄 수 없기에, 인센티브 따위에서 손해를 보겠지.
둘째. 연봉 인상률이 줄어든다.
사실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이 거지 같은 회사라면 어쩌면 월급이 전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얘긴 안 하는 걸로.
마지막으로 셋째. 인력 감축.
팀원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팀장인 내 입장에선 이게 제일 크리티컬하다.
내 손으로 나갈 팀원을 골라내야 할지도 모르니까.
“와…… 너무 끔찍해요.”
그렇게 대략적인 설명을 마치자 어린 팀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끔찍하다. 너무 잔인하다. 냉정하다…….
하지만.
“원래 회사도 그래.”
이건 예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냥 씁쓸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
“대신 목표 달성하면 반대일 거야.”
“반대라면…….”
첫째.
팀장 평가도 최상으로 받을 거고.
둘째.
월급도 팍팍 늘 거고.
셋째.
인력도 더 많이 데려올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인력 충원으로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를요?”
“계약직들.”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
“……아마 다시 오진 못할 겁니다.”
재만 남은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
“다음엔 위에서 뵐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을 팀원으로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진급 등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인사처와도 협의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열려 있단 소리다.
“‘인사 규칙’에 팀원 선발은 팀장 재량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니 영 불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
그러자 팀원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번져 갔다.
눈앞의 생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목표 의식.
이곳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사회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런 것들이 작은 돌멩이가 되어 생존자들의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핵심 목표(총 0%)】
1. ____________ (0%)
2. ____________ (0%)
3. ____________ (0%)
텅 비어 있는 세 개의 칸이, 마치 긁지 않은 복권과도 같다 생각한 순간.
“아저씨! 이거 어때요?”
“저도! 좋은 생각 났어요!”
팀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같은 마음으로.
* * *
우선 팀원들과 합의한 목표는 크게 세 가지.
1. 노사협의체를 만들고.
2. 그를 이용해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3. 궁극적으로는 회사 측과 동등한 입장에서 싸우고자 한다.
그를 위해 파업이든 전투든 불사할 거고.
‘하지만 이걸 다 공표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이제 겨우 첫 삽을 뜨는 입장인데 지레 겁먹은 사측에서 콘크리트를 부어 버리면 큰일이니까.
“겉보기엔 회사를 위하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소에주를 보고 깨달은 사실이다.
회사에 대체할 수 없을 만큼의 입지를 쌓은 뒤엔 운신의 폭이 자유로워진다.
‘칼로 찌르려면 일단 가까이 가야 한다는 거지.’
“아직은 우리 입지가 너무 얕으니까요.”
“전 동의! 만들자마자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우리.”
이예지를 비롯한 팀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던 보라가 턱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일단 우리 패를 다 까기 전에, 우리 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둬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동조하는 민여진.
“맞아, 맞아. 사실 이런 거 다 여론전이거든요.”
“여론전?”
“이거 해야 된다, 하는 게 우리한테 좋은 거다! 그 여론을 확실히 심어 줘야 돼요. 회사에서 억지로 해산시키려고 하면 집단행동 할 수 있도록요.”
집단행동이라.
‘확실히…… 일리는 있어.’
말괄량이 여고생의 의외의 모습에 놀란 건 나만은 아니었는지, 청소 아주머니가 손뼉을 짝! 치며 감탄했다.
“옴마나, 요즘 학교선 그런 것도 알려 주남? 학생들이 똑똑혀!”
그러자 여진이가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이며 웃는다.
“헤헤, 학교에선 안 알려 주죠.”
“잉? 그럼?”
“야생에서 배웠달까요?”
청소 아주머니가 ‘야새앵?’하며 벙찐 얼굴을 했다.
여진이는 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제 할 말만 했지만.
“우선 하나는 노동조합 설립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하고 있는 거니까요.”
“좋은 생각이야. 또 아이디어 있으신 분?”
그리 생각하며 논의한 결과.
“그럼 노사협의체 신설만 오픈하는 걸로 하고.”
우리 모두 주력해야 할 ‘협의체 신설’. 하나는 확정.
“나머지는 건수만 채우면 되는 걸로 넣죠.”
그리고 나머진 적당히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있는 목표들로 정했다.
그리하여.
【핵심 목표(총 100%)】
1. 성과 증진을 위한 근로환경 개선 (50%)
2. 원활한 소통을 위한 노사협의체 신설 (30%)
3. 직원 만족도 개선을 위한 VoE 수집 (20%)
이걸로 최종 결정.
“이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엄청 애사심 강한 사람이 만든 목표 같아요.”
목표를 빤히 들여다보던 지은 씨가 웃으며 말했다.
애사심 강한 사람이라.
의도한 대로 됐네.
“근로환경 개선은 정 안 되면 낡은 사무실 가서 책상만 바꿔 줘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정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원래 목표 한 번 세우려면 팀장 보고에, 그 윗선 보고에, 윗사람들을 설득할 근거 자료를 만드느라 한참 고생했는데.
빨리 끝났다.
‘국장을 설득하는 일이 남긴 했지만.’
뭐, 그건 찬찬히 생각하기로 하고.
“VoE가 뭐라고 했죠?”
“Voice of Employee. 직원들 불평불만 같은 의견을 듣는 거야.”
“아, 그럼 듣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완전 꿀인데?”
“하하…… 이대로 정해지면 괜찮은 것 같아.”
호기심 가득한 여고생들에게 설명하는 동시에.
[목표를 등록하시겠습니까?]“네.”
시스템 등록까지 마쳤다.
[등록 완료!] [오입력했을 경우 일주일 내에 수정 가능하며, 등록된 목표는 상위 결재권자에 의해 수정 또는 반려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이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하면 될까요?”
“이대로 통과된다고 가정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회사에 불만 있는 직원을 찾아야죠.”
혼자선 무리지만, 집단의 힘을 빌려서라도 회사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직원.
그들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서 찾죠?”
“우선…….”
막막해하는 팀원들에게 설명하려 입을 뗐다.
— 띠링!
그때, 새로이 떠오른 메시지 창.
【프로젝트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적합한 팀 미션을 생성 중입니다.】
【Processing……】
“팀 미션?”
“이렇게 바로 나온다고?”
……꼭 이럴 때만 일 처리가 빠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