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317
외전 5. 일하고 싶은 회사(2)
[광장에 설치된 테이블은 총 4천 개. 한 잔씩 마신다 치면 약 2분. 지금이 6시니까, 자정까지 180개는 돌겠네요. 나머지는 내일부터 같이 점심 식사나 티타임이라도 하는 걸로 하죠.]분명 내 입으로 말하긴 했다.
점심 식사나 티타임을 하자고.
근데, 이게 어딜 봐서 ‘점심 식사’ 정도 스케일이냐고…….
“현수막 비뚤어졌다! 조금 더 왼쪽으로!”
“트랙 정비 끝이요!”
“경기장 뒤쪽에 스낵바 있으니까 먹을 거 챙겨 가세요!”
드넓은 평지 가득 설치된 허들이며 원형 모래사장 따위의 시설물.
각종 핑거푸드와 음료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스낵바.
미리 짠 것처럼 트레이닝복까지 차려입고 온 팀원들.
[은호 씨! 다음 주 노사협력팀 점심 식사 말인데요, 오후 일정까지 비워 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요?] [오후를 전부요? 빠듯하긴 한데…….] [제가 조정 한번 해 볼게요.]오후 일정을 비워 달라기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해 보겠노라 했다.
지은 씨가 각 부서에 연락해 적극적으로 움직여 준 덕에 시간을 빼긴 했지만, 그게 다 이 사태를 위한 물밑 작업이었을 줄이야.
[여기, 오늘 행사 순서예요.] [점심 식사가 언제 행사가 된 겁니까?] [자, 자, 사소한 건 넘어가구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 오늘 행사의 진행을 맡았다는 세라가 다가와 식순을 건넸다.
1. 개회식
2. 미니 게임
1R. 보물찾기
2R. 밀어내기
3R. 장애물 달리기
……
3. 폐회식
‘너무 진심이잖아!’
이게 무슨 점심 식사냐고.
운동회지.
[이런 건 언제 또 준비한 겁니까?]회사를 재정비하느라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업무 시간엔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했고, 저녁을 대충 때우고 다시 들어가 새벽까지 야근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이 뭘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챙길 여유가 없었는데.
[짬짬이 했죠. 어제 오후 근무 빼고 리허설도 했고.] [……리허설까지 했다고요?] [당연히 해 봐야죠! 안전에 문제 생기면 안 되니까.]세라는 뻔뻔하고 당당한 얼굴로 허리춤에 손을 얹더니 말을 이었다.
[아참, 오후 근무 시간은 미리 다 채웠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러라고 만든 자율근무제가 아닙니다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라면서요? 우린 이러고 놀아…… 아니, 살아요.]그렇게 할 말 없게 만들더니, 마이크를 켜고 한데 모여 눈을 빛내는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그럼 야유회를 시작해 볼까 하는데요!]우레처럼 터져 나오는 함성.
[하지만! 그냥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선물을 걸면 어떨까 싶은데! 회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갑작스런 진행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왕 하는 거 팀원들이 즐겨 주는 쪽이 좋겠지.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끼리 노는 데 회사 예산을 쓰면 공정성에 문제가 있겠죠? 그러니 별도 예산이나 아이템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세라가 눈을 빛내며 물어 왔다.
[소원권, 어떠세요?] [예?] [우승자에겐 회장님이 작은 소원 하나 들어 주는 거죠!]아, 내가?
[뭐,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네! 그럼 백지 소원권 제공에 동의하셨구요!] [예?!]그러자 또다시 쏟아지는 박수갈채.
“예쓰!”
“몸부터 풀어! 다들!”
“후, 내가 이 날을 위해 일주일동안 체력단련을 했다고!”
뭔데.
작은 소원 하나라며.
[오늘 우리 회장님 한 번 잡아보는 겁니다!]““와아아아아아!””
왜 갑자기 눈에서 불꽃이 튀는 건데.
……불안하게시리.
* * *
그렇게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 시작한 1라운드는 보물찾기.
[숲 안에 보물 그림이 그려진 쪽지가 숨겨져 있을 거예요!] [제한 시간은 30분!] [그 안에 찾아낸 보물 한 장당 10점씩 드릴게요!]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흐흐, 일단 아저씨부터 재껴야겠지?”
“나만 믿게. 이것 땜시 미션 보상으로 눈 고쳤는디 아주 쓸 만혀. 돋보기가 필요 없다니께?”
“오빠 어디부터 뒤질 거예요?”
팀원들의 눈빛이 하도 흉흉해, 방해라도 할까 싶어 숲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 뒤졌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거라곤 나무 열매와 벌레뿐.
보물 비스무리한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김지은 선수! 보물을 찾았습니다!] [2개! 독보적이네요!] [아앗! 벌써 3개째! 대단한 속돕니다!]증폭된 마이크 너머로 들려오는 세라의 방송에 따르면, 지은 씨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점수를 얻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찾는 거야?’
혹시 내가 엉뚱한 곳을 뒤지고 있는 건가 싶어 팀원들이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저건…….’
스읏-
마치 무언갈 느끼는 듯, 땅바닥에 맨손을 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지은 씨.
그런 지은 씨 주변으로 흡수되는 한 줄기 실바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분명, 내가 아는 그 능력이다.
‘감지!’
그러니까, 보물 쪽지를 찾겠다고 감지 스킬을 쓴다고?
파앗-!
그러고는 염동으로 날아올라 나무 꼭대기에 있는 걸 집어 온다고?
‘사기잖아!’
게다가 과도한 열정은 지은 씨만이 아니었다.
“소조!”
[흐아아아아앗!]연보라와 재혁이는 숲을 죄다 갈아엎으며 땅 밑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냈고.
“푸헬헬! 다 빨아들이다 보면 나오겄제!”
청소 아주머니는 나무 수풀이며 풀꽃 따위를 죄다 빨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아니.
다들 보물찾기에 왜 이렇게 진심인 건데.
“소원은 내 것이여!”
……도대체 무슨 소원을 쓸려고.
[연보라 선수! 1개 획득! 참 잘했어요!] [송현숙 선수도 1개 획득! 청소기가 아주 유용하네요!] [오오! 그 사이 김지은 선수, 2개를 찾았네요! 총 5개! 독보적입니다!]큰일이다.
내가 황당해 하는 사이 팀원들은 실적을 차근차근 올려 갔다.
남은 시간은 겨우 3분.
‘다들 이렇게 나온다면야.’
나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팟-
타이밍을 노린다.
지은 씨의 지그시 감긴 눈이 뜨이고.
제 눈에만 보이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목적지에 당도해 손을 내뻗는, 바로 그 순간.
“이걸로 여섯…….”
[가속.]“개애애애애애…….”
느려진 시간 속, 홀로 만들어 낸 균열을 딛고 움직인다.
지은 씨가 찾아낸 나뭇가지 사이에서 하나.
연보라의 흙손이 뒤엎은 땅 속에서 하나.
재혁이가 열심히 삽질해 뒤엎은 풀밭에서 하나.
그리고 청소 아주머니의 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쪽지까지.
째깍-
“째…… 어?”
기쁨에 환호하던 이들의 얼굴이 순간 당황으로 물든다.
[자! 시간 됐어요!]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이거, 완전히 김지은 선수의 독주로 끝났죠?]시간 종료를 외치며 공중에서 내려온 세라는 한껏 신이 난 얼굴이었다.
[하나도 못 찾아낸 선수들도 꽤 보이는데~]그리 말하며 내 쪽을 향해 찡긋 윙크하는 세라.
[집계하자면, 김지은 선수 5개로 1등, 연보라 선수와 송현숙 선수가 1개로 공동 2등-] [여기, 4개 찾았습니다.] [엑? 언제…….] [제가 2등이네요.] [!!]근데…… 왜 실망하는데?
[사회자가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 겁니까?] [죄송해요. 재미가 없어서…….] [허?] [1등 김지은 선수, 2등은 이은호 선수네요. 뭐, 조금 아쉽지만…… 우리한텐 다음 라운드가 있으니까요!] [?!]이거, 합리적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팀원들 뿐 아니라 사회자인 세라까지 합세해 짠 게 아닌가-하는.
[다음 라운드는 원 밖으로 밀어내기 게임이에요! 경기장으로 이동할게요!]심지어 다음 경기는 십수 명의 팀원이 한 번에 겨루는 난투전.
여럿이서 덤빈다면 승산이 더 없어 보이긴 한다만.
[제한 시간 1분! 원 밖으로 나가는 즉시 아웃이니까 주의하세요-!]‘방법은 있어.’
내가 가진 가장 큰 장기는 가속.
분명 다 같이 덤벼들 테니, 가속 스킬로 피한다.
그 후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나머지 일행들을 원 밖으로 쫓아낸다…… 는 계획이었는데.
[시-작!]시작 신호가 울리자마자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오빠, 미안!”
[은호 씨! 죄송해요!]거대한 흙의 폭포가 거꾸로 치솟아 쏟아지더니, 몸이 붕 떠올라 버렸기 때문.
[잠깐만. 미안하면 하지 말…….] [하아아아앗!]퍽-
[회장님 아웃!]* * *
이 사람들, 진심이다.
[다음은 장애물 달리기! 가장 먼저 통과하는 사람부터 5등까지 점수 드릴게요!] [시-작! 아, 회장님 탈락!]눈에 불을 켜고 나만 쫓아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임했다.
[자! 마지막 라운드까지 종료되었습니다!]그리하여 나온 결과는.
[1등은 총 480점을 획득한 김지은 선수네요! 모두 박수-!]각 라운드마다 엄청난 능력 활용을 보여 주며 활약한 지은 씨가 독보적인 점수로 1등을 차지했고.
[무려 돈만 안 쓰면 뭐든 할 수 있는, 백지 소원권!]공정성을 위해 예산 소모 없이 주자던 선물은 ‘돈만 안 쓰면 뭐든 할 수 있는’ 엄청난 것이 되어 있었다.
‘지은 씨라면…….’
이상한 소원을 쓰진 않을 거다.
지금껏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함께 이겨 내고, 호흡을 맞춰 온 지은 씨를 믿는다.
그리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쥔 지은 씨와 세라를 바라봤다.
[예산을 쓰지 않는다는 게, 사실 무척이나 어렵잖아요?]그러나 기도가 무색하게도, 세라는 눈을 음흉하게 뜨고선 이상한 말을 꺼냈다.
[그럼 역시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좋겠죠?]예?
몸이요?
[돈 대신 시간을 써서, 하루 종일 노예로 부리겠다- 뭐 이런 것도 좋구요!]예?
뭐라고요?
[크- 김지은 선수! 당신의 소원은-?]미친 소리다.
내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지은 씨가 그딴 장난을 칠 리 없다…….
[저는…….]그리 생각하며 꿀꺽, 마른침을 삼키자 천천히 열리는 입술.
[하루 말고, 이틀이요.]‘……?!’
[어머어머! 지은 씨, 꽤 과감한 사람이었네요! 역시 제대로 부려 먹으려면 하루로는 모자라겠죠?] [하하, 아뇨.] [그럼요~?] [이틀 동안, 은호 씨가 업무 관련된 모든 것을 못 하게, 온전히 쉴 수 있는 휴가권을 요청합니다.]아?
[그게 제 소원이에요.]* * *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 소원을 빌기로 정해 놨었단 말입니까?] [네에.]듣자 하니, 전부 약속대로였다 한다.
누가 이기든 날 쉬게 만들기로.
“사실 오빠 당황해하는 게 재밌어서 좀 더 신나긴 했어요.”
“미안하네, 청년. 너무 놀렸지?”
[……아닙니다.]어쩐지 전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요란하다 했는데.
[은호 씨, 직원들한텐 야근하지 말고 칼퇴하라고 엄청 얘기하면서 정작 본인은 매일 야근이시잖아요.] [야근을 좀 하긴 했죠.] [아무리 쉬라고 말씀드려도 안 들으셔서……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제가 제안 드렸어요.]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에 주말 근무.
‘남들은 못 하게 해 놓고 나 혼자 달리긴 했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오는 결재를 하나하나 꼼꼼히 분석하고,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리려다 보니 시간이 많이 들었다.
물론 신의 경지에 다다른 육체를 얻었기에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것까진 막지 못했는데, 그게 팀원들 눈에 보였던 모양.
“그래, 청년! 이거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초장부터 전력 질주했다간 못 버텨!”
“맞아요. 그러다 진짜 큰일 나요!”
“우리 오래오래 같이 일해야죠!”
뭐, 나쁘진 않네.
나보다 더 나를 챙겨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후, 알겠습니다.]그 마음이 고마워서, 잠시 고민 끝에 결심했다.
[이틀 받고, 앞으로도 주말은 최대한 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좋습니다, 형님!]“최대한이 아니라 무조건 쉬어야죠. 우린 다 쉬는데!”
“썅, 됐다. 그게 어디냐.”
그렇게 몇몇은 안도하고, 몇몇은 불만족스런 얼굴을 했지만, 나로선 이게 최선이다.
그리 말하자 세라가 ‘훈훈한 얘기 잘 들었구요!’하며 나타났다.
[이제부터 진짜 야유회입니다! 본격적으로 놀아 봐요!] [이런 날 술이 빠질 수 없죠! 자, 다들 잔 들어요!]와아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벌어진 술판.
“아아- 한 잔만 줘요! 이쯤 했으면 줘도 되잖아요.”
“동의. 솔직히 마셔도 된다고 봐요.”
“저 나름 처장이고 솔아는 무려 원장인데! 이 정도면 우리도 성인으로 쳐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주스를 건네받은 솔아와 여진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화기애애했다.
“크~ 술맛 쥑이는구먼!”
“날씨도 더럽게 좋네!”
“한 잔 더!”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학창 시절 소풍날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
딱 덥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햇살과 어슴프레 올라오는 취기.
‘좋네.’
경기 내내 흘린 땀이 봄바람에 날아가 시원했다.
“언니! 율이도 머글래!”
[내가 줄게. 아-]“까만 아저씨 말구 언니 꺼 먹을래!”
[왜, 왜……?]“나두 까매질 거 가타!”
[힉?!]처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어서일까.
이 사람들과 있을 땐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마치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지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아.’
순간, 오늘 식사 자리-의 탈을 쓴 야유회-를 만든 이유가 떠올라 물었다.
[지난번에 공지드린 건 생각해 보셨습니까?]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렸고, 윤회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직원 중 이번 생을 끝내고 다시 태어나 시작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지 의사를 묻는 중이었는데.
“그, 저…….”
내 물음에 옆에 있던 경비 아저씨가 우물쭈물했다.
그러더니 내뱉은 충격적인 이야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이쯤에서 그만할까 생각도 했었다네.”
[……!]“딸내미도 없고……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었거든.”
그런 생각을 한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자,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말을 이었다.
“자, 잠깐 생각만 했어. 그러다가 나 살려 준 청년들 보기 미안해서, 결심을 했지.”
[무슨…… 결심이요?]“청년들 원하는 거 다 이룰 때까지 돕자고. 그러고 나서, 그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그래서 윤회인지 뭔지 첨 들었을 때, 이거다 싶더라고.”
순간, 일행들의 위로 내려앉은 침묵.
모두의 고요한 시선이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근데…….”
다시 시작하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라고 만든 제도니, 떠난다 해도 잡지 못하리라.
하지만.
‘조금 아쉽…….’
“못하겄네.”
[예?]탁-
아저씨가 머쓱한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 먹고 이런 말 하긴 민망한데…… 일이 하고 싶네.”
[일…… 이요?]“그, 저, 뭣이냐, 하던 대로 회사 경비 일 하는 건데 다들 지켜 줘서 감사하다고, 덕분에 발 뻗고 잔다고 해 주니 뿌듯하기도 하고…….”
……아아.
“그래서, 한 번 더 살아 보려고. 아직 해 보고 싶은 게 많더라고.”
일이 좋아서.
일하고 싶어서 살아가겠다.
그리 말할 줄은 몰랐는데.
“저도요.”
“저도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썅, 나도 조, 조, 좋아.”
그리 말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는데.
“아저씨 때문이에요.”
[나 때문이라고?]“너무 회사를 좋게 만들어 놨잖아요.”
“맞아요! 이렇게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다시 태어나란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멋모르는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그걸로 윗대가리들의 배를 불리던 회사.
그랬던 회사가 일하고 싶은 회사로 바뀌었다 한다.
“그러니까, 같이 일해요. 질릴 때까지.”
“안 질릴 거 같은데, 난.”
“그럼 영원히 일하면 되겠네!”
그 회사에서 영원히 일하자 한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단체로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한 대화였지만.
[나중에 후회하기 없습니다.]“당연하지!”
“아저씨나 회장 자리 지겹다고 뛰쳐나가지 마요!”
이 순간, 우리들은 즐거웠다.
정말로.
(외전 완결)
* * *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선주우입니다.
첫 장편 소설, 첫 완결, 첫 작가 후기라 감회가 새롭네요.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코로나로 골골대느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요.
지금까지 봐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하는 의미에서, 짧게나마 이 글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릴까 해요. (전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밌더라구요.)
때는 바야흐로 N년 전, 당시 재수학원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재수학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지우개로 다 지워 버리고 싶다’는 얘기였죠.
그땐 학업 스트레스에 지친 재수생을 달래고 넘어갔으나, 왠지 저는 그 말이 머릿속에 박혀 가끔 생각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판타지 소설을 써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소설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가게 되죠.
‘왜 싸워야만 할까?’
‘만원 지하철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면?’
‘누군가 지우개로 지우듯 사람들을 지워가면 재밌겠다!’
……이런 식으로요.
반면 주인공인 이은호는, 굉장히 단순한 이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똑똑하고 독한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예. 끝입니다…….
사실 초반부의 은호는 지금보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캐릭터였는데, 담당 편집자님의 ‘사이코패스로 의도하신 건가요?’라는 질문에 충격을 받고 뜯어고친 거랍니다.
소중한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여선 안 되죠. 절대로.
여하튼, 은호와 동료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소설에서 다 풀지 못한 설정들도 많고, 마음 같아선 우리 회장님께서 회사 운영에 질려서 도망칠 때까지(?) 쓰고 싶지만, 남은 여백은 독자님들의 상상에 맡기려 합니다.
저는 글, 특히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글도 읽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상상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을 지금까지 읽어 주시고, 팔딱팔딱 뛰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며 별점, 댓글 남겨 주신 독자님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긴 여정에 함께해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말 많은 작가는 이쯤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차기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선주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