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90
Chapter 20. 신체검사(4)
깜빡!
시야 한쪽 구석에 떠 있는 지도는 녹색의 안전 구역과 함께 붉은빛 하나를 표기하고 있었다.
위치 추적기가 붙어 있는 대상, 이로(異路)의 위치를 알려 주며.
‘저 탑인가.’
하늘섬 중앙에 위치한 첨탑.
‘있는 줄도 몰랐어.’
존재 자체도 인지하지 못했던 탑이었는데.
지도와 붉은빛을 보자마자 시야에 함께 나타났다.
하늘까지 뾰족한 첨탑이라, 어째서 여태 보지 못했던 건지 의아했으나 곧 이해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조치를 취해 뒀겠지.
인식 방해나 뭐, 그런 느낌으로.
난 그걸 ‘위치 추적기’로 발견해 버린 거고.
‘상황이 좋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곧 놈이 내가 제 발로 찾아올 가능성을 떠올리기 힘들다는 뜻이니까.
깜빡! 깜빡!
3D로 친절하게 몇 층인지까지 알려 주는 지도.
덕분에 놈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어떻게 몰래 빠져나가느냐인데.’
하늘에 떠 있는 ‘눈’을 피해, 어떤 내용일지 모를 ‘신체검사’를 빠르게 통과해야만 놈을 찾아갈 수 있다.
[검사장에 도착하였습니다!]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야만 한다.
놈이 내 목을 졸라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치려면.
[신체검사를 시작합니다!]그렇게 비장함을 안고 거대한 초록색 원 안에 들어섰을 때.
“……이게 뭐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에엑? 저희 재입대하는 겁니까?”
시력 검사용 팻말.
수많은 부스와 천막.
그 앞에 길게 늘어선 줄까지…….
말 그대로 신체검사, 그 자체였다.
딱 한 가지,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제외하고.
“이건…….”
“진짜 신체검사였어요, 이거?”
“군대 신검이랑 똑같습니다, 누님! 무인 검사라는 것만 빼면요!”
“그러게? 지나가기면 하면 자동으로 측정되나 봐!”
무인(無人)이라.
맞는 말이긴 하지.
‘저놈들이 사람은 아니니까.’
[키!] [171cm!] [몸무게!] [68kg!]이럴 수가.
이 신체검사, 어떻게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 낼까 생각했는데.
[다음 대상자…… 어?] [어어?!]말이 통하는 놈들을 만났네.
[괴물?] [괴물!]눈을 동그랗게 뜬 바가지 머리 쌍둥이.
「괴물. 먼저 간다.」
괴상한 쪽지만 남겨 두고 떠난 조사국 소속 파견 사원이자, 겉보기엔 깜찍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끔찍한 귀(鬼).
‘보는 눈 없이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나와 ‘눈’을 번갈아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들을 보며 머리를 짜냈다.
조사관 몰래 녀석들과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을.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자니…….
스스스스스슷!
몰려든 먹구름에 잠시 하늘이 흐려지나 싶더니.
찌걱-!
멀쩡히 열려 있던 눈꺼풀이 나무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감겼다.
[조사관의 권한으로 ‘눈’이 폐쇄됩니다!]음?
[눈이?] [닫혔어?] [미션 중인데?] [왜?]잠깐만.
설마 아까 그놈이 끈 건가?
감시받기 싫어서?
[아오! 저 개 같은 눈깔을 확……!] [이로(異路)!]하?
그렇다면.
“이봐, 꼬맹이들!”
[괴물!] [반가워!]이걸 이렇게 도와주다니.
“내가 좀 바빠서 그런데…….”
고마워서 어쩌나?
* * *
쾅!
임시 연구실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눈까지 종료시키고!]쿵! 쿵! 쿵!
조복(調伏)이 체중을 가득 실은 걸음으로 걸어와 말했다.
마뜩잖은 티를 내는 거다. 아주 작정하고.
[어쩌려고 이래?! 감사국에서 알기라도 하면 바로 징계야! 일정 지연된 것도 까딱하면 알려질 뻔…….] [아아- 잘했어.]물론 이로(異路)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거기 시약 좀.] […….]규칙을 어기고 ‘눈’까지 꺼 버렸으면서, 이 와중에 실험이라니.
이놈은 진짜 미친놈이다.
조복은 그리 확신하며 물었다.
[이게 뭐길래 그래?]그러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이로.
[각성제.] [뭐?] [뇌의 잠재력을 몇 배로 끌어내는 약이야.]뇌의 잠재력을 끌어낸다고?
그게 지금 이 상황에 왜 필요하단 말인가.
조복은 눈썹을 올렸다 내리며 돌려서 물었다.
[그럼, 뭐…… 똑똑해지는 거야?] [쯧, 이래서 현장직들은…….]그러자 이로가 조복을 흘끗 보며 혀를 찼다.
이 위대한 발견을 앞에 두고 한다는 말이 고작 ‘똑똑해지냐’는 물음이라니.
[인지 능력, 반사 신경, 감각에 파워까지. 모든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킨다고 보면 돼.] [그게 다 된다고……? 이 물약 하나로?] [뭐, 효과는 개체마다 다르지만.]꿀렁!
삼각플라스크 안에 든 물약이 홀로 꿀렁거렸다.
푸르스름한 액체에 옅은 선홍빛 덩어리가 물과 기름처럼 뒤섞여 반짝였다.
대류 현상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는 물약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했다.
[어후…….]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조복이 머리를 흔들며 물었다.
[지능이 높을수록 효과가 커지는 건가?]약이 뇌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거라고 했으니까.
생각할수록 제 짐작이 맞는 것 같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지만.
[비례는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이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확한 데이터값을 아직 완벽히 밝혀내지 못했다.
[잠재력이라고 하면 그나마 정확하려나.]‘잠재력’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참담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연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번 임상실험만 끝나면 보고드릴 거야.] [보고? 누구한테?]이로는 입을 닫았다.
‘그분’을 떠올리며.
[귀인을 길바닥에서 자게 하다니. 역시 망해 마땅한 세상이야. 안 그래?] [당신은……?] [그대를 두고 미친 천재라 하던데, 사실인지 궁금해.]그의 빛.
제 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던 그의 세상을 비춘 유일한 빛.
[내가 그대를 무어라 부르면 될까?]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아아- 가엾어라.]비루했던 그를 구원해 준 단 한 명의 구원자.
[이로(異路). 어때?] [이로(異路), 다른 길…… 말입니까?] [그래. 그대가 나를 따른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질 테니.] [……!]해골병사 프로젝트는 망할 버그 덩어리 때문에 실패했지만, 이걸로 만회하면 된다.
분명 기뻐하실 거다.
어쩌면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실지도 모른다.
이로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 물약을 이은호에게 먹인다는 거야? 그게 임상 실험…… 맞지?] [멍청하긴. 이은호가 아냐.] [뭐? 여태까지 이은호 얘기만 해 놓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조복이 황당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곧 이어진 이로가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은호는 안 돼. 감당을 못할 거야.] [감당을 못하다니…….] [잠재력이 너무 높아.]물약이 증폭시키는 건 흡수한 대상의 잠재력.
그리고 이은호는, 그가 지금껏 만난 대상자 중에서도 가장 잠재력이 높은 개체다.
즉, 연구원으로서는 한 번도 컨트롤 해 보지 못한 수치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뜻.
[이은호는 실험체로 삼을 거야.] [실험체?] [물약을 조금씩 주입해 보는 거지. 그러려면 순정 상태로 꺼내야 돼.]물약을 주입한다고?
어디에?
그리고…….
[뭘 순정 상태로 꺼내야 하는데……?]조복의 물음에 연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톡톡!
검지를 들어 제 머리를 두드렸다.
‘뇌.’
흠칫!
섬뜩할 정도로 탐욕에 가득 찬 얼굴.
조복은 이 탐욕의 대상이 자신이 아님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 그럼 누구한테 먹일 건데? 직접 먹진 않을 거고…….] [아까 캡슐에 달려든 놈. 그놈한테 먹일까 싶어.]캡슐에 달려든 놈이라면…….
[대상자 장한일? 어째서 놈이지?]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걸 보니, 뇌가 근육으로 만들어진 수준이더군. 적당해. 강하지만 시스템으로 제어 가능한 수준이겠지.]맞는 말이다.
조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다가 이은호에게도 악감정이 단단히 박혀 있던데, 싸움 붙이기 쉽지 않겠어?] [하긴 그렇겠군.]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해야 한다.
조복이야 제 관할 프로젝트에서 잡음이 나오면 곤란해질 게 뻔하고, 그건 이로도 마찬가지였다.
타 부서 프로젝트에 개입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게 공론화되면 윗분들이 곤란해지실 테니.
그러니.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스스로 ‘개방’해 다른 인간을 공격했다. 있을 법한 일 아냐?] [하긴…… 대상자들 간의 싸움까지 파고드는 경우는 없으니.] [게다가 ‘눈’으로 아까 그 꼴까지 봤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계획대로 일이 풀린다면, 개 같은 감사국 놈들도 의심하지 않을 거다.
[아! 그럼 싸우는 와중에 시체는 유실됐다고 보고하면 되겠군. 손가락 하나 정도는 남겨 둬야겠는데?] [흐응- 머리카락 따위론 안 될까? 손가락 아까운데.]조복은 안심했고, 이로는 확신했다.
전투가 일어나기 전, 전리품부터 생각할 정도로.
[신체검사가 끝나면 바로 친다. 상황 체크해.] [보고 오지.]조복은 들어올 때와 달리 침착한 걸음으로 임시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로(異路)!]연구원의 이름을 불러왔다.
[왜!]상황만 보고 오랬더니, 무슨 엉뚱한 짓을 하느라 시간을 끄는 건가.
[좀…… 도와…… 줘야겠는데……?]하아.
상황 체크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도와 달라 말라 하다니.
역시 이래서 머리 나쁜 놈들이랑은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멍청하긴. 그거 하나 제대로 못…… 응?]그리고 문을 열고 나간 곳에는.
[읍!]의자에 묶여 있는 조복이 있었다.
입에는 옷가지가 재갈처럼 물려 있었고.
이로가 말을 더듬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있는 거라곤 조복과 자신뿐.
하지만 상황을 보면…….
[누, 누가 온 거지? 설마 감사국에서 벌써……?] [읍읍!!]당황한 이로의 말에 조복이 머리를 물 묻은 개처럼 흔들어 댔다.
[감사국이 아니라고? 그럼 누가 여길 찾아온단 말이야?!]그리고 이로는.
[설마……!]절대 있을 수 없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일어날 수도, 일어날 리도 없는 가능성.
하지만, 놈이라면…….
타닥!
그리고 그 즉시 뒤돌아 뛰었다.
[읍! 으으으으읍!!]조복이 뭐라 지껄이건 말건.
[물약……!]챙겨야 한다.
빨리!
네발로 기어서라도 빨리!
하지만…….
[뭐, 뭐야?!]사라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 책상 위에 고이 놓여 있던 삼각플라스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쾅! 콰앙-!
책상을 쓸어 버렸다.
눈에 거슬리는 잡다한 물건들을 모조리 깨부쉈다.
[어디 있어?!]그럼에도 나오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이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래서 혼잣말 같은 당혹감을 내뱉었을 때.
[분명 여기 뒀는데……!]“물약?”
[그래! 물야…….]흠칫!
[네, 네가 어떻게 여길…….]귓가를 파고드는, 들려선 안 될 목소리.
“그러니까…… 내가 이걸 마시면 감당이 안 될 거라고?”
놈이 조용히 입꼬리를 올린다.
제 손아귀에 들어온 푸른 분홍빛 액체를 감상하며.
“그럼 마셔 줘야지.”
[아, 안 돼!!]타앗!
몸을 던졌다.
하지만, 이미 놈은 플라스크를 입에 가져다 댄 뒤.
“어디 한번 감당해 봐.”
꿀꺽!
세기의 물약이 사라졌다.
가장 들어가선 안 되는 놈의 목구멍 속으로.
“할 수 있으면.”
[개자식!!]